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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몽주-1160화 (1,160/1,214)
  • 1160화. 본연의 모습 (1)

    회색 원숭이는 바로 육이미후로, 이미 몸은 완전히 회복된 데다가 심지어 경지는 더 정진해 천존 경지에 근접해 있었다.

    세 사람은 무언가를 기다리는 듯 허공을 바라보고 있었다.

    “왔다!”

    육이미후가 귀를 꿈틀거리더니 입을 열었다.

    그의 말이 끝나자마자 전방의 허공에서 오색 광망이 반짝이더니 공선과 요풍, 원조, 미소가 나타났다. 도산동은 미소의 공간 법보에 들어갔는지 보이지 않았다.

    한 걸음 나서며 막 무슨 말인가를 하려던 검은 도포의 노인은 원조와 미소를 보는 순간 멈칫했다.

    “이 두 도우는……?”

    노인이 공선을 바라보며 물었다.

    “네놈은 흑오공!”

    공선이 답하기도 전에 육이미후가 경악한 듯 외쳤다.

    “육이, 너도 역시 여기 있었구나. 하지만 난 손오공이 아닌 원조다. 혼동하지 마라.”

    원조가 육이미후를 보며 차갑게 말했다.

    “하하하, 그렇군. 이거 제가 실례했소이다. 원조 도우를 어찌 손오공 따위와 비교할 수 있겠습니까?”

    육이미후가 눈을 반짝이며 사죄하듯이 말했다.

    “이 두 분은 원조와 호조입니다. 제가 청한 원병으로, 이제 우리와 합류할 겁니다.”

    요풍이 자랑스럽다는 듯 소개했다.

    원조의 표정은 변함이 없었지만, 미소는 미간을 살짝 찌푸렸다. 그러나 그녀도 반박하지는 않았다.

    “두 요조셨군요. 반갑습니다. 빈도는 흑련(黑蓮)으로, 마족의 오마존자입니다. 현재 삼계에서 선족은 힘이 약하고 인간족은 내란이 끊이지 않아 무너지고 있으니 우리 마족만이 하늘 위의 태양입니다. 치우 대인의 부활도 얼마 남지 않았으니, 우리 마족에 합류하신 것은 참으로 현명한 처사입니다.”

    흑포 노인이 하하 웃었다.

    “흑련 도우, 과찬이시오.”

    원조와 미소가 답례했다.

    흑련도인은 이어서 육이미후와 마수수를 간단하게 소개했다. 심협에 대해 많은 조사를 한 미소는 마수수가 한때 그의 벗이었다는 사실도 알고 있었기에 그녀를 빤히 바라봤다.

    마수수도 이를 느꼈는지 그녀를 바라봤다.

    눈이 마주치자 미소는 방긋 웃고는 바로 시선을 돌렸다.

    마수수도 무슨 생각을 하는지 진중한 얼굴로 고개를 돌렸다.

    “가져왔는가?”

    인사가 끝나자 흑련 도우가 공선에게 물었다.

    공선이 고개를 끄덕이고는 핏빛 면구를 꺼냈다.

    “좋아, 좋아. 유계존자는 역시 실망시키지 않는군! 하하하!”

    흑련도인이 면구를 받아들고 크게 웃었다.

    “유계존자는 역시 대단합니다. 치우 대인께서 이 수라면구를 계속 기다리셨으니 분명 큰 상을 내리실 겁니다.”

    육이미후도 웃으며 말했다.

    요풍의 눈에 일순 질투의 불꽃이 타올랐지만, 바로 사라졌다.

    “아닙니다. 심협의 일격으로 수라면구에 균열이 생겼으니 치우 대인께서 벌을 내리시지 않는 것만으로도 감사할 뿐, 어찌 상을 바라겠소?”

    공선이 쓴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근본은 상하지 않았으니 사용에는 큰 무리가 없겠군. 유계 존자는 너무 마음에 두지 말게나. 그런데 자서존자는 어째 안 보이는군?”

    흑련도인이 말을 마치고는 갑자기 생각난 듯 물었다.

    “자서존자는 마족을 위해 싸우다가 동해지연에서 죽었소.”

    공선이 담담하게 답했다.

