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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몽주-1144화 (1,144/1,214)
  • 1144화. 수라면구

    심협은 고개를 흔들어 생각을 털어내고는 주위를 둘러보았다.

    “이 공간은 어떻게 된 걸까? 왜 갑자기 붕괴한 거지?”

    “아무래도 위에서 난리가 난 모양이다. 절대적으로 강력한 힘이 만불금탑의 근간을 부순 것 같다. 이곳의 공간은 매우 안정되어 있었는데, 단번에 금탑을 부쉈다면 예사로운 자가 아니야. 분명 천존기 이상의 인물일 터. 혹시라도 마주치게 되면 조심해야 한다.”

    화령자가 보기 드문 신중한 표정으로 주의를 주었고, 심협은 고개를 끄덕이며 법력을 운공하여 주위를 경계했다.

    주위의 흐트러진 공간 폭풍이 안정되기 시작하자 공간의 파편들도 줄어들었다. 표정이 밝아진 그는 손오공 등을 살펴보려고 했다.

    그때, 오색의 광망이 눈앞의 공간 폭풍에서 뿜어져 나와 그의 옆을 쏜살같이 지나갔다.

    심협이 눈을 크게 뜨고 바로 신식을 펼쳤는데, 이 힘은 아무런 거리낌이 없었다.

    흠칫 놀란 그는 산하사직도를 발동했다. 그러자 그림이 곧장 커지면서 오색 광망을 막았다. 이 광망은 하나로 꿰매진, 아홉 개의 주먹만 한 푸른색 구슬이었다.

    아홉 개의 구슬 표면에 금이 있는 것으로 봐서는 손상이 심한 듯했다. 겉에 오색 빛이 감돌긴 했지만, 오행의 영광이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이 구슬을 정면으로 보자 심협은 두 눈이 찌르는 듯 아팠고, 눈물이 흘렀다. 서둘러 유명귀안을 발동했지만, 조금도 효과가 없었다. 황제내경의 힘을 두 눈에 넣고서야 눈의 통증도, 눈물도 멈췄다.

    아홉 개의 구슬은 그사이 산하사직도를 흔들며 계속 앞으로 날아가려 했다.

    “저건 선천 영보 정해주(定海珠)다! 이 넓은 곳에서 공간의 힘이 어떻게 이리 안정적인가 했더니 정해주 때문이었군! 심협, 어서 낙보금전을 꺼내라! 낙보금전은 정해주와 상극이니 분명히 통할 것이다!”

    화경자의 다급한 목소리에 심협이 얼른 낙보금전을 꺼내려는 순간, 법맥 안의 혼돈흑련이 갑자기 흥분한 듯 떨었고, 마치 한 달을 굶은 걸인이 진수성찬을 본 것처럼 모든 뿌리를 정해주를 향해 내밀었다.

    허공에 파동이 일어나더니 흑련 뿌리가 튀어나와 아홉 개의 정해주를 뒤덮었고, 그 안으로 침투하여 선천 영력을 흡수하려 했다.

    허나 정해주는 부서지긴 했어도 여전히 강력한 신통을 지니고 오색 빛을 반짝여서 흑련의 뿌리를 전부 막아냈다. 다만 날아가는 기세만큼은 꺾였다.

    심협은 이 틈에 손에서 노란 빛을 쏴서 정해주를 맞혔다.

    그 순간, 정해주의 영광이 꺼지더니 돌덩이처럼 떨어져 산사하직도에 휩쓸려 사라졌다.

    * * *

    공간 폭풍 반대쪽. 궁전만 한 붉은 대인이 허공에서 아래로 불꽃을 뿜어내고 있었다. 불꽃은 공 모양의 보호막이 되어 손오공과 문수, 보현 세 사람을 보호했다.

    이 불꽃은 적(赤), 금(金), 백(白), 자(紫), 흑(黑) 다섯 부분으로 나뉘어 있어서 다섯 종류의 영화(靈火) 같았다. 만약 심협이 보았다면 붉은색과 금색 불꽃이 삼매진화와 태양진화임을 단숨에 알아봤을 터였다.

