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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몽주-1191화 (1,190/1,214)
  • 1191화. 기회

    심협은 탐색하듯이 팔을 들어서 좌우로 흔들었지만, 혼돈흑련의 꽃잎은 오직 한 곳만을 가리켰다. 바로 그 흑백산이었다.

    심협은 망설이지 않고 곧바로 그 산을 향해 날아올랐다.

    눈 깜짝할 사이에 심협은 흑백산에 거의 도착해서 보니 산 정상에는 인위적으로 잘려나간 거대하고 평평한 광장이 보였다.

    그 평대 중앙, 흑백의 산벽이 경계를 이루는 곳에는 안개가 자욱한 샘이 있었다. 이 샘은 절반은 까맣고 절반은 하얀 연못을 이루었다.

    흑백 연못 옆에는 81개의 우람하고 건장한 존재들이 가부좌를 하고 있었다. 생김새는 모두 달랐지만, 기본적으로 사람의 몸에 짐승의 얼굴이었다. 하나같이 험악했고, 구릿빛 피부에 칼로 조각한 듯한 근육에서 강력한 야성과 힘이 느껴졌다.

    이들은 산의 검은색 절반에 앉아 있었고, 땅에서는 칠흑 같은 안개가 피어올라 그들의 몸을 휘감았다.

    자세히 보니 그 검은색 안개는 다름 아닌 선천마기였다.

    그들 위의 상공, 창궁의 눈 같은 흑백 소용돌이 아래에는 또 한 명의 험악하고도 거대한 마족이 가부좌를 틀고 있었다.

    그를 보는 순간, 심협은 눈이 휘둥그레져 하마터면 소리를 지를 뻔했다.

    ‘치우! 저들이 여기는 어떻게 온 거지?’

    심협은 깜짝 놀랐다. 이런 곳에서 치우와 81명의 마족을 마주칠 것이라고는 생각지도 못한 것이다.

    높은 하늘에 가부좌를 틀고 있는 치우는 아래의 형제들과 달리 검은색 선천마기뿐만 아니라 하얀색 선천지기로도 몸을 휘감고 있었다.

    두 힘이 융합하여 그의 몸으로 들어가자 등 뒤에 거대한 흑백의 광환이 만들어졌고, 광환이 비춘 그의 모습은 마치 신 같았다.

    하지만 그의 몸에서 뿜어져 나오는 기운의 파동은 매우 평화로워 이전과 같은 무시무시한 기세가 아니라 오히려 평범한 사람 같아 보였다. 이 모습에 심협은 오히려 더욱 불안해졌다.

    “저토록 자연스럽고 조화롭다니, 실력이 더 정진한 모양이군.”

    심협은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그는 치우 하나도 상대하기 벅찬데 홀로 저 마족 거물들과 맞설 자신이 없었기에 물러가기로 했다.

    한데 그때, 치우의 눈꺼풀이 갑자기 올라가더니 심협이 있는 쪽을 바라봤다.

    실제 같은 시선이 공간의 장벽처럼 내려와 한순간에 움직일 수 없게 된 심협은 가슴이 쿵쾅쿵쾅 뛰었다.

    “심협, 또 만났구나.”

    치우의 말이 끝나자마자 그의 마족 형제 모두가 눈을 뜨더니 일제히 자리에서 일어나 심협과 싸울 태세를 갖췄다.

    “저자는 내가 알아서 처리할 테니 너희는 수련에 전념하라.”

    치우는 그렇게 말하고는 자리에서 일어섰다.

    81명의 마족 형제는 그의 말대로 다시 않더니 계속 눈을 감고 수련했고 심협을 쳐다보지도 않았다.

    치우가 눈 깜짝할 사이에 심협 앞에 나타나더니 거대한 손으로 내리쳤다.

    심협은 급하게 피했지만, 한 발 늦고 말았다.

    모든 빛을 가릴 듯한 손바닥이 내려오는 모습은 그야말로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리는 모습이었다.

    피할 수 없음을 알게 된 심협은 바로 반고진공을 운공하는 동시에 주먹을 쥐고 크게 휘둘렀다.

    주먹에서 찬란한 금빛이 번쩍이더니 웅장한 힘이 솟구치면서 두 개의 거대한 주먹 허상이 되었고 굉음과 함께 그 손바닥과 충돌했다.

    하지만 양쪽이 닿기도 전에 손바닥의 강력한 힘이 먼저 압박해 와서 심협의 주먹이 내뿜은 금빛을 순식간에 부수었고, 허상도 뒤따라 터트렸다.

    콰쾅!

    굉음이 울려 퍼졌다.

    심협의 두 주먹이 거대한 손과 강하게 충돌하자 산과 바다를 무너트릴 듯한 힘이 홍수처럼 쏟아져 내려와 두 팔을 타고 심협의 몸에 전해졌다.

    두 팔이 묵직해지더니 격렬한 통증이 주먹을 타고 몰려왔고, 심협의 몸은 훌훌 날아가 어느 절벽에 처박혔다.

