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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몽주-1184화 (1,183/1,214)

1184화. 시간 끌기

치우가 손가락을 연속으로 움직이자 손가락 허상에 혈광이 번쩍이더니 거대한 도끼가 빠르게 녹아내렸고, 순식간에 혈광이 되어 그의 몸으로 녹아들었다.

호천상제는 핏빛 도끼 공격이 치우에게 통할 것이라고는 기대하지 않았기에, 상대가 가볍게 막아내자 서둘러 천책을 거두려 했다.

“마음대로 될 줄 알았더냐! 내놓거라!”

치우가 차갑게 비웃으며 한 걸음 내딛자 그의 몸이 귀신처럼 사라졌다가 천책 옆에 나타났다.

쾅!

굉음과 함께 커다란 흑백 손이 나타나 허공을 뒤흔들며 천책을 움켜잡았다.

당황한 호천상제는 서둘러 전력으로 천책을 발동했지만, 아무리 시도해도 흑백의 거대한 손을 떨쳐낼 수 없었다. 심지어 천책의 책장마저 사로잡혀서 움직이는 것도 불가능했다.

치우가 차갑게 웃으며 화천마영으로 다시 휘감자 천책의 금빛이 빠르게 어두워졌다.

“원 도우, 아직이오?”

가슴이 철렁해진 호천상제가 화천마영의 침식을 전력으로 막으며 원천강에게 전음으로 물었다.

금색 보호막 안. 가부좌를 튼 원천강은 아무것도 듣지 못한 것처럼 가만히 눈을 감고 있었다.

호천상제는 더욱 다급해졌지만, 더는 재촉하지 않고 전력으로 천책을 유지하며 청제목황대진을 결인했다.

수십 개의 푸른 나무가 청제목황대진에서 날아오더니 거대한 촉수처럼 치우를 내리쳤다.

한숨을 돌린 여래불조도 바로 십이품금련을 결인했다.

십이품금련에서 금빛이 강하게 뿜어져 나와 갑자기 한곳으로 모이면서 수백 장 크기의 금색 부처로 변했다.

이 부처의 등에 달린 여섯 개의 팔은 추와 검 등의 법기를 들고 있었다. 그는 표정이 삼엄하여 평범한 부처와는 확연히 달랐는데, 특히 미간에 있는 미세한 틈은 더욱 특이해 보였다.

여래불조가 결인하자 부처가 여섯 개의 팔을 휘둘렀고, 수많은 추와 검의 허상 등이 바람을 가르며 치우를 공격했다. 동시에 미간의 미세한 틈이 갈라지면서 주홍색 눈이 나타나더니 대량의 불꽃을 뿜어냈다.

두 명의 천존 수사가 전력으로 공격하자 치우의 표정도 조금 굳어지더니 대량의 검은색 마기를 뿜어내 몸 주위에 반경 10여 장의 검은 안개를 만들었다. 수많은 소용돌이가 휘몰아치는 그것은 바로 십방마옥도였다.

거대한 푸른 나무나 추, 검의 허상을 비롯해 무엇이든 검은색 안개에 들어가면 바로 연화되거나 흡수되었다. 그러나 주황색 불꽃만은 멀쩡했다. 다만 검은 안개가 너무 짙어서 주홍색 불꽃도 뚫지 못하고 대치했다.

그때, 원천강이 마침내 두 눈을 번쩍 떴다.

“시간을 벌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준비는 끝났습니다.”

그가 낮게 말하더니 양손을 결인하여 땅에 댔다.

치우의 발아래 땅에서 갑자기 만 줄기 금빛이 솟아오르더니 하늘 높이 솟구쳤고, 순식간에 금빛 바다가 되어 그를 뒤덮었다.

금빛 바다 안에 거대한 진도가 나타났는데 바로 현황무극진이었다.

종횡무진으로 교차하는 금색 사슬이 법진 안에서 뿜어져 나오더니 가볍게 검은 안개를 뚫고 지나가 치우와 천책을 휘감았다.

금색 사슬에는 마기를 억제하는 작용이라도 있는지 검은색 안개가 빠르게 사라지자 천책을 휘감았던 핏빛 마영도 크게 옅어졌다.

여래불조가 바로 십이품금련을 발동하자 금색 뿌리가 번개처럼 날아가 천책을 휘감았다. 천책에서는 갑자기 금색 불광이 솟구치면서 핏빛 마영을 적잖이 밀어냈다.

이를 본 호천상제가 기뻐하며 천책을 발동하여 잡아당겼다.

천책에서 금빛이 강하게 뿜어져 나오더니 마침내 흑백 손에서 벗어나 금색 광막 안으로 돌아왔다.

“현황무극진!”

치우는 천책을 거둬가는 것에도 신경 쓰지 않고 방금 나타난 금색 법진을 보며 눈을 번득였다.

원천강 등은 십이품금련의 보호막 안에서 날아올라 현황무극진의 동, 서, 남 세 곳의 진안으로 들어가 법력을 주입했다.

세 곳의 진안이 갑자기 번쩍이기 시작했지만, 제어하는 사람이 없는 북쪽의 진안은 여전히 어두웠다.

