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대몽주-1186화 (1,185/1,214)
  • 1186화. 9할 융합

    “육신을 연노(煉爐)로, 선마의 힘을 재료로, 몸의 기개와 법력을 불꽃으로 삼으면 모든 것을 준비했다 할 수는 없어도 부족하지는 않을 게다. 게다가, 지금 바로 완전히 합치라는 게 아니라 적어도 9할의 융합을 시도는 해 봐야 체내에 봉인된 공간 법칙을 발동할 수 있는지 없는지 알 수 있지 않겠느냐.”

    “그건 그렇군.”

    화령자의 권유에 심협도 잠시 생각하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이어서 그는 다시 가부좌를 틀었고, 양손을 배 앞에서 위아래로 합치며 반고진공을 운공했다.

    몸 주위에 금빛이 치솟더니 웅장한 힘이 체내에서 흘러나와 마치 상고에서 걸어온 천신(天神) 같은 고졸한 분위기를 풍겼다.

    그의 단전에서 흑백의 두 기운이 서로 얽히고 합쳐지면서 주먹만 한 흑백 공으로 변했다. 그 안에는 흑백의 두 기운이 서로 뒤엉켜 있어서 선마를 구별할 수 없었다.

    양손을 천천히 복부 중앙으로 모으자 단전에서 갑자기 천둥 같은 소리가 울려 퍼지더니 그 안에 담긴 선마의 기운이 수축하면서 합쳐지기 시작했다.

    심협의 몸은 일순 걷잡을 수 없을 정도로 떨리기 시작했고, 대진이 설치된 밀실 전체가 흔들리기 시작했다. 허공의 먼지도 잠깐 굳어지더니 그 흔들림을 따라 똑같이 진동했다. 단전 안에서 두 개의 힘이 합쳐지고 있을 뿐인데도 생성된 힘은 심협 자신만이 아니라 외부에까지 영향을 미친 것이다.

    소요경 안에 있던 화령자에게도 이 힘이 생생하게 느껴졌다.

    그는 심협에게 융합을 시도해보라고 설득한 것이 덜컥 후회가 됐다. 만약 차질이 생겨 심협이 이 힘을 제어하지 못하게 된다면 그 결과는 가히 재앙이라 할 만큼 끔찍할 터였다.

    그러나 그의 우려와는 다르게 심협은 오히려 안도했다. 두 힘의 융합 상황은 예상보다 더 뛰어났고, 서로 간의 거부감도 생각보다 훨씬 적었다.

    그래서 그는 더 힘을 내 전력으로 융합을 시도했다. 그러자 단전 안에서 울리던 천둥 같은 소리는 더욱 커졌다.

    우르릉! 꽈광!

    요란한 소리는 반 시진이나 계속됐지만, 다행히 끝까지 별다른 위험은 없었다. 소리도 조금씩 줄어들기 시작하더니 마침내 완전히 조용해졌다.

    눈을 감은 채 가부좌를 틀고 있던 심협은 반 시진 동안 더 정좌한 후에야 천천히 두 눈을 떴다.

    결과를 기다리고 있던 화령자가 얼른 물었다.

    “어때? 성공했어?”

    “네 짐작대로 간신히 9할 정도에 도달했어. 원만한 융합에 도달하기에는 아직 내 힘도, 선마의 힘에 대한 통제도 부족해.”

    심협이 고개를 저으며 안타깝다는 듯 혀를 찼다.

    “9할이라……. 허허, 사실 나는 기껏해야 8할을 예상했다.”

    “어쨌든 결과적으로는 잘됐지.”

    심협이 화령자를 힐끗 노려보더니 이내 피식 웃었다.

    “그래, 9할이나 융합할 수 있게 됐으니 반고진공의 수련도 9성에 도달한 셈이니까 이제 공간 법칙의 힘을 발동해봐라.”

    “지금은 공간 법칙의 여운을 빌려오는 정도만 가능할 거야.”

