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대몽주-1188화 (1,187/1,214)
  • 1188화. 융합

    공간 법칙의 힘은 봉인 법진에 감싸인 채 연꽃 속으로 들어오자 작은 하얀 빛이 되어 암금색 광망에 뒤덮였다. 이 하얀 빛 안에는 봉인 법진 형태가 여전히 유지된 상태였다.

    심협은 법진의 봉인의 힘이 약해진 대신 자신과 공간 법칙의 힘의 연결이 이전보다 몇 배나 강해진 것을 분명하게 느꼈다.

    그가 심념을 움직이며 팔을 가볍게 휘두르자 검은색 연꽃에서 한 가닥 하얀 빛이 새어 나와 눈부신 광망을 뿜어냈다.

    광망이 뒤덮은 공간이 접히고 일그러졌다.

    심협이 손을 가볍게 움직이자 일그러진 공간이 함께 천천히 움직였는데, 접히고 일그러진 현상이 더 심해져 그 안에 수많은 균열이 겹쳐졌다.

    심협이 심념을 다시 움직이자 하얀 빛이 그의 손을 타고 다시 흑련으로 되돌아갔고, 공간은 원래대로 돌아왔다.

    또다시 손을 아무렇게나 휘두르자 하얀 빛이 날카로운 칼날처럼 지나갔고, 허공에는 바로 검은색 균열이 생겨났다가 한참 뒤에야 다시 합쳐졌다.

    “선마의 힘을 사용하지 않아도 바로 공간 법칙의 힘을 사용할 수 있다니, 혼돈흑련은 역시 신묘하구나!”

    심협의 얼굴에 화색이 돌았다.

    심협은 공간의 힘을 이전보다 강력하게 장악하게 되자 크게 기뻐했다. 혼돈흑련의 힘이면 선마의 힘의 융합도 완성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그는 다시 가부좌를 튼 채 양손을 아랫배 앞에 모아 반고진공을 운공하여 선마의 힘을 융합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융합은 여전히 한 걸음도 더 나아가지 못했다.

    심협은 심념으로 검은색 연꽃에 힘을 실어 융합을 도우려 했다. 그가 법력을 발동하자 검은색 연꽃에서도 금색 광망이 번득이더니 단전을 찌른 뿌리를 타고 흘러가 선마의 힘으로 뭉쳐진 빛의 공에 닿았다.

    두 힘이 접촉하는 순간, 금빛이 흑백의 공을 감싸고는 압박하며 줄이기 시작했다.

    오랜 시간이 흐르자 사방에서 흐르는 선마의 기가 다시 적지 않게 흑백의 공으로 들어갔다. 하지만 공은 크기만 조금 줄어들었을 뿐, 눈에 띄는 변화는 없었다.

    완전한 융합까지는 아직도 힘과 시간이 부족했던 것이다.

    옆에서 지켜보던 화령자가 말했다.

    “방법은 맞지만 혼돈흑련이 완전히 자라지 않아서 힘이 부족하다. 만약 그 힘이 완전해진다면 선마의 힘을 융합할 수 있을 것이다.”

    “나도 같은 생각이야.”

    심협은 고개를 끄덕이며 눈빛을 번득였으나, 망설이는 기색이 역력했다.

    화령자가 이유를 물으려는 순간, 심협은 손을 뒤집어 무릎에 두 개의 법보를 올려놨다. 바로 명홍도와 전신편이었다.

    “너…… 무얼 하려는 게냐?”

    화령자는 심협이 무슨 짓을 할지 알아챘으나, 도저히 믿을 수 없다는 듯 물었다.

    심협은 오랜 세월 동안 함께 악전고투를 겪어온 동료와도 같은 법보들을 바라봤다. 그 얼굴에는 아쉬움이 가득했다.

    “심협, 안 된다! 넌 이미 귀한 보물을 많이 깨 먹지 않았더냐! 너 이러다 천벌받아!”