그러나 세 곳의 진안이 발동된 것만으로도 현황무극진의 빛은 강했다. 이 대진이 천천히 돌아가기 시작하자 더 많은 금색 사슬이 뿜어져 나와 상서로운 금빛을 뿜어내 치우의 몸 대부분을 휘감았다.

뿐만 아니라 녹, 금, 홍 세 가지 법칙의 힘이 원천강과 여래불조, 호천상제의 몸에서 뿜어져 나와 마찬가지로 대진에 주입되었다.

현황무극진 상공에서 천둥소리가 크게 울리더니 하늘을 떠받치는 거대한 나무가 천천히 나타났고, 뒤이어 커다란 금색 대검과 붉은 태양이 나타났다.

이 거대한 나무와 금색 검, 태양이 서로 겹치면서 세 법칙의 힘이 서로 합쳐져 다시 대진의 힘과 배합되자 치우조차 압박감을 버티지 못하고 허리가 굽어졌다.

“하하하! 훌륭하군! 역시 현황무극진이야! 네놈들에게 정말로 이 진이 있을 줄이야. 오랫동안 놀아준 게 헛수고가 아니었구나!”

치우가 껄껄 웃더니 몸에서 검은 빛이 솟구치면서 피부에 수많은 흑백 무늬가 나타났다. 그는 몸을 꼿꼿이 세우고 두 팔을 바깥으로 뻗었다.

흑백의 광망이 그의 몸에서 솟구치고 사방으로 뿜어져 나갔다. 바로 선마 융합의 신통이었다.

흑백 광망에는 믿을 수 없을 만큼 무서운 힘이 담겨 있어서 지나는 곳마다 공간이 무너졌고, 치우 몸의 금색 사슬도 간단하게 부서졌다.

치우는 양팔이 자유로워지자 주먹으로 허공을 강하게 두드렸다.

꽈르릉!

용의 포효 같은 굉음이 울려 퍼지더니 아홉 마리의 검은색 마룡이 그의 손에서 뿜어져 나갔다. 이들의 머리에서 뿜어져 나온 법칙의 힘이 서로 합쳐지면서 거대한 나무와 금색 검, 태양을 강하게 공격했다.

콰콰쾅!

경천동지할 굉음이 터지더니 거대한 나무와 금색 검, 태양이 전부 부서지면서 천지를 뒤덮었던 압박감도 함께 사라졌고, 현황무극진도 흐트러지기 시작했다.

원천강과 호천상제 그리고 여래불조의 몸도 강하게 흔들렸지만, 더 흔들린 것은 세 사람의 마음이었다.

항고의 마두인 치우를 자신들만으로 대적하지 못할 것임을 이미 알고 있었지만, 그럼에도 방촌산으로 달려온 것은 바로 이 현황무극진이라는 비장의 패를 믿었기 때문이다. 한데 치우의 말을 들어보니 자신들에게 현황무극진이 있음을 이미 알고 있던 것 같지 않은가!

“원 국사, 현황무극진에 대해 다른 사람에게 말한 적이 있소이까?”

호천상제가 전음으로 물었다.

“이런 중요한 일을 어찌 함부로 말하겠습니까? 이 진도를 얻었을 때부터 단 한 번도 말한 적이 없습니다. 우리 세 사람과 진원 도우 외에는 아무도 모르지요.”

“하면 치우는 어찌 알았을꼬?”

“지금은 그게 중요하게 아닙니다. 전력으로 현황무극진을 발동하여 목숨을 걸고 치우를 가둬둬야 합니다!”

여래불조은 다급히 전음으로 외치며 법력을 대진에 주입했다. 이를 본 원천강과 호천상제가 뒤를 따랐다. 그러자 수많은 금색 사슬이 다시 전도 안에서 뿜어져 나왔고, 방금 벗어난 치우는 미처 피하지 못하고 다시 붙잡혔다.

“현황무극진은 네 사람이 있어야만 완전히 발동할 수 있다. 네 명의 천존이 있었다면 모를까, 너희 세 사람만으로 무얼 할 수 있겠느냐?”

치우는 개의치 않고 양팔을 다시 휘둘렀다.

흑백 광망이 성난 파도처럼 솟구치더니 선마를 융합한 힘이 폭발하며 다시 금색 사슬을 부쉈다. 뒤이어 치우가 양손을 휘두르자 두 개의 거대한 흑백 손이 가까이 있던 여래불조와 호천상제에게 날아갔다.

두 사람은 서둘러 십이품금련과 천책으로 방어했다.

쾅! 콰쾅!

두 번의 굉음과 함께 십이품금련과 천책의 광망이 크게 흔들리면서 여래불조와 호천상제는 온몸의 경맥에 극심한 통증을 느꼈고, 심장이 입 밖으로 튀어나올 것만 같았다. 그럼에도 간신히 버텨냈지만, 두 사람 주위에서는 대량의 진문이 부서졌고, 현황무극진의 운공이 절반으로 줄어들었다.