    심협이 웃으며 고개를 끄덕이더니 바로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는 도포로 갈아입고는 몸을 곧게 편 채 손을 들어 전방의 허공을 내리눌렀다.

    곧 단전 안에서 이미 융합되어 있던 선마의 힘을 두 줄기 흑백의 법력으로 바꾸어 체내의 영맥을 따라 빠르게 흘려보냈다. 이 법력은 체내에 봉인된 법칙의 힘 법진으로 흘러들었다.

    선마의 힘이 공간 법칙의 힘에 도달하는 순간, 절대로 부서지지 않을 것처럼 견고해 보였던 법진이 빛을 번득였고, 강력한 금고 봉인의 힘을 발산해 선마의 힘에 저항했다.

    그러나 선마의 힘은 강제로 봉인을 부수지 않고 금제 법진의 한쪽 구석을 억지로 열고는 힘을 그곳에 집중시켰다.

    잠깐의 대치 끝에 봉인 법진에 작은 틈이 생기자 그 안에서 공간 법칙의 힘이 밖으로 새어 나왔다.

    이와 동시에 심협의 복부가 눈부신 은백의 빛으로 번쩍이기 시작했다. 그 빛은 복부에서 새어 나와 곧바로 사방의 허공을 비췄다.

    뒤이어 심협을 감싼 하얀 빛에서 기이한 광경이 펼쳐졌다.

    주위의 허공에서 빛과 그림자가 엇갈리더니 심협의 모습이 하나둘 늘어났다. 누군가는 그와 마주 섰고, 누군가는 그를 등졌으며, 누군가는 벽에 비스듬히 기대어 섰다. 심지어 지붕에 거꾸로 매달린 자도 보였다.

    심협의 모습은 계속해서 늘어나 금세 백여 명에 이르렀다.

    심협은 손바닥에서 공간 법칙의 힘이 새어 나오지 않자 들고 있던 손을 내려놨다. 그의 팔이 움직이자 주위에 나타난 백여 명의 심협이 모두 같은 동작을 취했다. 다만 그 속도는 각기 달라 매우 혼잡해 보였다.

    의혹에 휩싸인 심협이 한 발을 앞으로 내밀자 주위의 만화경 같은 광경이 콰직 하는 소리와 함께 깨지더니 백여 개의 칠흑 같은 공간에 순식간에 균열이 생겼다. 거의 동시에 사방으로 강력한 힘이 뿜어져 나와 사방을 찢어발겼다.

    깜짝 놀란 심협이 서둘러 법력을 거두고 공간 법칙의 힘을 더는 발동하지 않았다.

    그의 힘이 완전히 사라지자 주위 공간의 검은색 균열이 조금씩 합쳐지기 시작했고, 차 한 잔 마실 정도의 시간이 지나자 원래대로 완전히 돌아왔다.

    심협은 실패에 낙담하지 않고 다시 손을 내밀어 체내에서 끌어낸 선마의 힘을 공간 법칙의 힘으로 보냈다.

    아까처럼 그의 복부가 다시 하얀 빛으로 번쩍이자 주위의 허공도 따라서 변했다.

    심협은 두 눈을 감은 채 심신을 가다듬어 체내의 법칙의 힘을 자세히 느끼기 시작했다. 의념으로 이끌고 제어하기를 반복한 끝에 복부 밖으로 나오는 빛이 줄어갔고, 주위 공간의 일그러짐도 사라졌다.

    하지만 심협이 공간의 힘을 제어하여 손바닥으로 끌고 오려는 순간, 그의 오른손 전체가 하얀 빛에 삼켜지더니 피가 터졌다.

    심협은 한숨을 내쉬고는 대개박술로 손바닥을 치료한 뒤 다시 시도했다.

    실패가 거듭되는 사이 사흘이 지났다. 심협은 마침내 공간 법칙의 힘을 간신히 장악하여 조금씩 몸에 융합시켰다.

