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62화. 도망
심마는 흉악하고 방자하게 웃었다. 그가 완전히 기어 올라가게 되면 진정한 화외천마(化外天魔)가 되어 심협의 신혼을 대신해 이 몸을 차지하게 되고, 그리되면 천존 경지의 천마가 될 가능성이 컸다.
“그래, 바로 이거야! 너의 두려움을 받아들이고 너의 두려움을 인정해! 그리고 두려움에 삼켜지는 거야!”
심마의 목소리는 고혹적이었다. 그의 손은 벌써 심협의 가슴 위치까지 올라와 있었다.
한데 그때, 심협의 식해에서 갑자기 영광이 번득이더니 어둠 속에서 핏빛 광망이 떠오르기 시작했다.
심마는 이상함을 알아차리고는 멈춰 서서 경계하며 주위를 둘러봤다.
그 순간, 식해 주위의 어둠에서 갑자기 암홍색 광망이 뿜어져 나왔다. 그 안에서는 심마가 가장 혐오하는 기운이 뿜어져 나오고 있는 게 느껴졌다.
“불문의 진압신마지법(鎭壓神魔之法)?”
심마는 경악했다.
하지만 곧이어 그는 이상한 점을 알아챘다. 그 암홍색 광망 안의 힘은 불문처럼 부드럽지 않고 매우 난폭했다. 게다가 심마만을 노리는 힘이었다.
그때, 혼돈에 빠져 있던 심협이 마침내 정신을 차리며 소리쳤다.
“심마대법!”
이 목소리를 듣는 순간 심마는 심장이 철렁해 얼른 심협을 돌아보았다. 심협의 두 눈에서는 암홍색 무늬가 반짝였고, 그 안에서부터 영혼을 직격하는 기이한 파동이 느껴졌다. 심마는 자기도 모르게 복종해야겠다는 느낌이 들었다.
“이럴 리가 없어! 내가 심마란 말이다! 한데 어째서 네놈이…….”
심마는 당황해 어쩔 줄을 몰랐다.
“진압해!”
심협의 나지막한 외침이 울렸다.
그 순간, 주위의 어둠에서 갑자기 광망이 비쳐오더니 부문이 식해 허공에 떠올라 어둠을 제거하고 사방을 혈홍색으로 물들였다. 이어서 엄청난 기운이 몰려와 심마를 진압해 갔다.
심협의 몸 절반을 기어올랐던 심마는 이 힘에 제압되어 조금씩 다시 가라앉기 시작하더니 이내 그대로 다시 수면 아래로 내려갔다.
“심협, 내 힘은 이게 전부가 아니다! 너는 네 심마가 무엇인지 아직 깨닫지 못했으니, 기다려라! 내가 다음에 다시 올 때는 네가 내게 복종하게 될 것이다!”
심마의 몸은 천천히 식해 깊은 곳으로 가라앉았고, 목소리도 식해 공간에서 서서히 사라져갔다.
심협의 신혼이 흔들리기 시작했다.
콰쾅!
광포한 뇌명이 울려 퍼지면서 심협의 몸이 크게 흔들렸다.
주위를 둘러보니 식해 공간에는 아무런 이상이 없었다. 이에 안도했으나, 심협은 이내 안색이 변하고 말았다.
신혼 소인이 다시 돌아가 가부좌를 틀자 본체도 다시 눈을 떴다.
그는 여전히 심마의 우물 깊은 곳에 있었지만, 머리 위의 하늘에는 구름 속 거대한 금색 뇌지(雷池)가 보였다.
뇌지 안에서는 번개가 용솟음쳤고, 뇌명이 미친 듯이 울려 퍼져 귀가 먹먹했다.
이와 동시에 심협은 머리 위에서 통증을 느꼈고, 정문(頂門)이 마치 누군가에 의해 활짝 열린 것처럼 서늘한 기운이 머릿속으로 파고 들어왔다.
