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70화. 제압
산하사직도 밖. 누군가가 폭발의 기세에서 천천히 모습을 드러냈다.
요풍이 허리춤에 걸려 있는 무량옥벽을 보니 옥벽 전체를 관통하는 균열이 커지다가 퍽 하며 부서졌다. 이 보물이 방금 그를 대신하여 심협의 그 무서운 참격을 막아준 것이다. 그렇지 않았다면 지금쯤 부서진 것은 무량옥벽이 아니라 그의 몸뚱이였을 터였다.
요풍은 눈살을 잔뜩 찌푸리고는 허리에서 피가 흐르는 것을 바라봤다.
그는 상처를 돌볼 겨를도 없이 주위를 둘러보다가 허공에 떠 있는 산하사직도를 보고는 얼굴에 화색이 돌았다. 저 보물을 치우 대인께 바친다면 골원 마기를 탈환한 것보다 더 큰 공을 세우는 것이 되리라!
그는 곧장 산하사직도로 돌진했다.
그때였다.
쒜에엑!
성벽 쪽에서 갑자기 검명이 울려 퍼지더니 푸른 검광이 강물처럼 뿜어져 나와 곧장 요풍의 뒤를 노렸다.
요풍은 뒤에서 웅장한 검기가 느껴지자 재빨리 몸을 돌려 묵옥해골로 막았다.
콰쾅!
요란한 폭음이 울려 퍼졌다.
웅장한 검기의 충격에 요풍은 버티지 못하고 저 멀리 날아갔다.
간신히 몸을 가누고 바라보니 육화명이 장검을 든 채 성벽에 서서 성난 눈빛으로 그를 바라보고 있었다.
“육형, 드디어 돌아왔는가!”
한쪽에 주저앉은 백소천이 기운 없는 와중에도 맑게 웃었다. 그는 방금 비술을 사용하면서 모든 힘을 소모해 완전히 쇠약해진 상태였다.
고화령도 크게 감동한 표정이었다.
육화명은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이게 바로 전화위복인가……?”
그는 지금도 그 뇌겁이 어떻게 되었는지, 무엇이 그것을 없애고 무사히 도겁을 넘어 태을 경지로 들어서게 해줬는지 알지 못했다.
한편, 간신히 몸을 가눈 요풍은 상처가 다시 터지면서 피가 흘렀다. 지금은 지혈이 우선이었다.
이때, 아래에서 두 사람이 날아오르더니 그와 합류했다. 바로 복토와 흑련 도장이었다.
그들도 중상을 입었지만, 태을 경지 수사답게 쉽게 죽지 않았고, 잠시 정양한 뒤 바로 전장으로 돌아온 것이다.
세 사람이 아래를 내려다보니 마족과 화과산 요족들의 싸움은 거의 끝나가고 있었다. 양쪽 모두 피해가 컸고, 곳곳에서 비명이 들려왔다.
“지금은 산하사직도를 빼앗고 심협을 죽이는 게 가장 중요합니다.”
“산하사직도 안으로 피했으니 섣불리 들어갈 수 없지 않은가? 들어가는 건 명을 재촉하는 꼴이지. 그냥 이대로 파괴하면 그놈도 같이 죽지 않겠나?”
복토가 피를 퉤 뱉고는 차갑게 말했다.
그의 말에 요풍이 아깝다는 표정으로 돌아보자 복토는 말을 이었다.
“아깝다고 생각지 마라. 지금은 보물이 아니라 심협을 죽이고 원골 마기를 회수하는 게 우선이다. 그게 치우 대인을 위하는 일이다.”
“옳습니다.”
요풍이 고개를 끄덕이자 세 사람은 뜻을 정하고 산하사직도로 돌진했다.
이를 본 육화명이 곧장 허공으로 날아올라 세 사람 앞을 막아섰다.
“뭘 하려는 속셈이냐?”
그가 차갑게 비웃고는 장검에서 푸른 빛을 뿜어내자 마치 용의 포효가 검신에서 들려오는 것만 같았다. 그는 방금 태을 초기에 들어섰기에 현재 기운이 가장 고조되어 있을 때였다. 경지는 요풍 등에 비해 다소 부족했지만, 다행히 세 명의 적은 모두 큰 부상을 입은 터였다.
“비켜라!”
복토가 짧게 외치더니 몸의 기운을 끌어올려 가장 먼저 달려들었고, 요풍과 흑련 도장이 곧장 뒤를 이었다.
육화명이 몸 주위에 영광을 두른 채 장검을 휘두르자 한 줄기 푸른 검기의 청룡이 사방을 맴돌았고, 공격과 방어를 이어가며 한동안 세 사람의 협공을 막아냈다.
성벽 위에서는 백소천이 협공당하는 육화명과 그림 속의 심협을 번갈아 보더니 한숨을 쉬었다. 그리고는 손을 뒤집어 붉은색 단약을 꺼내고는 잠시 망설이더니 결국 꿀꺽 삼켰다.
