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대몽주-1163화 (1,163/1,214)
  • 1163화. 천궁의 초청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겁니까?”

    심협은 식해의 신혼의 힘을 뿜어내 이 요족들을 안정시키며 물었다.

    새 요괴는 목이 마른 듯 침을 꿀꺽 삼키고는 다시 입을 열었다.

    “자세한 것은 저도 잘 모릅니다. 처음에는 그저 북구노주 북부에 있는 망량산맥(魍魎山脈)에 요물을 잡아먹는 마물이 나타난다는 소식뿐이었습니다. 그래서 처음에는 모두 남부로 도망쳤는데 나중에는 곳곳에서 마물들이 나타나니 어쩔 수 없이 모두 고향인 북구노주를 떠나게 된 겁니다.”

    “요물을 잡아먹는 마물?”

    심협이 혼잣말처럼 물었다.

    “아마도 마족 놈들의 짓인 듯하오.”

    “마족은 근래에 원골 마기를 찾느라 바쁘지 않았습니까? 한데 왜 북구노주에서 소란을 피우는 걸까요?”

    오홍의 추측에 심협이 이해하기 힘들다는 듯 되물었다.

    “마족 놈들은 항상 은밀하게 움직이는데 이번에는 확실히 대놓고 움직였군.”

    오홍도 북구노주의 변화가 심상치 않음을 느꼈다.

    “그 마물들은 어떤 경지였소?”

    심협이 묻자 새 요괴가 잠시 기억을 더듬으며 답했다.

    “제가 본 마물은 인간족과 비슷하지만 피부가 시커맸고, 등에는 박쥐 날개 같은 게 있었습니다. 경지는 모두가 달랐는데, 어쨌든 죄다 피에 굶주려 있는 것 같았습니다.”

    “진선기나 태을기 마물을 만난 적이 있느냐?”

    오홍이 한걸음 다가서며 물었다.

    “그런 놈들을 만났다면 저희가 지금까지 살아 있겠습니까?”

    새 요물이 어이가 없다는 듯 되물었다.

    “심형, 어떻게 생각하시오?”

    “틀림없이 마족과 관련이 있소. 한데 평소 은밀하게 움직이던 것과 비교하면 어떤 음모가 있는 게 틀림없소.”

    “아무래도 북구노주로 사람을 보내 알아봐야겠소.”

    “지금 동해는 혼란스럽고 일손이 부족하지 않습니까? 제가 바로 장안성으로 가서 이 일을 국사께 보고하겠습니다. 정 안 되면 나중에 제가 직접 북구노주로 다녀오지오.”

    심협이 그렇게 말을 맺자 새 요괴가 말했다.

    “선배님들, 대인님들. 제가 아는 사실을 모두 말했으니 이제 풀어주시면 안 되겠습니까?”

    “넘치는 게 부족한 것보다는 나으니 힘들게 요족들을 잡아들이기보다는 차라리 방을 붙여 그들을 휘하로 받아들이는 게 어떻겠습니까?”

    심협이 새 요괴를 바라보다가 오홍에게 말했다.

    그 말에 오홍도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새 요괴가 두 사람의 대화를 듣더니 바로 손을 들며 소리쳤다.

    “저, 저는 바로 가입하겠습니다!

    감옥 안의 다른 요족들도 조심스레 다가왔는데, 조금 전까지와 달리 표정에 생기가 돌았고 눈빛에서도 희망이 보였다.

    지금 이들은 전란을 피해 도망친 난민과도 같아서 안식처를 찾기가 힘들었는데, 동해 용궁이라는 큰 배에 오를 수만 있다면 이보다 좋은 것이 없었다.

    * * *

    다음 날, 심협은 동해 용궁을 벗어나 장안성으로 향했다.

    불과 하루 만에 그는 구름에서 내려와 장안성 앞에 섰다.

    장안성은 일전의 호란에서 다시 복구됐지만, 확실히 예전보다는 생기가 없었다. 당시 성안의 백성들도 많이 죽었고 피해가 심각해, 그 사건 이후로 수많은 백성이 성 밖으로 이주한 것이다.

    성으로 들어간 뒤 심협은 곧장 대당 관부로 향하여 원천강을 만났다.

    “이상하군. 동해 쪽의 소식을 받은 뒤에 내가 점을 쳤는데, 점괘는 자네가 가까운 시일 내에 돌아오지 않을 거라 했단 말이지.”

    원천강이 약간 의외라는 듯 말했다.

    심협도 의아했다. 국사는 왜 자신이 언제 돌아오는지를 점쳤단 말인가.

    하지만 그가 묻기도 전에 원천강이 기이한 표정으로 그를 빤히 바라봤다.

    “국사님, 왜 그러십니까?”

    심협이 어색한 목소리로 물었다.

    “심 소우, 혹시 삼재의 겁을 겪었는가?”

    “국사께서 그걸 어찌 아십니까?”

    “그랬군. 삼재의 천수가 간섭해서 내 점괘가 안 맞은 거였어!”