    백, 자, 흑의 불꽃도 위이 삼매진화와 태양진화 못지않은 것을 보면 천화급 영화가 분명했다.

    다섯 개의 영화는 서로 충돌하지 않고 오히려 상부상조하여 허공의 폭풍과 공간 파편이 불꽃의 보호막을 아무리 때려도 전부 허무로 돌렸다.

    오색신염인의 위능을 본 손오공은 얼굴에 화색이 돌았다.

    두 보살은 주위의 불꽃을 신경 쓰지 않고 힘을 합쳐 오색 부적을 발동했다.

    부적에서 오색 영광이 발산되더니 어떤 물건과 멀리서 공명하는 것처럼 빠르게 깜빡거렸다.

    이때, 부적의 오색 영광이 갑자기 멈추더니 곧바로 어두워졌다.

    “어, 어떻게 된 거야?”

    손오공이 다급한 목소리로 물었다.

    “정해주의 영력이 완전히 구금되었다. 아무래도 누군가 정해주를 제압한 모양이야!”

    문수보살이 눈살을 찌푸리더니 담담한 말투로 말했다.

    “정해주는 선천지보다. 연화하려면 적어도 보름은 걸릴 텐데 이렇게 빨리 진압할 수 있는 자가 어디 있다는 거야?”

    손오공이 놀라 물었다.

    “지금 그걸 따져서 무엇 하겠는가. 나가보면 알게 되겠지.”

    보현보살의 말에 손오공은 고개를 끄덕이고는 오화신염인을 향해 결인했다. 세 사람 주위의 불꽃 보호막이 강력해지더니 이들을 감싸고 앞으로 날아갔다.

    한편, 심협이 정해주를 들고 신식으로 살펴보고 있었는데, 주위의 폭풍이 갑자기 잠잠해졌다.

    그는 아홉 개의 정해주를 집어넣고 선천연보결로 연화하면서 신식을 확대했다.

    이때, 눈앞이 밝아지더니 원형의 금색 대전 안에 나타났다.

    손오공과 문수, 보현, 백영롱, 북명곤도 모두 이곳에 나타났다. 다만 원조와 미소는 보이지 않았다.

    심협은 손오공 등의 머리 위에 있는 오화신염인을 잠깐 바라봤다가 금방 시선을 돌렸다.

    대전 사방의 벽에는 부처와 보살, 나한 등등이 조각되어 있었는데, 형태가 모두 달랐고, 중복되는 것은 하나도 없었다.

    “아무래도 만불금탑이 만든 공간에서 벗어난 모양이군. 여기가 진짜 만불금탑 내부일 것이다.”

    화령자의 말에 심협은 다시 한번 주위를 꼼꼼히 둘러봤다.

    쾅!

    그때, 갑자기 들려온 굉음에 금색 대전이 심하게 흔들리면서 벽에 금이 가고 돌가루가 떨어졌다.

    모두가 위를 돌아보는 동시에 신식을 펼쳤고, 이내 안색이 변하더니 몸에서 영광을 뿜어내며 각자의 신통을 시전하여 대전에서 사라졌다.

    * * *

    만불금탑의 금광 금제는 완전히 사라져서 밖에서 보기에는 하나의 평범한 보탑 같았다. 그러나 탑 꼭대기는 밖으로 눈부신 흑백의 광망을 뿜어내며 커졌다 줄어들기를 반복하고 있었다.

    “이게 어떻게 된 일이지?”

    “탑 안에 무슨 변고라도 생긴 걸까?”

    탑 앞에 선 소백룡과 도산동, 여아촌의 세 사람이 이 광경을 보고는 깜짝 놀라서 각자의 신통으로 살펴봤다. 그리고 잠시 후, 이들은 표정이 급변하더니 모두 날아올라 곧장 탑 꼭대기로 향했다.