다음 순간, 그는 얼굴부터 목까지 순식간에 새빨개지더니 온몸이 잘 익은 새우처럼 변해버렸고, 몸에서 치익 하며 하얀 증기가 솟아올랐다.
동시에 메말랐던 법력이 단전에서 샘물처럼 솟아나기 시작했다.
잠시 후, 백소천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아미타불!”
그는 짧게 읊조리더니 바로 전장으로 날아가 육화명을 도왔다.
고화령은 자신의 실력으로는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에 우선 정양하며 상처를 치료하는 데 전념했다.
* * *
산하사직도 안. 나무 아래 가부좌를 튼 심협의 식해는 맹렬한 기세로 혼란에 빠져들었다.
“너 따위가 심마를 제거하겠다고? 분수도 모르는 놈!”
식해의 거울 아래, 심협과 똑같이 생긴 심마의 얼굴이 떠올라 마주 보며 비웃었다.
심협은 신경 쓰지 않고 전력으로 심마대법을 운공했다. 그의 신혼 소인이 몸에서 금빛을 뿜어내며 체내를 제압해갔다.
한데 어째서인지 식해에 거꾸로 비친 심마의 그림자는 그저 심협이 시전하는 신통을 바라만 보고 있었다. 반항할 기분조차 들지 않은 것처럼 보이는 그 모습에 심협은 의문이 들었다. 심마대법도 두렵지 않단 말인가?
“제마심념, 멸겁불생(除魔心念, 滅劫不生).”
심협의 신혼이 낮게 외치자 몸에서 금빛이 빠르게 회전하더니 그의 미간에서 아래로 뿜어져 나가 곧장 식해로 들어갔다.
콰쾅!
천둥 같은 소리와 함께 심협의 식해에 성난 파도가 일었다.
금빛은 식해에 들어가자마자 살아 있는 듯한 금색 문자로 변하더니 진을 치는 것처럼 연달아 심마를 향해 날아가 그의 몸을 타고 오르기 시작했고, 순식간에 온몸을 뒤덮어 마치 금색 갑주를 입은 것처럼 보였다.
“사라져라!”
심협의 외침에 심마의 몸을 뒤덮었던 모든 금색 문자가 번쩍였다. 그의 식해에서는 태양이 떠올라 모든 어둠을 몰아내고 불결한 것을 녹여버리는 것 같았다.
그러나 금빛은 잠깐 번쩍이더니 이내 빠르게 어두워졌고, 같이 어두워진 금빛 문자도 낙엽처럼 심마의 몸에서 떨어졌다.
‘전혀 소용이 없다니!’
심협의 심신이 강하게 흔들렸다. 심마대법의 제마 비술로도 심마를 제거할 수 없단 말인가!
“하하하! 너는 네 심마가 무엇인지 전혀 이해하지 못한다고 말하지 않았더냐!”
심마가 비릿하게 웃으며 내뱉었다. 그의 손에서 검은색 액체가 흘러나오더니 점점 형체를 갖추어 검은색 도끼로 변했다.
그는 도끼를 움켜쥐더니 갑자기 자기 몸 아래를 베었다.
칠흑 같은 도끼가 휙 지나가자 심협은 심장이 거세게 뛰었고, 심마와의 연결이 완전히 끊어지는 것이 선명하게 느껴졌다.
‘스스로 나와의 연결을 끊다니!’
심협의 표정이 무거워졌다.
심마와 신혼의 분리는 두 가지를 뜻한다. 하나는 신혼 본체를 참살하고 본체의 육신을 차지하여 본체로 들어섬으로써 마도에 빠지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본체에서 벗어나 화외천마(化外天魔)가 되는 것이다.
그러나 저 심마의 강력한 기세를 봐서는 두 번째를 선택할 리가 없었다.
“너에게 진정한 심마의 두려움이 무엇인지 알려줄 때가 되었다.”
심마가 차갑게 웃으며 조금씩 식해 거울을 뚫고 나와 심협 앞에 서더니 몸이 떠오르면서 눈 깜짝할 사이에 몇 배로 커졌다.
천지를 떠받치는 듯한 거대한 몸이 도끼를 든 채 우뚝 선 모습을 마주하자 심협은 긴장감과 함께 강렬한 두려움이 마음 깊은 곳에서 솟아올랐다.
“마…… 마신…… 치우…….”
심협은 가슴 깊은 곳에서 몰려온 충격에 가늘게 떨었다. 그러나 이내 이 사실을 받아들였다. 생각해 보면 자신의 심마가 치우 외에 무엇이겠는가? 이 이름은 수련을 시작한 후 영문도 모른 채 꿈속 세계로 들어가기 시작하면서부터 쭉 그를 쫓아다녔고, 항상 가슴속에 들어앉은 묵직한 돌덩이 같았다.
마치 숙명이 절대 이길 수 없는 적을 안배해놓은 것 같았다. 설령 싸워서 이긴다 해도 그 대가로 육신이 죽고 도가 소멸할 듯했다. 그러니 다시 마주한 지금, 억누를 수 없는 두려움이 몰려올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심협은 금방 냉정함을 되고는 양손을 결인했다. 그러자 신혼 소인의 미간에서 신혼의 힘이 뿜어져 나오더니 헌원신검과 똑같이 생긴 황금색 장검이 만들어졌다.