    “자서존자는 경지가 높은 데다 심마대법을 대성의 경지까지 수련했거늘, 도대체 누가 있어 그를 죽일 수 있단 말인가?”

    “심협이오.”

    “심협! 또 그자인가!”

    흑련도인은 경악했다가 이내 표정이 어두워졌다.

    “그놈은 사사건건 우리 대업을 방해하니 더는 살려둬서는 안 됩니다. 마존 몇 명을 보내 이 망할 놈을 죽이는 게 어떻겠습니까?”

    육이미후는 심협과의 원한이 깊었기에 얼른 제안했다.

    “심협은 여러 대문파와 두루 친분이 있으니 섣불리 행동했다가는 위험해질 수 있소. 우리 마음대로 할 것이 아니라 잠시 후에 치우 대인께 여쭙는 게 좋겠소.”

    흑련도인이 생각을 정리하더니 그렇게 말하고는 공선, 원조, 미소와 함께 핏빛 제단으로 들어갔다.

    제단 안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던 핏빛 수면이 천천히 솟아올랐다. 중앙에는 거대한 원형 공터가 떠 있었고, 그 위에는 수많은 거대한 해골이 보였는데, 대부분은 온전한 상태였다.

    미소가 자세히 세어보니 여든한 개였다.

    이 해골들은 기본적으로 사람 형태였지만, 보통 사람보다 수십 배나 컸고, 하나같이 무서운 마기를 뿜어내며 서로를 에워싸고 있었다.

    흑련도인 등이 다가오자 거대한 해골 주위에서 갑자기 음풍이 뿜어져 나왔고, 근처에 있던 10여 구의 거대한 해골이 머리를 돌려 이들을 바라보며 이빨을 부딪혔다. 이어 딱딱거리는 소리가 울려 퍼졌다.

    마치 수많은 괴수가 노려보는 것 같은 느낌에 원조와 미소의 표정이 조금 변했다. 그들의 경지로도 저절로 소름이 돋을 정도였다.

    “성조(聖祖)님들, 이들이 치우 대인을 뵙도록 허락하소서.”

    흑련 대인이 해골들에게 예를 올리며 말했다.

    거대한 해골들이 원조와 미소를 한참이나 바라본 후에야 음풍이 점점 사라졌고, 원래의 모습으로 돌아갔다.

    흑련도인은 원조와 미소를 데리고 거대한 해골들을 지나 원형 공터 가운데로 향했다.

    바닥에는 거대한 핏빛 법진이 천천히 돌아가고 있었다.

    진에는 열두 개의 검은색 둥근 기둥이 솟아 있었는데, 각각에는 자서, 축우, 인호, 묘토, 진룡, 사사, 오마, 미양, 신후, 유계, 술구, 해저 등 십이마존의 명칭이 새겨져 있었다.

    열두 개의 돌기둥은 대부분 비어 있었으나, 축우와 인호, 묘토, 미양, 술구, 다섯 개의 돌기둥에는 한 사람씩 앉아 있었다.

    축우 돌기둥에 앉은 남자는 큰 몸집에 검은색 피풍을 두르고 머리에는 두건을 쓰고 있었다.

    인호 돌기둥에는 젊은 부인이 앉아 있었는데, 만약 심협이 봤다면 그녀가 만성공주임을 한눈에 알아봤을 터였다.

    인호 옆의 묘토 돌기둥에는 황의(黃衣)의 여자가 있었다. 구름처럼 고운 머리카락에 외모는 그야말로 경국지색이라 한 번 보면 그 미모에 취하고 두 번 보면 함락될 것 같았다. 그녀는 바로 반사동의 제자 임심모였다.

    세 사람 맞은편 미양, 술구 돌기둥에는 커다란 몸집에 뼈 갑옷을 걸친 마족이 있었다. 그의 방대한 기운은 천존의 경지에 도달해 있었다.

    마지막 한 명은 하얀색 궁복(宮服)을 입은 여자로, 고운 피부에 아름다운 외모는 마치 그림 속 선녀 같았다. 다만 눈매가 차가워서 마치 가면을 쓴 것 같았다.

    “백영롱! 네가 왜 여기에 있는 거지?”

