소설리스트

대몽주-1193화 (1,192/1,214)
  • 1193화. 선천금제(先天禁制)

    여섯 번째 연꽃이 피는 순간, 사방의 천지영기가 갑자기 들끓더니 심협에게로 미친 듯이 몰려왔다.

    온몸의 모공이 활짝 열려 흡수 법칙의 힘이 천지영기를 빠르게 흡수하며 연화하자 몸의 경지도 빠르게 강해져 천존 중기를 향해 나아갔다.

    그러나 심협은 경지에 신경 쓸 겨를이 없었다. 혼돈흑련이 지금도 계속 선천지기를 흡수해 일곱 번째 연꽃이 조용히 고개를 들고 있었기 때문이다.

    시간이 흐르면서 신마의 우물 안에 이상한 현상이 일어나기 시작했다.

    신마의 기둥에 가부좌한 채 두 눈을 감고 있던 흑백진군은 천지영기가 자극을 받은 것처럼 들끓자 눈을 떴다. 고개를 들어 신마의 우물 입구를 돌아보니 바깥 세계의 영기가 현재 교룡처럼 우물로 모여들고 있었다.

    우물 입구가 번쩍거리고 각양각색의 광망이 허공을 비춰 장안성의 밤하늘에 극광(極光, 오로라) 같은 화려한 광채가 일어나자 수많은 관리와 백성들이 집 밖으로 나와 이 장관을 구경했다.

    대당 관부 사해당 밖의 광장에서는 원천강과 정교금 일행도 이 광경을 올려다보았다. 이들은 당연히 백성들보다 더욱 자세히 볼 수 있었고, 천지영기의 흐름을 뚜렷하게 느꼈다. 심지어 이 천지영기들이 어디로 모여드는지도 알았다.

    “국사님, 벌써 몇 시진 째 이렇군요. 이대로 가다가 장안의 영기가 전부 말라버리지 않을까 걱정입니다.”

    정교금이 걱정스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그런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되오. 이전에 장안성을 다시 지을 때 성벽에 열여덟 개의 인령(引靈) 법진을 추가하여 장안성의 천지영기가 소모되면 성 밖 진령산맥의 영기를 끌어올 수 있게 해두었소. 지맥도 다른 곳의 영기를 흡수하여 보충할 수 있으니 큰 문제는 없을 것이오.”

    “국사님은 이런 상황이 일어날 것을 미리 알고 계셨던 겁니까?”

    “그건 아닐 겁니다. 국사께서 이전에 저를 초청하여 장안성에 방어 대진을 다시 배치할 때, 방어 대진의 위능과 지속성을 늘리기 위해 열여덟 개의 인령 대진을 추가했습니다. 그저 우연히 앞당겨 사용된 것뿐이지요.”

    옆에 있던 소부자가 웃으며 대신 답했다.

    “그렇군요.”

    정교금이 고개를 끄덕였다.

    “이렇게 엄청난 소동을 일으킬 수 있는 건 아무리 생각해 봐도 심 도우뿐입니다. 이번에 수련을 끝내고 나오면 또 어떤 놀라움을 안겨줄지 기대가 되는군요.”

    소부자가 영기가 모여드는 곳을 바라보며 말했다.

    “그렇지요. 그 말고 또 누가 있겠습니까? 그렇게 젊은 나이에 천존 경지라니, 항고 이래로 없었던 일입니다.”

    원천강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들도 천몽침의 존재와 심협이 꿈속 세계를 넘나든 사실까지 모두 알고 있었다. 이런 엄청난 기연과 조화를 일으키는 자는 시대의 필요와 운명을 타고난 자. 자연스레 사명과 책임을 지기 마련이다.

    “아, 최근에 마족의 동향은 어떻습니까?”

    소부자가 물었다.

    “보고에 따르면 마족 대군이 이미 남첨부주에 집결하고 있다 합니다. 형세를 봐서는 우리 대당이 그들의 다음 목표인 듯합니다.”

