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대몽주-1169화 (1,169/1,214)
  • 1169화. 천명을 속이다

    “그럼 저 육가 녀석 먼저 처리하고 올 테니 심협을 부탁드립니다.”

    요풍의 몸이 번쩍이더니 순식간에 그 자리에서 사라졌다.

    이를 본 심협은 따라다니는 검은 빛을 무시한 채 요풍을 뒤쫓으려 했다.

    “어딜 가려 하느냐?”

    흑련 도장이 호통 치듯 외치고는 양손을 빠르게 결인하자 몸에서 마기가 솟구쳤다.

    “흑련옥(黑蓮獄)!”

    그의 외침과 함께 심협의 발아래에 있던 검은 빛이 갑자기 치솟더니 아홉 개의 거대한 검은 연꽃잎이 피어올랐다. 이 연꽃잎은 소용돌이치며 가운데로 모여들어 거대한 입처럼 심협을 집어삼켰다.

    심협은 소매 속에서 축지척을 발동했다. 그리고 다음 순간, 그의 모습은 허공에서 사라졌다가 백 장 떨어진 곳에 나타났다.

    하지만 그가 앞을 제대로 보기도 전에 사방에서 검은 그림자가 덮쳐왔다. 어느새 모여든 아홉 개의 연꽃잎이 거대한 구형(球形) 감옥이 되어 그를 가뒀다.

    심협은 눈을 가늘게 뜨더니 곧바로 검을 휘둘렀다.

    헌원신검에서 금색 검망이 번쩍이더니 허공으로 날아가 어두운 장벽을 베자 소름 끼치는 소리가 울려 퍼졌다.

    하지만 이 검의로도 봉쇄를 풀지 못해 금빛이 지나간 뒤에도 어둠에는 아무런 변화가 없었다!

    * * *

    요풍은 흑련 도장이 법칙의 힘으로 심협을 가둔 것을 보고는 얼굴에 화색이 돌았다.

    “자네 말대로 상대하기 까다로운 자로군. 내 전력으로 흑련옥을 시전해야만 묶어둘 수 있으니 서둘러 그들을 처리하고 오게.”

    흑련 도장의 당부에 요풍이 고개를 끄덕이고는 성벽 쪽으로 향했다.

    이 무렵, 복토는 온몸이 황토색 빛무리로 뒤덮여 있었고, 피부는 메마른 대지처럼 갈라진 무늬로 가득했다. 그의 온몸에서 뿜어져 나오는 기운은 바다처럼 방대했다.

    거대한 운석처럼 하늘에서 떨어져 내리는 그의 온몸에서 붉은색 불꽃이 피어오르자 먹구름 아래의 하늘이 붉은색으로 물들었다.

    “애송아, 죽어라!”

    복토가 포효하며 백소천에게로 주먹을 휘둘렀다.

    백소천의 뒤에 선 고화령은 두려운 기운에 얼굴이 잿빛으로 변했다.

    “백 도우, 무리하게 받아치면 안 됩니다. 죽을 수도 있어요!”

    그녀가 다급하게 소리쳤으나, 백소천은 듣지 못한 것처럼 경건하게 손을 모아 합장했다.

    복토가 백 장 정도 거리까지 접근하자 그는 다시 불송을 읊조리더니 갑자기 손을 들어 올렸다.

    이번에는 몸에서 화려한 빛이 번득이더니 그 안에서 보살 법상이 떠올라 그와 마찬가지로 손을 내밀었다.

    오백 나한의 주먹보다도 더 많은 손바닥이 허공에 떠올랐다.

    “천수보살!”

    백소천의 목소리가 범음처럼 허공에 울려 퍼졌다.

    다음 순간, 허공에서 격렬한 폭음이 울려 퍼지더니 웅장한 불문의 힘이 담긴 빼곡한 손바닥들이 복토에게로 쏟아졌다.

    콰콰쾅! 퍼펑!

    폭음과 함께 복토의 몸에서 번득이던 빛들이 점점 어두워졌고, 몸에서 타오르던 불꽃도 점점 꺼지며 떨어지던 운석이 돌덩이로 전락했다.

