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대몽주-1166화 (1,166/1,214)
  • 1166화. 화과산 도륙

    곧 전장의 소음이 또렷해졌고, 하늘과 땅에서 서로 죽고 죽이는 광경과 포효가 터져 나왔다.

    수를 헤아릴 수 없는 화과산의 요괴들이 보였는데, 여러 원숭이 요괴들뿐만 아니라 각종 요물들이 성안의 마족들과 뒤엉켜 치열하게 싸우고 있었다.

    저 멀리, 심협은 오래국 반대쪽 성벽을 바라봤다. 그곳에는 세 사람이 싸우고 있었다. 두 마족이 연합하여 싸우는 것은 몸에 갑옷을 걸치고 겉에 가사를 걸친 손오공이었다.

    그중 하얀 도포를 입은 키가 큰 사내는 하얀색 갈고리발톱 모양의 무기를 들고 있었고, 다른 하나는 기다란 뼈 사슬을 손오공을 향해 내던졌다. 손오공은 이를 여의금고봉으로 가볍게 막아냈다.

    하지만 손오공을 스쳐 지나간 하얀색 갈고리발톱이 한 바퀴 돌아서 그의 몸을 휘감으려 했다.

    이미 대비하고 있던 손오공이 곤봉을 돌려 다시 공격하려는데, 그의 앞에 갑자기 누군가 나타나 목숨 아까운 줄 모르고 곧장 달려들었다.

    송문고검(松紋古劍)을 든 그자는 손오공의 가슴을 향해 곧장 찔러왔다.

    손오공은 어쩔 수 없이 하얀색 갈고리발톱을 포기하고 그자를 먼저 상대해야 했다.

    그의 손에서 금빛이 뿜어져 나오더니 곧장 고검의 칼끝을 잡았다.

    “이 망할 놈아, 네가 심협의 친구가 아니었다면 진즉 네 머리를 박살 냈을 것이다! 어서 썩 꺼지지 못할까?”

    손오공이 벌컥 화를 냈다.

    하지만 상대는 신경 쓰지 않고 온몸에서 마기를 순간적으로 폭발시키더니 장검에서 떨리는 소리를 내며 곧장 손오공의 손을 떨쳐내고 가슴을 찔러 들어갔다.

    손오공도 화가 치밀었는지 서둘러 몸을 옆으로 피하는 동시에 기세를 몰아 발끝으로 그의 명치를 걷어찼다.

    쾅!

    사내는 포탄처럼 바닥으로 곤두박질쳤다.

    그사이에 하얀색 갈고리발톱이 손오공의 몸을 휘감아 그 자리에 단단히 묶었고, 날카로운 발톱이 겨드랑이 아래를 돌아 손오공의 가슴에 박혔다.

    성벽 위, 화과산의 요괴들은 자신의 대왕이 사로잡히는 것을 보자 일제히 그쪽으로 몰려갔다. 이들이 길을 막아서는 마족 수사를 전부 무참히 죽이면서 혼란이 더 심해졌다.

    한편, 심협은 성벽에서 떨어진, 송무고검을 든 사내를 보고 있었다. 처음 본 순간부터 그가 바로 육화명임을 알아볼 수 있었다.

    그는 고화령, 백소천과 함께 아무도 모르게 대열을 이탈해 그쪽으로 이동했다.

    하지만 그들이 도착하기도 전에 육화명이 벌떡 일어서더니, 지칠 줄도, 두려움도 모르는 듯 다시 성벽으로 날아갔다.

    이 광경에 세 사람은 할 말을 잃었다.

    “심협, 더는 보고만 있을 수는 없네. 여기 전장에서 태을 경지의 마족은 성벽 위의 저자뿐인데 강해 봐야 태을 중기 같으니 상대할 수 있을 게야. 그러니 우리도 더는 숨어 있지 말고 바로 육화명을 구하자고!”