    “한데 이번에 마족 대군을 이끄는 자는 모두 십이마존이고, 치우와 그의 형제 여든하나는 보이지 않습니다. 어디 있는지도 알 수 없다는군요.”

    정교금의 설명을 원천강이 보충했다.

    “겉으로 공격하는 척하면서 뒤에서 뭔가 수작을 부리는 게 아닐까요? 그들의 진짜 목표는 남첨부주가 아닐지도 모르겠군요.”

    소부자가 무거운 목소리로 말했다.

    “현재 4대 부주에서 서우하주의 전투만이 아직 이어지고 있지만, 함락되는 것은 시간문제입니다. 남은 것은 남첨부주뿐이니 그들이 노리는 것도 당연합니다. 다만, 치우의 동향을 알지 못해 좀처럼 마음이 놓이지 않는군요.”

    “영산과 천궁도 힘을 모아 남첨부주를 지키려 하고 있고 명부도 참전한다 했으니 장안이 최후의 결전 전장이 될 가능성이 큽니다.”

    “어쨌든 이곳이 삼계의 마지막 희망이니 대비를 잘해야 합니다.”

    그들이 이런 대화를 나누고 있을 무렵, 주광순화대진 안에서는 기이한 변화가 이어졌다. 심협의 팔에는 벌써 열한 번째 검은 연꽃이 피어났는데, 그 위에 금색 무늬가 퍼져 매우 신비롭고 요염해 보였다.

    빛으로 뒤덮인 심협의 기운이 폭증하여 붉은색 불꽃이 몸 주위를 뒤덮었고, 머리 뒤에는 금색 불꽃 고리가 생겨나 천제처럼 매우 장엄해 보였다.

    그의 몸에서 뿜어져 나오는 기운은 이미 천존 절정에 도달해 지고(至高)의 대천존 경지까지 겨우 한 걸음 남은 상황이었다.

    한데 그의 표정은 어두웠다. 그의 손에 쥔 흑백의 조약돌도 빛을 거의 잃었다. 안에 담긴 선천지기는 명홍도와 전신편을 합친 정도라 열두 번째 연꽃을 피어나게 하기에 충분했다. 그런데도 열두 번째 연꽃의 꽃봉오리는 얼어붙은 것 같았고, 아무리 선천지기를 흡수해도 피어날 기미조차 보이지 않았다.

    심협은 두 조약돌을 거두고는 마지막 연꽃 꽃봉오리를 자세히 살폈다. 잎에는 이미 금색 무늬가 생겨났는데 꽃봉오리 안에서 은은한 법칙의 기운이 흘러나왔다.

    “이건……?”

    심협은 법력으로 혼돈흑련을 발동했다. 그러자 아직 피지 않은 꽃봉오리만 빛이 나더니 그 안에서 작은 구름이 떠올라 꽃봉오리를 감쌌다.

    “선천금제(先天禁制)?”

    심협의 머릿속에서 이 네 글자가 스쳐 갔다.

    이전에 화령자한테 들은 바로는, 선천신물은 완전히 자라기 전에 사람이 수련할 때 맞는 천겁처럼 각종 시련에 직면하는데, 이를 선천금제라 한다고 했다. 선천금제는 신물과 평생을 공존하며 함께 성장하며, 신물이 성장하는 마지막 관문 역할을 한다. 이 금제를 파훼하면 신물이 완전히 자라나서 선천영보가 되지만, 파훼하지 못하면 더 이상 품계가 오를 가능성은 사라진다.

    지금 이 열두 번째 연꽃을 완전히 피게 하려면 먼저 이 선천금제를 파훼해야만 하는 상황이 됐다.

    심협은 소요경을 열어 화령자를 불러냈고, 상황을 설명했다.

    “선천금제를 파훼하려면…… 기연이 필요하다.”

    한참을 살펴본 화령자는 이렇게 말했다.

    “기연?”