    펑!

    폭음과 함께 복토의 몸을 감싼 빛도 터졌고, 그는 피투성이가 되어 성벽으로 떨어졌다. 누구도 그의 생사를 알 수 없었다.

    성벽 위에 선 백소천의 몸에서도 금빛이 점점 줄어들었고, 온몸의 핏빛이 사라졌다.

    그는 모든 기력을 쏟아부은 것처럼 비틀거리며 두 걸음 정도 물러나다가 그대로 쓰러져 한참이나 몸을 일으키지 못했다.

    고화령이 달려가 부축하려는 순간, 요풍이 육화명을 공격해왔다.

    요풍이 묵옥해골 마봉을 성벽을 향해 크게 휘두르자 해골의 두 눈에서 갑자기 짙은 사기를 휘감은 혈광이 곧장 육화명에게로 날아갔다.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고화령은 재빨리 몸을 날려 육화명의 앞을 막아서고는 양손을 결인하여 보라색 옥패를 발동했다. 옥패는 짙은 보랏빛을 뿜어내 보호 장벽을 만들어냈다.

    하지만 장벽이 미처 안정되기도 전에 두 줄기 혈광이 빠르게 다가왔다.

    쾅! 쾅!

    두 번의 폭음과 함께 보라색 장벽은 부서졌고, 옥패도 가루가 되었다.

    고화령도 충격을 받은 듯, 비틀거렸고 입에서는 피를 토해냈다.

    “이 마족 잡놈아! 나부터 상대해야 할 게다!”

    쓰러져 있던 백소천은 간신히 몸을 일으켰지만, 기력이 다해 일어서지 못하고 주저앉으며 외쳐댔다.

    “땡중아, 서두르지 마라. 어차피 너희는 다 죽을 테니 차례를 기다려라.”

    요풍은 백소천을 조롱하고는 다시 육화명에게로 향했다. 한데 뜻밖에도 저 ‘땡중’이 그 말에 노발대발하며 더욱 심하게 조롱을 해왔다.

    “허! 겁나냐? 하긴, 마족 잡놈에 불과하니 이 부처님이 두렵기도 하겠지!”

    요풍은 이 조롱에 일순 화가 치밀었지만, 이내 무시하기로 했다. 저자는 비술을 통해 잠시 태을 중기의 실력을 사용했으나 지금은 후유증에 시달리고 있으니 신경 쓸 필요가 없었다. 반면 태을 경지로 들어선 육화명은 어떻게든 제거해야 할 대상이었다!

    요풍이 육화명을 해하려는 것을 본 고화령은 부상도 아랑곳하지 않고 요풍에게 달려들었다.

    요풍은 그녀를 안중에도 두지 않고 손을 휘둘러 10여 개의 반투명한 검은빛을 쏘아 보냈다. 검은 빛이 고화령의 이마를 찌르고 뒤로 날아갔다.

    이어 처량한 비명이 울려 퍼졌다.

    고화령은 경련을 일으키며 바닥을 굴렀다. 신혼에 10여 개의 작은 구멍이 나면서 신혼이 찢어지는 고통은 도저히 참기 힘들었다.

    요풍은 이 광경을 보고는 씩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이것이 바로 심검이 신혼을 찔렀을 때 상대가 보여야 할 반응이다. 한데 심협은……?

    ‘그놈은 사람이라고 볼 수 없지!’

    요풍은 고통에 몸부림치는 고화령을 지나 육화명에게 다가갔다.

    고화령은 무력하게 손을 뻗어 그의 옷자락이라도 잡으려 했지만, 신혼이 중상을 입은 상태라 시선이 흐려지고 초점을 맞출 수 없었다. 그녀의 손은 헛되이 허공만 쥐었다.

    그때, 육화명의 경지가 점점 안정되며 곧 깨어날 기미를 보였다.

    요풍이 눈살을 찌푸리고는 묵옥해골에서 다시 혈광을 뿜어내 그의 머리를 내려치려 했다.

