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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몽주-1157화 (1,157/1,214)
  • 1157화. 고충 완성

    산호 숲을 지나자 두 사람 앞에는 10여 장 크기의 회백색 조개가 나타났다. 몸이 해저 바위에 끼어 있어 멀리서 보면 마치 타원형의 거대한 바위 같았는데, 그 위에는 따개비 같은 물벌레와 해조류가 가득했다.

    거대한 조개 앞으로 다가간 오홍이 품에서 영패를 꺼내 금제를 발동하자 영패에서 뿜어져 나온 금빛이 회백색 조개의 몸으로 날아갔다.

    조개는 잠깐 흔들리더니 닫혀 있던 껍데기를 천천히 벌렸다. 그러자 안에 있던 푸른색 소용돌이가 드러났는데, 거기에서는 공간 파동이 뿜어져 나오고 있었다.

    “갑시다.”

    오홍이 짧게 말하고는 먼저 소용돌이로 들어갔다.

    심협도 얼른 뒤를 따랐다.

    그 안에 들어서니 천지가 빙빙 돌았다.

    시선이 다시 돌아오니, 주위는 하얀 모래가 가득한 해저 공간이었다.

    심협이 둘러보니 주위의 모래에는 하얀색 용골들이 웅크리고 있었다. 크기는 각기 달랐고, 온전한 것도, 잔해만 남은 것도 보였다.

    “특별한 곳 같은데, 금지요?”

    심협이 시선을 거두고 오홍을 바라봤다.

    “그렇소. 이곳은 우리 동해 용족의 매장지이자 동해 용총(龍冢)이오. 비경에서 사고로 죽거나 시신이 남지 않은 용족을 제외한 용족 대부분은 죽은 뒤 시신을 여기에 안치하오. 그래서 동해 용족 일맥의 기운이 이곳에 모여 있지.”

    “오형이 택한 곳이 여기란 말이오?”

    “신마의 우물은 매우 은밀하고 또 영기가 풍부한 곳에 놔야 하지 않소? 현재 동해에서는 여기가 가장 적합하오.”

    “안 됩니다.”

    심협이 딱 잘라 답했다.

    “신마의 우물을 놓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렇다고 용족의 안식처에 놓을 수는 없습니다.”

    “심형, 거절하지 마시오. 신마의 우물을 여기 두면 용족의 기운이 진압을 도와줄 게요. 그러니 심형이 동해에 머물지 않아도 안심할 수 있고, 나도 심형을 도와 지키기에 더 수월하다오.”

    그럼에도 심협은 망설였는데, 그때 흑백의 그림자가 나타났다. 바로 흑백진군이었다.

    “이렇게 짙은 용기(龍氣)라니, 여긴……?”

    흑백진군은 나타나자마자 곤혹스러운 듯이 주위를 둘러봤다.

    “흑백 선배님, 신마의 우물을 여기에 둬도 괜찮겠습니까?”

    “용기가 짙고 영기가 가득하니 안성맞춤이로다!”

    흑백진군의 감탄사를 들은 오홍의 표정이 밝아졌다.

    “그럼 용족 선조님들, 폐를 좀 끼치겠습니다.”

    심협도 이제 어쩔 수 없다는 듯 사방으로 읍하며 말했다.

    뒤이어 그는 산하사직도를 꺼냈고, 흑백진군과 함께 술법을 시전했다. 그러자 그림이 촤라락 펼쳐져 순식간에 하늘을 뒤덮는 거대한 그림이 되었다.

    심협은 용총의 가운데에서 주위를 둘러보더니 결인하여 술법을 시전했다.

    은빛이 산하사직도에서 뿜어져 나왔는데, 갈수록 밝아졌다.

    잠시 후, 산하사직도의 은빛이 사라졌고, 방대한 공간의 힘이 용총 안에 맴돌았다. 이에 용총이 흔들리기 시작했다.