    원조가 돌기둥 위의 다섯 사람을 둘러보더니 가장 마지막 백의의 여자를 보고는 놀란 듯 외쳤다.

    미소도 의아한 표정이었다.

    백의의 여자는 그 목소리에 눈이 차갑게 반짝였지만, 대답은 하지 않았다.

    “원조 도우, 오해하지 마시오. 술구존자는 여아촌의 백영롱이 아니라 백정정(白晶晶)이라오. 백영롱의 쌍둥이 동생이지.”

    “백정정 도우였군요. 실례가 많았습니다.”

    흑련도인의 설명에 원조는 백의의 여인을 잠시 살펴보더니 사과했다.

    미소는 백정정이라는 이름이 낯설지 않았다. 반사동 일맥의 조사인 그녀는 삼계에 모습을 적게 드러냈는데, 설마 마족에 가담했을 줄은 몰랐다.

    백정정은 얼음장 같았던 표정이 더 차가워지더니 바로 눈을 감았다.

    핏빛 대진이 천천히 돌자 핏빛 호수에서 혈광이 뿜어져 나와 대진 안으로 흘러와 주입되었고, 대진 가운데에서는 핏빛 고치가 생겨났다.

    흑련도인이 핏빛 영패를 꺼내 양손으로 결인하고 발동했다. 그러자 영패에서 뿜어져 나온 혈광이 핏빛 고치에 들어가더니 갑자기 천천히 열리면서 혈홍색 골격이 드러났다.

    이 골격은 보통 사람 정도의 크기였고, 혈광을 뿜어냈다. 제단 안의 기류가 이 골격에서 뿜어져 나오는 혈광과 함께 번쩍이며 요동쳤다.

    핏빛 골격은 여섯 부분이 부족했다. 머리와 척추 그리고 팔다리였다.

    척추에는 핏빛 뼈 지팡이가 박혀 있었고, 왼팔은 핏빛 뼈 피리, 오른쪽 다리에는 뼈 접시가 부족한 부분을 대신했다. 얼굴와 오른팔 그리고 왼쪽 다리는 여전히 비어 있었다.

    “치우 대인, 유계존자가 수라면구를 되찾아왔습니다.”

    흑련도인이 핏빛 골격을 향해 절하고는 양손으로 수라면구를 바쳤다.

    공선과 요풍도 바닥에 엎드렸고, 돌기둥 위의 만성공주, 임심모, 백정정도 일어나 엎드렸다.

    “잘했다.”

    핏빛 골격에서 희미한 음성과 함께 혈광이 날아와 수라면구를 휘감더니 천천히 얼굴 부분으로 날아갔다.

    수라면구가 얼굴 위치에 놓이자 골격의 혈광이 깜빡이더니 갑자기 밝아졌다. 이 혈광이 하늘 높이 솟구치자 제단과 동굴 전체가 강하게 흔들렸다.

    공터에 있던 여든한 구의 해골이 마치 살아난 것처럼 전부 일어나 하늘을 향해 흥분의 함성을 내질렀다.

    흑련도인 등은 이 광경을 보고는 깜짝 놀라 황급히 뒤로 물러갔다.

    그들이 멀리 물러나기도 전에 핏빛 빛줄기가 갑자기 소용돌이치면서 강력한 흡입력을 뿜어내자 제단 안에 광란의 기류가 휘몰아쳤다.

    원형 공터 옆의 혈수(血水)는 짙은 혈광을 내뿜어 핏빛 빛줄기에 주입되었다. 이에 혈수는 수위가 빠르게 낮아졌다.

    물러나던 흑련도인 등은 광란의 기류에 뒤덮이자 우뚝 멈췄고, 핏빛 빛줄기로 끌려갔다. 몇 명은 체내의 원기까지 흡수의 힘에 끌려가더니 몸 밖으로 나와 핏빛 빛줄기로 모여들었다.

    이들은 화들짝 놀라 필사적으로 버텼다.

    뼈 갑옷을 걸친 천존경의 마족 남자가 낮게 외치며 손을 휘둘러 핏빛 깃발을 꺼냈다. 깃발에서는 매우 짙은 마기가 뿜어져 나왔다. 뒤이어 그가 양손을 결인하자 핏빛 깃발이 백 배로 커지더니 모두를 휘감았고, 핏빛 빛줄기에서 뿜어져 나오는 흡입력을 차단했다.