    백소천의 제안에 고화령은 말없이 다급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여기까지 잠복해 오는 내내 불안해 어쩔 줄을 몰랐던 그녀의 눈에는 이제 희망이 엿보였다.

    “마족이 정말로 화과산을 상대하기 위해 온 것이라면 태을 중기 수사 한 명만 보냈을 리가 없습니다.”

    전장을 쭉 훑어본 심협은 왠지 모를 불안감에 고개를 저었다.

    “그 말은 다른 누군가 매복해 있다는 건가?”

    “정확히는 모르겠지만, 분명 이상하다는 느낌이 듭니다.”

    심협도 확신할 수는 없었다. 정확히 뭐가 이상한지는 자신도 몰랐기 때문이다. 다만 이렇게 쉽게 끝날 리가 없다는 생각이 계속 들었다.

    그때, 쾅 하는 폭음이 성벽 쪽에서 들려왔다. 거대한 금빛 원숭이가 성벽에서 일어나더니 한 발로 성벽을 짓밟았고, 다른 발로는 오직 공격 일변도인 육화명을 발로 차서 날려버렸다.

    “저저…….”

    “지금 구하지 않으면 손오공에게 맞아 죽을 거예요.”

    “좋습니다, 우선 육형부터 구하죠.”

    심협이 말을 마치고는 자옥(紫玉) 옥갑을 고화령에게 건넸다.

    “이건 출발하기 전에 정 국공이 준 물건이잖아요?”

    고화령이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물었다.

    “여기 안에는 구령태심(九靈胎心)이 들어 있습니다. 육형이 태을 경지로 돌파하는 것을 도와줄 때 쓰려던 보물인데, 이 보물이라면 그가 마도에 아무리 깊이 빠져 있어도 되돌릴 수 있을 거라고 정 국공이 말씀하셨습니다.”

    “이렇게 중요한 물건은 심 도우가 가지고 있는 게 더 안전할 거예요.”

    “아뇨, 육형을 구하려면 시간이 걸리니 제가 두 사람을 보호하겠습니다. 육형을 구하는 건 고 도우가 해주세요.”

    “알겠습니다.”

    고화령이 진중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이며 보물을 받았다.

    세 사람은 완전히 위장을 벗어버리고 몸을 날려 곧장 성벽으로 날아올랐다. 그리고는 마족들이 미처 반응하기도 전에 번개처럼 성벽으로 날아오르더니 손오공과 싸우고 있는 크고 마른 마족에게 비취색 도를 강하게 휘둘렀다.

    이 마족은 손오공을 막는 것만으로도 벅찼기에 심협의 기습을 피할 겨를이 없었다. 설령 손오공을 견제하지 않고 있더라도 심협의 공격을 막아낼 수는 없었을 것이다.

    한데 그때, 검은색 광망이 하늘에서 내려와 이 마족의 앞을 막았다.

    심협의 명홍도가 이 검은 빛을 베었는데, 절반 정도 파고든 후에는 강력한 힘에 막혔다.

    자세히 보니 그의 도를 막은 것은 매우 가느다란 검은색 실들이었다.

    실을 따라 위를 올려다보니 구름 위에 음양어 무늬가 수놓인 검은색 도포를 쓴 환갑의 노인이 인상을 찌푸린 채 그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이 노도는 검은색 나무 손잡이로 된 불진을 쥐고 있었는데, 불진의 가느다란 실들이 폭포처럼 밑으로 쏟아졌다. 심협의 칼을 막은 것은 바로 그 실들이었다.

    “복생무량천존(福生無量天尊).”

    노도가 가볍게 읊조리자 허공에 또 다른 두 마족이 나타났다. 하나는 검은색 도포로 몸과 얼굴을 가리고 있어서 잘 보이지 않았지만, 다른 한 명은 심협도 알고 있는 자였다. 바로 요풍이었다.

    “손오공을 치러 왔다가 널 만날 줄이야. 심협, 오늘은 운이 없구나!”

