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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몽주-1174화 (1,173/1,214)
  • 1174화. 치우

    심협은 두 눈을 번득이더니 검을 크게 세로로 베었다.

    휘황찬란한 금색 검광이 수직으로 떨어지더니 일검에 핏빛 조도에서 뿜어져 나오는 혈광을 부쉈다. 핏빛 조도는 깨지지 않았지만, 겉의 광망이 어두워지면서 땅으로 떨어졌다.

    금색 검광이 계속 밑으로 내려가 땅을 베자 백 장 길이의 골짜기가 다시 갈라졌고, 강력한 힘에 대지 전체가 크게 흔들렸다. 이어서 요풍의 머리와 목, 몸통에 금색 선이 나타나더니 몸이 둘로 갈라지며 양쪽으로 스러졌다. 그는 몸과 도까지 완전히 소멸했다.

    이미 생기를 잃은 두 눈은 마치 허공을 뚫듯이 저 먼 서북쪽을 바라봤다.

    검을 쥔 심협의 팔은 가늘게 떨려왔다.

    천도가 아직 무너지지 않았으니 천도의 힘을 빌려오는 게 천년 뒤인 꿈속 세계보다 훨씬 쉬웠다. 대신 그 뒤에 몰려오는 충격도 훨씬 더 강력했다.

    “너무 강한데……?”

    멀리 성벽 위에서 지켜보던 백소천은 이 광경을 보고는 큰 충격을 받았다.

    그는 아까 심협 덕분에 수많은 천지영기를 흡수하여 많이 회복된 터였다.

    “앞으로는 저 녀석 뒤만 쫓아다녀야겠군.”

    한편, 육화명은 놀라면서도 크게 기뻤고, 또 서글펐다. 심협의 성장 속도가 너무 빨라서 도무지 쫓아갈 수가 없었던 것이다.

    “당신도 충분히 강해요.”

    고화령이 옆에서 조용히 말했다.

    “그건 그렇소. 심협이 저리 강하니까 우리는 앞으로 저 녀석 뒤만 잘 따라다닙시다.”

    육화명이 그녀의 곱고 작은 손을 잡으며 미소를 짓자, 고화령은 그를 힐끗 보더니 얼굴이 붉게 물들었다. 그러나 손을 빼지는 않았다.

    요풍을 소멸시킨 뒤, 순양주살검진을 이루고 있던 여든한 자루의 비검이 심협 옆으로 돌아왔다. 서른두 자루의 순양검은 그에게 공적을 보고하듯이 검명을 울렸다. 반면 나머지 마흔아홉 자루의 검배는 염폭 법칙이 보호해줬음에도 검진의 위력을 견디지 못해 기운이 다소 불안정한 상태였다.

    흑련 도장은 이미 검진에 몸과 신혼까지 완벽히 소멸한 상태였다.

    “드디어 끝났구나.”

    심협은 천천히 탁한 기운을 뱉어내고는 비검을 달래며 거두어들였다.

    한데 그 순간, 그는 표정이 급변하더니 서북쪽으로 고개를 휙 돌렸다.

    머나먼 서북쪽 하늘 먼 곳에서 붉은 빛이 솟아오르더니 눈 깜짝할 사이에 천 리 가까이 퍼졌고, 그곳에서 대량의 핏빛 구름이 나타나 하늘을 가렸다.

    갑자기 나타난 핏빛 구름은 만 리를 뒤덮는 핏빛 파도처럼 세차게 요동치며 하늘과 해를 가리기 시작했다.

    구름이 요동치는 사이 등불 같은 혈광이 반짝였고, 그곳에서 여태까지 한 번도 느껴보지 못했던 살벌한 기운이 느껴졌다.

    그 기운은 익숙하면서도 또 낯설었다.

    익숙한 이유라면 천 년 뒤의 꿈속 세계에서 이 기운의 주인과 치열하게 싸워봤기 때문이고, 낯선 이유는 이 기운에서 뿜어져 나오는 혼란스럽고 광포한 감정이 이전에는 없었기 때문이다.

    다만 한 가지는 확신할 수 있었다.

    ‘그가 왔다!’

    이 무렵 다른 사람들도 그쪽 하늘을 바라봤는데, 숨도 제대로 쉴 수 없을 만큼 압도적인 기운이 몰려오자 그 어느 때보다 표정이 심각해졌다.

    “어서 여기서 도망쳐야 합니다!”

    심협의 경고에 백소천과 육화명 등은 급히 도망치려다가 멈췄다. 정작 경고를 한 심협은 움직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는 도망치기는커녕 오히려 그 짙은 혈운을 향해 날아가기 시작했다.

    허공에 선 그는 양손으로 헌원신검을 하늘 높이 치켜들었고, 체내의 기운을 모으며 모든 신념을 집중했다. 잡념 하나 없이 모든 정신과 법력을 전부 뭉쳐 신검에 모았다.

    “파마(破魔)!”