    화령자가 달려들더니 다급히 만류했다.

    “지금 내가 가진 보물 중 선천지기가 담긴 것은 이 두 개뿐이야. 치우가 나날이 강해지는 지금, 시간이 없다.”

    심협이 한숨을 내쉬고는 말했다.

    헌원신검과 산하사직도에도 선천지기가 담겨 있지만, 그 두 보물은 치우를 상대할 때 반드시 필요했다.

    그는 말을 끝내기도 전에 이미 명홍도의 도의 날을 잡았다.

    다음 순간, 그의 팔에 있던 혼돈흑련이 가볍게 떨리더니 뿌리가 밖으로 빠져나와 도신을 칭칭 감았다.

    챙!

    명홍도에서 날카로운 소리가 울리더니 달갑지 않다는 듯이 떨면서 바로 도기를 뿜어냈다.

    심협이 다른 손으로 도의 자루를 가볍게 두드리자 명홍도는 그제야 조용해졌고, 더는 저항하지 않았다.

    화령자는 도신의 초록색 빛이 점점 어두워지는 것을 차마 볼 수 없었는지 고개를 돌려다.

    “이 망할 놈, 네 마음대로 해라.”

    모든 선천지기가 빨려 나간 명홍도는 도광이 완전히 어두워졌다.

    이때, 도에서 갑자기 초록색 광망이 번쩍이더니 도신을 휘감은 뿌리를 타고 혼독흑련으로 흘러 들어갔고, 두 번째 연꽃 가운데에 초록색 소용돌이가 생겨나더니 암금색 광망에 뒤덮였다.

    이것은 명홍도에 들어 있던 흡수 법칙의 힘으로, 선천지기가 사라지자 더는 버티지 못하고 혼돈흑련에 완전히 뽑혀 나온 것이었다.

    이와 동시에 검은 연꽃에서 또 하나의 꽃봉오리가 고개를 내밀었고, 곧 피어나려 했다.

    광망을 잃고 영기로 전락한 명홍도를 심협은 정중하게 소요경 공간 안으로 돌려보내 죽루 2층 벽에 걸었다.

    잠시 후, 이번에는 전신편을 든 채 강하게 움켜쥐었다. 그러자 혼돈흑련의 뿌리가 곧바로 채찍을 휘감았다.

    전신편에 담긴 선천지기는 명홍도보다 훨씬 적었지만, 세 번째 검은 연꽃을 피우기에는 충분했다. 전신편의 서혼 법칙은 세 번째 암금색 꽃봉오리에 흡수되어 담겼다.

    여기까지 마친 후로도 심협은 바로 선마의 힘을 융합하지 않았다. 순식간에 아끼던 두 개의 법보를 잃은 슬픔에 한동안 진정할 수가 없었다.

    법진 안에는 적막이 흘렀다.

    한참이 지나도 심협이 감정을 추스르지 못하자 화령자가 화제를 돌렸다.

    “심협, 그런데 말이다…… 지금 네 법칙의 힘이 조금 난잡하다는 것을 알고 있느냐?”

    “그게 무슨 소리야? 그럼 법칙의 힘이 서로 배척할 수도 있다는 거야?”

    “다른 사람이라면 그런 걱정을 해야겠지만, 너는 그것들을 제압해줄 혼돈흑련이 있으니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다만…….”

    “뭔데? 말해봐.”

    “법칙의 힘의 뿌리는 천지의 어떤 사물이 움직이는 규칙 그리고 그것과 친밀해지고 몸으로 빌려와 법칙을 장악하는 것이라 할 수 있지. 한데 이 법칙의 힘이 어디서 비롯되었는지 생각해 본 적이 있느냐?”

