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61화. 본연의 모습 (2)
심협은 시간이 가는 줄도 모르고 우물 안에서 수련을 이어갔고, 순식간에 1년이 지났다.
그러나 현재 신마의 우물 안에는 심협이 보이지 않았다. 흑백 소용돌이가 주위를 맴돌며 커다란 고치처럼 그를 감싸고 있었던 것이다.
그 거대한 고치 안에는 가부좌를 한 심협이 허공에 떠 있었다. 드러난 상반신에는 금색 용린과 검은색 마갑이 반씩 뒤덮여 있었고, 머리에는 두 개의 뾰족한 뿔이 있어 흉악한 모습이었다. 현황화마로 변신한 상태였다.
그러나 두 눈은 여전히 감겨 있었고, 미간에 생겨난 눈은 활짝 뜨여 좌우로 정신없이 굴러다녔으며, 몸에서 뿜어져 나온 기운은 강력하고 웅장하여 많이 정진한 상태였다.
그때, 심협이 갑자기 두 눈을 번쩍 떴다. 한데 한쪽 눈은 먹물처럼 새까맣고 다른 눈은 찬란한 별 같아서 매우 기이했다.
1년간의 고된 수련으로 그는 반고진공에 첫발을 들였다. 조금만 더 하면 입문할 수 있을 터였다.
그가 호흡을 가다듬고 손을 뒤집자 손바닥에서 혈광이 반짝이더니 갑자기 말벌처럼 생긴 데다 날개가 알록달록한 고충이 나타났다. 바로 융원고였다.
다만, 애당초 그의 몸에 처음 들어갔을 때와 비교하면 더 커졌고, 기운은 심협과 완벽하게 융합되어 있었다. 완전히 길들여진 것이다.
“성패는 여기에 달렸다.”
심협은 조용히 중얼거리고는 손을 들어 융원고를 얼굴 앞으로 내밀었다. 미간의 세로 눈이 갑자기 빙글빙글 돌기 시작하더니 곧바로 위로 뒤집히면서 혈홍색 눈동자가 나타났다.
핏빛 정사가 안에서 뿜어져 나와 융원고를 휘감더니 미간의 세로 눈앞까지 끌어올렸다.
이 세로 눈의 눈꺼풀이 확장되어 커다란 입처럼 벌어지더니 융원고를 통째로 집어삼켰다.
융원고는 약선종 비전 고충의 하나로, 용법이 다양했다. 척추에 기생해도 되지만, 지금처럼 미간 대혈(大穴)에 넣으면 위능을 최대한으로 발휘할 수 있었다.
뒤이어 세로 눈이 감기면서 부풀어 오른 눈꺼풀 안에서는 뭔가가 좌우로 돌아다니는 것이 보였다. 눈동자가 돌아가는 건지 아니면 융원고가 안에서 꿈틀거리는 건지는 알 수 없었다.
하지만 이마저도 얼마 후 멈췄다.
그 순간, 심협이 고통스러운 듯 미간을 찌푸렸고, 이어서 그의 몸에도 변화가 일어나기 시작했다. 왼쪽 몸의 검은색 마갑이 오른쪽 몸을 침범하기 시작했고, 오른쪽 몸의 용린도 왼쪽 몸으로 퍼져 나갔다.
이 둘은 심협의 몸을 전장으로 삼아 서로를 죽이는 형태였다.
양쪽 힘의 균형이 깨지자 심협은 마치 몸이 두 개로 나뉘는 것처럼 고통스러웠고, 용린과 마갑으로 뒤덮인 피부가 갈라지면서 피가 쏟아져 나왔다.
몸은 빠르게 피투성이가 되어 마치 혈인(血人)처럼 변해버렸다.
그때, 미간의 세로 눈이 천천히 열렸다. 그러나 눈동자는 보이지 않았고, 대신에 오색의 알록달록한 융원고가 있었다.
심협은 융원고를 제어하며 양손을 빠르게 결인했다.
오색 광망이 미간에서 번득이자 그의 온몸에서 요동치던 마갑과 용린이 우뚝 멈췄다. 그러나 이는 잠시뿐, 마갑과 용린은 이내 무슨 자극이라도 받은 것처럼 더욱 미친 듯이 서로에게 돌진하고 공격을 퍼부었다.
다만 이번에는 상황이 달라졌는데, 마갑과 용린이 충돌하는 가운데 양쪽이 동시에 조금씩 부서지기 시작한 것이다.
심협은 고통이 더욱 켜저 자기 몸에서 일어나는 변화를 선명하게 느낄 수 있었다. 몸 내부에서도 어떤 한계가 부서지고 있었다.
콰직! 콰지직!
무언가 부서지는 소리가 몸 곳곳에서 들려왔다. 온몸의 뼈가 이런 융합하는 힘에 짓눌리는 것처럼 몸이 저절로 수축하여 하나의 덩어리가 되었다.
주위의 흑백 소용돌이도 함께 줄어들어 그를 중심으로 감쌌다.
* * *
7일이 지났다.
