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48화. 놀라움과 분노
자 선생은 헌원신검의 위력을 잘 알고 있었기에 튕겨 날아가던 힘을 이용해 더욱 빠르게 뒤로 물러나며 주먹을 휘둘렀다. 이 주먹의 궤적은 둥글면서도 네모져서 변화무쌍한 움직임으로 헌원신검의 모든 공세를 막아냈다.
콰쾅!
굉음과 함께 자 선생의 주먹에서 검은색 빛무리가 폭발하자 주위의 허공이 일그러지며 헌원신검의 칼자루를 두들겼다.
양쪽이 맞부딪히기도 전에 붉은색 검의 허상이 갑자기 헌원신검에서 뿜어져 나왔고, 붉은색 불꽃이 섞여 있는 심검 신통이 단숨에 자 선생의 몸을 파고들었다.
자 선생은 붉게 달아오른 칼에 찔린 것처럼 머릿속에서 극심한 고통을 느꼈고, 기이한 화력이 신혼 깊이 파고들어 태워버리는 것 같았다.
심협은 신혼이 천존 경지로 돌파한 이후 심검 신통을 더욱 세밀하게 장악하게 됐고, 심지어 홍련업화를 결합하면서 위력이 훨씬 강해졌다.
“으아아아!”
자 선생이 비명을 지르며 양손으로 머리를 감싸고는 덜덜 떨었다.
헌원신검이 변한 검의 허상이 목을 스쳐 지나가자 자 선생의 비명이 뚝 그쳤고, 남은 머리가 툭 떨어졌다.
그 순간, 산하사직도가 수십 배로 길어지더니 은빛이 마수를 휘감았다.
이 마수는 제대로 저항해보지도 못하고 쉽게 빨려 들어갔다.
그 순간, 머리를 잃은 자 선생의 몸에서 펑 하는 굉음이 들리며 수많은 짙은 검은색 마기가 뿜어져 나왔고, 거대한 몸은 빠르게 줄어들었다.
심협은 마족의 신통이 기이함을 잘 알고 있었기에 곧장 양손을 결인했다.
수많은 금색 뇌전이 헌원신검에서 뿜어져 나가 금색 그물이 되더니 순식간에 반경 수백 장의 마기를 감쌌다.
검은색 마기는 금색 그물에 막혔다.
“폭(爆)!”
심협이 양손을 결인하며 외치자 금색 그물이 갑자기 폭발하면서 수많은 뇌전이 폭우처럼 쏟아져 모든 마기를 제거했다.
잠시 후, 모든 마기는 깨끗하게 사라졌고, 자 선생의 잔혼이 도망치지 못하자 머리 없는 커다란 몸은 원래 크기로 줄어들었다.
그 몸에는 어떤 기운도 남지 않았으나, 심협은 방심하지 않고 결인하여 헌원검의 신뢰로 그 잔해를 공격했다.
잔해는 폭발하면서 푸른 연기가 되어 사라졌고, 보라색 저물 팔찌가 떨어졌다.
그 순간, 심협이 눈치채지 못할 정도의 극도로 옅은 한 줄기 은빛이 금색 뇌전 그물 사이를 빠져나갔고, 다시 법칙 공간을 사용하여 허공 저 멀리 사라졌다.
한편, 조룡과 백천은 탑 꼭대기 공간 가장자리에 서서 몰래 술법을 부려 벽에 있는 흑백 금제를 파훼하려 했다.
열 손가락에서 가느다란 하얀 실을 허공에 흩어놓고 흑백 금제와 허공의 움직임을 자세히 감지하던 조룡의 얼굴에 기쁜 기색이 떠올랐다. 그는 손가락을 움직여 하얀 실로 허공에서 은빛을 끌어냈다. 그 안에는 은색 영부가 들어 있었다.
‘대진영상공간영부!’
조룡은 영부를 잠시 살펴보더니 기뻐하며 바로 챙겼다.
“조룡 도우, 방금 은빛이 반짝인 것 같은데 그게 뭐였소?”
백천이 찰나에 일어났던 기운 파동을 감지하고는 돌아보며 물었다.
“아무것도 아니오. 괴뢰 법칙으로 주위를 살펴보고 있었소.”
조룡은 태연하게 대답했지만, 백천은 그 말을 전혀 믿지 않았다. 현재 두 사람의 관계는 미묘하여 겉으로는 동맹이지만 그 결속력은 느슨했다.
백천은 더 캐묻지 않고 시선을 거뒀다.
조룡은 손가락을 움직여 괴뢰 법칙의 하얀 빛을 영부 안으로 주입했다.
대진영상공간영부가 갑자기 하얀색으로 변하며 떨렸고, 순수한 은빛으로 빛나더니 그 안에서 검은색 신혼 소인이 끌려 나왔다.
신혼 소인은 도망치려 했지만, 두 개의 괴뢰 백사에 단단히 갇혀버렸다. 자 선생의 신혼이었다.
‘심협에게 당하자마자 신혼을 대진영상공간영부에 넣어 도망치려던 건가.’
조룡은 그렇게 생각하며 살기가 스치는 눈으로 노려보며 결인했다.
