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대몽주-1181화 (1,180/1,214)
  • 1181화. 노림수

    수적 열세로 간신히 버티던 동해 용궁은 계속 밀려나기 시작했다.

    “왕후님, 적이 너무 많습니다. 우선 물러나 옥체를 보존하십시오. 용궁이 저들에게 넘어간다 해도 동해 대군만 살아 있다면 희망이 있을 것입니다.”

    벽수야차가 서둘러 말했다.

    “어리석은 소리! 양쪽이 정면으로 대치하는 상황에서 병사를 물린다면 사기가 떨어져 후퇴는 동안 참살당할 것이다!”

    “그건 염려치 마옵소서. 마족의 공격을 대비하여 용궁 서북쪽에 마기를 억제하는 금제 대진을 세 개나 설치해놨습니다. 대진의 보호만 있으면 대군이 철수하는 데에는 문제가 없을 것입니다.”

    벽수야차의 말에 오란은 놀란 기색이었다. 그녀는 오로지 대군을 통솔할 생각만 했었는데 벽수야차는 그런 것까지 미리 대비해둔 것이다.

    하지만 이대로 동해를 빼앗긴다면 아군의 손실이 너무나 클 터였다.

    그녀가 망설이고 있는데, 검은 그림자가 후방에서 엄청난 속도로 날아오더니 순식간에 다가왔다. 그것은 날개폭이 무려 10여 리에 달하는 거대한 검은색 새였다.

    새의 등에는 수사들이 가득했는데, 그 수는 수만 명에 이르렀다.

    소부자를 필두로 한 천기성의 모든 장로와 제자들을 포함해 중소 문파의 뛰어난 제자들이었다.

    이 거대한 새는 소부자가 항상 데리고 다니는 검은색의 언갑이었다.

    오중 등도 그 위에 있었는데, 동해 용궁으로 돌아오는 길에 소부자 등과 만난 듯했다.

    “오중! 천기성 도우들까지!”

    오란은 구세주를 만난 것처럼 기뻐했다. 그녀는 소부자를 본 적이 없었지만, 동해 용궁이 항마연맹에 들어가면서 연맹의 주요 인물들에 대해 전해 들었기에 알아볼 수 있었다.

    “오란 도우! 진원 대선께서도 오시는 중이오!”

    “알겠습니다!”

    소부자의 말을 들은 오란은 안도했고, 퇴각 명령을 내리는 대신 용궁의 군사들에게 수만 명 단위로 진영을 이루어 적을 막도록 명했다.

    “쳐라!”

    검은 새가 멈추기도 전에 오중 등이 날아올라 마족 대군에게 돌진했다.

    소부자가 팔을 앞으로 내밀자 천기성 제자와 중소 문파의 제자들도 일제히 날아올라 동해 용궁 대군의 대열에 합류했다.

    오중과 소부자 원군의 수는 그리 많지 않아도 하나같이 정예들이었다. 특히 소부자가 이끄는 대군에는 진선기 수사가 무려 30명에 이르렀다. 그중 소부자를 비롯한 태을 존재와 몇 명의 진선 절정 천기성 장로들까지 가세하자 동해 용궁 군사들은 사기가 크게 올라 마족 대군을 막아냈다.

    이 광경을 본 만성 공주의 표정이 일그러졌다. 처음으로 마족 대군을 지휘하는 전쟁인 만큼 절대로 패배해서는 안 됐다!

    만성 공주가 가슴을 두들기더니 정혈을 내뱉었다. 이 정혈은 혈광이 되어 감천전고로 녹아 들어갔다.

    그러자 감천전고에 갑자기 핏빛 마족 무늬가 떠오르면서 요사스러워졌다.

    만성 공주가 핏빛 단추(短錘)를 꺼내 감천전고를 내리치자 동해 대군을 향하던 쪽에서 갑자기 눈부신 혈광이 뿜어져 나와 만 배로 커지더니 천지를 뒤덮었다. 이 혈광은 핏빛 파문으로 이루어져 있는 것임을 사람들은 그제야 알 수 있었다.

