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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몽주-1155화 (1,155/1,214)

1155화. 다시는 보지 못할 걸세

“신마의 우물 수호자가 결정되었으니 여기 더 있을 필요가 없겠어.”

손오공은 원조와의 마지막 대화 이후로 기분이 좋지 않은 상태였기에 바로 떠나려 했다.

“손 도우, 이 신마의 우물을 노리는 마족이 다시 돌아올 수 있을지 모르지 않소? 심 도우는 신마의 기둥을 연화하는 중이니 우리가 호법을 서주는 게 어떨지요.”

백영롱의 제안에 손오공도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본래 속이 깊어 딱히 질투하지 않았고, 심협과도 친분이 있으니 반대할 이유가 없었다.

모두가 만불금탑을 벗어나 소서천 곳곳에서 경계를 섰다.

대전 안에는 이제 심협과 흑백진군 그리고 헌원 잔혼만 남았다.

“삼계가 혼란에 빠졌지만 이런 영웅들이 있으면 가망이 없지는 않겠군.”

흑백진군이 히죽 웃으며 말했다.

“흑백, 도대체 어떻게 된 건가? 치우의 원골 마기가 여기에 있다는 사실을 왜 내게 말하지 않은 게야?”

헌원 잔혼이 결인하여 방음 금제를 펼치고는 물었다.

“그 물건이 치우의 원골 마기인 걸 낸들 알았겠나? 알았다면 진즉 자네에게 말했겠지.”

“그럼 수라면구는 어디서 난 건가?”

헌원 잔혼의 물음에 흑백진군은 어깨를 으쓱였다.

“모르겠네. 어느 날 신마의 우물에서 갑자기 날아왔어. 신통이 강력하여 처음에는 치우가 과거에 이곳에 남긴 마기인 줄 알고 신마의 기둥을 발동하여 제압하고 금제를 연화하여 내가 쓰려고 했지. 한데 그 가면은 뭔가 사악하고 이상했어. 연화되기는커녕 오히려 이곳의 마기와 영력을 흡수하더군. 상황이 심상치 않아 대음양현금으로 계속 제압해 왔네.”

“마기뿐만 아니라 영력까지 흡수한다고?”

“그렇다니까! 심지어 대음양현금으로도 완벽하게 제압하지 못했어. 그게 계속 여기 있었다면 신마의 기둥이 손상을 입었을지도 몰라. 마족이 가져간 걸 다행이라고 해야 하나.”

헌원 잔혼은 말없이 있다가 고개를 돌려 심협을 보며 몰래 한숨을 쉬었다.

한편, 심협은 선천연보결을 시전하여 신마의 기둥을 연화하는 중이었다.

이 기둥의 금제는 평범한 법보의 금제와는 확연히 달랐다. 설령 선기라 해도 그 안의 금제끼리는 고리로 연결된 것 같은데, 이 기둥 안의 금제들은 아무런 연결 없이 제각기 흩어져 있었다.

이 금제들은 구조나 형체도 보통의 금제와는 달랐다. 평범한 법보의 금제가 대부분 질서정연하여 정원에 인위적으로 심어둔 나무 같다면, 이 금제들은 마치 밀림에 자란 나무들처럼 기이하고도 자연의 정취가 가득했다.

심협은 흑백진군의 말을 떠올렸다. 이 기둥 안의 금제는 천지에서 자연스럽게 만들어져 어렴풋이 깨닫기로는 금제 연화가 잠겨 있는 것 같았다. 또한 목영 기운이 뿜어져 나오는 것을 봐서는 목속성 금제 같았다.

심협이 이 금제를 연화하자 현묘한 의념이 전해졌는데, 하나같이 목속성 신통의 현묘함이었다.

그는 신목은택과 을목선둔 같은 목속성 신통에 정통했는데, 이 현묘한 의념이 더해지자 깨달음이 더욱 깊어졌다.

‘행운이로군.’