두 줄기 하얀색 뇌광이 자 선생의 신혼 소인을 감싸고는 두 번의 천둥소리를 울렸고, 자 선생의 신혼이 폭발해 검은 연기가 되어 사라졌다.
대진영상공간영부는 완전히 조룡에게 넘어가 더는 움직이지 않았다.
조룡은 계속해서 술법을 시전하여 이 영부에 이중 봉인을 걸고는 더 은밀한 곳에 숨겼다.
그는 크게 기뻐했다. 대진영상공간영부가 생겼으니 할 수 있는 일이 더 많아진 것이다.
그러나 조룡도 미처 깨닫지 못한 것이 있었다. 신혼 소인이 폭발하면서 생겨난 검은 기운이 마치 살아 있는 것처럼 꿈틀거리며 그의 체내로 들어간 것이다.
* * *
법칙 공간 안. 심협은 안도하며 소매로 바닥에 떨어진 보라색 팔찌를 거두고는 결인하여 현양화마 변신을 풀었다.
그의 거대한 몸이 영광으로 번쩍이며 빠르게 줄어들었고, 이내 원래 모습으로 돌아왔다.
안색은 조금 창백한 상태였다. 음양조화도와 조합한 현양화마 신통은 위력이 배로 강해졌지만, 법력 소모 역시 훨씬 커서 지금 그의 경지로도 오래 유지할 수는 없었다. 단전 안의 법력은 벌써 절반이나 소모됐다.
심협은 기운을 가다듬고 두 개의 회복 단약을 꺼내서 먹으려고 했다. 한데 그때, 법맥 안의 혼돈흑련 뿌리가 갑자기 날아가 신마의 우물로 파고들었다.
자 선생이 죽으면서 주위의 검은색 법칙 공간이 무너지기 시작하여 혼돈흑련 뿌리를 막을 수 없었다.
호로록!
폭포 같은 천지 영력이 혼돈흑련의 뿌리를 타고 단전으로 녹아들었다.
이 천지영기들은 매우 순수하여 잠깐의 운공으로 연화하자 그의 원기로 변해 눈 깜짝할 사이에 법력이 가득 채워졌다.
심협은 일순 당황했으나, 이내 크게 기뻐했다. 상황이 이러하다면 법력 소모를 걱정할 필요 없이 싸울 수 있지 않은가!
더욱이 혼돈흑련과의 연결이 더욱 긴밀해져서 그가 이런 생각을 하자마자 혼돈흑련이 저절로 신마의 우물에서 영력을 뽑아내 보충했다.
그는 심호흡하며 흥분한 감정을 다스리고는 신식으로 보라색 저물 팔찌 안을 살폈다.
자 선생의 저물 공간은 임랑환보다도 컸는데, 그 안에는 온갖 진기한 마도(魔道) 재료가 가득했고, 강력해 보이는 마보도 몇 점 들어 있었다.
그러나 심협은 이것들에 대해서는 신경 쓰지 않았다. 그저 대진영상공간영부를 찾았을 뿐이다. 한데 아무리 찾아도 이 부적은 보이지 않았다.
심협은 눈살을 찌푸리며 신식으로 주위를 살폈으나, 그럼에도 대진영상공간영부의 흔적은 없었다.
‘왜 없지? 그는 정말로 신마의 우물 입구를 차지할 뜻이 없었던 건가?’
그러나 상황이 수시로 변하고 있으니 더는 생각할 여유가 없었다.
심협이 결인하여 휘두르자 금색 헌원검기가 사방으로 뿜어져 나갔다.
검은색 법칙 공간은 이미 부서져가는 중이었는데, 헌원검기의 일격까지 더해지자 순식간에 완전히 부서졌다.
눈앞이 밝아졌고, 심협은 그곳을 빠져나왔다.
한데 주위를 둘러보던 그의 얼굴에 놀라움과 분노가 교차했다.
탑 꼭대기 공간 가장자리, 북명곤은 온몸을 은빛으로 감싸고 있었다. 그의 오른손에서 뿜어져 나오는 실제 같은 은빛이 거대한 손톱으로 변하여 누군가를 잡고 있었다. 바로 섭채주였다.
북명곤과 멀지 않은 곳에 선 백영롱과 여아촌의 세 사람은 그와 싸운 듯했지만, 적수가 되지 못한 것인지 크게 지쳐 보였고 옷이 너덜너덜해진 상태였다.
조룡과 백천은 본래 있던 자리에서 마치 재미있는 구경이라도 하듯 웃고 있었다.
반면 손오공 등과 원조는 여전히 싸우는 중이었다. 원조는 중상을 입어 몸 절반이 피투성이였다. 다만 북명곤과 백영롱 등이 싸우는 사이, 미소와 도산동이 끼어들면서 전세가 안정되어갔다. 수에서는 밀리지만, 원조와 미소는 이미 천존에 근접한 존재라 문수나 보현은 이들에 미치지 못했고, 양쪽의 싸움은 팽팽했다.
심협이 나타났을 때, 탑 안의 모든 사람은 표정이 변했다.