    그때, 허공을 뚫는 날카로운 소리가 울리더니 원군이 타고 온 그 검은색 새가 감천전고 맞은편으로 날아가 거대한 두 날개에서 광망을 뿜어냈다. 이어서 허공을 제압하는 강력한 영압을 폭발시키며 강하게 날갯짓을 했다.

    콰쾅!

    검은색 폭풍이 거세게 뿜어져 나와 핏빛 광망과 충돌하며 폭발했다. 이에 검은색 폭풍은 일순 멈칫했으나, 이내 손쉽게 핏빛 광망을 터트렸다.

    폭풍의 여파가 계속해서 밀고 나가 마족 대군 진영을 뒤덮자 전세가 다시 동해 용궁 쪽으로 기울었다.

    상황이 이쯤 되자 만성 공주는 오히려 냉정해졌다.

    동해 용궁의 저력은 그녀의 예상을 뛰어넘었고, 천기성의 원군까지 왔다. 유계가 나서지 않으니 짧은 시간에 동해 용궁을 무너트리기는 어려울 터였다. 더욱이 저 검은색 새가 있는 한 다시 감천전고를 발동해도 소용이 없을 테니 그녀는 마염위 한 명에게 두 개의 커다란 깃발 아래로 가서 마족 대군의 공격 진형을 다시 준비하도록 지시하려 했다.

    “그럴 것 없소. 내가 가서 적의 수장을 사로잡아 오지.”

    옆에 있던 공선이 마침내 입을 열었다.

    “유계존자, 참전하시는 겁니까?”

    만성 공주가 반색하며 물었다. 공선은 경지가 높고 오색 신통은 대항할 자가 없는 대신통이니 삼계에서 그를 상대할 수 있는 자가 거의 없었다.

    그러나 공선은 천성이 게으르고 마족의 일에 열성적이지 않아 치우 본인 외에는 누구도 그에게 명령을 내릴 수 없었다.

    “마족에 가담했으니 할 일은 해야겠지요. 다만, 난 소부자와 오란만 잡아 올 뿐, 나머지는 관여하지 않을 것이오.”

    “그 두 사람만 사로잡으면 나머지는 걱정할 것 없습니다. 그럼 부탁드립니다, 유계존자.”

    공선은 고개를 끄덕이더니 바로 시야에서 사라졌다.

    양쪽 대군의 최전선 격전지에서 다시 한번 오란이 마족 대군을 휩쓸었다.

    은색 창을 어지럽게 휘두르자 창의 허상이 화려한 꽃처럼 어지럽게 피어올라 그녀에게 접근하는 모든 마족은 목숨이 온전하지 못했다. 가끔 한두 번의 강력한 공격이 창의 허상을 뚫고 오란의 몸에 닿았지만, 바로 푸른 거울 허상에 튕겨 나갔다.

    오란의 이런 용맹함에 용궁 대군은 전의가 불타올라 두려움을 잊고 그녀의 뒤를 따르며 마족 대군에게 돌진했다.

    한편, 거울 요괴는 종횡무진 싸우는 오란을 걱정스러운 눈으로 바라봤다.

    오란의 몸에서 나오는 푸른색 거울 허상은 그녀의 경면반사(鏡面反射)로, 최근에 경지가 더 정진하면서 이 신통을 부적처럼 다른 사람의 몸에 붙여 위험해지면 자동으로 발동되게 할 수 있었다. 그녀는 현재 오란에게 30개의 경면반사를 시전했는데, 이대로는 오래 버티지 못할 것 같았다.

    거울 요괴가 오란에게 주의를 주려는데, 누군가가 갑자기 허공에 나타났다. 그자는 바로 공선이었다.

    허공에 손을 내밀자 굉음과 함께 커다란 하얀 빛의 손이 허공에 나타나 오란의 머리를 움켜쥐려 했다.

    “공선!”