심협은 살짝 미소를 지었다.

심협은 경지가 높아지면서 선천연보결의 깨달음도 더 깊어졌기에 금방 신마의 기둥에 있는 목속성 금제를 연화하고는 서둘러 다음 금제로 넘어갔다.

이번 금제는 토속성이었다. 그는 토속성 신통에 대한 이해가 부족하여 한 번의 연화로 많이 깨닫지는 못했다.

‘아무래도 이 금제들을 깨닫는 것은 자신의 신통이 기본이 되어야 하는 모양이군.’

심협은 그렇게 생각하면서도 계속해서 술법을 시전했다.

신마의 기둥 안에는 천지오행, 건곤풍뇌 등 여러 방면의 금제가 대략 30여 개나 있어 연화할수록 많은 것을 깨달을 수 있었다. 특히, 그중에서도 뇌전 금제를 양팔의 풍뢰 영문과 추운축전화의 뇌둔술과 조합하자 뇌전 법칙을 거의 깨달을 뻔했다. 다만 안타깝게도 마지막 한 걸음을 나아가지 못해 완전한 깨달음을 얻는 데는 실패했다. 어쨌든 뇌전 신통의 깨달음이 더 깊어져서 뇌둔술도 더욱 정교해졌다.

신마의 기둥에는 이제 하나의 근원 금제만이 남았다. 이 금제는 흑백, 두 가지 색으로 되어 있었고, 완연한 태극 문양을 갖추고 있었다.

‘음양 금제? 설마…… 대음양현금인가?’

심협은 그렇게 추측하며 선천연보결을 운공하여 이 금제를 연화했다.

흑백 태극도에서 광화(光華)가 빛나며 빠르게 회전하자 심오한 법칙이 그의 머릿속으로 들어왔다. 바로 음양 법칙이었다.

그는 음양이기병 안에 담긴 음양의 힘을 이용하여 현양화마 신통을 만들었던 터라 음양이력에 대한 깨달음이 있었다. 한데 지금 음양 금제의 현묘함을 전수받자 음양의 도에 대한 깨달음도 빠르게 깊어져 갔다.

심협은 기뻐하며 양손으로 특이한 수인을 맺어 음양조화도를 운공하기 시작했다.

이 음양조화도에는 음양이력의 변화가 담겨 있다. 그런 이름이 붙은 이유이기도 하다.

미약하게나마 깨달았던 음양의 도에 대한 깨달음이 점점 깊어져 갔다.

제법 시간이 흐른 이 무렵, 신마의 기둥은 거의 금빛에 물들어 이제 곧 완전히 연화될 것 같았다.

흑백진군과 헌원 잔혼은 조용히 서서 지켜보았다.

한데 그때, 심협이 갑자기 두 눈을 번쩍 뜨자 몸에서 흑백 광망이 솟구쳐 그의 주위를 맴돌며 회전하더니 점점 흑백 태극 문양이 되어 갔다.

“이렇게 빨리 음양 법칙을 깨닫다니!”

흑백진군이 놀란 듯 감탄했고, 헌원 잔혼도 내심 놀라면서도 안도했다.

음양조화도는 음양 변화를 기초로 하여 만든 것으로, 이 그림을 수련하려면 반드시 음양 법칙을 깨달아야만 한다. 다만 음양 법칙을 깨닫기란 매우 어려운데, 삼계 안에서는 음양의 힘이 거의 근절되기까지 했다. 그러니 지금 신마의 기둥에 담긴 대음양현금이 심협에게는 음양의 힘을 깨달을 유일한 기회인 셈이다. 헌원 잔혼이 심협에게 신마의 우물을 차지하라고 한 가장 큰 이유도 바로 이것이었다.

심협이 양손을 결인하자 흑백 태극도가 빠르게 줄어들어 마지막에는 몸으로 들어갔다.

