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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몽주-1190화 (1,189/1,214)
  • 1190화. 희망

    심협이 심념을 움직이자 모든 비검이 갑자기 흔들리면서 날카로운 검기를 뿜어내 괴물들을 베었다.

    하지만 괴물들은 두려워하지 않고 강인한 육체를 믿고 돌격해와 검진을 흩어놨다.

    수많은 괴물이 마침내 심협에게로 돌진하며 입을 쩍 벌렸다. 날카로운 이빨들이 드러나면서 검푸른 안개가 뿜어져 나왔는데, 코를 찌르는 썩은 냄새가 풍겼다.

    심협은 비검으로 괴물들을 맞이하며 손가락으로 허공을 움켜쥐었다. 그러자 팔에서 혼돈흑련이 나와 공간 법칙의 힘이 봉인되어 있던 흑련의 금문에서 빛이 번득였다. 강력한 공간 법칙의 힘이 혼돈의 뿌리를 타고 흘러나와 곧장 심협의 손에 도달했다.

    이어 손가락에서 은백색 빛이 번득이더니 실오라기 같은 공간 법칙의 힘이 바깥 공간과 연결되자 보이지 않는 커다란 그물이 만들어졌다.

    괴물들이 그물 안에 들어오는 순간, 심협이 손목을 비틀었다. 그러자 허공이 갑자기 비틀리고 부서지면서 백 마리에 가까운 하얀 괴물도 함께 일그러졌다. 괴물들은 살과 뼈가 찢어지고 머리가 납작해져서 순식간에 비명횡사했다.

    이와 동시에 순양비검에서 뿜어져 나온 검광도 매우 뜨거워졌고, 괴물들이 비검에 찔리는 순간 눈부신 빛이 뿜어져 나오며 폭발했다.

    염폭 법칙의 폭발에 동굴 안이 불바다가 되었다.

    괴물들은 날카로운 비명을 지르며 몸에 불이 붙은 채 추락했다.

    잠시 후, 살아남은 괴물들은 크게 부상을 입은 채 물러갔다.

    허공에 선 심협은 아래의 심연을 바라보며 생각에 잠겼다.

    그러나 한참이 지나도 시체가 바닥에 떨어지는 소리가 나지 않자 그는 더욱 긴장했다.

    한데 그때였다. 무언가 으적거리는, 느릿하지만 규칙적인 소리가 들려왔다. 마치 누군가가 음식을 뼈째 씹어먹는 소리 같았다.

    “누구냐!”

    심협이 경계심을 끌어올리며 물었다.

    그의 목소리가 동굴 안에서 끊임없이 울려 퍼졌지만, 돌아온 것은 여전히 무언가를 씹는 듯한 그 소리였다. 다만 이 소리가 점점 더 가까워졌다.

    “가라!”

    심협이 외치자 옆에 있던 모든 순양비검이 하늘을 가르며 아래로 쏜살같이 날아갔다.

    검신의 불꽃이 비춘 동굴 깊은 곳을 보니 거대한 무언가가 조금씩 기어오르고 있었다.

    심협이 눈을 가늘게 뜨고 보니 거대한 문어 괴물이 여덟 개의 커다란 다리로 벽을 기어올랐는데, 입으로는 하얀 괴물들의 시체를 우물우물 씹고 있었다.

    문어 괴물이 시체를 다 삼켰을 때는 심협과의 거리가 백 장도 되지 않았다.

    괴물은 두 개의 커다란 다리로 갑자기 뛰어올라 곧장 심협에게로 날아왔는데, 속도가 매우 빨라 날카로운 파공음이 울려 퍼졌다.

    심협이 손을 휘두르자 서른 자루의 순양비검이 쏜살같이 날아가 두 다리를 찔렀다.

    비검이 가까이 다가오자 괴물의 두 다리에서 갑자기 빼곡한 빨판이 열리더니 대량의 하얀 안개가 뿜어져 나와 모든 비검을 뒤덮었다.