“감히 내게 덤빌 생각인가?”
심마 치우가 차갑게 비웃었으나, 심협은 대답하지 않았다. 심마를 상대로는 말을 섞을수록 큰 영향을 받게 돼 싸우기도 더 어려워진다는 것을 그는 잘 알고 있었다.
그의 신혼이 빠르게 돌진하자 식해에 천 겹의 파도가 일어나 곧장 치우를 향해 몰아쳤다.
치우는 조금도 피하지 않고 거대한 몸으로 심협을 걷어찼다.
콰쾅!
심협의 식해가 교묘하게 심마의 공격을 피하더니 이 거대한 발을 타고 위로 오르며 장검을 휘둘러 끊임없이 베고 또 베었다.
식해 공간에서는 양쪽 모두 영체(靈體)였기에 진짜 법술을 시전할 수 없으므로 결국 육탄전으로 이어졌는데, 실제로는 신혼의 힘이 소모되는 것이었다.
심협이 검을 휘두를 때마다 심마 치우의 몸에는 상처가 났고, 안에서 검은색 안개 같은 것이 새어 나왔다.
심마 치우는 몸을 강하게 흔들어 심협을 떨어트리려 했지만, 몇 번을 시도해도 소용이 없었다. 오히려 몸에 상처만 더 늘어갔다.
심협은 심마의 거대한 몸을 타고 위로 달려 금방 어깨에 도착하더니 두 발을 굴러 뛰어올랐다. 이어서 금색 장검을 양손으로 거꾸로 쥐더니 심마 치우의 미간을 찔렀다.
“크아아아!”
심마 치우가 비틀거리며 뒤로 물러나자 미간에 매달려 있던 심협이 크게 흔들렸다.
“멸마(滅魔)!”
심협의 신혼이 낮게 외치자 금색 장검에서 갑자기 눈부신 금빛이 폭발하더니 강력한 힘이 검신에서 뿜어져 나와 곧장 심마 치우의 머리를 뚫고 들어갔다.
심마 치우는 비명을 질렀으나, 곧이어 오히려 껄껄 웃었다. 그리고는 금빛이 관통한 머리가 갈라지더니 거대한 입으로 변하여 심협의 신혼을 한입에 삼켰다.
심협의 신혼은 갑자기 거대하기 그지없는 검은 늪에 빠져 가라앉기 시작했고, 차가운 기운이 그의 체내로 파고들었다.
“안심하고 나에게 먹히거라. 네 몸을 잘 이용하여 치우에 버금가는 천존 마신이 되어주마. 하하하!”
광기 어린 심마의 웃음소리가 사방에서 울려 퍼졌다.
심협은 그 방대한 기운을 느꼈지만 지금, 어째서인지 매우 평온했다.
‘이 순간을 기다렸다!’
그 순간, 심협이 두 눈에서 혈홍색 광망을 번득이며 빠르게 무언가를 읊어대자 심마대법이 운공하기 시작했다. 뒤이어 그의 금색 장검이 녹아내리더니 금수(金水)가 되어 검은 늪에 녹아들었다.
이와 동시에 심협의 신혼 주위에도 변화가 일어났다. 금색 문자가 그의 신혼에서 날아오르더니 쉬지 않고 검은 늪에 녹아든 것이다.
심마 치우 앞에 갑자기 웅장한 산이 우뚝 솟아났다. 바로 부주신산이었다.
신산에서 전해오는 제압의 힘을 감지한 그는 피식 웃으며 조롱했다.
“부주진신법? 이미 내게는 통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면서 또 해보려는 것이냐?”
“과연 그럴까?”
심마의 체내에서 심협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리고 다음 순간, 부주신산에서 암벽들이 무너지면서 금색 문자가 나타났다. 그것은 바로 완전한 심마대법이었다.
“이, 이건……?”
그제야 심마의 얼굴에 두려움이 묻어났다.
심협은 지난번 실패 이후 줄곧 심마에 대항할 방법을 고심했고, 장안으로 돌아온 후 이 방법을 생각해냈다. 그리고 북구노주로 가는 내내 식해 속에서 부주신산에 심마대법을 새겨 부주진신법과 하나로 융합하려 했다.
심마 체내의 심협 신혼이 가부좌를 틀고 심마대법을 읊조리기 시작하자 바깥에 있는 부주신산의 금색 문자가 호응하듯 눈부신 금빛을 뿜어냈다.
웅장하고 호연(浩然)한 신혼의 힘이 심협의 식해에 퍼지면서 강력한 기운이 사방을 제압하기 시작하자 심마 치우의 몸은 빠르게 변형되어 점성이 있는 검은 액체가 되었다.
심협의 사방에서 검은색 액체가 가부좌를 튼 심협을 에워싸고 달라붙어 다시 집어삼키려 했지만, 그 기운은 갈수록 약해져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