    심협은 눈을 번뜩이며 낮게 외쳤고, 검을 쥔 양손을 아래로 베었다.

    헌원신검에서 금빛이 뿜어져 나왔다. 천 장 길이의 금색 검광이 허공을 가르며 거대한 호를 그렸다. 지나가는 곳마다 공간이 부서지고 무너졌다.

    하늘 높이 솟아오른 혈운은 몰려오던 기세가 약해졌고, 가운데가 검광에 찢어지고 무너졌다. 마치 거대한 골짜기가 생겨난 것처럼 하늘 절반이 갈라졌다.

    콰쾅! 콰르릉!

    둔탁한 천둥 같은 소리가 하늘 깊은 곳에서부터 연이어 울렸다.

    헌원신검의 검광은 흩어지지 않고 곧장 혈운 깊숙이 들어가 절반 정도 베었으나, 검식이 원만하지 않기 때문인지 무언가에 막혀 더는 잘라낼 수가 없었다.

    끊임없이 충돌하는 소리가 울려 퍼지며 천지를 뒤흔들었다.

    하지만 이 대치는 오래가지 않았다.

    펑!

    짧은 폭발음이 천지에 울려 퍼졌고, 혈운 깊숙한 곳의 검광이 놀라울 정도로 거대한 암홍색 팔에 그대로 산산조각이 났다.

    허공에서 금빛이 폭발했고, 백 장 높이까지 솟아오른 거대한 기의 파도가 헌원신검의 검광이 잘라낸 골짜기에서 퍼져 나와 혈운을 양쪽으로 퍼트렸다.

    혈운이 사라진 곳에서 구부러지고 툭 튀어나온, 거대하고 뾰족한 검은 뿔 두 개가 나타났고, 뒤이어 산봉우리처럼 웅장하고 거대한 몸이 나타났다.

    “치우…….”

    그 모습을 본 순간, 모두가 절대로 인정하고 싶지 않았던 예상이 현실이 됐다.

    심협은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고, 그제야 알 수 있었다. 방금 요풍이 핏빛 조도를 심장에 꽂은 것은 궁지에 몰린 상태에서 동귀어진을 노리기 위함이기도 했지만, 동시에 치우의 본체를 소환하기 위함이기도 했던 것이다.

    지금 치우의 몸에서 뿜어져 나오는 기운은 꿈속 세계에서와는 상당한 차이가 있었지만, 그럼에도 천존 경지를 초월한 터라 지금의 심협이 막을 수 있는 수준이 아니었다.

    “어리석은 것들, 아직도 단념하지 않고 반항하는 것이냐?”

    치우는 땅에 가득한 마족의 시체와 요풍 등의 시신을 내려다보더니 한심하다는 듯 내뱉었다. 그러더니 곧바로 날카로운 이빨이 가득한 입을 쩍 벌리고 숨을 들이마셨다. 그러자 강력한 흡입력이 땅에 가득한 마족의 시체와 요풍 등의 몸을 일제히 빨아들였다.

    마족의 시체를 전부 빨아들인 치우에게서는 훨씬 짙어진 혈기와 살기가 뿜어져 나왔다.

    치우는 손을 하늘 높이 들어 심협을 내리쳤다.

    거대한 손이 산처럼 하늘과 해를 뒤덮고 허공을 흔들며 압박해오자 주위에 시커먼 공간의 균열이 생겨나 사방으로 퍼졌다.

    손이 아직 다 내려오지도 않았는데 강력한 기세가 공간을 가두고 심협 등을 단단히 묶어 도망치고 싶어도 도망칠 수가 없게 만들었다.

    이를 본 심협이 크게 기합을 내지르며 헌원신검에서 광명을 뿜어내 다시 천도의 힘을 빌려 내려오는 손바닥을 강하게 찔렀다.

    삽시간에 거대한 검광이 솟구쳤고, 다른 거대한 산이 위로 솟아나 치우와 충돌했다.

    콰콰쾅! 쾅!

    폭음이 연이어 울렸고, 금색 검광은 거대한 손을 전혀 막아내지 못한 채 산산조각이 났다.

    심협이 거대한 손에 깔리려는 순간, 누군가 빠르게 날아들었다. 바로 손오공이었다.

    “크아아!”

    그는 야수처럼 포효하더니 몸에서 광망이 뿜어져 나왔고, 몸이 빠르게 커져서 돌 원숭이 본체로 변했다. 거대한 산과 같은 몸이 나타나 양손을 높이 들더니 그 거대한 손바닥을 지탱했다.

    심협은 잠시 숨 돌릴 틈이 나자 체내에서 반고진공을 운공하여 거의 모든 법력을 뿜어내 부서진 검광을 다시 뿜어냈다. 그는 손오공과 함께 치우의 거대한 손을 약간 밀어냈다.

    ‘하! 방금 요풍에게 태을과 천존 경지의 차이를 모른다고 조롱했건만, 지금 치우가 직접 천존과 대천존의 경지 차이를 내게 알려주는 듯하군.’