    일순 비검과의 연결이 끊어졌고, 심협은 깜짝 놀랐다.

    “낙보금전 같은 효과라니?”

    허공 가득한 안개가 자신을 덮쳐오자 심협은 바로 손을 휘둘렀다. 강렬한 공간 법칙의 힘이 손바닥에서 뿜어져 나와 하얀색 칼날이 되어 날아갔다.

    삽시간에 하얀색 안개는 광흔에 정확하게 반으로 갈라졌고, 중간에 뚜렷한 골짜기가 나타났다.

    심협이 다시 한 걸음 내딛자 몸이 귀신처럼 사라졌다가 순식간에 그 골짜기를 지나 문어 괴물의 눈앞에 나타났다.

    그는 손목을 돌려 헌원신검을 잡고는 문어 괴물을 내려치려 했다.

    한데 그가 검을 드는 순간, 문어 괴물 옆의 나머지 다리가 전부 다가오더니 빨판에서 일제히 그 하얀색 안개를 뿜어냈다.

    안개에 뒤덮인 심협은 일순 어지러워졌고 체내의 법력도 순식간에 얼어붙어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다리 하나가 그의 몸을 휘감고는 높이 들어 올리더니 다시 아래로 잡아당겨 문어 괴물의 커다란 입으로 가져갔다.

    괴물의 커다란 입이 가까워지면서 뾰족한 이빨이 선명하게 보이자 심협의 팔에 담긴 다른 혼돈의 연꽃에서 갑자기 빛이 번득이더니 흡수 법칙이 담긴 소용돌이가 생겨나 강렬한 흡입력을 뿜어냈다.

    삽시간에 주위에서 몰려오던 하얀 안개가 전부 소용돌이에 빨려 들어갔고, 심지어 심협의 입과 코 그리고 귀에 파고들었던 하얀 안개까지 다 빨아들였다.

    하얀 안개가 몸에서 떨어지는 순간, 심협의 법력이 다시 흐르기 시작했다. 동시에 진즉 운공했던 반고진공에서 흘러나온 강력한 힘이 심협 손의 헌원신검에 모두 주입되었다.

    “하앗!”

    그가 기합을 지르며 장검을 내리긋자 검광이 곧장 문어 괴물의 머리를 베었다. 빛이 사방으로 흩어지며 수많은 작은 검광이 뿜어져 나와 문어 괴물의 몸을 뒤덮었다.

    잠시 후, 심협의 몸을 휘감았던 다리가 갑자기 느슨해지더니 문어 괴물의 몸이 그대로 동굴 아래의 심연으로 떨어졌다.

    심협은 곧장 쫓아갔고, 한참을 내려가자 마침내 땅을 딛고 설 수 있었다.

    문어 괴물의 푹신한 시체를 딛고 선 그는 괴물의 회백색 피부 가득한 상처와 머리를 가른 치명적인 상처를 내려다보았다.

    괴물이 죽은 것을 확인한 그는 비검을 거두고 어디로 가야 할지 주변을 둘러보았는데, 그때 팔에서 혼돈흑련이 갑자기 미약하게 감지를 했다.

    “선천지기!”

    심협의 눈이 반짝거렸다.

    그는 곧장 눈을 감고 혼돈흑련이 전해오는 미약한 반응을 감지했다.

    잠시 후, 다시 눈을 뜬 그는 곧장 오른쪽으로 내달렸다.

    50보 정도 가보니 불빛을 통해 앞의 땅에서 희미한 빛이 반사되는 것이 보였고, 더 가보니 작은 연못이 있었다.

    선천지기는 그 연못에서 느껴지는 것이었다.

    심협이 기뻐하며 손을 휘둘러 30여 자루의 순양비검을 바로 펼쳐 연못을 중심으로 반경 100장에 이르는 커다란 원을 그려 어둠에서 닥쳐올 위험에 대비했다.

    뒤이어 그는 몸을 숙여서 한 손을 연못에 담갔다.

    연못은 매우 차가워서 뼈를 찌르는 냉기가 전해졌고, 매우 불쾌했다.

