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대몽주-1145화 (1,145/1,214)

1145화. 진짜 목적

흑백 존재는 세 사람이 마진에서 도망친 것도 의외였는데 이제 하얀 손까지 통과하자 눈살을 찌푸리더니 두말없이 양손을 문질렀다.

돌기둥 주위의 흑백 광망이 순식간에 절반으로 줄어들어 서로 휘감으며 돌기 시작하자 순식간에 거대한 흑백 태극 문양이 만들어졌다. 이 문양이 빠르게 회전하자 그 안에서 흑백이 뚜렷한 태극의 빛줄기가 뿜어져 나와 돌기둥에 바짝 다가온 세 사람을 뒤덮었다.

태극 문양이 뒤덮자 위는 가벼워지고 아래는 무거워져서 마치 천지의 혼돈이 막 피어나는 것만 같았다.

기이한 법칙 파동이 갑자기 나타나 흑백의 태극이 뒤덮은 영역 안의 모든 것이 정체되었다. 영기 파동이든 허공의 흔들림이든 얼어붙은 것처럼 굳어버렸다.

세 사람도 마치 호박(琥珀) 안의 파리처럼 모든 움직임이 멈췄다.

대전 안의 흑백 광망이 줄어들면서 섭채주와 백천, 조룡 등을 뒤덮었던 검은 빛이 갑자기 사라졌다. 육각마진은 그대로 있었지만 위력은 크게 약해진 상태였다.

섭채주의 몸에서 금백의 광망이 강하게 뿜어져 나오며 등에 금백의 나비 날개가 돋았고, 손에는 약목신궁이 나타났다.

휙! 휙!

섭채주의 손이 움직이자 파공성이 연이어 들려왔고, 반 척 길이의 금색 화살 열 개가 마치 순간이동하듯 날아가 단숨에 육각마진의 진안들에 꽂혔다.

조룡과 백천도 곧장 검은색 빛줄기와 보라색 독무로 육각마진을 공격했다.

펑! 펑! 펑!

폭발음과 함께 육각마진이 심하게 부서졌다.

세 사람은 자유를 되찾자 서둘러 대전 가장자리로 물러났다.

“천지를 개벽하고 음양을 구분한다. 저건 음양(陰陽) 법칙이다!”

조룡이 흑백 태극 문양을 보더니 눈을 반짝이며 중얼거렸다.

“음양 법칙!”

섭채주가 깜짝 놀랐고 백천의 표정도 변했다.

흑백의 존재는 섭채주 등에게는 신경도 쓰지 않고 돌기둥을 뚫어지게 쳐다보며 양손을 빠르게 변환하더니 법결을 맺으며 입을 벌렸다.

흑백으로 빛나는 팔뚝 굵기의 빛줄기가 입에서 뿜어져 나오더니 번개처럼 미소 등의 몸을 관통했다.

세 사람은 몸을 크게 떨며 땅으로 떨어졌고, 각자 흩어지게 됐다.

이 무렵, 원조와 자 선생은 몸이 실체로 돌아와 있었다. 가슴에는 커다란 구멍이 생겼는데 피마저 음양 법칙에 갇혀서 흐르지 않았다.

미소는 여전히 흐릿했지만 반허반실(半虛半實) 상태였고, 구름으로 만든 듯한 반투명한 갑옷을 몸에 걸치고 있었다. 바로 몽운환갑이었다.

몽운환갑 덕분에 그녀는 비록 피를 토하긴 했어도 가슴이 뚫리지는 않았다.

흑백 존재가 눈살을 찌푸리더니 다시 한번 입을 벌리자 두 줄기의 더 가느다란 흑백 빛줄기가 원조와 자 선생의 머리로 날아갔다. 두 사람을 완전히 없앨 생각이었다.

한데 그때, 사슬에 봉인되어 있던 핏빛 면구가 갑자기 강한 빛을 뿜어내더니 눈에서 두 줄기 기다란 핏빛 빛줄기로 흑백의 태극을 관통했다.