    쾅!

    굉음과 함께 연기가 솟구치며 절벽이 무너져 내렸다. 심협은 그러고도 계속 곤두박질쳐 땅에 매우 깊은 골짜기를 만들었고, 거대한 바위와 충돌한 후에야 멈췄다.

    심협의 오장육부가 강하게 흔들렸다. 그는 대개박술로 상처를 치료하며 일어나 고개를 들어 거대한 치우를 바라봤다.

    육신보다 마음에 받은 충격이 더 컸다. 치우의 실력이 예상보다 더 강했던 것이다.

    “심협, 다른 생각 말고 어서 도망쳐라. 내가 보니 치우의 경지가 다시 대천존의 경지로 돌아온 것 같다. 저놈의 손짓과 발짓에는 천지의 위능이 담겨 있어, 지금의 너로는 결코 상대가 안 된다.”

    화령자의 목소리가 식해에 울려 퍼졌다.

    대천존의 경지에 들어서면 천지와 하나가 된다. 수명은 천지와 같아지고 수단을 시전할 때도 천지의 힘을 빌릴 수 있다. 이는 법칙의 힘을 동원하는 것보다 더 편하고 더 강하다.

    화령자의 말을 들은 심협은 도망가려 했는데, 치우가 다시 공격해 왔다. 심협은 머뭇거리지 않고 혼돈흑련의 공간 법칙의 힘으로 온몸을 뒤덮었다.

    치우가 손을 내밀어 허공을 움켜쥐자 강한 힘이 그를 붙잡기 위해 사방에서 압박해 왔다.

    이 힘에 뒤덮여 도망갈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을 때, 그의 몸이 갑자기 일그러지더니 그 자리에서 사라졌다.

    다음 순간, 수백 장 떨어진 허공이 희미하게 일그러지더니 심협이 나타났다.

    “공간 법칙의 힘인가? 재미있구나! 하하하!”

    치우는 공격이 허탕을 치자 껄껄 웃었다. 이어서 그의 몸도 갑자기 희미해지더니 그 자리에서 사라졌고, 심협은 깜짝 놀랐다. 치우의 기운이 완전히 사라져 마치 이 공간을 떠난 것 같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이 더 위험함을 심협은 잘 알고 있었다.

    그는 곧장 공간 법칙의 힘을 운공했지만, 치우가 어디서든 나타날 수 있었기에 어디로 피해야 할지 정할 수 없었다.

    한데 그때, 곁눈질로 저 멀리 흑백의 산을 본 심협의 눈이 반짝거렸다.

    강렬한 위기감에 자세히 생각할 겨를도 없이 공간 법칙의 힘을 발동했고, 심협의 몸이 일그러지더니 그 자리에서 사라졌다.

    그 순간, 그가 있던 곳에 갑자기 도끼의 허상이 나타나 그대로 허공을 찢으면서 공간에 커다란 구멍이 생겼다.

    심협이 한 발 앞서 사라졌다는 것을 알아챈 치우의 표정에도 놀란 기색이 스쳤다. 그는 곧바로 눈을 돌려 다시 심협을 찾으려 했다. 그리고 잠시 후 흑백산 정상의 광장에 심협의 모습이 나타났다.

    한편, 심협은 평대로 내려가지 않고 허공에 서서 치우를 바라봤다.

    저 아래, 치우의 형제들은 가부좌한 채 눈을 감고 수련했다. 치우의 명령을 절대적으로 따랐기에 심협의 추격에 참여하지 않은 것이다. 이들은 설령 심협이 바로 앞까지 왔어도 움직일 생각이 조금도 없어 보였다.

    “심협, 경지와 배짱 모두 제법이구나. 진룡존자가 널 반드시 죽여야 한다고 했지만, 그래도 네게 기회를 주고 싶다.”

    치우는 바로 쫓지 않고 말했다.

    “기회? 무슨 기회를 말하는 거지?”

    심협이 흠칫하며 물었다. 그러면서도 동시에 그는 속으로 탄식했다. 진룡존자는 경하 용왕의 여식 마수수로, 자신을 향한 그녀의 원망은 더 깊어진 듯했다.

    “다시 종족을 선택할 기회다.”

    “그러니까 어떤 방법을 써서 날 마족으로 바꾸겠다는 건가?”

    “당연히 그런 졸렬한 수단이 아니더라도 널 진정한 마족으로 바꿀 방법이 있다. 심지어 열두 존자보다 더 높은, 고귀한 혈통의 마족이 될 수도 있다.”

    “음…… 열두 존자보다도 위란 말인가? 그렇다면…….”

    심협은 주저하는 듯 말을 끌었다.

    치우가 잠시 기다리는데, 갑자기 사방 천지에서 폭풍이 일어나더니 온 하늘을 뒤덮은 영기가 솟아올라 심협에게로 몰려들기 시작했다.

    뒤이어 웅장한 천지영기가 휘몰아치자 흑백산에 광활한 기상이 나타났다.