    * * *

    만불금탑 꼭대기. 커다란 흑백의 돌기둥이 눈부신 흑백 광망을 뿜어내고 있었다. 한쪽은 전부 검은색이었고 한쪽은 하얀색이어서 공간 전체가 흑백으로 나뉘어 있었다.

    검은 빛은 극에 달한 마기가 뭉쳐져 요동치는 것이었고, 하얀 빛은 극도로 순수한 영기였다. 이 두 개의 확연히 다른 힘은 서로 얽히면서도 충돌하지 않아서 매우 현묘해 보였다.

    하지만 이 공간의 흔들림이 멈추지 않아서 대전 안 흑백의 빛도 계속 흔들렸고, 더 커다란 포효가 울려 퍼졌다.

    이 모든 흔들림의 원인은 바로 돌기둥에 박혀 있는 기이한 핏빛 면구였다.

    짙은 핏빛의 이 면구는 격렬하게 흔들리면서 수시로 무서운 마기를 뿜어내 주위의 하얀색 사슬을 공격했다. 마치 우리에 갇힌 괴수가 울타리를 물어뜯는 것 같았다.

    핏빛 면구는 크기는 작지만 그 안에 담긴 위능은 천지를 뒤흔들 정도여서 흔들릴 때마다 만불금탑 전체가 흔들렸다. 주위의 하얀색 사슬에는 이미 많은 금이 가 있어서 금방이라도 부서질 것 같았다.

    어떤 흑백의 존재가 돌기둥 위에서 심각한 표정으로 양손을 빠르게 결인하자 빼곡한 법결이 폭우처럼 하얀 사슬로 녹아들었다. 동시에 대전 안의 하얀 빛과 천지영기가 법결에 끌려와 일제히 사슬로 주입되었다.

    촤르륵!

    하얀 사슬이 갑자기 배로 커졌고, 균열도 빠르게 사라졌다. 이어서 금속이 흔들리는 소리와 함께 사슬이 핏빛 면구를 좌우로 관통했다.

    순식간에 복잡한 사슬 대진이 만들어졌다.

    콰드득!

    강력한 봉인의 힘이 대진에서 뿜어져 나오자 핏빛 면구는 전력을 다해 반항했다. 그러나 결국 사슬 대진의 봉인의 힘을 이기지 못하고 점점 평온해졌고, 만불금탑도 점점 안정되었다.

    흑백의 존재는 그제야 안도하고는 돌아서서 검은 빛으로 뒤덮인 지역을 바라봤다.

    그곳의 바닥에는 검은색 무늬가 떠올랐는데, 커다란 돌기둥에서 뿜어져 나오고 있는 듯한 육각형 윤반(輪盤) 모양의 검은색 마진(魔陣)이었다.

    그곳에는 자 선생과 조룡, 백천 그리고 섭채주가 진 곳곳에 서 있었다. 넷 모두 꿈쩍도 하지 않는 것을 보니 대진에 갇혀 있는 것 같았다.

    섭채주는 점점 초조해졌고, 얼른 체내의 법력과 무력을 운공하여 검은색 마진을 막아냈다. 그녀는 수미전에서 자 선생이 설치했던 정체불명의 법진을 부수려다가 어쩌다 보니 이곳으로 전송되었다.

    그 힘이 막강한 흑백의 존재는 네 사람이 무엇을 하기도 전에 손바닥을 뒤집어 육각의 마진을 시전하여 그들을 제압했다.

    흑백 존재의 시선이 자신들을 향하고 있음을 눈치챈 네 사람의 안색이 변했다.

    “너는 누구냐? 수라면구의 힘을 끌어낼 수 있는 것을 보니 평범한 마족은 아닐 터!”

    흑백 존재가 자 선생에게 호통치듯 물었다.

    그러나 자 선생은 입술을 굳게 닫은 채 상대를 마주 봤을 뿐,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말을 안 하겠다? 그럼 목숨을 거두는 수밖에!”

