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대몽주-1176화 (1,175/1,214)
  • 1176화. 주광순화대진(宙光舜華大陣)

    화과산 요족들의 안배가 끝나자 황목상인이 심협과 손오공, 백소천, 육화명, 고화령을 대당 관부 안의 어느 주청으로 안내했다.

    그곳에는 이미 많은 사람이 와 있었다. 상석에는 원천강, 왼쪽 상석에는 보타산의 청련선자, 화생사의 공도선사, 천기성의 성주 소부자였다. 세 사람 뒤에는 몇 개 문파의 장로들이 앉아 있었다.

    오른쪽 상석에 앉은 사람 역시 심협이 아는 얼굴이었다. 바로 여아촌의 백영롱과 신목림의 무규호였다.

    두 사람 뒤에는 그들의 제자, 유비연과 무만아가 서 있었다.

    심협과 그리 가깝지 않은 유비연은 앉은 채로 고개만 숙여 인사한 반면, 생사를 함께한 전우이자 벗인 무만아는 활짝 웃었다. 그러나 심협이 작지 않은 부상을 당한 것을 보고는 표정이 굳었다.

    심협만이 아니라 일행 모두가 큰 부상을 당한 상태였기에, 이들이 들어서자 청련선자와 소부자 등은 놀란 기색이 역력했다.

    “심 도우, 한계를 돌파하여 천존의 반열에 오른 것을 축하하네.”

    원천강이 웃으며 말했다.

    소부자 등은 그 말을 듣고 심협을 돌아보더니 눈이 휘둥그레졌다.

    청련선자는 놀란 와중에도 자신의 일처럼 뿌듯해했다. 처음에 그녀는 섭채주와 심협의 혼사를 반기지 않았지만, 서로가 워낙 사랑하는 모습이었기에 하는 수 없이 심협을 사위로 받아들인 것에 불과했다. 한데 그런 심협이 천존 경지에 들어섰으니 지위가 이전과는 달라졌고, 보타산도 적지 않은 혜택을 얻게 될 터였다. 청련선자는 괜히 문제가 생기기 전에 심협과 섭채주의 혼사를 빨리 성사시켜야겠다고 생각했다.

    “이런 조화를 얻게 된 건 모두 국사님의 가르침 덕분입니다.”

    심협이 진심으로 감사했다. 실제로 원천강이 비법과 홍황천기반을 주지 않았다면 돌파는커녕 완전히 소멸하고 말았을 터였다.

    “난 그저 거들었을 뿐, 심 도우가 천존 경지에 도달한 것은 모두 자신의 힘일세.”

    원천강이 웃으며 심협 일행을 주청에 모인 사람들에게 소개한 후, 일행도 주청에 앉았다.

    백소천과 육화명은 각자 종문의 장로 뒤로 가서 섰고 고화령은 눈앞의 상황이 마음에 들지 않았는지 핑계를 대고 주청을 나갔다.

    “심협, 원 국사에게 자네가 백 사질, 고 사질과 함께 북구노주로 갔다고 듣긴 했는데 어떻게 손 대성과 함께 돌아온 건가?”

    청련선자가 물었다.

    심협은 북구노주에서 있었던 일과 치우의 등장 등을 간략하게 설명했다.

    “치우가 이미 부활했다는 게 사실이었나?”

    소부자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섰다.

    청련선자와 공도선사 그리고 따라서 들어온 황목상인 등도 깜짝 놀랐지만, 오직 원천강만은 이미 예상한 것처럼 담담한 표정이었다.

    “이런 엄청난 사실을 어찌 감히 함부로 말하겠습니까.”

    심협이 한숨을 쉬며 말했다.

    모든 사람의 표정이 무거워졌다. 마물이 계속 기승을 부리고 또 심협이 이전에 원골 마기에 관한 소식을 알렸을 때, 그들 모두 치우 봉인에 문제가 생겼다는 것과 그 마신이 곧 부활할 것임을 예상했지만, 이렇게 빠를 줄은 예상치 못했다.