    심협도 깜짝 놀랐다, 시간을 끌려고 치우의 제안에 고민하는 척하긴 했지만, 그사이에 이런 일이 일어날 줄은 몰랐던 것이다.

    혼돈흑련 연꽃의 흡수 법칙의 힘이 허공을 넘어 흑백 샘물에 있는 선천지기를 흡수했고, 꽃봉오리였던 다섯 번째 연꽃이 마침내 활짝 피었다. 그리고 그 순간, 천지에 이변이 생기며 웅장한 천지영기가 심협의 체내로 들어왔고, 흡수 법칙의 힘에 빠르게 흡수되어 몸의 기운이 폭증하기 시작했다.

    심협의 꼼수를 알아챈 치우의 눈에 짙은 살의가 번득였다.

    “감히 내 호의를 거절하다니, 더는 봐주지 않겠다.”

    치우가 분노로 호통을 쳤다.

    “미안하지만, 나는 네가 통치하는 삼계를 본 적이 있거든. 그런 지옥 같은 광경이 다시 일어나게 할 수는 없지.”

    심협은 고개를 저으며 답했다.

    “이미 본 적이 있다면 하늘의 뜻이 무엇인지 알고 있을 텐데?”

    치우는 말이 끝나자마자 갑자기 한 손을 산 정상을 향해 뻗었다. 그의 공격이 허공을 가로질러 날아왔다.

    이를 본 심협은 무의식적으로 공간 법칙의 힘을 발동하여 그 자리에서 사라지려 했다. 하지만, 치우의 손에서 나온 공 모양의 검은 빛은 그가 아니라 산 정상의 그 흑백 샘으로 내려갔다.

    공 모양의 빛은 샘보다 조금 더 큰 검은색 광막으로 변하여 흑백 샘을 전부 뒤덮었다. 그러자 빛이 반짝이더니 곧 작은 경치들이 떠올랐다.

    심협이 자세히 보니 산과 강이 가로놓여 있고 해와 달이 하늘에 떠 있는 것이 하나의 축소된 세계 같았다. 경치 또한 실세계와 차이가 거의 없었다.

    이때, 심협은 자신의 흡수 법칙이 효력을 잃어서 흑백 샘물의 선천지기를 더는 흡수할 수 없게 됐음을 알아챘다.

    “법칙 공간!”

    심협은 법칙 공간을 이런 식으로 사용하는 것은 처음 보았다.

    “일반적인 법칙 공간이 아니라 법칙 영역(靈域)이다. 법칙 공간이 극에 달했을 때 비로소 나타나는 완벽한 상태지. 저 안은 스스로 하나의 세계가 만들어져 외부의 어떠한 법칙도 무효화되고, 바깥은 난공불락이다. 어떻게 해볼 방법이 없어. 법칙 영역을 확대하기 전에 도망가야 한다!”

    화령자의 다급한 목소리에 심협은 흠칫 놀라며 공간 법칙의 힘을 시전하여 도망치려 했다.

    하지만 다음 순간, 머리 위의 하늘이 어두워지더니 법칙의 영역이 순식간에 확장되어 그와 흑백산 절반을 뒤덮었다.

    심협의 몸을 뒤덮었던 공간 법칙의 힘이 순식간에 효력을 잃고 다시 체내로 침투했다.

    공간 법칙의 힘이 사라진 게 아니라 밖으로 빠져나오지 못해 주위 공간에 작용하지 못하는 것임을 알 수 있었다.

    심상치 않음을 감지한 심협은 망설이지 않고 곧바로 천몽침을 꺼냈다.

    지금 도망칠 방법이라면 천몽침을 발동하여 다른 시공간으로 가는 것뿐이리라.

    심협은 양손에 천몽침을 쥐고 체내의 공간 법칙의 힘을 그 안으로 흘려보냈다. 그러자 옥침에서 노란 빛이 번쩍이더니 바로 퍼져 나갔다.

    한데 그때, 갑자기 차가운 비웃음이 들려왔다.

    “똑같은 수단이 두 번 통할 것이라 생각했느냐?”

    그 말이 끝나기 무섭게 치우가 손을 휘두르자 사방을 뒤덮은 법칙 영역이 갑자기 검은 빛으로 번쩍였다. 심협은 시간 법칙 파동과 또 다른 공간 법칙 파동이 하나로 합쳐진 기이한 법칙 파동을 느꼈다.

    옥침에서 번쩍이던 노란 빛은 이 법칙 파동에 휩쓸리는 순간 갑자기 불안정해지더니 몇 번 반짝이다가 저절로 꺼졌다.

    ‘옥침마저 발동할 수 없다니!’

    심협은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마족이 되지 않겠다면 넌 필요 없다. 죽어라!”

    치우가 하늘을 떠받치듯이 한쪽 팔을 하늘 높이 들자 손바닥 가운데가 핏빛 광망으로 빛나기 시작했다. 뒤이어 그가 손을 크게 휘두르자 여섯 줄기의 핏빛 광망이 채찍처럼 심협에게로 날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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