흑백 태극 문양이 격렬하게 흔들렸고, 이내 쾅 하며 사라졌다.

이어서 커다란 흑백 돌기둥도 비명을 지르더니 흑백의 영광이 순식간에 매우 어두워졌다.

흑백 존재가 비틀거리며 뒤로 물러서자 원조와 자 선생에게로 날아가던 두 빛줄기도 사라졌다.

원조와 미소는 자유를 되찾자 곧장 날아올라 대전 가장자리로 도망쳤다.

하지만 자 선생만은 도망가지 않고 한 줄기 검은 그림자가 되어 다시 핏빛 면구를 향해 돌진했다.

“죽고 싶은 게냐!”

흑백 존재가 화를 내며 몸을 가누고는 양손으로 허공을 움켜쥐었다.

그 순간, 하늘을 찌르는 날카로운 소리가 울려 퍼지더니 빼곡한 흑백 검의 허상이 공간 절반을 뒤덮었고, 천지를 뒤집을 기세로 자 선생에게 날아갔다.

검의 허상마다 뿜어져 나오는 음양 법칙은 흑백 태극만큼 강렬하지는 않았지만, 그럼에도 이 검의 허상이 지나가는 곳마다 모든 것이 느려졌다.

자 선생은 눈가가 떨리더니 양손에서 혈광을 뿜어내며 좌우로 휘둘렀다.

두 줄기 커다란 혈광이 뿜어져 나가 펼쳐지면서 몸 주위의 끈적한 물 같은 핏빛 광역(光域), 법칙 공간이 펼쳐졌다.

흑백 검의 허상이 순식간에 날아가 핏빛 광역을 베었다.

푹! 푹!

무언가를 찌르는 듯한 소리가 연이어 울려 퍼지면서 핏빛 광역은 눈 깜짝할 사이에 만신창이가 되어버렸다.

하늘 가득한 흑백 검의 허상이 전부 모여들자 순식간에 이백 장 크기의 흑백 대검 두 자루가 되어 번개처럼 빠르게 자 선생을 베었다.

표정이 크게 변한 자 선생은 양손에서 혈광을 강하게 뿜어냈다. 혈광은 순식간에 두 자루의 거대한 혈홍색 칼날이 되어 흑백의 대검을 막았다.

퍼펑!

흑, 백, 홍 세 개의 기이한 빛이 충돌하자 폭발이 일어났다. 두 개의 법칙의 힘의 파동이 사방으로 휘몰아치자 흑백 대검의 기세가 잠시 주춤해졌다.

자 선생은 이 틈에 재빨리 뒤로 피하려 했다.

“오고 싶으면 오고 가고 싶으면 갈 수 있을 줄 알았더냐!”

흑백의 존재가 차갑게 비웃으며 결인했다.

허공에서 미약한 파동이 일어나더니 흑백 광사가 자 선생의 머리 위에 나타나 그의 비행 속도보다 몇 배나 빠르게 내려왔다.

꽈르릉!

천둥 같은 굉음이 울려 퍼졌는데, 그 안에는 포효가 섞여 있었다.

검은 그림자가 뒤로 날아가 순식간에 대전 가장자리에 도착하면서 자 선생의 모습이 나타났다. 그는 두 배 이상으로 커진 몸과 자흑색 비늘이 가득한 진마(眞魔)의 형태로 변해 있었다. 다만 오른팔이 잘려서 피가 뚝뚝 떨어지고 있었고, 눈에서는 무서운 흉광을 뿜어냈다.

흑백 존재는 자 선생을 쫓아가지 않고 돌기둥을 향해 결인했다.

한 줄기 굵은 하얀 빛이 녹아들자 하얀 사슬 대진이 굉음을 내며 다시 한번 면구의 혈광을 제압했다.

그와 동시에 대전 안의 허공에 빛이 번쩍이더니 심협, 백영롱, 북명곤, 손오공 등이 나타났다. 이어서 소백룡과 도산동, 여아촌의 세 사람도 밖에서 날아왔다.