콰르릉!
신마의 우물 안에서 무언가 부서지는 소리가 울려 퍼졌고, 흑백 소용돌이가 내부에서부터 터져 나가면서 심협의 벌거벗은 몸이 떠올랐다.
현재 그의 몸에는 마갑도, 용린도, 현향화마의 흔적도 없었다.
피부는 눈처럼 투명했다. 자세히 보면 매미 날개 같은 촘촘한 무늬가 가득했고, 오색찬란한 빛이 은은하게 흘렀으며, 하얀 안개 같은 증기가 뿜어져 나왔다. 용모에는 아무런 변화가 없었지만, 이목구비의 선이 한결 부드러워졌고, 조금 흐릿해 보였다.
만약 범인이나 경지가 낮은 사람이 지금의 그를 봤다면 처음에는 그저 평범하게 느끼겠지만, 두 번을 보면 이전과는 조금 다르게 보일 것이고, 다시 보면 확연히 다르게 느낄 터였다. 그가 환골탈태를 이루면서 육신이 순박한 본연의 모습으로 돌아가는 지경에 이르렀기 때문이다.
심협은 천천히 숨을 들이켰다가 내뱉고는 두 주먹을 내려다봤다. 얼굴에는 화색이 돌았다. 1년의 고된 수련으로 반고진공에 마침내 입문하여 선, 마 두 힘의 융합이 4할에 달하게 된 것이다.
그는 반고진공의 위력을 시험해보고 싶은 마음에 가볍게 주먹 쥐고 흑백의 광망을 뿜어내며 힘껏 뻗었다.
푹!
서늘한 소리가 울려 퍼지면서 전방이 해수면처럼 끓어오르더니 반경 1장이 폭발했다.
심협은 놀라면서도 기뻐했다. 겨우 6할의 힘을 사용했을 뿐인데도 가볍게 허공을 깨트린 것이다. 반고진공은 실로 강력했다. 헌원 잔혼이 이 공법이면 치우와 대항할 수 있다고 자부할 만했다.
그는 체내에서 솟구치는 힘을 거두고는 자기 몸을 살피며 흡족해했다.
그의 육체는 현재 옥처럼 맑고 투명했으며, 불순물이 하나도 없었다. 이는 천존 경지로 들어서는 필수조건 중 하나였다. 진정한 천존 경지에 도달하면 부처나 옥황상제처럼 진정한 중생상(衆生相)을 수련할 수 있게 된다.
법력도 크게 정진하여 태을 절정에 도달해 있었다.
심협이 눈동자의 신광을 줄이자 금색 무늬가 떠올랐다. 그 상태로 주위를 살펴보니 신마의 우물 안의 영기와 마기가 3할가량 줄어든 상태였다. 본래 예상으로는 적어도 절반은 줄어들 줄 알았는데 생각과는 차이가 컸다.
그때, 금단 검진이 조금씩 반짝이면서 순수한 영기와 마기가 솟아 나왔다.
심협은 눈을 반짝이고는 주먹을 쥐었다 풀기를 반복하며 손을 휘둘렀다. 그러자 보이지 않는 기류가 흑백 안개와 함께 흐르더니 허공에 곡선을 그리며 자연스럽게 완성됐다.
가볍게 숨을 들이마셨다가 내쉬자 기다란 숨결이 뿜어져 나갔고, 그의 앞에서 뭉쳐진 뒤 흩어지지 않고 구름과 파도처럼 소용돌이쳤다.
심협은 심경이 전에 없이 평온하여 마치 신마의 우물과 하나가 된 듯한 느낌이었고, 자아가 텅 비어 무아(無我) 초탈의 경지에 들어선 것 같았다.
은연중에 그는 무언가를 떠올리고는 대담한 결정을 내렸다. 바로 천존 경지로 돌파를 시도하는 것이었다!
이런 공명(空明)의 상태는 쉽게 오지 않음을 그는 잘 알고 있었다.
‘이번 기회를 제대로 잡지 못한다면 다시 천존 경지로 돌파를 시도하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생각을 마친 그는 다시 심호흡으로 평정심을 되찾고는 가부좌를 틀었다. 이어서 양손의 법력을 바꾸며 반고진공을 다시 운공해 영기와 마기를 계속해서 흡수하면서 그 임계점에 충격을 가하기 시작했다.
그의 몸 아래 음양조화도가 빠르게 회전하기 시작했고, 속도가 빨라질수록 영기와 마기가 몸으로 들어와 기운을 천천히 늘려갔다.
하지만 한참이 지나면서 체내에 들어온 영기와 마기가 매우 많아졌음에도 그가 원했던 결과에 도달할 수가 없었다.
기운이 제자리에 멈추며 조금씩 되돌아가려 하자 심협은 눈빛이 굳어지더니 손바닥을 몸 아래로 눌렀다. 그러자 허공에 떠 있는 손바닥에서 검은색 실이 천천히 뻗어 나오기 시작했다. 혼돈흑련이 효능을 발휘하기 시작한 것이다.