    하지만 혼돈흑련은 흥분한 것처럼 심협의 팔에서 자라나더니 꽃잎과 연꽃도 신이 난 듯 움직였고, 뿌리가 그의 팔을 타고 연못으로 들어갔다.

    다음 순간, 본래 크지 않던 연못이 빠른 속도로 줄어들기 시작했고, 불과 몇 호흡 만에 완전히 말라서 바닥이 보이게 됐다.

    반대로 혼돈흑련에서는 검은 빛이 번쩍이더니 새로 자라난 꽃봉오리가 위로 더 올라왔다. 활짝 피지는 않았지만, 개화까지 얼마 남지 않아 보였다.

    흑련이 스스로 팔 안으로 들어갈 때까지 심협은 가만히 서서 어둠 너머를 바라봤다.

    비록 이번에 찾은 선천지기는 매우 적었지만, 대신 이곳에 선천지기가 있다는 것이 밝혀지지 않았는가.

    심협이 팔을 휘두르자 비검들이 돌아와 그의 옆을 맴돌았다. 한 자루는 앞에서 길을 찾았다.

    그렇게 어둠 속을 제법 걸었으나, 선천지기의 흔적은 전혀 찾을 수 없었다. 팔의 혼돈흑련도 시종일관 아무런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한데 오히려 앞에서 날아가던 순양비검이 갑자기 이상한 반응을 보였다.

    심협은 곧장 비검을 쫓아갔는데, 이 비검은 어느 순간 허공에 멈춰서 더는 나아가지 않았다.

    그가 심념으로 다시 나아가게 하려 하니 비검의 검신에서 빛이 번득였다. 마치 억울해하는 듯한 검명이 들려왔다.

    심협은 의아해하며 가까이 다가가 자세히 살펴보고서야 허공이 조금 이상하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는 팔을 들어 앞으로 내밀었다.

    금색 손이 허공을 뚫고 전방의 어두운 허공으로 들어갔다.

    칠흑처럼 어두운 공간에 손이 들어가는 순간, 은백색 빛이 번득이더니 공간에 왜곡이 일어났다. 종횡무진으로 교차하는 균열과 소용돌이가 연달아 일어나 강렬한 공간 파동을 뿜어냈다.

    심협은 반사적으로 한 발 뒤로 물러났고, 서둘러 순양비검을 회수했다.

    몸을 가눈 뒤 자세히 바라보던 그는 손을 혼란스러운 허공에 내밀었다.

    혼돈흑련에서 공간 법칙의 힘이 흘러나와 그의 손에 모여들자 은백색 빛이 번득이더니 그 혼란스러운 허공을 향해 날아갔다.

    심협이 뿜어낸 공간의 힘이 혼란스러운 공간에 들어가는 순간, 강력한 공간의 힘이 바로 뒤틀렸고, 그가 뿜어낸 공간의 힘도 뒤틀리며 변형됐다.

    “굉장한 힘이다!”

    깜짝 놀란 심협이 체내에서 선마의 힘을 뿜어내자 혼돈흑련에서 폭발한 공간 법칙의 힘이 갑자기 폭증하여 혼란스러운 허공을 부수고 1척 길이의 구멍을 냈다.

    검은색 구멍을 통해 심협은 뒤에서 하얀 빛이 비쳐오는 것을 봤지만, 그것은 공간 법칙의 힘의 빛이 아니라 더 부드러워서 굴절된 햇살 같았다.

    펑!

    굉음이 울려 퍼졌다.

    심협이 제대로 보기도 전에 사방에서 방대한 압력이 몰려와 그가 뚫어놓은 공간 통로를 폭발시켰다.

    혼란스러운 공간은 폭발로 인해 더 커졌다. 이를 본 심협은 어쩔 수 없이 다시 뒤로 물러났고, 공간의 팽창이 멈추자 그도 따라서 멈췄다.

    전방의 온통 뒤틀린 공간을 보며 심협은 생각에 잠겼다.