    그 순간, 성벽 위의 허공에서 요동치던 금색 뇌지에서 갑자기 천지를 뒤흔드는 굉음이 울려 퍼졌다.

    꽈르릉!

    천지를 뒤흔드는 폭음과 함께 굵은 금색 뇌전이 뇌지를 관통하여 아래로 떨어졌는데, 그 속도는 놀라울 정도였다.

    육화명이 목숨이 경각에 달린 그때, 갑자기 이변이 일어났다.

    천지에 방대하기 그지없는 기운이 갑자기 생겨나더니 단번에 태을 후기와 절정 두 단계를 뛰어넘어 곧장 전설 속의 천존 경지에 도달했다.

    “이, 이건……?”

    요풍은 육화명을 공격하던 것도 잊고 뒤를 돌아봤다.

    어렴풋이 검명이 들려오더니 한 줄기 금빛이 허공에 떠 있는 흑련옥에서 뿜어져 나오는 것이 그의 눈에 들어왔다.

    매우 가느다란 광망이 순식간에 강해지더니 태양처럼 떠올라 모든 어둠을 소멸하고 찢어버렸다.

    콰쾅!

    굉음이 울려 퍼졌다.

    흑련옥이 폭음과 함께 부서지면서 수많은 검은 빛과 마기가 동시에 사라졌고, 흑련 도장은 비명을 지르며 허공으로 떨어졌다.

    빠르게 퍼져 나간 금색 광선은 순식간에 모든 것을 휩쓸었고, 하늘에서 떨어지는 뇌겁조차 예외 없이 소리와 함께 폭발했다.

    “이게 도대체……?”

    요풍은 흑련옥에서 빠져나오는 존재를 보고는 믿을 수 없다는 듯 중얼거렸다.

    심협은 한 손에 검을, 다른 손에는 그 내부는 둥글고 바깥은 네모난 석반(石盤)을 들고 있었다. 석반 위에 새겨진 삼산오악(三山五岳), 오호사해(五湖四海) 그리고 만천성하(滿天星河)에서 짙은 홍황(洪荒)의 기운이 뿜어져 나왔다.

    “홍황천기반(洪荒天機盤)!”

    요풍은 한눈에 그 석반을 알아봤다.

    이것은 심협이 장안성을 떠날 때 국사 원천강이 그에게 준 보물이었다.

    홍황천기반의 은하수와 산악들이 일제히 번득이기 시작하자 그 위는 마치 하나의 천지와 같았고, 그 안에서 강렬한 기운이 뿜어져 나와 심협의 기운을 뒤덮더니 삼재 천명이 알아채지 못하게 막아주었다.

    심협은 요풍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그의 두 눈에 담긴 살의가 실제가 되어 뿜어져 나왔다.

    요풍은 그 눈과 마주하는 순간, 혼이 날아갈 것 같은 느낌이 들었고, 본능적으로 도망치려 했다.

    “어딜 가느냐!”

    심협이 크게 외쳤다.

    기운이 태을 절정으로 돌파한 그의 온몸에서 기운이 모여들고 법력이 솟구쳐 헌원신검에 흘러 들어갔다. 이 신검은 검신이 휘황찬란하게 빛나면서 실제와 같은 금색 광망과 함께 강력하기 그지없는 위압감을 뿜어냈다.

    “죽어라!”

    심협은 짧게 내뱉으며 신검을 요풍에게로 휘둘렀다.

    요풍은 벌써 천 장 밖까지 도망쳤으나, 헌원신검에서 뿜어져 나온 그 금빛은 순식간에 쫓아가 그를 뒤덮었다.

    이 광경을 본 심협은 후련함을 느꼈다.

    한데 그가 헌원신검을 거두고 기운을 거두어 다시 경지를 억누르려는 순간, 갑자기 머리 위는 차가워지고 발아래서는 뜨거운 느낌이 전해졌다.