그가 체내에서 법력과 마기를 운공하자 파도가 치는 듯한 소리가 울렸고, 정광이 더 밝아져 두 힘이 하나가 되어 갔다.

잠시 후, 정광들이 하나의 그림이 되었다. 바로 음양조화도였다.

만불금탑 안의 천지영기와 순수한 마기 그리고 대전을 치르면서 남았던 각종 원기, 심지어 백영롱과 백천이 남긴 보라색 독무까지 미친 듯이 솟구쳐 음양조화도로 물밀 듯이 몰려왔다.

음양조화도의 빛이 강해졌고, 더 빠르게 회전하면서 이 원기들을 전부 흡수했다.

보라색 독무들도 음양조화도에 흡수되자 완전히 연화되었고, 심협에게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이게 자네의 음양조화도인가? 역시 대단하군.”

흑백진군이 감탄했다.

“맹독 법칙의 독무 따위도 연화하지 못하면 어떻게 치우와 대적하겠는가.”

헌원 잔혼이 별것 아니라는 듯 담담하게 말했다.

“흥, 자화자찬은…….”

흑백진군은 입을 삐죽대며 투덜거렸지만, 표정은 뿌듯해 보였다.

일각쯤 지나자 심협 몸의 음양조화도가 어두워졌고, 탑 안에서 솟구치던 원기도 안정을 되찾아갔다.

“감사합니다, 흑백진군 선배님, 헌원 선배님!”

심협은 신마의 기둥에서 내려와 두 사람에게 예를 올렸다.

“훌륭하군. 자네는 이미 음양조화도를 깨달았으니 이제 반고진공을 수련할 수 있겠어. 내가 사람을 제대로 봤군.”

헌원 잔혼이 고개를 끄덕였다.

“네, 최선을 다해 수련하여 선배님의 기대를 저버리지 않겠습니다.”

“음, 좋아, 좋아. 하하하!”

헌원 진원은 크게 웃더니 갑자기 금빛이 되어 멀리 날아갔고, 눈 깜짝할 사이에 사라졌다.

“선배님, 어디 가십니까?”

심협이 서둘러 외쳤다.

선계에 발을 들여놓은 이후로 그는 줄곧 스스로 생각하며 수련해왔다. 그러던 중 이번에 헌원 잔혼을 만난것이 짧은 시간이긴 해도 공법을 전수받았으니, 심협은 속으로 그를 은사이자 사부처럼 여기고 있었다.

“반고진공이 마침내 전수되었으니 내 심원은 모두 이루었네. 그러니 여기서 헤어지세. 아마 다시는 보지 못할 걸세.”

헌원 잔혼의 목소리가 멀리서 울렸고, 심협은 크게 실망했다.

“헌원이 심원을 이뤘으니 기쁜 일 아닌가. 그리 실망할 것 없네.”

“네, 흑백 선배님. 혹시 헌원 선배님이 어디로 가셨는지 아십니까? 계속 이 비경에 남아 계실까요?”

심협이 감정을 추스르며 물었다.

“나도 어디로 갔는지 모르겠네. 저 친구와는 오랫동안 알고 지냈지만, 무슨 생각을 하는지 도통 알 수가 없어. 다만, 여기에 남아 있지 않을 것은 확실하네.”

“어째서죠?”

“마족이 이곳을 알아냈으니 신마의 우물 입구를 계속 여기에 두는 것은 안전하지 않아. 안전한 곳으로 옮겨야 해. 신마의 우물을 옮기면 저쪽 비경도 대부분 무너질 테니 당연히 어딘가로 옮겨가겠지.”

“제가 신마의 우물 입구를 옮겨야 하는 건가요? 신마의 우물 입구를 옮기려면 어마어마한 공간이 필요하다고 들었습니다. 북명곤이야 체내에 공간을 품고 있는 데다가 공간 법칙까지 깨달았으니 영산에서 입구를 몰래 훔쳐 올 수 있었겠지만, 제게는 그런 능력이 없습니다.”