혼돈흑련의 뿌리가 영기와 마기를 흡수하기 시작하면서 점차 체내로 흘러들어오자 힘이 갑자기 배로 폭증했다. 이어서 이전까지 도저히 헤쳐나갈 수 없었던 관문이 이 순간 갈라지기 시작했다.
심협이 기뻐하며 단숨에 몰아붙여 천존기로 돌파하려는데, 상황이 예상과 다르게 흘러갔다. 그의 의념이 갑자기 저항할 수 없을 만큼 강력한 힘에 끌려갔고, 순식간에 자신의 식해 공간에 들어서자 익숙하면서도 적의가 가득한 의념이 곧바로 식해 전체에 침범해온 것이었다.
이때, 그의 식해 공간은 발칵 뒤집히고 엄청난 변화가 일어났다. 눈이 닿는 곳마다 끝없는 어둠뿐이었고, 바다에서는 파도가 용솟음치며 쉬지 않고 그의 생각을 공격하고 있었다.
“크하하하!”
사악한 의념이 가득한 웃음소리가 사방에서 들려왔다.
심협은 좌우를 둘러봤지만 아무것도 보이지 않다 부주진신법을 운공하여 식해 파동을 강제로 제압하려 했다.
부주신산이 우뚝 솟아오르자 식해에서 요동치던 파도가 잠잠해졌다. 그러나 주위를 뒤덮은 어둠은 조금도 사라지지 않았고, 그 사악한 웃음소리도 끊임없이 사방에서 울려왔다.
“드디어 왔구나! 내 이날이 오기만을 기다렸다 하하하!”
자신의 것과 매우 비슷한 목소리가 들려왔는데, 어째서인지 형용할 수 없는 요망함이 가득했다.
다시 주위를 둘러본 그는 흠칫 놀라며 바로 아래를 내려다봤다. 그리고 그 순간, 심협은 멍해졌다. 발아래의 식해는 거울처럼 고요했는데, 그 안에는 온몸이 새까만 사람의 그림자가 거꾸로 비친 것이다. 그 까만 사람은 얼굴과 체형만이 아니라 서 있는 자세까지 똑같았다.
“심마?”
심협은 문득 깨닫고는 흠칫 놀랐으나, 이내 담담해졌다.
상대는 자신과 동작이며 표정까지 똑같았지만, 대치가 오랫동안 이어지자 마침내 더는 참지 못하고 새하얀 치아를 드러내며 히죽 웃었다.
“넌 심마인가?”
심협이 눈살을 찌푸리고 냉정하게 물었다.
“내가 널 얼마나 기다렸는지 넌 모르지?”
심마가 요사스럽게 웃으며 되물었다.
“뭘 기다렸다는 거지?”
심협은 답을 알 것 같았지만, 그래도 물었다. 심마의 대답을 통해 저자의 성격을 알아내고 이 심마의 근원이 어디에 있는지 알아내려는 것이다.
“네가 성장하고 성장하여 강력한 그릇이 될 때까지.”
심마가 입술을 핥으며 말했다.
“그 말은, 오래전부터 내 몸속에서 자라나고 있었다는 건가?”
“네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전부터.”
심협은 덤덤한 얼굴로 생각했다.
‘나의 심경에 부족한 게 도대체 뭘까?’
하지만 그가 미처 깨닫기도 전에 식해가 다시 요동쳤고, 몸 아래의 거울 속 세계에 있던 심마가 갑자기 검은 손을 내밀어 그의 발목을 움켜잡았다.
심협은 차가운 죽음의 기운을 느꼈는데, 이 기운이 심마의 손을 타고 번져와 온몸으로 침투하는 것을 막아낼 수 없었다. 등골이 서늘해지고 마음 깊은 곳에서 두려움이 생겼다.
두려움이란 심협이 수련에 대성한 이후로 거의 느껴본 적이 없는 감정이었다. 그러나 지금 그는 마치 방금 꿈속 세계를 넘어간 초보자처럼 덮쳐오는 죽음의 위기에 두려워했다. 여자 귀신, 늑대 요괴, 여우 요괴…… 자신을 궁지로 몰아넣었던 요물들에게서 느꼈던 두려움이 파도가 되어 세차게 밀려왔다.
이런 공황의 감정이 순식간에 심협을 덮치는 동시에 그의 식해 공간에 반영되기 시작했다.
우르릉!
심협의 식해 공간, 뇌성이 크게 울려 퍼졌고, 거세게 쏟아지는 빗줄기에 뼈까지 시렸다.
식해 안의 심협은 마치 악귀에게 혼백을 빼앗긴 것처럼 차가운 비바람에 몸을 맡긴 채 그 자리에 멍하니 서 있었다.
발아래에서 바닷물이 소용돌이치더니 심마의 상반신이 거울 같은 물 밑에서 솟아 나와 그의 두 발목을 잡고 천천히 기어 올라왔다. 심마가 지나는 곳마다 어둠이 그림자처럼 따라와 조금씩 심협을 검게 물들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