발끝에서 타는 듯한 고통이 전해졌다. 심협이 얼른 고개를 숙여 보니 용천혈에 검은색 반점이 보였고, 거기에서 희미하여 알아채기도 힘든 푸른 연기가 피어오르고 있었다.
“이것은…… 삼재(三災)?”
심협은 깜짝 놀랐다. 그는 본래 단숨에 천존 경지로 돌파하려 했는데 심마의 훼방으로 잠시 지체되면서 사라졌던 천기가 갑자기 삼재의 화근을 찾아온 것이다.
태을 경지로 돌파할 때 변화술로 삼재를 속이는 것은 임시 대처법에 불과하니 나중에 천존으로 돌파할 때 더 강력한 겁을 맞게 될 것임을 위청에게서 들어서 알고 있었다. 운이 좋으면 잘 빠져나갈 수 있을 줄 알았지만, 지금 보니까 그건 불가능할 것 같았다.
심협은 더는 머뭇거리지 않고 바로 반고진공의 수련을 멈추고 황정경 심법을 운공하기 시작했고, 지살칠십이변을 시전하여 새로 변신했다.
그 순간, 목표를 잃은 것처럼 머리 위의 뇌지가 갑자기 정체되더니 번개의 요동이 멈췄다.
하지만 심협은 발아래에서 다시 뜨거운 고통을 느꼈다. 화재(火災)가 몸에서 제거되지 않고 여전히 그를 단단히 붙들고 있었다.
심협은 잠시 고민하더니 이번에는 발이 없는 물고기로 변했다. 그러자 화재는 그를 감지하지 못한 듯 더는 고통을 주지 못했다.
하지만 그때, 머리 위에서 바람이 강하게 불어와 머리로 파고들었다.
심협은 어쩔 수 없이 몸에서 다시 빛을 뿜어내어 바로 황갈색 돌로 변하여 우물 속에서 조금의 기운도 뿜어내지 않고 있었다.
차차 바람이 멎었고, 불도 잦아들었으며, 뇌성도 사라졌다.
심협은 천기를 속이는 데 성공한 듯하자 내심 안도했으나, 그 순간 굵직한 뇌광이 하늘에서 떨어지더니 번개의 구(球)가 되어 신마의 우물 안으로 떨어졌다.
콰콰쾅!
귀청이 터질 듯한 천둥에 용궁 전체가 심하게 흔들렸고, 모두가 공포에 떨었다.
오홍이 수정궁 밖으로 나와서 그 강렬한 파동이 느껴지는 곳을 돌아보았다. 그의 표정에는 근심과 걱정이 가득했다.
신마의 우물 안에 있는 심협은 훨씬 위험했다. 뇌전에서 뿜어져 나오는 위능은 상상을 초월하여 그가 지금까지 겪었던 뇌겁과는 천지 차이였다. 이 금뢰에서는 심지어 법칙의 힘까지 느껴졌다. 그 안에서 느껴지는 위협적인 천도의 위엄은 조금의 반항심마저 일으키지 못하게 했다. 만약 그의 경지가 다시 정진하여 몸과 혼백이 탈바꿈한 상태가 아니었더라면 진즉 잿더미가 됐을 터였다.
하지만 계속 가다가는 다른 두 개의 재(災)가 언제고 동시에 터질 것이고, 그때가 되면 심협은 버틸 수 없을 것이 분명했다.
“한번 해보자!”
심협은 짧게 외치고는 반고진공을 미친 듯이 운공하여 영기와 마기를 몸에 흡수했다. 그러자 몸에서 찬란한 광망이 번득이기 시작했다. 비록 아직 현양화마 때처럼 신마가 공존하는 상태는 아니었지만, 몸에서 뿜어져 나오는 기운은 그때보다도 더 강력했다.
그의 두 눈동자는 금과 흑으로 변했고, 양손을 높이 들자 손바닥에서 염폭의 화염이 날아가 뇌전을 막았다.
콰쾅!
이어 폭발음이 울러 펴졌다.