“맞아. 신마의 우물 입구를 옮기려면 매우 강력한 공간의 힘이 필요하지. 자네에게는 그런 능력이 없지만, 자네의 그 그림 법보라면 가능할 걸세.”

흑백진군이 웃으며 답했다.

“산하사직도 말씀입니까? 그것은 천도지보이니 안에 공간의 힘이 풍부한 게 사실이지만, 저는 아직 그 힘을 제대로 쓸 수가 없습니다.”

심협이 산하사직도를 꺼내며 말했다.

“그건 상관없네. 오랫동안 신마의 우물 입구에 머물며 지내다 보니까 공간의 법칙을 조금이나마 깨우쳤으니, 내가 도우면 그리 어려운 일도 아닐세.”

“그렇군요. 그럼 부탁드리겠습니다.”

심협이 고개를 숙이며 공수했다.

서둘러야 했기에 두 사람은 섭채주와 손오공 등을 만불금탑으로 불러들인 뒤에 바로 시작했다.

심협이 손을 휘두르자 산하사직도가 금빛이 되어 하늘 높이 솟구치더니 신마의 기둥 위로 날아가 사라지면서 천천히 펼쳐졌다.

흑백진군의 몸이 흔들리며 신마의 기둥으로 녹아들자 기둥에서 갑자기 흑백 광망이 미친 듯이 솟구쳤다. 안에는 아직도 공간의 힘이 담긴 은빛이 섞여 있었는데, 비록 북명곤처럼 크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약하지도 않았다.

흑백 광망이 뭉쳐지면서 공간 은빛도 함께 뭉쳐지자 순식간에 흑, 백, 은 삼색 빛줄기가 되어 허공의 산하사직도 안으로 들어갔다.

산하사직도의 광망이 강해지며 순식간에 천 배가 넘게 커졌고, 하늘을 뒤덮는 거대한 그림으로 변하더니 만불금탑 밖까지 늘어났다.

거대한 그림 안에서 하얀 빛이 세차게 뿜어져 나와 방대한 공간의 힘의 파동을 뿜어내자 주위의 허공에 수많은 물결이 일어났다. 심협이 발동했을 때보다 훨씬 더 강력했다.

심협이 허공에서 고개를 들고 보니, 그림 안의 무한한 공간의 힘이 느껴졌다. 마치 수많은 거대한 용이 꿈틀거리는 것 같아 심신이 흔들릴 정도였다.

“역시 진정한 공간의 법칙을 통해서만 산하사직도를 완전히 발동할 수 있구나.”

그는 낮게 중얼거리고는 산하사직도를 결인하여 흑백진군의 술법과 조합을 맞췄다.

신마의 기둥에서 계속해서 삼색 빛줄기가 산하사직도에 주입되자 그림이 점점 커졌고, 소서천 대부분을 뒤덮고서야 천천히 멈췄다.

신마의 기둥 안에서는 흑백진군이 양손으로 차륜 같은 결인을 맺었다.

허공의 산하사직도가 천천히 운공하며 쏘아낸 만 줄기 은빛이 소서천 대부분을 뒤덮었다.

“심협, 자네는 공간 법칙을 모르고 나는 외부의 힘에 불과하니 산하사직도를 이 정도 발동하는 것이 한계일세. 이다음이 특히 중요한데, 자네와 내가 힘을 합쳐 은빛이 뒤덮은 공간을 산하사직도 안에 넣어야 하네.”

흑백진군이 신중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럼 산하사직도에서 제외된 비경은 어떻게 되는 겁니까?”

“신마의 우물을 거두면 근원이 사라지는 셈이니 나머지는 자연히 무너지겠지.”

“허나 밖에 저렇게 많은 천재지보와 생령들이 살아 있는데…….”

심협이 무거운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마족이 이곳을 알아냈으니 위험하네. 무엇이 더 중요한지 생각해보게.”

“음, 알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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