    그는 속으로 혀를 차고는 크게 외쳤다.

    “어서들 가십시오! 지금이 아니면 도망칠 수 없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육화명 등이 다가와 도우려 하자 손오공이 전음으로 말했다.

    “나와 심협도 오래 버티지는 못한다. 너희가 안 가면 우리가 도망치고 싶어도 못 간다고!”

    손오공은 이미 사대전장에게 화과산 원숭이들과 요족들을 데리고 도망치라고 명령을 내려놨다.

    육화명 등은 가슴 깊은 곳에서 무력감이 몰려왔다. 이들은 복잡한 표정으로 심협을 보며 쉬이 떠나가지 못했다. 백소천과 육화명은 고화령이 다가와 소매를 잡아당기자 그제야 돌아섰다.

    “우리는 여기 남아 있어 봤자 짐만 될 뿐이에요.”

    고화령의 말이 육화명과 백소천의 가슴을 깊이 찔렀다.

    세 사람이 멀리 도망치는 것을 본 심협은 그제야 안심이 됐다.

    그는 천존 경지에 들어선 지 얼마 되지 않았고, 심지어 아직 천지영기를 다 흡수하지 못해 경지의 근본이 불안정하니 치우와 맞설 힘이 없었다.

    “대성, 치우가 저 원골 마기를 차지해서는 안 됩니다. 제가 어떻게든 막을 테니 핏빛 조도를 가지고 먼저 가십시오!”

    심협이 전음으로 말했다.

    “아니, 내가 시간을 벌 테니 네가 가라.”

    “제가 경지가 더 높으니 더 오래 버틸 수 있습니다.”

    “아니다. 넌 경지가 불안정하지만 노손은 신체(神體)를 타고났으니 너보다 더 단단하지 않더냐. 쓸데없는 말은 그만! 더 지체했다가는 우리 모두 못 버틴다. 어서 가!”

    손오공은 심협이 다른 말을 할 틈도 주지 않고 곧장 몸을 두 배로 늘려 여의금고봉을 들고 치우에게 달려들었다.

    심협은 어쩔 수 없이 손오공이 무사하길 바라며 헌원신검을 거두고 유광이 되어 땅에 떨어져 있는 핏빛 조도를 잡고 빠르게 날아갔다.

    심협이 자신의 원골 마기를 가지고 도망가는 모습을 본 치우는 바로 손오공을 떨쳐내고 그를 쫓아가려 했다.

    하지만 손오공이 거대한 몸으로 앞을 막아서고는 거대한 여의금고봉으로 치우의 머리를 내리쳤다.

    거대한 금고봉이 허공을 가르며 내려오자 하늘에 울려 퍼지는 굉음과 함께 수많은 번개가 이끌려 떨어지는 것 같았다.

    치우는 몸을 숙이더니 타오르는 불꽃 같은 검은 빛이 뿜어져 나오는 도끼를 휘둘렀다.

    챙!

    두 개의 신기(神器)가 충돌했다.

    두 줄기 강력한 힘이 치솟으며 허공에 두 개의 반원 모양 충격파가 일어났고, 강력한 기의 파도가 하늘로 솟구쳐 혈운에 천 장 크기의 커다란 구멍이 생겨났다.

    지상으로 몰아친 충격파는 반경 10여 리의 산을 가루로 만들었다.

    강력한 충격에 손오공은 몸을 떨었다. 뒤이어 누군가 번쩍이며 나타나더니 어깨로 그의 몸을 들이받았다.

    삽시간에 바다처럼 방대한 힘이 솟구치며 몰려와 금색 갑옷의 방어를 무시하고 체내까지 뚫고 들어오자 제아무리 손오공이라도 버티지 못하고 튕겨 나갔다.

    허공에서 금색 갑옷 파편이 흩날렸고, 입에서는 옅은 금색 피가 솟구쳤다. 일격에 중상을 입은 것이다.

    그 순간, 치우의 거대한 몸이 몰려든 혈운을 타더니 믿을 수 없는 속도로 심협을 쫓아갔다. 치우의 몸이 혈광으로 번득이더니 그 자리에서 사라졌고, 거의 동시에 백 리 떨어진 곳에 나타났다.

    이렇게 몇 번을 반복하자 천 리 정도의 거리가 금세 줄어들어 이제 둘 사이의 거리는 이천 장 정도에 불과했다.

    심협은 전력으로 둔술을 시전했지만, 도저히 따돌릴 수 없었다.

    그때였다.

    콰르릉!

    하늘에서 갑자기 혈광이 번쩍이더니 커다란 혈운이 하늘에서 내려와 심협을 뒤덮어왔다. 순식간에 허공이 붉게 물들더니 기이한 기운이 퍼져 나갔다.

    심협은 심상치 않음을 감지하고는 서둘러 축지척을 꺼내 둔술을 보조하여 피한 뒤 다시 달아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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