    심협이 허공으로 날아오르더니 양손을 차륜처럼 결인하며 들어 올렸다.

    산하사직도가 갑자기 흔들렸고, 쾅 하는 굉음과 함께 소서천이 산하사직도에서 나와 천천히 용총에 떨어졌다.

    수많은 건물이 땅에 떨어지는 순간, 용총과 동해 용궁 전체가 크게 흔들렸다.

    만불금탑 안에서는 신마의 기둥 위 영문들이 밝아지더니 뿌리를 내리듯이 주위의 허공으로 들어갔고, 금방 용총과 하나가 되었다. 그러자 진동도 진정되었다.

    신마의 기둥 위에서 흑백 영문이 빠르게 빛나자 기둥 뒤의 허공에서 피식 하는 소리와 함께 흑백, 두 가지 색의 소용돌이가 나타났다. 다만 그 크기는 동해지연에 있을 때보다는 훨씬 작았다.

    매우 순수한 영기가 흑백 소용돌이에서 뿜어져 나왔고, 잠시 후에는 용총 안의 천지영기가 두 배로 짙어졌다.

    순수한 마기도 흑백 소용돌이에서 뿜어져 나와 마찬가지로 용총을 가득 채웠다.

    뒤이어 흑백진군의 제안에 따라 심협은 화령자를 불러서 신마의 기둥 밖에 세 겹의 법진 결계를 설치했다. 마지막으로, 비법을 발휘해 신마의 기둥 입구를 이곳에 안치했다.

    “감사합니다, 흑백 선배님.”

    심협이 흑백진군에게 포권했다.

    “아닐세. 나를 대신하여 이렇게 좋고 안전한 곳을 찾아줬으니 오히려 내가 고맙지. 앞으로 필요한 게 있다면 내 힘을 다해 돕겠네. 아, 그리고 이제는 자네가 신마의 우물의 수호자이니 나를 선배라 부를 것 없네. 편하게 부르게나.”

    흑백진군이 웃으며 말했다.

    “그렇다면, 흑백 도우, 사실 지금 도움을 청할 게 있습니다.”

    심협의 말에 흑백진군은 말해보라는 듯 짧게 고개를 끄덕였다.

    * * *

    신마의 기둥을 안치한 심협과 오홍은 다시 수정궁으로 돌아왔다.

    “이건 용총에 출입할 수 있는 금제 영패인데, 하나밖에 없으니 심형이 잘 보관해주시오.”

    심협은 오홍이 건넨 영패를 사양하지 않고 받아서 챙겼다.

    두 사람은 잠시 더 대화를 나눈 뒤, 오홍은 용궁의 밀린 일을 처리하러 갔다. 만요맹의 잔당을 동해 세력에서 완전히 소탕할 절호의 기회였으니 오홍은 할 일이 태산처럼 많았다.

    용궁에는 심협을 위한 수궁 별원이 있으나, 그는 돌아가서 쉬지 않고 곧장 원구의 공봉 별원으로 향했다.

    심협이 찾아오자 원구는 좀 놀란 듯했다.

    심협은 망설이지 않고 단도직입적으로 말했다.

    “원구, 전에 내가 부탁한 일을 기억하고 있겠지?”

    “그…… 융원고 말입니까?”

    원구가 잠시 생각하더니 물었고, 심협은 고개를 끄덕였다.

    “신경이야 쓰고 있지만, 그 고충을 만드는 데 필요한 재료가 워낙 희귀해서 말이죠. 배합에 쓸 영재는 찾아냈지만, 주재료인 서원반잠은 아직…… 키워보려고 노력해봤지만 실패했습니다.”

    원구가 한숨을 쉬며 안타까운 목소리로 말했다.

    심협이 가볍게 손을 휘두르자 가로세로 1척 정도의 옥갑이 나타났다.