    깜짝 놀란 오란은 온몸에서 뇌강을 뿜어냈다. 그러자 반인반용의 뇌전 허상이 다시 나타나 허공의 주먹을 향해 돌진했다.

    백 장 길이의 은색 뇌룡이 손에서 날아가 이빨을 드러낸 채 발톱을 휘두르며 달려들었고, 거대한 빛의 손과 충돌하며 굉음을 울렸다.

    콰르릉!

    빛의 손 중심에서 한 줄기 붉은 빛이 번쩍이자 은색 뇌룡은 마치 존재하지 않았던 것처럼 순식간에 사라져버렸다.

    “세상 만물은 오행의 변화에서 벗어나지 못하지. 구천뇌정도 마찬가지다.”

    공선은 담담하게 말하고는 손을 다시 내리눌렀다.

    거대한 빛의 손이 계속해서 내려오자 창공을 짓누르는 거대한 힘에 오란은 몸이 갑자기 움츠러들어 꼼짝도 못 하고 빛의 손에 잡힐 위기였다.

    그때, 주위의 허공에서 초록색 빛이 번쩍이더니 검푸른 소매가 쏜살같이 날아가 오란을 휘감고 거두어들였다. 하얀 빛의 손은 허탕을 쳤다.

    공선은 표정이 굳더니 오른손을 휘둘렀다. 그러자 날개 같은 붉은 빛이 반경 수백 장 허공을 휩쓸었다.

    피식!

    바람 새는 듯한 소리와 함께 그곳의 공간이 붉은 빛에 거두어지자 백 장 길이의 거대한 공간 균열이 생겨났다. 그리고 그 공간 균열에서 누군가가 비틀거리며 나타났으니, 바로 진원자였다.

    공선은 눈살을 찌푸렸다. 그가 다른 행동을 취하지도 않았는데 붉은 빛이 쏜살같이 날아서 돌아왔는데 그 속도는 이전보다 훨씬 빨랐다.

    진원자의 모습이 일그러지면서 여러 개의 환상 같으면서도 진짜 같은 허상으로 변하여 붉은 빛의 공격을 아슬아슬하게 피하고는 멀리서 나타났다.

    “공 도우의 오색 신광이 갈수록 정교해져서 허공마저 거둘 수 있게 되었군요. 감탄했소이다.”

    “진원자, 감히 내 일을 방해하려는 것이오? 백 년 전 동해에서 싸웠을 때 이미 내 상대가 될 수 없음을 알았을 텐데……?”

    “당시 공 도우의 높은 경지에 감탄했소. 허나 옛말에 선비가 사흘 만에 만나면 눈을 비비고 다시 보게 된다고 했으니, 하물며 백 년은 어떻겠소?”

    진원자가 소매를 흔들자 오란이 날아가 동해 용궁 대군 사이로 떨어졌다.

    “그렇다면 그대의 건곤수(乾坤袖)와 혼원도과(混元道果)가 어느 경지까지 올랐는지 내 한번 구경이나 합시다!”

    공선은 오란에게는 신경도 쓰지 않고 손을 허공에 내밀었다. 그러자 적, 금, 녹, 남, 황 총 다섯 개의 광망이 뿜어져 나와 서로 뒤엉켰고, 순식간에 화려한 오색 빛의 바다가 되어 진원자에게로 휘몰아쳤다.

    광망이 지나가는 곳마다 천지가 흔들리고 허공이 종잇장처럼 찌어지면서 수많은 균열이 생기는 등 기세가 엄청났다.

    진원자는 표정이 굳어지고 눈빛이 심연처럼 깊어지더니 소매를 휘둘렀다.

    그의 소매가 솟아오르더니 순식간에 엄청나게 커져 하늘의 절반을 뒤덮고 오색 빛 바다를 가렸다.

    그 순간, 모든 기류가 거대한 힘에 사로잡히며 우뚝 멈췄다.

    오색 빛 바다도 잠깐 멈췄지만, 광망이 반짝이며 이 힘을 찢더니 건곤 같은 소매와 충돌했다.