    “음, 나도 생각해본 적은 있는데…… 모든 법칙의 힘은 사실 하나의 규율이 아닐까 한다. 불의 법칙을 보자면, 화속성 세상에서 존재하고 생겨나고 자라고 변화하며 소멸하는 규율이 있지. 수속성도, 목속성도, 다른 법칙도 그렇다고 봐. 그것들 각각은 크고 작은 도로 볼 수 있는데, 하나로 합치면 모든 천지의 변화와 흐름의 천도를 장악하는 것이고, 천지의 생존과 흥망성쇄의 큰 규율을 장악하는 것이 아닐까.”

    심협의 말에 화령자는 조금 놀란 듯했다.

    “법칙의 힘을 이 정도로 깨달았을 줄은 몰랐구나. 그래, 내 생각도 같다. 모든 법칙은 하나로 돌아가고 하나로 돌아가는 그것이 바로 천도다.”

    “아직 멀었지.”

    심협이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세상 모든 법칙의 힘이 천도에서 유래했다는 말은 달리 말하자면 그들끼리도 융합할 수 있다는 뜻 아니겠느냐?”

    화령자는 그제야 말을 꺼낸 목적을 말했다.

    “음, 속성이 서로 상극인 법칙의 힘만 아니면 확실히 융합할 수 있겠지.”

    심협이 잠시 생각하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여러 법칙의 융합은 천도와 더 많이 가까워진다는 뜻이니 그렇게 만들어진 힘은 더 강해질 터. 한번 시도해볼 가치가 있다.”

    화령자는 진중한 목소리로 제안했다.

    “다양한 법칙의 힘을 융합하려면 혼돈흑련의 힘이 필요하다. 그리고 12가 주천의 수이니 혼돈흑련이 완전히 성숙하려면 아마도 열두 개의 연꽃이 맺혀야 할 게다.”

    “열두 개의 연꽃이라……. 말은 쉽지. 그러려면 더 많은 선천지기가 필요한데 선천지기가 담긴 법보가 어디 흔한가? ”

    심협이 한숨을 내쉬었다.

    “쯧! 누군가에게는 있지 않겠느냐. 지금이 바로 종문의 저력이 필요할 때다.”

    화령자는 그렇게 말했으나, 곧바로 후회했다. 방금 심협이 보물이라 할 만한 법보를 부수는 것을 보며 얼마나 가슴이 아팠던가.

    반면 심협은 눈이 휘둥그레지더니 곧바로 일어나 신마의 우물을 나와서 곧장 대당 관부로 향했다. 원천강을 만나려는 것이다.

    그 무렵, 장안선의 분위기는 매우 무거웠다. 성 안팎으로 경계가 삼엄하여 적막했다.

    대당 관부에 도착해보니 오가는 사람의 신분을 검사하는 관리도 진선기 수사와 두 명의 대승기 수사로 바뀌어 있었다.

    이들은 심협을 알아봤으나, 의례적으로 신분을 검사한 뒤에야 들여보냈다.

    도중에 관부의 관리 하나가 다급하게 심협에게로 달려왔다.

    “심 선사님, 국사님들께서 사해당에서 기다리고 계십니다.”

    관리가 앞에 도착하기가 무섭게 말했다.

    “내가 온 것을 미리 알고 계셨던가?”

    심협이 의아해하며 물었다.

    “성의 밀정이 알려줬습니다. 지금은 특수한 상황이라 성안의 모든 병사를 밀정들이 감시하고 있습니다.”

    “최근에 성에 무슨 일이 있었던 건가?”

    심협이 긴장하며 물었다.

    “순성사(巡城司)와 관부 수사들이 마족의 첩자를 몇 번이나 찾아내면서 몇 차례 전투가 벌어졌었습니다. 규모가 크지는 않았지만, 사안이 사안인지라 성안이 술렁였고, 적지 않은 사람이 도망치려 했습니다.”

    관리는 이마의 땀을 닦으며 답했다.

    “천하에 장안성보다 더 안전한 곳이 어디 있다고…….”

    심협은 혀를 찼지만, 관리는 그 말을 못 들었는지 말을 이었다.