불꽃이 사방으로 흩어지면서 심협의 두 팔은 까맣게 탔다. 피와 살은 빠르게 사라져 옥처럼 맑지만 오색찬란한 뼈가 드러났다.
“역시 대단하군!”
심협은 뇌겁의 위력에 감탄했다.
다시 요란한 뇌전이 나타나자 그는 망설이지 않고 바로 명홍도를 꺼내 맞섰다.
우르릉!
다시 천둥이 울려 퍼지면서 수많은 뇌전이 뿜어져 나와 주위의 우물 벽을 때렸다. 그러자 신마의 우물 전체가 강하게 흔들렸고, 벽에 있는 많은 부문이 뇌광에 파괴되면서 균열이 생겼다.
그러나 심협은 이를 돌볼 겨를이 없었기에 다시 헌원신검을 꺼내 한 손에는 도, 한 손에는 신검을 들고 더 맹렬한 공격에 맞설 준비를 했다.
그때, 주위의 우물 벽에 있던 부문이 일제히 번득이기 시작했고, 발아래의 진문도 함께 돌아가면서 강력한 제압의 힘이 나타나 그를 단단히 붙잡았다.
강력한 진압과 속박의 힘은 심협도 버티기 힘들었다.
“흑백 도우, 지켜만 볼 겁니까?”
심협이 다급히 물었으나, 밖에서는 아무런 반응도 없었다. 그리고 다음 순간, 머리 위에서 갑자기 어둠이 내려와 신마의 우물을 제압했다.
* * *
얼마나 지났을까. 어둠 속에서 흑백진군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심 도우, 지금 내가 자네 때문에 얼마나 번거로워졌는지 아는가?”
겨우 긴장이 풀렸는지 그는 길게 숨을 내쉬었다.
우물 벽 주위의 부문이 반짝이자 심협의 머리 위에 다시 빛이 떠올랐다. 뒤이어 그의 몸이 떠올라 우물 밖으로 나왔다.
허공에 떠오른 신마의 기둥이 천천히 땅으로 내려와 신마의 우물을 다시 봉인했다.
“흑백 도우, 방금 도우가 나선 겁니까?”
“심 도우, 방금 내가 제때 신마의 우물을 닫아서 자네의 기운을 차단하지 않았다면 삼재의 뇌겁이 자네의 몸뿐만 아니라 우물의 봉인까지 파괴할 뻔했다네.”
“감사합니다, 흑백 도우. 제가 너무 경솔했습니다.”
흑백진군은 신마의 기둥 위에 가부좌를 한 채 심협을 살펴보았다.
“지금 자네의 경지가 태을 절정에 도달한 게 맞는가?”
“그렇습니다.”
“아직 경지가 불안정한 듯하니 한동안 기운을 억제하여 태을 중기의 상태를 유지하는 것이 좋을 걸세. 그래야만 삼재의 재림을 피할 수 있을 게야.”
“그렇게 하면 삼재를 피할 수 있는 겁니까?”
“당연히 아니지! 그저 시간을 버는 것뿐일세. 정말로 삼재에서 벗어나려면 천명을 초월하여 천존이 되어야만 하지. 그전까지는 최대한 기운을 억눌러 삼재의 천수(天數)가 찾아오는 것을 피하는 수밖에 없네.”
“도우의 조언에 감사드립니다.”
“삼재를 버텨낼 자신이 생기기 전까지는 절대로 기운을 절정까지 끌어올리지 말게. 안 그러면 삼재를 불러올 것이야. 신마의 우물 안에서는 내가 자네의 천기를 덮어줄 수 있었지만, 다른 곳이었다면 죽었을 걸세.”
흑백진군의 설명에 심협은 한참을 고민한 끝에야 인사를 남기고 용총에서 나왔다.
한데 그가 수정궁으로 돌아가는 길에 보니 병사들이 계속해서 오갔고, 끊임없이 바다 쪽으로 향했다.
“용궁에 또 무슨 일이 생긴 건가?”
심협은 의아해하며 속도를 높여 서둘러 수정궁으로 돌아갔다.