“마족이 동해 용궁과 보타산을 공격한 것은 우리를 분산시키기 위함이었던가!”

여래불조가 운공으로 체내의 충격을 진정시키며 중얼거렸다. 천존 존재인 공선이 동해에 나타난다면 연맹은 한 명 이상의 천존 수사를 반드시 그곳으로 보내야 하니 현황무극진을 완성할 수가 없다.

호천상제도 깜짝 놀랐지만, 곧바로 결인하여 대진을 안정시켰다.

원천강은 양손을 차륜처럼 결인했지만, 대진의 두 군데 진안이 충격을 받은 터라 단시간에 복구할 수 없었다.

“하하하! 아주 바보는 아니구나! 이 현황무극진이 너희에게 있는 것은 낭비다. 이리 내놓거라!”

치우가 크게 웃더니 오른손으로 허공을 움켜쥐었다. 그러자 아홉 마리 검은색 마룡이 방향을 바꿔 내려와 현황무극진이 있는 진도를 휘감았고, 혈광이 빠르게 진도로 침투하기 시작했다.

가뜩이나 흐트러졌던 현황무극진은 혈광이 침투하자 빠르게 약해졌고, 뒤덮은 범위도 빠르게 줄어들어 세 사람의 저항도 소용이 없었다.

여래불조와 호천상제의 두 눈에는 절망이 가득했다.

한데 그때였다.

“그래? 네 명의 천존이 있으면 널 제압할 수 있다는 건가?”

원천강이 씩 웃더니 소매를 휘둘렀다. 그러자 푸른색 인영이 허공에서 나타나 비어 있는 현황무극진의 북쪽 진안으로 내려왔다.

“송구합니다. 이 신통은 소모가 너무 커서 휴식을 취해야 했습니다.”

그 푸른색 인영은 바로 진원자였다.

그가 양손으로 허공을 내리누르자 흐트러졌던 현황무극진이 빠르게 안정을 찾아갔고, 부서진 진문도 순식간에 복구되더니 운공하기 시작했다.

대진 전체에서 광망이 강하게 뿜어져 나오며 진도에 침입한 혈광을 빠르게 물리치고 연화했다.

“진원자! 네놈이 어떻게 여기에!”

치우의 눈빛이 흔들렸다. 공선은 분명 진원자가 동해 용궁 전장에 나타났다고 보고하지 않았던가!

한편, 여래불조와 호천상제은 이 광경에 크게 기뻐했다.

“치우! 우리를 속였다고 생각했겠지만, 우리가 너를 속였다는 건 전혀 몰랐을 것이다. 동해의 나는 본체가 아니라 내 3할의 힘을 담은 분신에 불과하다. 원 국사께서 진즉 네놈의 계략을 알아챘으니 모든 것은 네놈의 계략을 역이용한 것이다! 하하하!”

진원자는 껄껄 웃었다.

호천상제와 여래불조는 진원자에게 일의 경위를 상세히 묻고 싶었지만, 지금은 그럴 때가 아니었기에 우선 법력과 법칙의 힘을 대진에 주입했다.

콰콰쾅!

현황무극진이 다시 강렬하게 운공되자 진도의 안팎에서 끝이 날카로운 검 같은 수천 개의 금색 사슬이 뿜어져 나와 아홉 마리의 검은 마룡을 꿰뚫더니 사방에서 치우를 노리고 날아갔다.

치우는 싸늘한 표정으로 몸에서 검은 기운을 뿜어냈다. 다음 순간, 그는 검은색 허상으로 변해 진 밖으로 빠져나갔다. 금색 사슬들이 일제히 그의 몸을 꿰뚫었지만, 그는 아무런 영향도 받지 않았다.

치우가 변한 검은 허상이 대진 밖으로 도망치려 하자 하얀색 허상이 반짝이며 그의 앞에 나타났다. 원천강의 홍황천기반이었다.

치우는 이 보물에 담긴 시간의 힘을 매우 꺼렸기에 몸을 흔들어 순식간에 10여 개의 잔상으로 변하더니 사방으로 날아갔다. 어떤 것이 진짜인지 분간하기 힘들었다.

그러나 홍황천기반이 믿을 수 없는 속도로 빠르게 돌아가자 하얀 빛이 폭발하여 순식간에 뻗어 나갔고, 이 빛이 뒤덮은 영역의 모든 것이 우뚝 멈췄다. 치우의 분신들도 마찬가지였다.

여래불조와 호천상제는 이를 보고 크게 기뻐하며 더욱 기운을 내 대진을 발동했다. 10여 개의 치우 잔상은 이내 대진의 기운에 뒤덮였다.

원천강도 홍황천기반을 향해 한 손을 결인했다. 그러자 보물의 하얀 빛이 사라졌고, 그는 백지장처럼 하얗게 질린 얼굴로 피를 토했다.

그는 시간 법칙을 깨닫지 못했기에 홍황천기반 내의 시간 정지와 시간 가속 신통을 시전할 때마다 큰 대가를 치러야 했다. 그리고 방금 전, 그는 두 신통을 동시에 시전하느라 감당하기가 힘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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