    “선천영보를 성숙시키는 것이 어디 그리 쉬운 줄 알았느냐. 기연이 있어야 그것들 스스로 선천금제의 억압을 극복하고 성숙한다. 그리고 기연은…… 한 방울의 물일 수도, 한 줄기의 번개 일수도, 한 번의 바람일 수도 있다. 심지어 어떤 요수의 소변 한 방울일 수도 있지. 딱히 정해진 것이 없으니 그저 운이 좋기만을 바라는 수밖에…….”

    화령자가 한숨을 내쉬었다.

    그의 말뜻은 확실했다. 자신도 혼돈흑련의 기연이 무엇인지 모른다는 것.

    한데 잠시 생각에 잠겨 있던 심협이 피식 웃었다.

    “그렇다면 이 혼돈흑련의 기연은 바로 나를 만났다는 거겠지.”

    “그게 무슨 소리냐?”

    화령자가 어이 없다는 물었지만, 심협은 대답 대신 손을 뒤집었다. 그러자 손에서 검은빛이 반짝이더니 이윽고 검은색 도끼가 나타났다.

    개천부기에서 파멸의 기운이 뿜어져 나오자 화령자는 깜짝 놀랐다.

    “무슨 짓을 하려는 거야? 혼돈흑련은 함부로 쪼개면 안 된다!”

    “걱정 마. 나도 생각 없이 이러는 건 아니야. 이 개천부 안에는 파멸 법칙이 담겨 있으니 선천금제를 파훼하는 데 이만한 게 없잖아?”

    화령자의 만류에도 심협은 고개를 저으며 웃었다.

    그 표정을 본 화령자는 심협이 심사숙고했다는 것을 알고는 더는 막지 않았다.

    심협은 법력을 조금 운공하며 개천부로 혼돈흑련 꽃봉오리를 내리쳤다.

    검은 빛이 반짝이는 도끼의 날이 정확하게 꽃봉오리를 찍었다.

    챙!

    금속이 충돌하는 듯한 맑은 소리가 울려 퍼지더니 혼돈흑련의 꽃봉오리에서 금빛과 함께 꽃무늬 같은 독특한 금빛이 떠올랐다. 이 금빛은 원형의 광막을 만들어 연꽃 전체를 뒤덮고는 개천부를 그대로 튕겨냈다.

    “오, 강력한 선천금제로군.”

    화령자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반면 심협은 눈을 가늘게 뜨더니 이전보다 두 배 더 강한 힘으로 개천부를 휘둘렀다.

    도끼가 검게 반짝였고, 뒤이어 또다시 챙 하는 소리가 울려 퍼졌다.

    하지만 이번에도 개천부는 금제 광망에 막혀서 튕겨 나갔다.

    심협은 힘을 끌어 올리며 연달아 몇 번이나 개천부를 휘둘렀지만, 매번 선천금제에 막히고 말았다.

    “이럴 수가, 개천(開天) 신기인 개천부가 어떻게 선천금제를 부수지 못하는 거지?”

    화령자가 도저히 믿을 수 없다는 듯 중얼거렸다.

    그러나 심협은 뭔가를 알 것 같았다.

    “아까 개천부를 크게 소모한 데다가 내가 아직 완전히 연화하지 못해서 안에 담긴 파멸 법칙을 제대로 발휘하지 못한 모양이야.”

    “그럼 얼른 연화해!”

    화령자가 황급히 재촉했다. 혼돈흑련이 다칠 걱정이 사라졌으니 이제 연화된 개천부가 이 선천금제를 부술 수 있는지 없는지를 보고 싶어진 것이다.

    심협은 두말하지 않고 가부좌를 튼 후 개천부를 무릎에 올려놓고 한 손은 도끼의 자루를, 다른 손은 날을 누르더니 뭔가를 중얼거리며 선천연보결을 운공하였다.

    한 겹의 광망이 개천부를 뒤덮자 심협과의 사이에 어떤 특별한 연결이 생겨났고, 연화 과정이 조금씩 진행됐다.

    경지가 올라가서인지 아니면 반고진공이 극에 달해서인지, 이전과 달리 연화 속도도 매우 빨라졌다.