대전 안의 상황을 본 모두는 깜짝 놀랐다. 이곳의 형세는 너무나 기이하여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는지 짐작할 수 없었던 것이다.

도산동은 얼른 정신을 차리고 곧장 미소에게로 날아갔다.

“오라버니!”

섭채주도 기뻐하며 서둘러 심협 옆으로 날아왔다.

“채주! 여기는 어떻게 온 거야?”

“그게…….”

섭채주는 심협 등이 만불금탑으로 들어간 뒤 밖에서 일어났었던 일들과 그들이 나타나기 전까지의 상황을 빠르고 간략하게 설명했다.

북명곤과 손오공 등도 옆에서 조용히 들었다.

이야기기 끝나자 심협은 커다란 돌기둥을 바라봤다.

“그럼 여기가 만불금탑 9층이고 저 기둥이 신마(神魔)의 기둥인가? 뒤에 있는 저 커다란 소용돌이가 진짜 신마의 우물 입구겠군. 그래서 극도로 순수한 마기와 영력이 담겨 있는 거겠지. 저 핏빛 면구가 수라면구…… 엇, 저것은……?”

돌기둥의 핏빛 면구를 바라보던 그의 눈동자가 갑자기 움츠러들었다.

이 면구는 신마의 기둥의 기운에 뒤덮여 있어서 아래층에서는 제대로 감지가 되지 않았다.

“이 기운…… 치우의 원골 마기다!”

심협이 경악해 외쳤다.

그는 마침내 마족들이 무슨 이유로 여기까지 왔는지 알 것 같았다. 자 선생은 수미전의 공간 금제로 만불금탑을 공격하고 원조와 미소는 만불금탑 공간 안에서 대자재화천마기로 공간을 침투했다. 이는 안팎에서 만불금탑의 금제를 부수기 위함이었다. 그들의 진짜 목적은 신마의 우물을 빼앗는 것이 아니라 저 치우의 원골 마기를 얻는 것이었다!

손오공도 핏빛 면구를 봤지만, 크게 신경 쓰지 않고 오히려 자 선생과 원조, 미소 등에게 관심을 돌렸다.

“모두 왔는가? 좋다, 그럼 시련을 계속하지.”

흑백 존재는 심협 등을 보고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그 목소리는 매우 낯익었는데, 바로 일전에 만불금탑 안의 흑백진군이라는 자의 목소리였다.

심협은 흑백진군을 자세히 살펴봤다. 그는 진짜 생령이 아니라 헌원 잔혼이나 화령자와 비슷해 보였다. 잔혼이나 혼체인 것 같았다.

“아미타불. 흑백진군 선배님, 마족이 이곳에 침입하였으니 시련을 잠시 멈추고 먼저 저들을 물리치는 게 좋지 않겠습니까?”

보현보살이 합장하며 말했다.

“그럴 것 없다. 너희는 모두 저 마족 놈들을 죽여라. 머리를 가장 많이 가져오는 자가 신마의 우물을 차지하게 될 것이다.”

흑백진군이 자 선생 등을 가리키며 말했다.

원조와 미소는 그 말을 듣고는 표정이 돌변하더니 바로 흑백의 광망으로 변하여 도망쳤고, 도산동이 뒤를 따랐다. 심협이나 손오공, 북명곤 등 누구도 무시할 수 없는 존재인데 뒤에는 흑백진군까지 있다. 기습으로도 핏빛 면구를 얻지 못했으니 더는 기회가 없다고 생각한 것이다.

청구산 호족 입장에서는 마족과 공모하였다고는 해도 이익이 되는 선에서만 돕는 것이지 목숨까지 바칠 생각은 추호도 없었다.

한편, 이를 지켜보던 흑백진군이 차갑게 웃더니 돌기둥을 내리쳤다. 그러자 대전 주위의 벽에서 섬뜩하고도 날카로운 소리가 울리더니 갑자기 두꺼운 흑백 영광이 한 겹 감돌았다.

펑! 펑!