    그가 옥갑을 열어서 건네자 원구는 자세히 들여다보고는 곧이어 믿을 수 없다는 듯 두 눈이 커졌다.

    옥갑 안에는 부적에 감겨 새끼 고양이처럼 엎드린, 기이하게 생긴 날벌레가 들어 있었다. 말벌 같은 생김새에 겹눈 위에는 하얀 솜털이 자라 있는 서원반잠이었다.

    만불금탑에서 섭채주가 그의 부탁대로 백천에게서 세 마리의 서원반잠을 빼앗았으나, 두 마리는 난투 중에 죽고 한 마리가 남은 것이다.

    “서원반잠…… 심 도우, 이걸 찾아냈군요!”

    원구가 기쁜 와중에도 놀란 목소리고 감탄했다.

    “나도 필요한 재료를 계속 찾고 있었지. 이제 뭐가 더 필요하지?”

    “각종 원기를 융합할 수 있는 영재가 없군요. 다른 재료들을 모은 뒤에 저도 그 영재를 찾아봤지만, 딱 들어맞는 건 찾지 못했습니다. 이게 적합하지 않으면 다른 영재가 아무리 좋아도 헛수고이고 실패할 확률이 커집니다.”

    “그것도 있지.”

    말하면서 심협은 다시 정교하게 생긴 검은색 옥합을 꺼내 뚜껑을 열었다. 그 안에는 작은 검은색 잎사귀가 들어 있었는데, 언뜻 보기에는 특별해 보이지 않았다.

    “도우, 이건……?”

    원구는 한참을 바라봤지만 그게 무엇인지 알 수 없었다.

    이것은 혼돈흑련의 잎사귀였고, 심협은 말을 돌렸다.

    “뭔지가 중요한가? 아무튼, 이거면 될 거야. 그럼 이제 만들 수 있겠지?”

    “물론입니다.”

    원구가 단호하게 말했으나, 심협은 확신할 수 없었다.

    “성공할 확률이 얼마나 될까?”

    “원기를 융합할 잎사귀만 문제없다면 성공할 확률은 이 정도 이상입니다.”

    원구가 손을 쫙 펼치며 말했다.

    “5할?”

    심협의 눈살이 찌푸려졌다.

    “도우도 알다시피 융원고는 8품 고충이지만 제련의 난이도는 9품 이상입니다. 5할도 낮은 게 아니지요.”

    그는 실패하는 것도, 말을 잘못해서 이번에 융원고를 만들어볼 기회를 잃는 것도 걱정됐다. 연단이나 연기와 마찬가지로 연고 또한 높은 품질의 제련을 시도해 볼 기회는 흔치 않기 때문이다.

    “좋아, 믿어보지.”

    심협은 잠시 고민했으나,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원구는 흥분한 듯 떨리는 손으로 심협에게서 두 개의 천재지보를 받아들었다. 융원고를 만들어볼 소중한 기회를 잡은 것이다.

    “용궁에 밀실을 준비해달라고 해주십시오. 바로 폐관하겠습니다. 짧게는 석 달, 길게는…….”

    원구는 순간 말이 막혔다.

    “사람을 쓰는데 의심하면 되겠나. 실패해도 괜찮으니 안심하고 해봐.”

    심협이 안심시키며 다독였다.

    “도우도 알다시피 저 이번에 목숨을 걸었었지요. 이번에도 절대 도우의 기대를 저버리지 않을 겁니다.”

    원가 갑자기 의기양양하게 가슴을 펴며 말했다.

    그리고 다음 날, 원구는 바로 폐관에 들어갔다.

    이후, 심협은 오홍을 도와 함께 동해에 남은 만요맹의 세력을 소탕했고, 그중 많은 세력을 포섭하여 동해 용궁을 더욱 안정시켰다.

    * * *

    눈 깜짝할 사이 7개월이 지났다.

    원구가 폐관하던 밀실의 대문이 마침내 열렸다.