    원천강은 궁금증이 풀리자 그제야 환하게 웃었다.

    심협은 잠시 멍해 있다가 퍼뜩 정신을 차려 동해지연의 일과 북구노주의 소식을 원천강에게 전했다.

    “동해지연의 일은 우리 쪽도 정보를 얻어서 어느 정도 알고 있네. 북구노주의 일은…… 사실 동해지연 일의 연장선이라고 할 수 있지.”

    “북구노주의 일이 원골 마기와 관련이 있다는 말씀입니까?”

    “그렇다네. 마족은 북구노주의 망량산맥에 만령혈진을 설치하여 원골 마기로 치우를 부활시켰네.”

    원천강은 담담한 말투로 말했지만, 심협은 마음이 무거워졌다.

    “원골 마기를 다 모으지 않아도 치우를 부활시킬 수 있지 않을까 의심했는데, 안타깝게도 그 생각이 맞았군요.”

    “확실히 우리가 착각했지. 다만, 원골 마기를 다 모으지 못한 상황에서 부활했으니 치우의 힘이 온전히 회복되지는 않았을 걸세.”

    심협은 갑자기 소름이 끼쳐왔다. 머릿속에서는 바로 치우가 천하를 삼킨 천 년 뒤 인간 세상의 광경이 떠올랐다. 산과 강이 부서지고 피바람이 몰아치는 세상……. 절대로 그런 일이 일어나서는 안 된다!

    “마족의 동향은 지금 어떻습니까?”

    심협은 진정하려고 애를 쓰며 물었다.

    “북구노주 쪽에서 보내온 소식에 의하면, 마족은 지금 대주 안에 웅크린 채 바깥으로 세력을 확장하지 않고 있네. 수많은 요족이 도망치고 있는 것은 아무래도 치우가 부활한 지 얼마 되지 않아서 대량의 생령과 피를 삼켜 보충해야 하기 때문인 듯해.”

    “치우가 모든 힘을 회복하지 못했다면 왜 종문들이 연합하여 쳐들어가지 않는 겁니까?”

    심협이 의아한 듯 물었다.

    “관부와 천궁이 사람을 보내 알아보고 있지만, 아직은 정보가 너무나 적다네. 게다가 만령혈진은 마족의 비밀 법진인지라 아직 파훼법을 찾지 못했지. 섣불리 대군을 끌고 갔다가는 자칫하면 치우의 힘을 보충해주는 재료가 되어버릴지도 모르네. 그래서 경거망동할 수가 없어.”

    “함께 지혜를 모아 파훼법을 찾아야 할 때군요.”

    원천강의 설명에 심협이 무거운 목소리로 대꾸했다.

    “천궁에서 초청이 왔네. 7일 뒤에 33 중천 밖의 능소 광장에서 회담을 열기로 했지. 모든 대종문의 수령들이 모여서 함께 이 파국을 헤쳐나갈 방법을 논의할 걸세. 자네도 나와 함께 가지.”

    원천강의 말에 심협이 답하려는 순간, 갑자기 시끄러운 소리가 밖에서 들려왔다.

    그쪽을 돌아보니 우람한 체격의 노인이 들어왔다. 국공 정교금이었다.

    심협은 놀란 눈으로 그를 멍하니 바라봤다. 정교금의 육신은 정교하게 만든 언갑이었던 것이다.

    “이 녀석, 마침내 돌아왔구나! 하하하!”

    정교금은 호탕한 성격답게 껄껄 웃으며 반겼다. 그러다가 심협이 자신의 몸을 멍하니 보고 있는 것을 눈치채고는 가슴을 쿵쿵 치며 말했다.

    “아, 이거 말인가? 소부자 성주께서 직접 만들어 주신 건데, 원래 몸보다 더 튼튼하고 실용적이더구나. 하하하!”

    “국공을 뵙습니다.”

    심협이 뒤늦게 포권하며 예를 올렸다.

    “동해에서 폐관했다고 들었는데, 돌파는 했는가?”

    정교금이 물었다.

    “이틀 전에 천존 경지로 돌파를 시도했는데 심마에게 방해를 받은 데다가 삼재의 겁수(劫數)에 막혀서 결국 실패했습니다.”

    심협은 감추지 않고 말했다. 두 선배에게서 경험과 조언을 얻고 싶은 마음도 있었기 때문이다.

    “태을로 들어설 때 교묘한 지살변화의 방법으로 천겁을 속여 삼재를 피했으니 천존 경지에서의 삼재는 더욱 강렬하고 치명적이 된 것이군.”

    “국사님, 혹시 피할 방법이 없겠습니까?”

    심협이 물었다.

    “천명 겁수인 삼재는 범인의 몸으로 대자재(大自在)를 초월하는 마지막 관문이니 피할 방법이 없네. 육체만이 아니라 심겁(心劫), 심지어 심마까지 돌파해야 하지. 이는 피한다고 해결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닐세.”