    그의 손바닥에서 다시 하얀 빛이 흐르자 손바닥 앞 허공이 조금씩 일그러지기 시작하더니 칠흑 같은 소용돌이의 구멍이 나타났다. 그 주위의 천지영기가 급격히 빨려 들어왔다.

    이를 본 심협이 손을 다시 흔들자 검은색 소용돌이가 조금씩 사라져갔다.

    뒤이어 그의 손이 뒤로 향했다. 그리고 그 순간, 그저 ‘생각’만 했을 뿐인데 공간 법칙의 힘이 발동되면서 그의 몸이 순식간에 사라졌고, 동시에 법진 반대편에 나타났다.

    북명곤이 남긴 공간 법칙의 힘은 그 묘용이 매우 많은데, 심협은 이 힘을 장악한 지 얼마 되지 않은 데다가 이 법칙의 힘은 순수하고 웅장하여 완전히 장악하려면 적잖은 시간이 필요해 보였다.

    이런 장악의 과정은 마치 법보를 꾸준히 연화하는 것과 비슷하지만, 선마의 힘이 개입해야 할 뿐만 아니라 동시에 심협 자신의 깨달음이 법칙과 일치해야 하기에 더욱 어려웠다.

    방법을 찾아낸 심협은 다시 수련에 집중해 공간 법칙의 힘을 융합해갔다.

    구룡전 법진 안. 또다시 몇 달이 지났다.

    심협의 모습의 허화하면서 주위에 여러 개의 분신이 나타나더니 곧 서로 연결됐다. 동시에 서로 다른 공간에 있는 것처럼 온몸에서 강렬한 공간 법칙 파동을 뿜어냈다.

    그가 눈을 번쩍 뜨자 강렬한 안광이 뿜어져 나왔고, 주위의 분신들이 하나둘 그의 몸으로 돌아왔다.

    심협은 뭔가 느껴진 것처럼 손을 휘둘렀다. 그의 몸 앞에 빛이 반짝거리더니 옥침이 나타났다.

    옥침은 노란 빛무리가 밝아졌다가 어두워지기를 반복했는데, 거기서 뿜어져 나오는 특별한 법칙 파동은 심협 체내 공간 법칙의 힘과 똑같이 반짝였다.

    심협은 잠깐 생각에 잠겼다가 손을 들어 옥침을 가볍게 쓰다듬고는 한 가닥 공간 법칙의 힘을 그 안에 주입했다. 그러자 눈앞이 밝아지면서 한 줄기 빛이 스쳐 가더니 혼란스러운 장면이 연속으로 나타났다. 그중에는 수많은 요마가 서로 싸우는 장면도 있었는데, 전황은 매우 참혹했다.

    심협은 머리가 갑자기 깨질 것처럼 아파 왔고, 억지로 신식을 안정시키며 계속해서 화면을 자세히 살폈다. 한데 갑자기 낯익은 모습들이 나타나더니 강력한 법진에 갇힌 치우의 모습이 보였다.

    하지만 뒤이어 대진에 81구의 붉은 해골이 나타나 대진을 부쉈고, 원천강 등은 참패를 당했다. 그들이 물러나려 하자 치우가 거대한 도끼를 들더니 온몸에서 강력한 힘을 뿜어내며 그들을 제거하려 했다.

    “안 돼!”

    심협은 다급하게 외치며 그 화면을 향해 손을 내밀어 치우를 막으려 했다.

    한데 그의 손이 화면에 닿는 순간, 옥침이 환하게 번득이더니 심협의 눈앞이 어두워졌고, 곧이어 빠른 속도로 천지가 뒤바뀌었다.

    그의 눈이 다시 밝아졌을 때는 눈앞의 경치가 완전히 바뀌어서 옥침은 보이지 않았고, 가로막고 있던 벽도 사라졌다.