    대략 반 시진 뒤, 법진 공간 안에 갑자기 검은 빛이 번쩍이더니 기이한 파동이 개천부에서 흘러나왔고, 작아진 도끼의 각인이 허공에 나타났다.

    심협이 심념을 각인에 넣자 신혼이 강력하게 잡아당기는 것이 느껴지더니 순식간에 끝없는 어두운 허공 속으로 빨려 들어갔다.

    주위에는 아무것도 없었고 아무런 소리도 들리지 않았으며, 아무런 냄새도 나지 않았다. 심지어 아무런 기운의 파동도 느껴지지 않았다.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고 아무것도 느껴지지 않는 광활한 공간 같았다.

    강렬한 고독과 공허가 몰려오자 심협은 갑자기 자신의 존재마저 느껴지지 않았고, 어둠에 녹아들어 그 일부가 된 것 같았다.

    그런데 그때, 그의 손에서 미약한 빛이 번쩍였다. 그 빛은 너무도 미약해서 어둠과 다를 바가 없었다.

    그러나 이 빛이 번쩍인 순간, 무너질 것 같던 심협의 심경이 되살아났다. 손바닥을 내려다보니 그 빛은 바로 기이한 도끼 허상의 각인이었다.

    그는 이 빛을 지키기 위해 주먹을 쥐었다.

    그 순간, 그의 손에 검은색 도끼가 나타났다. 그는 거의 무의식적으로 팔을 휘둘러 허공을 가로로 베었다.

    천 년의 암실이 등불 하나로 밝아지듯 한 줄기 부광이 어둠을 찢자 주위의 기이한 현상이 모조리 사라졌다.

    심협은 여전히 대진 안에 가부좌한 상태였고, 손에 쥔 개천부에서는 유광이 반짝거렸다. 이미 완전히 연화된 것이었다.

    그제야 심협은 천천히 두 눈을 떴다.

    “어떻게 됐어?”

    심협이 눈을 뜨자마자 화령자가 바로 달려오며 물었다.

    심협은 씩 웃더니 도끼의 자루를 꽉 쥐고 법력을 조금 주입했다. 그러자 개천부에서 바로 날카로운 소리가 울리더니 파멸의 검은 빛이 도끼의 날에서 뿜어져 나왔고, 파멸의 기운도 퍼져 나갔다.

    대진 안의 공간이 파멸의 기운으로 뒤덮였다. 화령자는 이 힘을 감지하자마자 오싹해졌고, 언제든지 온몸이 찢겨 나갈 것만 같은 착각이 들었다.

    심협이 얼른 법력을 거두고는 흡족해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개천부의 힘이 많이 유실됐지만, 그래도 신기라서 그런지 위능이 약하지 않아.”

    이어서 그는 혼돈흑련을 밖으로 불러내더니 다시 도끼를 들어 마지막 꽃봉오리를 내리쳤다.

    개천부가 번쩍이더니 파멸의 검은 빛이 가볍게 스쳤고, 도끼에서 각인이 반짝거리며 기이한 기운이 바로 뿜어져 나왔다.

    혼돈흑련의 선천금제는 광망이 뿜어져 나와 광막을 이루었지만, 도끼의 빛에 쪼개져 소리도 없이 부서졌다.

    이를 본 심협은 씩 웃으며 개천부를 집어넣고는 다시 두 개의 조약돌을 꺼냈다.

    혼돈흑련의 뿌리가 휘감자 두 개의 돌에 있던 선천지기가 순식간에 전부 빨려 나가며 회색 돌이 되었다. 이 돌은 살짝 건드리자 바로 가루가 되어 흩어졌다.

    혼돈흑련의 마지막 검은 연꽃도 마침내 피어났고 원기가 다시 휘저어지면서 심협에게로 몰려오자 구룡전에 영기가 충만해졌다.

    이 공간에서 수련하던 다른 사람들도 덕분에 경지가 빠르게 오르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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