    흑백의 존재가 차갑게 비웃더니 손에서 주먹만 한 흑백의 뇌구(雷球)를 떠올렸다.

    이 뇌구는 작았지만 광포한 뇌전의 힘을 뿜어내고 있었다. 이 뇌전의 힘은 구천지뢰 혹은 오행뇌법과는 다르게 가볍고 무거운 두 힘이 교착하고 있어서 주위의 허공이 끊임없이 흔들렸다.

    “선배님, 저는 보타산의 제자 섭채주입니다. 이 마족과 한패가 아닙니다.”

    섭채주가 눈을 크게 뜨며 서둘러 말했다.

    “저희 둘도 동해 요족이지 저 마족 놈과 한패가 아닙니다. 방금 수미전에서 저와 조룡 도우는 저자의 술법을 막으려 했지만 성공하지 못했습니다.”

    백천도 다급히 말하고는 손가락을 간신히 올려 옆의 조룡을 가리켰다. 괜히 불똥이 튈까 두려워한 것이다.

    흑백의 존재는 섭채주와 조룡, 백천을 살펴보더니 손가락을 구부렸다.

    두껍고 큰 흑백의 뇌전이 곧장 자 선생을 향해 날아갔다. 이 뇌전이 지나가는 곳마다 허공이 찢어졌다.

    자 선생은 당황하지 않고 담담한 표정으로 흑백 뇌전을 바라봤다.

    그 순간, 힘의 법칙을 두른 칠흑 같은 검은 곤봉이 소리도 없이 나타나더니 뇌전과 마찬가지로 허공을 찢으며 날아갔다.

    콰쾅!

    굉음과 함께 흑백 뇌전과 곤봉의 허상이 동시에 부서졌다.

    “누구냐!”

    흑백 존재가 눈살을 찌푸리더니 오른손으로 허공을 눌렀다.

    한 줄기 하얀 빛이 하늘에서 내려오자 자 선생과 멀지 않은 곳의 땅이 쾅 하며 울렸고, 사람 키의 절반에 이르는 깊은 구덩이가 생겨나면서 대전이 크게 흔들렸다.

    구덩이 옆의 허공에 파동이 일면서 두 명의 반투명한 사람이 나타났다. 이들은 흑백 존재의 일격을 아슬아슬하게 피했다.

    반투명한 두 사람 중 하나인 원조는 검은 봉을 휙휙 돌리고는 도발하듯이 흑백 존재를 가리키며 씩 웃었다. 그는 상대의 일격을 전혀 두려워하지 않았고, 움직임도 육각 마진의 영향이 전혀 없었다.

    미소도 마찬가지로 육각 마진의 영향을 전혀 받지 않고 자 선생 옆으로 다가가 어깨에 손을 올리는 동시에 몸에서 영광 파동을 일으켰다. 그러자 기이한 영광이 팔을 타고 자 선생 몸에 주입되었다.

    자 선생의 몸도 순식간에 반투명해졌다.

    그가 눈을 반짝이자 몸에서 검은 빛이 솟구쳐 나와 원조와 미소를 감싸고는 갑자기 커다란 흑백 돌기둥을 향해 달려들었다. 주위의 검은색 마진의 감금도 순식간에 사라졌다.

    흑백 존재가 살짝 놀라더니 곧장 허공을 향해 오른손을 내밀었다.

    쾅!

    굉음과 함께 거대한 하얀 손이 자 선생등의 앞에 나타나더니 태산을 압도할 기세로 내려왔다.

    이를 본 미소가 양손을 빠르게 결인하자 몸에서 영광이 반짝거렸다.

    반투명한 세 사람의 몸이 더욱 투명해져서 거의 보이지 않게 됐고, 이들은 피하지 않고 그대로 하얀 손을 향해 돌진했다.

    일순 속도가 느려지긴 했어도 세 사람은 강력한 힘의 제압에 영향을 받지 않고 그대로 이 손을 뚫고 지나갔고, 계속해서 돌기둥을 향해 날아가더니 순식간에 몇 장을 더 나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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