    “심 도우, 여섯 개의 원골 마기를 모두 모아야만 치우가 부활한다고 하지 않았던가?”

    소부자가 물었다.

    “처음 알아낸 정보는 확실히 그러했지만, 치우의 강력한 신통 때문인지 아니면 다른 비법을 쓴 건지는 몰라도 전부 모으지 않아도 부활할 수 있었던 모양입니다.”

    장내에는 침묵이 내려앉았다.

    백 년 전의 마겁에서 치우가 완전히 곤경에서 벗어나려 하자 삼계의 모든 수사가 상고 금제의 힘으로 치우를 다시 봉인한 바 있었다. 그 과정에서 삼계의 모든 문파는 처참한 대가를 치렀다.

    한데 치우가 이미 봉인에서 완전히 벗어났다니, 어찌 해야 한단 말인가.

    “모두 너무 걱정하지 마시오. 성인이 말하길, 강하고 큰 것은 아래에 머물고 부드럽고 약한 것은 위에 있게 되는 것이 자연의 법칙이니, 천하의 지극히 부드러운 것이 천하의 강한 것을 지배한다 하였습니다. 치우라는 절세의 마두가 세상에 나왔지만, 분명 우리에게도 방법이 있을 겁니다.”

    원천강의 목소리는 크지 않았지만, 마음을 안심시키는 효과가 있어서 혼란은 조금씩 진정됐다.

    “원 국사께서는 이미 대응책을 세워두신 겁니까?”

    소부자가 물었다.

    “치우는 신통이 강력하니 감히 함부로 말할 수 없지만, 심 도우의 이야기를 근거로 판단했을 때, 여섯 개의 원골 마기를 모두 모으지 못하여 완전하게 부활하지는 못한 것 같습니다. 완전히 부활했다면 심 도우와 손 대성 등은 무사히 돌아오지 못했을 겁니다.”

    “국사님의 말씀에 일리가 있습니다. 지금 생각해 보니 치우의 기운이 강력하긴 했으나 원만하지는 못했습니다. 핏빛 조도 외에 남은 하나의 원골 마기를 찾지 못한 것이 분명합니다.”

    심협이 고개를 끄덕이며 동의했다.

    “원 국사, 당신의 점술은 삼계 제일이니 마지막 원골 마기가 어디에 있는지 알아낼 수 없겠습니까? 만약 우리가 먼저 찾아서 부순다면 치우도 분명히 타격을 입을 겁니다.”

    “사실 이미 점괘를 봤으나 안타깝게도 아무런 단서를 찾아내지 못했습니다. 아무래도 치우가 술법으로 여섯 개의 원골 마기에 특수한 금제를 설치하여 천기를 가린 것 같습니다.”

    원천강이 고개를 젓자 청련선자는 실망한 기색이 역력했다.

    “우선은 삼계의 모든 문파에 연락하여 치우가 완전히 부활하기 전에 최대한 준비해야 합니다. 동시에 삼계 모든 문파의 자원을 모아서 마족에 대항할 수 있는 중보를 만들고, 출중한 인재를 선발하여 자원을 아낌없이 투자해 더 많은 태을 수사를 길러내야 합니다. 그리고 가능하다면 한두 명의 천존 존재를 더 길러내야 우리에게도 그나마 승산이 있습니다.”

    원천강의 말에 사람들은 서로를 돌아봤다.

    “치우는 이미 부활했으니 대전이 곧 임박할 텐데 지금 제자를 길러내는 건 너무 늦은 게 아니겠습니까?”

    “그건 걱정하지 않아도 됩니다. 제 점괘에 의하면 아직은 시간이 있습니다. 제게 있는 주광순화대진(宙光舜華大陣)은 진 안의 시간 흐름을 바꿀 수 있습니다. 바깥의 하루가 진 안에서의 일 년이 될 수 있으니, 자질이 탁월한 자들이라면 충분히 돌파할 수 있을 겁니다.”