    구름에 선 요풍이 조롱 섞인 말투로 말했다.

    심협은 요풍이 동해지연에서 봤을 때와는 크게 다르다는 것을 느꼈다. 몸의 기운이 강해진 것은 말할 것도 없고 기질에도 많은 변화가 일어나 더욱 난폭해 보였다.

    다른 두 마족의 기운은 심지어 그보다 더 강해서 태을 중기 이상이었다.

    “누가 운이 나쁜 건지는 두고 봐야 알겠지.”

    심협이 차갑게 웃으며 대꾸했다.

    “심협, 자네는 생각이 깊다고 해야 할지 아니면 불길한 말을 잘한다고 해야 할지 모르겠어. 저런 괴물들이 갑자기 셋이나 튀어나오다니 말이야. 태을 경지가 언제부터 이렇게 흔해진 건가?”

    백소천이 어이가 없다는 듯이 말했다.

    “저 셋은 제가 어떻게 막아볼 테니 신경 쓰지 말고 전력을 다해 육형을 구해주세요.”

    심협이 전음으로 말하고는 흑포(黑袍) 노도의 불진에서 도를 뽑아냈다.

    흑포 노도가 손목을 흔들자 검은색 불진의 실도 빠르게 줄어들어 원래 모습으로 돌아왔는데, 손상을 피하지 못해 적지 않은 털이 빠진 상태였다.

    “흑련 도우, 복토(伏土) 도우, 저 녀석은 벌써 몇 번이고 우리 마족의 대업을 방해했습니다. 저자를 제일 먼저 죽여야 합니다.”

    요풍이 말했다.

    “허나 우리 임무는 손오공을 죽이고 화과산을 도륙하는 것일세.”

    복토라 불린 검은 도포의 마족이 낮고 쉰 목소리로 대꾸했다.

    “자네도 알다시피 동승신주 점령의 관건은 화과산을 멸하는 것에 달려 있네. 치우 대인의 대업과 관련된 일을 사사로운 감정으로 망쳐서는 안 돼.”

    흑련 도장(道長)도 말했다.

    “저놈에게 우리가 계속 찾던 원골 마기가 있습니다.”

    “뭐라?”

    요풍의 대답에 흑련 도장이 깜짝 놀랐다.

    “두 분은 오랫동안 폐관하시느라 모르셨겠지만, 저놈이 우리 마족에게 끼치는 위험은 손오공의 화과산보다 더 큽니다. 그러니 반드시 저놈을 먼저 제거해야 합니다.”

    “저자에게 원골 마기가 있다면 말이 달라지지.”

    “동감이다.”

    흑련 도장의 말에 복토도 고개를 끄덕였다.

    한편, 그들이 상의하는 동안, 심협은 전장을 관찰했다. 손오공은 크고 마른 마족 수사에게 완전히 묶여 있었고, 고화령과 백소천은 육화명을 성벽으로 몰아세우고 있었다. 하지만 육화명은 두 사람을 전혀 알아보지 못하고 그들을 공격했다.

    “우리 앞에서 한눈을 팔다니, 명을 재촉하는구나!”

    우렁차게 외치며 먼저 공격해온 것은 요풍이었다. 그의 소매가 휘리릭 하면서 커지더니 그 안에서 건곤(乾坤)이 뒤덮어왔다.

    심협은 갑자기 눈앞이 깜깜해지면서 주위가 어두워졌고, 보이지도, 들리지도 않게 됐다.

    성벽 위. 월백 승포를 입은 백소천은 현재 분노한 금강처럼 바람을 맞으며 우뚝 서 있었다.

    바람도 없이 저절로 부풀어 오른 옷 사이로 드러난 상반신은 암금빛을 띠었다. 어떤 법보나 무기도 없이 오직 한 쌍의 철권에서 뿜어져 나온 빼곡한 주먹 허상에 성벽 위의 마물들은 간담이 서늘해져 접근조차 하지 못했다.