두 번의 굉음과 함께 원조와 미소는 튕겨 돌아왔다. 벽의 흑백 영광은 이들과 부딪힌 순간 한 번 출렁였으나, 바로 원래대로 돌아갔다.

두 사람은 안색이 좋지 않았다. 특히 미소는 허화 신통을 발동한 상태였는데도 흑백 금제를 통과할 수 없었다. 아무래도 이 금제 안에도 음양 법칙이 담겨 있는 것 같았다.

“조금 전이었다면 도망가도록 내버려 뒀을 것이다. 대륜명왕진이 부서지면서 서둘러 신마의 기둥을 발동해야 했으니 주위에 다른 금제를 설치할 수 없었기 때문이지. 허나 지금은 손이 자유로워졌으니 네놈들을 이대로 놓친다면 이 탑에서 보낸 세월이 헛수고가 아니겠는가.”

흑백진군이 몸을 일으키며 차가운 미소를 지었다.

이 말에 미소와 원조는 속으로 크게 후회했다.

한편, 조룡과 백천도 경악했다.

이들은 심협, 영산 등과는 다르게 흑백진군과 어울리지 않았고, 대전에 차단되어 있었으니 그 처지가 매우 위험했다.

조룡은 흑룡의 몸을 얻은 뒤로 실력이 크게 강해지자 신마의 우물 입구를 가질 생각이 들었는데, 지금은 물론 포기했다. 지금 상황에서는 무사히 도망칠 수만 있어도 감사해야 할 터였다.

심협과 손오공 등은 방금 흑백진군이 한 말이 홧김에 한 것인지 아니면 진짜인지 확신할 수 없어서 한동안 말없이 서로를 바라보기만 했다.

“다들 왜 멍하니 있는 거지? 신마의 우물을 포기할 건가?”

흑백진군이 조용히 말했다.

“도우가 그리 말한다면, 당연히 요구를 따라야겠지.”

손오공이 눈을 번득이더니 키득거리며 금빛으로 변하여 원조를 향해 돌진했다.

문수와 보현, 소백룡도 그 뒤를 따라 원조를 에워쌌다.

원조는 떨떠름한 표정으로 검은 봉을 휘두르며 맞섰다. 이내 이들 사이에서는 격렬한 충돌음이 울리며 금빛과 광망에 뒤덮였다.

잠시 지켜보던 흑백진군이 신마의 기둥으로 들어가자 하얀 사슬 대진의 영광이 더 강해져 핏빛 면구를 제압했다.

“우리도 가자. 절대로 마족이 저 핏빛 면구를 차지하게 해서는 안 돼!”

심협은 섭채주에게 전음을 보내고는 두 발에서 뇌광을 번쩍이며 그 자리에서 사라졌다.

다음 순간, 그는 자 선생 뒤에 갑자기 나타났고, 커다란 산하사직도가 머리 위에 나타나 그를 뒤덮었다.

섭채주의 손끝에서는 금빛이 반짝이더니 약목신궁이 나타났다. 그녀가 양손을 움직이자 커다란 금빛 화살이 곧장 자 선생에게로 날아갔다.

자 선생은 눈살을 찌푸리더니 양손을 결인했다. 그러자 온몸에서 흑홍색 마기가 뿜어져 나왔고, 몸이 다시 커지면서 근육이 솟아올랐다. 등에서는 근육이 꿈틀거리더니 두 개의 두꺼운 팔이 자라났다. 잘린 팔에서도 흑홍색의 가느다란 실들이 나오더니 서로 뒤엉켰고, 순식간에 다시 팔이 생겨났다.

그의 목에서도 혈광이 반짝이는가 싶더니, 머리가 두 개가 되었다.

눈 깜짝할 사이에 자 선생은 머리 두 개에 팔 네 개인 흉악한 자흑마신(紫黑魔神)이 되었고, 수많은 마기를 비단뱀처럼 뿜어냈다.

그가 두 팔로 허공을 누르자 쾅, 쾅 하는 둔탁한 소리가 울려 퍼졌고, 두 개의 칠흑 같은 거대한 손이 나타나 산하사직도를 막았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