    꽈르릉!

    충돌한 곳에 경천동지할 굉음과 수많은 폭풍이 뒤섞인 화려한 빛이 나타나더니 섬뜩한 파동이 사방으로 몰아치며 허공을 찢어발겼다.

    용궁 대군과 마족 대군도 이 여파에 휩쓸려 혼란에 빠졌다.

    * * *

    남해 보타산. 공적선사가 이끄는 연맹 대군이 제때 도착하여 남은 보타산 제자들과 보타산의 호산 대진으로 마족 대군의 공격을 막아내고 있었다.

    * * *

    장안성, 대당 관부 주청.

    “보고드립니다! 동해 용궁과 보타산 모두 마족 대군을 막아냈고, 당분간은 걱정할 것 없다고 합니다!”

    연맹의 연락을 맡은 제자가 당(堂) 아래에 서서 큰 소리로 말했다.

    주청에 모인 사람들은 그제야 표정이 한결 부드러워졌다.

    동해 용궁과 보타산 대전은 연맹과 마족의 첫 정면 승부였는데, 상황이 나쁜 편은 아니었다.

    그때, 당 아래의 보리 조사 몸에서 붉은 빛이 빠르게 반짝거렸다.

    보리 조사는 표정이 급변하더니 손을 뒤집어 그 붉은 빛을 꺼냈다. 그것은 전신 영부였다.

    보리 조사가 영부를 부스러트리자 갑자기 표정이 변했다.

    “보리 도우, 무슨 일이라도 있는 겁니까?”

    원천강이 물었다.

    “종문을 지키는 제자의 연락이오. 마족 대군이 갑자기 방촌산 밖에 나타나 공격해오기 시작했답니다. 원 국사, 종문에 남은 제자들의 실력이 강하지 않으니 제가 가봐야겠습니다.”

    보리 조사는 그 말을 남긴 뒤, 원천강의 대답도 듣지 않고 초록색 빛과 함께 허공으로 들어가 사라졌다.

    “지금 바로 방촌산으로 사람을 보내 마족 상황을 조사하시오.”

    원천강이 옆에 선 대당 관부 장로에게 말하자 상대는 알겠다고 답하고는 바로 나갔다.

    “방촌산만으로는 마족 대군을 막기 힘들 게요. 이 천왕, 그대가 연맹의 군대를 이끌고 가서 도와주시오.”

    원천강의 말에 이정은 호천상제를 힐끗 봤다. 그리고 호천상제가 고개를 끄덕이자 바로 대청을 나섰다.

    주청 내부가 소란스러워졌다. 동해 용궁과 보타산 공격에 이어 이번에는 방촌산을 공격하다니, 도대체 마족의 목적은 무엇이란 말인가?

    “방촌산은 서우하주 동남쪽 변방에 있으니 마족이 남첨부주와 서우하주를 동시에 공략하려는 속셈일까요?”

    어느 중형 문파 장문인이 말했다.

    “제 생각에 그건 아닌 듯합니다. 마족의 세력이 강하다고는 하나 남첨부주와 서우하주를 동시에 차지할 정도는 아닙니다.”

    그때, 한 백면(白面) 노인이 불쑥 말을 꺼냈다.

    “모두 잊으시면 안 됩니다. 방촌산 비경에는 신마의 우물 입구가 봉인되어 있고 마족은 계속 그것을 노렸소. 어쩌면 그들의 목적은 신마의 우물일지도 모르오.”

    그는 소모산의 장문인, 망월진인(望月眞人)이었다.

    망월진인 옆에는 조금 어색해 보이는 푸른 옷의 노인이 있었다. 바로 춘추관의 관주 진명이었다.

    진명의 경지는 이전보다 많이 정진하여 벌써 응혼기에 도달해 있었다.

    춘추관의 실력으로는 이 주청에 앉아 있을 자격이 되지 않지만, 심협의 체면을 생각하여 연맹이 자리를 안배해준 것이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