    “뿐만 아니라 또 적잖은 요족과 인간족이 몰래 마족에게 투항하려고 정보를 빼내려 들었으나, 이틀 전에 정 국공의 명으로 이들이 모두 제거되면서 상황이 좀 나아진 것입니다.”

    “어려움이 있을 때마다 그런 일이 생기는 건 막을 수가 없지.”

    심협이 고개를 흔들었다.

    그러는 사이 그들은 사해당에 도착했다.

    관리가 물러가자 심협은 안으로 들어갔고, 정원을 지나 주청에 도착했다.

    천강이 문 앞에 서서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의 표정에는 초조한 기색이 전혀 없었지만, 입구에서 기다렸다는 것만으로도 많은 문제가 있음을 알 수 있었다.

    주청으로 들어가보니 낯익은 사람들이 보였다. 국사 원천강 외에도 오장관의 진원자, 방촌산의 보리 노조, 국공 정교금 그리고 천기성의 성주 소부자 등이었다.

    “선배님들을 뵙습니다.”

    심협이 포권하여 예를 올렸다.

    원천강이 그를 주청에 앉히더니 한동안 살펴보다가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

    “심 도우, 내 묻고 싶은 게 있네. 일전에 방촌산에서 우리를 구한 것이 자네인가?”

    모두가 신중한 표정으로 심협의 대답을 기다렸다.

    “네, 그렇습니다.”

    심협은 솔직히 답했다.

    “역시 그대였군!”

    원천강이 안도하며 웃었다.

    “도우는 당시 장안에 있었는데 어떻게 갑자기 그곳에 나타난 것이오?”

    진원자가 이해할 수 없다는 듯 물었는데, 심협에 앞서 소부자가 말했다.

    “그 옥침의 힘이오?”

    “그렇습니다. 신마의 우물에서 10여 년의 수련으로 경지가 크게 정진하면서 공간 법칙의 힘을 깨달았고, 그 힘으로 천몽침을 발동하자 바로 그곳으로 넘어갈 수 있었습니다. 당시에는 저도 어찌 된 일인지 몰랐는데, 아무래도 같은 신마의 우물에 있어서 넘어갈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공간 법칙의 힘?”

    주청 안의 모든 사람이 놀라서 술렁였다.

    “도대체 어디서 공간 법칙의 힘을 깨달은 것이오?”

    심협은 북명곤의 몸에서 공간 법칙의 힘을 빼냈고 마족의 도천비술로 봉인한 사실을 간략하게 설명했다.

    “그날은 도망치느라 바빠서 자네의 모습을 제대로 보지 못했고, 후에 천몽침이 관련 있지 않을까 생각은 했으나 명확한 답을 얻지 못했지. 한데 자네 설명을 들으니 안심이 되는군.”

    원천강이 웃으며 말했다.

    “선배님들, 제가 잠시 신마의 우물을 나온 것은 부탁이 있어서입니다.”

    “편하게 말해보시오.”

    심협이 다시 포권하자 진원자가 말했다.

    “지금 저의 수련이 한계에 부딪혔습니다. 한계를 뛰어넘어 더 정진하기 위해서는 대량의 선천지기가 필요합니다. 만약 선천지기나 선천마기가 담긴 보물이 있다면 빌려주실 수 있겠습니까?”

    “이거 선천지기를 빌려 간다니, 나중에 돌려받지 못하는 거 아니오? 하하하!”

    진원자가 농을 건넸는데, 의외로 심협은 어색하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돌려주지 못한다는 의미였다.

    “내게 오랜 세월 묵은 인삼과가 스무 개 있소. 선천지기가 가득하니 가져가시오.”

    먼저 농을 꺼냈던 진원자가 가장 앞서서 아낌없이 보물을 건네자 심협은 조금 당황했다.

    인삼과의 생산은 9천 년 단위로 이루어진다. 3천 년마다 꽃이 피고, 다시 3천 년 뒤에 열매가 열리며, 또다시 3천 년이 지나야 다 익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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