자 선생이 법칙 공간을 시전하여 심협을 가두었건만, 길지 않은 시간에 자 선생을 죽이고 빠져나오다니!
심협이 자 선생의 첫 번째 머리를 벤 것은 섭채주의 시간 법칙 덕분이었다. 한데 섭채주 없이 혼자 갇혔는데 어찌 이런 일이 일어났단 말인가!
오직 백천의 얼굴에만 화색이 돌았다. 그는 자 선생에게 치명적인 약점을 잡혔기에 아까도 조룡과 힘을 합쳐 덤벼든 것이었다. 한데 이제 자 선생이 죽었으니 내심 심협을 응원하고 싶은 마음마저 들었다.
심협은 모두의 시선을 받으며 발아래서 뇌광을 번쩍였고, 순식간에 사라졌다가 북명곤과 멀지 않은 곳에 귀신처럼 나타났다.
“허허, 이렇게 쉽게 자 선생을 죽이다니, 심 도우의 실력이 이 정도일 줄은 몰랐소. 게다가 뇌둔술도 이전보다 더 빨라졌구려. 감축하오.”
북명곤이 웃으며 말했다.
“백 도우, 의리를 위해 힘써주심에 감사의 뜻을 표합니다.”
심협은 북명곤을 무시하고는 백영롱 등에게 고개를 살짝 숙였다.
북명곤은 눈이 치켜 올라갔지만, 화내지 않았고, 기운도 아무런 흔들림이 없었다.
“심 도우, 그럴 것 없네. 내가 곤경에서 벗어난 것도 다 심 도우 덕이 아닌가. 은혜를 갚는 것은 당연하다. 다만, 저자가 강력하여 내 힘으로는 섭 도우를 구해낼 수가 없으니 정말 볼 낯이 없군.”
백영롱이 쓴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어쨌든 여아촌의 은혜는 잊지 않고 반드시 보답하겠습니다.”
심협의 진중한 목소리에 백영롱은 별다른 말을 하지는 않았지만, 눈 깊은 곳에서 화색이 스쳤다.
그녀는 이미 손 파파로부터 심협의 신분과 배경, 일 처리, 성격 등등을 들어서 알고 있었다. 이번에 섭채주를 구하기 위해 나선 것은 은혜를 갚기 위함도 있었지만, 심협에게 호감을 사기 위함이기도 했다.
여아촌은 고립되어 있다. 대당 관부와 보타산, 화생사 등의 대문파와는 관계가 깊지 않다. 삼계가 혼란해지고 있는 지금, 여아촌이 살아남으려면 다른 문파와의 관계를 굳건히 하고 내부적으로 힘을 키워야 했다. 심협은 실력이 막강하고 대당 관부, 보타산, 화생사 등 거대한 종문들과 관계가 깊으니 그가 힘써준다면 일이 순조로워질 터였다.
“북명 도우, 내 도려를 공격하다니, 이게 무슨 뜻이지? 내가 무슨 잘못이라도 했던가?”
심협은 그제야 북명곤을 돌아보며 차갑게 물었다.
“잘못이라니, 그런 건 없네. 그저 심 도우가 가진 물건이 필요한데 심 도우가 너무 강해서 빼앗을 자신이 없으니 본의 아니게 실례를 했네.”
북명곤은 적개심이 없다는 듯 웃으며 말했다.
“물건? 그게 뭐지?”
심협이 한쪽 눈썹을 치켜올리며 다시 물었다.
“당연히 대진영상공간영부요. 그 영부만 넘겨주면 바로 섭 도우를 풀어주겠소.”
“북명 도우도 신마의 우물 입구에 관심이 많은 모양이오?”
“만불금탑에 온 사람치고 신마의 우물 입구에 관심 없는 자가 있겠소? 심 도우는 원래도 그 영부를 하나 가지고 있으니 그 마족의 것까지 거두지 않았소? 그저 한 장 달라는 것뿐이니 심 도우도 너무 인색하게 굴지 마시오.”
북명곤이 대수롭지 않다는 듯 웃으며 답했다.
여아촌 일행은 의아한 눈으로 심협을 돌아봤다.
심협은 안색 하나 바뀌지 않았지만, 속으로는 은근히 초조했다. 지금 그에게는 대진영상공간영부가 한 장뿐이다. 그러니 이것을 북명곤에게 준다면 신마의 우물 입구를 차지할 자격을 잃게 된다. 원조와 미소의 머리를 가져와도 이 입구를 차지할 수 없게 되리라.
그렇다고 영부를 북명곤에게 주지 않으면 섭채주가 위험해진다.
심협은 섭채주를 살폈다. 몸의 기운이 약해졌고, 온몸에 가느다란 실 같은 은빛이 뒤덮여 꼼짝도 하지 못했다. 일종의 공간 속박 신통 같았다. 게다가 표정이 멍하고 심협을 보고도 아무런 반응이 없는 것을 보니 기이한 비술로 신혼을 제어하고 있는 게 분명했다.
이런 상황이니 전력을 다한다 해도 섭채주를 제때 구해낼 자신이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