    그의 눈에 보이는 것은 하늘 가득한 검은 빛이 거대한 도끼를 따라 내려오는 것뿐이었고, 허공이 격렬하게 흔들리면서 압박감에 숨이 막혀왔다.

    지금 그가 있는 곳은 방촌산 신마의 우물 입구 상공으로, 옥침이 그의 육체가 시공간을 뚫고 나오게 해준 것이었다.

    절체절명의 순간, 심협은 원천강 등을 돌아볼 겨를도 없이 바로 양손을 높이 들었고, 체내에서 선마의 힘을 움직여 봉인 법진의 한쪽 구석을 열고는 공간 법칙의 힘을 쏟아내기 시작했다.

    삽시간에 그의 손바닥 앞에서 눈부신 은백 광망이 번득이더니 강렬한 공간 법칙 파동이 하늘에서 요동쳐 주위 공간을 심하게 일그러트리기 시작했다.

    마족에게 완전히 제압당해 있던 원천강 등은 모두 심협을 올려다봤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그 존재, 심협의 몸에서 뿜어져 나오는 공간 파동이 너무도 강렬하여 허공이 압축되고 교차하며 완전히 일그러졌기에 그가 누군지 알아볼 수 없었다.

    “어서 가십시오!”

    일그러진 공간을 뚫고 다급한 외침이 그들의 귓가에 선명하게 전해졌다.

    “갑시다!”

    “아미타불.”

    원천강이 한숨을 내쉬었고, 여래불조는 불호를 읊조렸다. 진원자와 호천상제도 시선을 거뒀다.

    네 사람의 머릿속은 의문투성이였다. 갑자기 나타난 신비한 존재의 경지를 단정할 수는 없지만, 몸에서 뿜어져 나오는 공간 법칙의 힘은 기상이 강하여 마치 항고의 이수 북명곤과 견줄 만했다.

    그러나 지금은 절체절명의 순간인 만큼 머뭇거릴 때가 아니었기에 치우가 공간에 막혀 있는 틈을 타 네 사람은 일제히 둔술을 시전했고, 유광이 되어 방촌산에서 멀어져갔다.

    치우가 묶여 있으니 나머지 마족들은 그들을 막지 못하고 물러갔다.

    지원하러 오던 연맹은 방촌산 제자들과 함께 장안으로 퇴각했다.

    원천강 등이 도망치자 치우는 분노가 치솟았다. 저들을 단번에 섬멸하고자 방촌산으로 유인했건만, 뜻하지 않은 방해로 실패할 상황 아닌가! 저들만 제거한다면 나머지는 오합지졸에 불과하니 거리낄 것이 없어진다.

    그가 방촌산 밖으로 쫓아 나오자 몸 앞의 허공에 검은색 균열이 일더니 하늘을 뒤덮는 커다란 그물처럼 종횡무진으로 교차하며 뒤덮어 왔다.

    이는 공간의 균열들로, 균열 하나하나에 형언할 수 없는 무시무시한 힘이 담겨 있었다. 저 균열에 뒤덮인다면 치우의 육신이 아무리 강력해도 갈기갈기 찢어질 터였다.

    “이놈!”

    치우가 분노하며 검은색 도끼에서 검은 빛 파문을 뿜어내자 허공이 억눌리며 뒤흔들렸고, 도끼의 날이 예리한 흑망을 뿜어내며 단번에 떨어졌다.

    거대한 도끼의 빛이 공간 균열의 검은색 그물을 내리쳤다.

    하지만 예상했던 충돌음이나 폭발음은 울려 퍼지지 않았다. 도끼의 빛이 떨어진 순간, 오히려 주위는 적막에 휩싸였다.

    그러나 그 짧은 적막 뒤, 검은색 그물에 기이한 파동이 호수의 물결처럼 가운데서부터 퍼져 나가 그대로 검은색 그물 가장자리까지 도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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