    심협이 가장 먼저 도착해 보니 뼈만 남고 눈이 움푹 들어갈 정도로 삐쩍 마른 사람이 온몸을 덜덜 떨며 걸어 나왔다. 물론 원구였지만, 심협조차 못 알아볼 뻔했다.

    몸이 말라서 해골처럼 되었지만, 원구의 두 눈 깊은 곳에는 흥분의 빛이 반짝였다.

    “심 도우, 제가…… 제가 해냈습니다…….”

    원구는 심협을 보자 정신을 차리고는 옥합을 들고 휘청거리며 다가왔다.

    심협이 기꺼워하며 다가갔다.

    “그 검은색 잎사귀…… 뭔지 몰라도 정말로 절세의 진품이었습니다. 제련에 실패한 줄 알고 좌절했는데, 그 잎사귀가 기이한 효과를 발휘하여 융원고의 제작을 성공시켜줬습니다.”

    원구가 상자를 심협의 손에 올려두며 기쁨을 감추지 못하고 말했다.

    “정말 수고했어.”

    “어서, 어서 열어 보십시오.”

    원구는 마치 자신이 준 선물을 벗이 어서 열어보기를 바라는 듯 재촉했다.

    심협이 옥합을 열자 안에서 오색 광채가 뿜어져 나왔다.

    자세히 보니 옥합 안에는 번데기만 한 오채(五彩) 벌레가 웅크리고 있었다. 생김새는 서원반잠과 비슷했지만 크기가 조금 작았고, 등의 날개도 오색이었다.

    서원반잠을 주재료로 만들었지만, 융원고의 몸에서 뿜어져 나오는 기운은 혼돈흑련에 더 가까웠다.

    “원구, 정말 고맙다. 수고 많았어. 이제 좀 쉬도록 해.”

    심협은 옥합의 뚜껑을 닫고는 원구에게 포권했고, 단약을 하나 건넸다.

    원구는 심협의 인정을 받자 그대로 눈이 뒤집히면서 정신을 잃었다.

    심협은 원구를 별원까지 데려다준 뒤 자기 거처로 돌아와 서둘러 옥합을 열고 융원고를 꺼냈다.

    융원고의 사용 방법은 약선집에 잘 적혀 있었다.

    손끝에서 피를 한 방울 떨어트리자 융원고에 빠르게 융합되었고, 백옥 같은 고충은 순식간에 혈홍색으로 변했다. 이어 심협이 주문을 읊조리자 미간에서 정광이 번득이더니 그 안에서 가느다란 정사가 꿈틀거리며 빠져나와 융원고로 향했다.

    가느다란 실들이 융원고를 감싸고 천천히 녹아들자 융원고는 고통스러운 듯 몸을 꿈틀거리고 입을 크게 벌렸다.

    잠시 후, 융원고는 평안해지더니 휙 하고 날아올라 옅은 그림자가 되어 심협의 뒤로 떨어졌다.

    융원고가 등을 물어뜯으며 파고들자 심협은 등에서 통증을 느꼈고, 얼굴이 험악하게 일그러졌다. 한 번도 느껴보지 못한 고통이 척추에서 몰려왔는데, 마치 수많은 독침으로 찌르는 것 같았다.

    “으윽!”

    심협은 이를 악물었지만, 견디기 힘들어 신음이 절로 나왔다.

    <약선재>의 기록에 따르면, 본명고와 숙주의 연결은 매우 긴밀하여 서로 공생하는 것과 같다. 평범한 고사도 유년 시절부터 본명고를 몸에 넣어 함께 성장하고, 둘 사이의 연결을 강화하여 고충의 반감을 줄인다고 했다.

    융원고의 힘을 제대로 발휘하려면 반드시 이것을 본명고로 삼아야 하는데, 심협과 융원고는 도중에 억지로 융합하는 것인 만큼 반감이 컸고, 당연히 그 고통도 훨씬 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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