용궁에서는 오홍이 거울 요괴와 원구를 데리고 나왔고, 네 명의 순해 야차가 이들의 뒤를 따르고 있었다. 오홍은 걸으면서 명령을 내렸다.
심협을 본 오홍은 잠시 멈칫했으나, 이내 다시 명령을 이어갔다.
“각자 삼백의 수예를 데리고 가서 흩어진 요괴들을 모아라. 명령을 어기거나 반항하는 자는 죽여도 좋다.”
말을 마친 오홍은 그제야 거울 요괴와 원구를 데리고 심협에게 다가왔다.
“무슨 일이오 용궁에 무슨 일이 있는 거요?”
“최근에 어째서인지 동해에 갑자기 수많은 요물이 바다를 건너왔는데, 어떤 것들은 섬을 차지하여 스스로를 왕이라 칭하고, 또 어떤 것은 동해 수예를 죽이며 우리의 안녕을 위협하고 있소.”
오홍이 한숨을 내쉬며 답했다.
“만요맹입니까?”
“아니오.”
“만요맹의 잔여 세력은 반년 전에 완벽하게 숙청됐습니다.”
거울 요괴가 설명을 거들었다.
“그렇다면……?”
“마침 붙잡아둔 요족을 심문하러 가는 길이니 심형도 같이 갑시다.”
“알겠소.”
일행은 금세 용궁 대옥에 도착했다. 이 법진 감옥 구석에는 일고여덟 명의 생김새가 모두 다른 요족이 웅크리고 있었는데, 하나같이 나른하고 무기력한 표정이었다.
심협 일행이 들어오자 그중 화려한 색의 깃털이 머리에 가득한 마른 남자가 후다닥 기어왔는데, 감옥에 손이 닿자마자 뇌광에 맞아 튕겨 나갔다.
“날 놔줘! 어서 날 풀어주란 말이다! 난 수예를 공격하지 않았어! 그저 지나가는 길이었다고!”
조류 요물인 남자가 안간힘을 쓰며 일어나더니 포악하게 외쳤다.
다른 요물들은 그를 힐끗 보고는 바로 시선을 거뒀다. 용서를 구하거나 반항할 의지는 전혀 없어 보였다.
“거울 요괴, 그대가 잡아 온 자들이 아닌가? 그때 다친 사람이 있었나?”
오홍이 물었다.
“그게…… 당시 현장은 혼란스러워서 제대로 신경을 쓰지 못했습니다. 어쨌든 주위에 있는 자들은 전부 잡아왔습니다.”
“난 정말 그냥 지나가는 길에 구경했을 뿐이라고!”
새 요괴 남자가 다시 달려와 변명했다.
“그럼 내 질문을 할 테니 솔직하게 답하라.”
오홍이 근엄한 목소리로 말했다.
“사실대로 말하면 풀어줄 겁니까?”
새 요괴가 떠보듯 물었다.
오홍의 표정이 더욱 싸늘해지자 그 새 요괴는 바로 태세를 바꿨다.
“아, 알고 있는 건 전부 말씀드리겠습니다.”
“너는 저들을 아느냐?”
오홍이 턱을 들어 감옥 안의 다른 사람들을 가리키며 물었다.
“모릅니다.”
새 요괴는 곧장 거세게 고개를 젓고는 울상을 지었다.
“용왕 폐하, 맹세하건대 정말로 모르는 자들입니다.”
“그럼 어째서 같이 동해로 온 것이지?”
“저희는 모두 북구노주 쪽에서 도망쳐 온 것뿐입니다.”
새 요괴가 조심스레 답했다.
“북구노주?”
그 대답에 모두가 의아해했다.
“북구노주에 무슨 일이 있었기에 도망쳐 나온 것이냐?”
새 요괴는 이 질문에 떠올리기 싫은 기억을 떠올린 것처럼 겁에 질린 표정이 그대로 드러났다. 더욱이 심협은 그 뒤의 다른 요물들도 마찬가지로 겁에 질린 것을 알아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