    표정이 돌변하여 올려다보니 하늘은 이미 칠흑처럼 변해 있었고, 육화명이 몰고 온 금색 뇌지는 백 배나 커져 있었다.

    “이런, 이젠 피할 길이 없겠군.”

    심협은 한숨을 내쉬며 쓰게 웃었다.

    이때, 그의 식해에서 갑자기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흐흐흐, 때가 됐구나. 이건 숙명이니 도망가지 못한다.”

    심마가 나타난 것이다.

    심협은 그를 무시하고는 발밑에서 점점 강렬해지는 뜨거움을 느끼며 어떻게 해야 할지 생각에 잠겼다.

    “헛수고하지 마라. 삼재는 숙명이자 천명이다. 네가 어떻게 거역하겠다는 것이냐? 물론 살아남을 방법이 있긴 하다만.”

    심마가 계속해 그를 현혹하려 했으나, 심협은 그의 말을 무시하고는 바로 부주진신법을 운공하여 식해를 제압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이 법은 심마에게는 효과가 없어서, 그의 목소리는 계속 들려왔다.

    “네가 식해를 양보해 내가 대신 네 신혼을 차지하고 몸을 다스리게 해준다면 삼재를 피하는 방법을 알려주마. 그러면 너는…… 아니, 우리는 평온하게 천존의 경지에 도달할 것이야. 그때가 되면 삼재가 다시 강림해도 우리를 어쩌지 못할걸.”

    “네가 삼재를 속이고 천명을 속일 수 있다고?”

    “천명은 천심에 감응할 뿐이니 자신을 속일 수 있다면 하늘도 속일 수 있지. 물론 너는 못 하겠지만, 나는 할 수 있다. 어찌할 테냐?”

    심마는 계속해서 현혹하는 말을 이어갔다.

    “사람이 자기 자신마저 속인다면 정말로 천벌을 받을 게다.”

    심협은 차갑게 비웃고는 심마를 완전히 무시한 채, 홍황천기반으로 자신의 기운을 가릴 수 있는지 시도해보려 했다. 그러나 이내 포기했다.

    “심협, 너한테는 산하사직도가 있지 않더냐? 그 그림 속에는 자체적인 천지가 있으니 거기로 피하면 조금은 버틸 수 있을지도 모른다.”

    이때, 갑자기 화령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 말에 심협이 눈을 반짝이더니 바로 손을 휘둘러 산하사직도를 허공에 펼쳤고, 서둘러 그림 속으로 뛰어들었다.

    이내 심협의 몸이 그림 속의 오래된 나무 아래 나타났다. 그는 머리 위의 찬 바람과 발아래의 뜨거움이 사라졌음을 알아챘다.

    “효과가 있군. 정말로 효과가 있어!”

    심협은 크게 기뻐했다. 하지만 곧 있는 듯 없는 듯한 기운이 그와 연결되어 그림 밖의 허공으로 이어지는 게 느껴졌다.

    “헛수고하지 마라. 잠깐은 피할 수 있어도 평생을 피할 수는 없다. 게다가 너의 삼재 천명은 이미 형성되었으니 널 찾는 것은 시간문제다. 그때가 되면 이 선천의 보물까지도 파괴될 것이다. 하하하!”

    심마의 신랄한 비웃음이 심협의 식해에 울려 퍼졌다.

    “비웃는 걸 참 좋아하는 놈이로군. 평생 피할 수 없다는 것쯤은 나도 알고 있다. 어쨌든, 그전에 네놈부터 제거해야겠구나.”

    심협은 차갑게 비웃더니 가부좌를 틀었다.

    그가 이곳으로 피한 것은 그저 시간을 벌겠다는 속셈이었을 뿐이다. 사실 그는 이미 삼재에 정면으로 대항하기로 마음먹은 터였다. 다만 그전에 심마라는 화근을 반드시 제거할 생각이었다.

    “하하하! 날 제거하겠다고? 네 심마가 얼마나 강력한지 잘 모르는 모양이구나?”

    심마의 웃음소리가 천둥처럼 심협의 심호(心湖) 천지에 울려 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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