    원천강이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제 심마의 겁은 유난히 강력했습니다. 제가 천존의 경지로 들어서는 것을 내버려 두지 않고 실패하도록 방해할 것입니다.”

    심협이 쓴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마음이 무너지면 두 가지 가능성이 있네. 하나는 심마가 대신하여 심신이 전부 사라져 마물로 전락하거나, 심마에 얽혀 전심(全心)으로 삼재에 대응하지 못해 결국 몸이 죽고 도가 사라지게 되지.”

    정교금이 무거운 목소리로 말했다.

    “국사님, 정말로 방법이 없는 겁니까?”

    “그건 천명(天命)이라 회피할 방법이 없네. 자네가 돌파하고 싶다면 심마를 제압하고 천수를 깨서 천명을 고쳐 쓰는 방법뿐이야.”

    “천명을 고쳐 쓴다?”

    심협이 중얼거렸다.

    “허나 천명은 이미 정해져 있고 삼재는 인간의 범주를 벗어나기를 바라는 자들의 공통적인 천명이니 더더욱 바꿀 수가 없지.”

    “국사님, 그렇다면 어떻게 돌파하라는 것입니까? 국사님은 어떻게 영보로 삼재를 막으신 겁니까?”

    심협은 이야기를 들을수록 이해가 되지 않았다.

    “부처가 살을 베어 매에게 먹이고 몸으로 호랑이를 먹였다는 고사를 들어봤는가? 부처께서 공작에게 잡아먹혔다는 고사는? 옥제가 증도(證道)를 위해 겪은 1750개의 겁 중에 사겁(死劫)이 33개나 있었다는 것을 아는가?”

    원천강은 대답 대신 물었다.

    “겁은 겁이면서도 해결이니 어떻게 해결해야 하겠는가?”

    원천강의 질문에 생각에 잠겨 있던 심협은 마지막 질문을 듣고는 뭔가를 깨달았다. 삼재는 천명이라 바꿀 수 없으니, 부처나 옥제처럼 겁을 겪음으로써 죽음으로 살아가야 한다.

    심협의 눈에 깨달음의 빛이 스쳐 가자 원천강이 웃었다.

    “보아하니 어떻게 해야 할지 이미 깨달은 모양이군. 심 소우, 자네는 역시 지혜가 뛰어나.”

    “국사님의 말씀이 무슨 뜻인지는 알겠습니다. 다만, 국사님께서 천존 경지로 돌파할 때에도 겁으로 인해 몸이 죽었던 것인지 궁금합니다.”

    “겁으로 죽는 것도 당연히 일종의 기만행위라네. 천도를 속이는 것은 너무 위험하고 성공 확률도 낮아. 그저 사지(死地)에 떨어져야 하네. 그러니까, 나도 당시 죽긴 했지만 정말로 죽은 것은 아닌 셈이지.

    원천강이 웃으며 말했다.

    심협은 오히려 더욱 확신이 서지 않았다. 어떻게 해야 죽었다가 살아나고, 죽음으로써 살아간단 말인가?

    “국사님 말씀이 현묘하긴 하지만, 정리하면 이런 거지. 사지로 떨어져 생사의 모호한 사이로 들어가 자네가 이미 죽었음을 삼재 천수가 인정하게 하고, 자네는 일말의 생기를 의지하여 다시 살아와야 한다는 이치라네.”

    정교금이 웃으며 말했다.

    심협은 그 거칠던 정교금이 이렇게 깔끔하게 정리해 이해시켜 주자 내심 놀랐다.

    “두 선배님의 가르침에 감사드립니다.”

    한데 어째서인지 원천강이 소매 속에서 손을 꼽아보더니 내려놓고는 속으로 한탄했다.

    ‘아직은 때가 아니구나.’

    * * *

    심협은 관부에 남아 원천강과 함께 천궁의 회의에 참여할 준비를 했다.

    한데 하루가 지났을 때, 밖에서 관리가 헐레벌떡 달려와 정 국공이 급히 찾는다고 했다.

    심협은 지체하지 않고 바로 달려갔다.

    내당으로 들어가보니 정교금과 원천강이 앉아 있었다. 옆에는 적지 않은 관부의 제자들이 서 있었다.

    빙 둘러선 사람들 사이로 하얀 치마가 얼핏 보였다.

    심협이 도착한 것을 보자 사람들이 조금씩 자리를 비켜 주었다. 그제야 그는 자세히 볼 수 있었는데, 의자에 하얀 치마를 입은 여인이 앉아 있었다. 그녀는 고화령이었다.

    한데 오랜만에 만난 그녀는 이전의 고운 모습이 아니라 말할 수 없이 창백한 낯빛에 눈가와 이마에는 주름이 가득했으며, 머리카락은 회백색으로 물들어 수십 년은 늙어 보였다.

    “고 도우, 이게 어찌 된 겁니까? 어쩌다 기혈이 이렇게 상한 게요?”

    심협이 깜짝 놀라 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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