    “주광순화대진! 문헌에서 그 대진에 관한 기록을 본 적이 있습니다. 상고 신농 일맥의 비전 법진으로 알고 있는데 원 국사께 있다니, 정말 놀랍군요!”

    소부자의 얼굴에 놀란 기색이 역력했다. 다른 사람들의 반응도 비슷했다.

    한편, 심협은 깊은 생각에 잠겼다. 이전에 정교금의 신혼을 소환할 때 신농 일맥의 백초소혼결을 시전하더니 이번에는 그 일맥의 비전 법진까지 알고 있는 것을 보면 원천강은 상고 신농의 전승이라도 얻었단 말인가!

    “우연히 얻게 되었지요. 자, 모두 제 의견에 동의하십니까?”

    “본문의 전적에도 시간의 흐름을 바꿀 수 있는 법진에 관한 기록이 있는데 시간의 흐름을 바꿀수록 법진의 부담감도 더 커진다고 하였습니다. 주광순화대진이 그 정도의 효과가 있다면 원기의 소모가 막대할 터. 진법이 뒤덮을 수 있는 영역은 매우 제한적일 것입니다. 몇 명이나 들어가 수련할 수 있는 겁니까?”

    무규호가 물었다.

    “무 도우 말씀대로 주광순화대진을 발동할 때 신마의 우물에 있는 영력의 도움을 받는다고 해도 법진이 덮을 수 있는 범위는 매우 제한적입니다. 대략 열 명 정도가 들어갈 수 있겠군요.”

    “열 명이라…….”

    무규호가 짙은 눈썹을 찌푸렸다.

    단시간에 태을 또는 천존 존재를 길러내려면 엄청난 자원을 소모해야 할 것이다. 자신의 종파에서 선발된다면 당연히 좋겠지만, 열 명에 뽑히지 못하면 다른 문파 사람을 키우는 데 자원을 허비하게 되는 게 아닌가.

    이런 생각에 주청 안의 모두가 조용해졌다.

    “치우가 부활하였으니 이번 마족과의 대전에 삼계의 안위가 달렸습니다. 만약 패하면 자원이고 종문이고 다 사라질 터. 우리 여아촌은 원 국사의 제안에 찬성합니다. 문내의 자원을 기꺼이 제공하겠습니다.”

    한참 뒤, 백영롱이 먼저 침묵을 깼다.

    “감사합니다, 백 도우.”

    원천강이 환한 얼굴로 공수하며 답했다.

    백영롱을 시작으로 다른 사람들도 하나둘 찬성했다.

    “여러분의 의기에 감사드리오. 그럼 열 명을 어떻게 선발할지 자유롭게 의견을 나누어봅시다”

    그때부터 활발한 이야기가 오겠는데, 모든 사람은 자기 문파 제자들을 추천하기에 바빴다.

    이런 암투에 싫증이 난 심협은 자리를 털고 일어났다.

    “원 국사님, 도우 여러분. 저는 전할 것은 모두 말씀드렸습니다. 저 또한 원 국사님의 제안에 찬성하지만, 저희 춘추관은 작은 문파라 자원이 부족하여 도울 수가 없습니다. 그러니 저는 여기 있어봐야 더 할 일이 없을 터. 먼저 인사드리겠습니다.”

    그러고는 대답이 나오기도 전에 사라지더니 장안성 상공에 나타났다.

    이번에 치우와의 싸움에서 패했지만, 이대로 패배를 인정할 수는 없었다. 이제 막 반고진공에 입문하였으니 만약 수련이 대성한다면 제대로 붙어볼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러니 곧장 동해 용궁에 있는 심마의 우물로 가서 수련에 몰두할 생각이었다.

    한데 그때, 뒤에서 누군가가 말을 건넸다.

    “심 도우, 잠시만.”

    바로 원천강이 허공에 모습을 드러낸 것이었다.