    심지어 그가 같은 편임을 아는 화과산 요족들도 두려운 마음에 감히 다가오지 못할 정도였다.

    순식간에 성벽은 공터처럼 깔끔하게 정리됐다.

    마족의 태을 강자들은 이쪽을 신경 쓸 겨를이 없었기에 고화령에게 공간을 내줬지만, 마화된 육화명은 가족도 알아보지 못하는 상태라서 인정사정없이 공격했으니, 그녀로서는 버티기도 쉽지 않았다.

    고화령은 하얀색 뼈 사슬을 민첩한 뱀처럼 휘둘러 육화명의 장검 공세를 막고는 온몸의 법력을 운공하여 대치했다.

    그녀는 시간이 촉박하다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상대를 제압하기는커녕 깨우지도 못하고 있으니 점점 더 조급해졌다.

    이곳은 강적들이 둘러싸고 있어서 전장의 형세가 언제 바뀔지 몰랐다. 특히, 심협이 받는 압박감은 상당하니 시간을 끌었다가는 어떤 일이 일어날지 알 수 없었다.

    이때, 이미 마족을 쓸어버린 백소천이 갑자기 하늘에서 내려와 육화명의 뒤에 섰다. 그러더니 곧장 양손을 육화명의 겨드랑이 사이로 내밀어 뒤로 잡아당겨서는 두 어깨를 단단히 묶고는 외쳤다.

    “고 도우! 어서 육형을 깨울 방법을 생각해 보시오!”

    “우우우…….”

    육화명은 험악한 표정으로 알 수 없는 소리를 질러댔다. 뒤이어 그의 몸에서 뿜어져 나온 마기와 백소천의 몸에서 뿜어져 나오는 불광이 충돌하자 치익 하며 하얀 연기가 솟아올랐다.

    고화령이 서둘러 다가가 육화명의 이마에 손을 대고 빛을 뿜어내 그를 진정시키려 했다. 그러나 그의 몸부림을 막기에는 역부족이었다.

    쫙!

    다급하진 그녀가 육화명의 뺨을 세게 때리며 소리쳤다.

    “육화명, 정신 좀 차려!”

    이 외침에 두 눈이 혼탁하던 육화명의 표정이 갑자기 굳어지더니 몸부림치던 동작도 눈에 띄게 작아졌다.

    “이거 쓸모가 있는데? 몇 대 더 때려요.”

    이를 본 백소천이 기뻐하며 소리쳤다.

    고화령은 당연히 그의 말대로 하지 않고 손으로 육화명의 이마에 있는 상처를 살짝 어루만지고는 부드러운 눈으로 바라보았다. 마기에 물든 육화명을 보고 있자니 가슴이 쓰려 왔다.

    곧이어 그녀는 손으로 육화명의 뺨을 잡고는 강제로 입을 벌렸다. 그리고 남은 손을 뒤집자 자색 옥합이 나타났다. 옥합의 뚜껑이 열리자 안에서 갓난아기의 주먹만 하고 심장같이 생긴 자색 정석이 드러났다.

    자세히 보니 정석은 살아 있는 것처럼 줄었다 커졌다 하며 꿈틀거렸고, 안에는 금색의 광선(光線)이 흐르고 있었다.

    이것은 바로 구령태심이었다.

    구령태심에서 뿜어져 나오는 정광에서는 매우 짙은 선천 영기가 느껴졌다.

    주위의 마족들은 이 짙고 순수한 선천 영기에 이끌려 백소천을 향한 두려움도 잊고 일제히 몰려왔다.

    눈빛이 굳어진 고화령은 들어갈 수 있는지도 상관하지 않고 구령태심을 육화명의 입에 쑤셔 넣었다. 뒤이어 육화명의 가슴 언저리를 가볍게 두드리자 그는 자기도 모르게 꿀꺽 삼켰다. 몸속으로 들어간 정석은 영성이 있는 것처럼 곧장 뱃속으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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