    잠시 후, 그가 손목을 돌리자 손에서 광망이 번득이더니 한 폭의 그림이 나타났다.

    심협은 손에 든 산하사직도를 보더니 결심한 듯 곧장 뒤틀린 공간으로 달려들었다.

    이와 동시에 공간 법칙의 힘도 솟아 나와 산하사직도를 발동했다.

    공간 법칙의 힘으로 발동된 산하사직도에서는 눈부신 하얀 빛이 번쩍였고, 산과 강의 허상이 안에서 비쳐 나와 뒤틀린 공간을 뒤덮었다.

    빛이 흐르면서 성의 도시 같은 화면이 비쳤고, 광채가 허화에서 점점 실제로 변하였다. 그림 속 풍경에는 나무도 있고 집도 있었지만,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그림 한가운데에는 10여 장 높이의 성루가 있었고, 아래의 문은 활짝 열려 있었다.

    심협은 산하사직도를 꽉 쥐고 곧장 그림 속 성문 안으로 들어갔다.

    하지만 그가 막 들어가는 순간, 강력한 공간 압박의 힘이 갑자기 몰려와 그의 몸을 억눌렀다. 그의 두 발이 땅으로 곤두박질쳤고, 마치 몇 개의 거대한 산을 짊어진 것처럼 한 발자국도 움직이기 어려웠다.

    산하사직도라는 지보가 옆에 있음에도 한 걸음 나아가기도 힘들었다.

    전력으로 반고진공을 운공하며 한 걸음씩 성문을 향해 걸었는데, 걸음마다 발아래에서 쾅 하는 둔탁한 소리가 울려 퍼지며 땅이 부서지고 흔들렸다.

    보기에는 여덟 걸음만 걸으면 되는 거리였는데 심협은 시간의 기다란 강을 걷는 것 같았고, 걸음마다 오랜 시간이 걸렸다. 다섯 걸음을 옮겼을 때는 기진맥진한 상태였고, 온몸이 땀으로 흠뻑 젖고 말았다.

    그때, 그의 팔에 있던 혼돈흑련이 뭔가 느꼈는지 연꽃에 담겨 있던 공간 법칙의 힘이 흘러나와 주위에 한 겹의 은백색 광막을 만들었다. 그곳에서 배척의 힘이 뿜어져 나와 그와 주위의 공간을 분리시켰다.

    심협은 갑자기 몸이 가벼워지고 억압의 힘이 크게 줄어든 것이 느껴지자 여세를 몰아 서둘러 걸음을 옮겼고, 뒤도 돌아보지 않고 성문으로 들어갔다.

    발을 들여놓는 순간, 공간 통로 하나가 나타났고, 심협은 비틀거리며 그대로 넘어졌다.

    그의 몸이 찬란한 하얀 빛을 뚫고 들어가자 모든 압박이 갑자기 사라졌고, 바로 반대편 공간이 나타났다.

    몸을 가누고는 고개를 들어 앞을 바라보니 멀지 않은 곳에 흑백의 거대한 산이 우뚝 솟아 있었는데, 정상이 하늘에 닿아 매우 웅장해 보였다.

    심협의 시선이 산을 따라 계속 올라갔다. 천 장 높이의 정상에는 몇 리나 되는 커다란 흑백 소용돌이가 보였다.

    거대한 흑백 소용돌이는 하늘 위를 배회하며 빠른 속도로 회전했고, 그 안에는 구름이 넘실거렸다.

    심협은 어째서인지 모르겠지만 그 거대한 흑백 소용돌이를 보자 마치 창천(蒼天)의 눈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안에는 광포하고 혼돈의 힘이 담겨 있었지만, 어디로 이어지는 것인지는 알 길이 없었다.

    그때, 혼돈흑련이 흥분하며 모든 꽃잎과 꽃이 결렬하게 흔들렸다. 무척 다급해 보이는 그 모습에 심협은 혼돈흑련이 또 선천지기를 발견했음을 알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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