    “국사님, 무슨 일이라도 있으신 겁니까?”

    “심 도우, 원모가 부탁할 일이 있으니 잠시 시간을 내주게.”

    원천강이 포권하며 예를 올렸다.

    “국사님, 제게 큰 은혜를 베푸셨으니 그런 예의 같은 건 차리실 필요 없습니다. 무슨 일이든 괘념치 말고 말씀해 주십시오. 다만, 문파의 인재를 선발하는 일이라면 제가 도와드릴 것은 없습니다.”

    “그 일은 내 이미 생각해둔 바가 있으니 신경 쓰지 않아도 되네. 내가 심 도우를 찾아온 것은 주광순화대진 때문이라네.”

    원천강이 웃으며 말했다.

    “주광순화대진이요? 안배해놨다고 하시지 않았습니까? 그런데 제가 도울 일이라니요?”

    “사실 그리 간단하지가 않네. 주광순화대진은 신농 일맥의 비전이라 이미 천도에 통달하여 발동하기가 매우 까다롭지. 방금은 모두를 안심시키기 위해서 자세한 상황을 설명하지 않았을 뿐이라네.”

    “그 법진을 설치하는 조건이 까다로운 겁니까?”

    “주광순화대진을 설치하는 일은 나 혼자서 감당할 수 있네. 기껏해야 경지가 조금 소모될 뿐이지. 다만, 대진을 오랜 시간 발동하는 것은 나 혼자 해결할 수 없네.”

    “제가 무슨 도움을 드리면 좋을지 속 시원히 말씀해 주십시오.”

    “심 도우가 시원시원하게 나오니 내 단도직입적으로 말하겠네. 주광순화대진의 운공을 유지하는 데 가장 번거로운 점은 원기의 공급일세. 장안성에 있는 신마의 우물 입구의 영력만으로는 부족하다네. 긴 시간 대진을 운공하려면 반드시 또 다른 신마의 우물 입구의 도움이 필요하지.

    보리 비경에 있는 세 번째 신마의 우물 입구는 마족의 침입 때문에 방촌산에서 적잖은 금제를 설치하여 방촌산과 하나로 합쳐진 탓에 옮기기가 어렵다네. 그러니 심 도우의 그 신마의 기둥을 장안성으로 옮기는 것만이 유일한 해결책일세.”

    원천강은 간절한 표정으로 말했으나, 심협은 오히려 안도했다. 신마의 기둥을 동해 용궁에 둔 지 얼마 되지 않은 데다가 오홍이 아직 많은 금제를 설치하지 않은 터라 옮기기가 어렵지는 않기 때문이다. 치우가 부활했고 삼계가 위험에 처한 지금, 오홍도 이 일을 반대하지 않을 터였다.

    “심 도우, 안심하게. 내 아무런 대가 없이 나서 달라는 게 아니네. 그 안에 들어갈 열 명 중 하나로 도우를 반드시 포함시켜 주겠네.”

    원천강은 심협이 말이 없자 대가를 원하는 줄 알고 얼른 덧붙였다.

    “아닙니다. 저는 자질이 우둔하여 주광순화대진에 들어가도 큰 도움이 안 될 겁니다.”

    “심 도우, 너무 겸손하군. 자네의 자질이 도움이 안 된다면 내가 주광순화대진을 설치할 필요도 없었을 걸세.”

    원천강이 껄껄 웃으며 말했다.

    “국사님, 연맹에는 저보다 자질이 뛰어난 사람이 많습니다. 이번 일은 연맹에 중요한 일이니 저도 전력으로 돕겠습니다. 지금 마침 동해로 가는 길이었으니 바로 신마의 기둥을 가져오겠습니다.”

    심협이 웃으며 고개를 젓더니 그 말을 끝으로 금빛이 되어 날아갔다.

    그가 멀어지는 것을 지켜보던 원천강은 한결 가벼워진 표정으로 그 자리에서 사라졌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