    “구해주셔서 감사합니다. 구명 대인.”

    흑련도인이 안도하며 뼈 갑옷의 남자에게 허리를 숙였다.

    이 뼈 갑옷의 남자는 바로 심협이 꿈속 세계에서 만났던 구명 성군이었다.

    “별것 아니오. 치우 대인께서 네 개의 골원 성기를 얻어 주위의 원기를 흡수하여 몸을 다시 만드느라 일어난 일이오.”

    구명 성군이 담담하게 웃고는 원조와 미소에게 설명했다.

    두 사람은 기겁했던 터라 마족 진영에 가담한 것을 후회하고 있었는데, 설명을 듣자 표정이 다소 부드러워졌다.

    바깥에서는 광란의 기류가 계속 휘몰아쳤고, 핏빛 빛줄기는 검은 산맥을 뚫고 하늘 높이 솟구쳤다.

    산맥의 상공에 수많은 뇌전이 나타나더니 먹구름을 뚫고 온 천지에 울려 퍼졌다.

    산맥 상공의 먹구름이 끓어오르며 핏빛 빛줄기를 둘러싸고는 휘몰아쳤다. 거대하기 그지없는 검은색 소용돌이가 생겨났고, 반경 수만 리의 천지영기와 마기, 원기가 모두 모여들었다.

    이 놀라운 현상은 하루 정도 지속되다가 천천히 사라졌다.

    구명이 결인하여 핏빛 깃발을 거두자 모두 밖으로 되돌아왔다.

    제단 안에 가득하던 혈수는 전부 사라졌고, 거대한 동굴 안에 있던 핏빛 호수도 모두 말라버렸다.

    핏빛 골격에는 새로운 피와 살이 자라나 꿈틀거렸고, 비어 있던 눈에도 두 개의 핏빛 눈이 생겼다.

    “치우 대인이 드디어 부활하셨다!”

    구명은 핏빛 골격을 보고는 흥분을 감추지 못하고 바닥에 엎드렸고, 다른 마존들도 전부 바닥에 엎드렸다.

    원조와 미소는 핏빛 골격을 보자 자신도 모르게 몸이 떨려오며 바닥에 엎드렸다.

    “모두 너희가 네 개의 원골 성기를 찾아온 덕이다. 한데 이들은 누구냐??”

    핏빛 골격이 흉측한 미소를 짓더니 원조와 미소를 내려다보며 물었다.

    “이들은 원조와 호조로, 이들도 마조 대인의 신위를 흠모하여 대인 휘하에서 마족을 위해 힘쓰기로 하였습니다.”

    흑련도인이 답하려는 순간 요풍이 말했다.

    “실력이 범상치 않은 두 사람이 우리와 함께한다 하니 본조는 기꺼이 환영한다. 자서존자가 죽었고 사사존자의 자리가 비어 있었으니 두 사람이 이어받도록.”

    치우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감사합니다, 치우 대인.”

    원조와 미소가 황급히 엎드리며 감사했다.

    “원하는 바가 있다면 잠시 후 구명과 흑련에게 말하라.”

    원조와 미소는 치우의 약속에 기뻐하며 옆으로 물러섰다.

    “치우 대인, 아직 몸이 회복되지 않으셨습니다. 만령혈진(萬靈血陣)이 모은 힘이 부족했던 것입니까?”

    구명이 고개를 들며 물었다.

    “아직 한참 부족하구나. 만령혈진을 북구노주 곳곳에 설치하여 기혈와 원기를 모아 나의 회복을 도와라!”

    “바깥에 말입니까? 그랬다가는 주군이 부활했다는 소식이 밖으로 새어나갈 것입니다. 인선, 두 종족의 대군이 몰려오기라도 하면……?”

    구명이 우려스러운 목소리로 물었다.

    “이미 부활했으니 더는 숨을 필요가 없다. 분부대로 하라. 이제 인간족과 선족을 만날 때가 왔노라.”

    치우가 고개를 들어 하늘을 보며 차갑게 웃었다.

    “네!”

    구명이 흥분하며 대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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