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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몽주-1142화 (1,142/1,214)
  • 1142화. 3층

    그때, 수십 리 밖의 수미전에서 가부좌하고 있던 자 선생이 뭔가를 감지한 듯 고개를 휙 들더니 만불금탑 쪽을 바라보며 환하게 웃었다. 그리고는 갑자기 양손의 법결을 바꿔 바닥을 내리쳤다.

    검은 빛이 그의 손바닥에서 뿜어져 나와 사방으로 퍼지자 법진 전체가 순식간에 밝아졌다.

    흉흉한 마기가 흐르면서 다섯 점의 마기 법보가 번쩍였고, 대진의 힘이 동원되자 짙은 마광이 바닥에서 솟구쳐 다섯 개의 기둥을 타고 꼭대기까지 흘러갔다.

    그 순간, 수미전 전체가 강하게 흔들렸고, 밖에서 금제를 부수던 백천과 조룡은 깜짝 놀라 반사적으로 손을 거뒀다.

    고개를 들어 보니 수미전 용마루의 태양 조각이 검은 불꽃처럼 번쩍였다.

    그들이 미처 반응하기도 전에 검은색 태양이 갑자기 폭발하며 굵은 검은 빛을 발사했다. 그 빛은 금하 금제의 방해를 뚫고 만불금전으로 향했다.

    “저게 뭐지?”

    백천이 흠칫 놀라며 눈살을 찌푸렸다. 자신들이 금제를 부수려 하니 대전의 금제가 반격하는 것인 줄 알았는데, 지금 보니 그게 아니었다.

    조룡도 무슨 일인지 알지 못해 어리둥절했다.

    “금하 금제는 아직 건재하고 자 선생도 나오지 않았으니 우리는 금제나 계속 부수자고.”

    조룡의 말에 백천도 고개를 끄덕이며 함께 금하 금제를 부쉈다.

    그들과 조금 떨어진 곳에서는 섭채주가 머리 위를 빠르게 지나가는 검은 빛을 보고는 불현듯 불길함이 솟구쳤다. 빛을 쫓아가야 할지 잠시 망설였지만, 애써 충동을 참으며 다시 수미전 쪽의 동태를 살폈다.

    잠시 후 검은 빛이 수십 리를 가로질러 만불금탑에 떨어졌다.

    꽈르릉!

    굉음이 울려 퍼졌고, 만불금탑과 주위의 땅이 크게 흔들렸다.

    소백룡이 놀라서 벌떡 일어나 금탑을 바라봤고, 손 파파 등도 잔뜩 경계했다. 물론 도산동도 깜짝 놀라 치료를 중단하고 창백한 얼굴로 일어났다.

    만불금탑 밖에 있던 사람들은 한참을 기다려도 아무도 나타나지 않자 금탑을 바라봤다. 그런데 저 멀리서 검은 빛이 날아오면서 짙은 마기가 탑에 침투하려 했다.

    그때, 구층보탑에 조각된 불상들이 일제히 번득이더니 탑에서 뿜어져 나온 금색 화광이 탑 전체를 뒤덮으며 마기의 침투를 막아냈다.

    검은 마기와 보탑의 금빛이 물과 기름처럼 배척하며 갑자기 격렬한 폭발음이 울려 퍼졌고, 검은색 마기가 금빛을 뚫고 조금씩 스며들어 보탑 전체를 물들이려 했다.

    그 순간, 갑자기 허공에서 범음이 울려 퍼지더니 만불금탑에 조각된 불상이 전부 흑백 광망을 뿜어내 하늘 높이 솟구쳤다.

    광망이 뭉쳐진 곳에 흑백의 기이한 존재가 나타나 탑 꼭대기로 내려왔다. 그러자 발밑에서 둥근 금색 광진이 떠올라 그를 받쳤다.

    탑 아래의 사람들은 이 존재를 바라봤는데, 그 기운은 그야말로 기이했고, 심지어 그의 얼굴도 제대로 보이지 않았다.

    그 존재는 나타나자마자 불호를 읊고는 법결을 맺어 아래의 보탑을 가리켰다. 그러자 만불금탑에 새겨진 불상들이 갑자기 살아난 것처럼 자세를 바꿨는데, 그 자세가 각양각색이었다. 어떤 것은 주먹을 쥐었고, 어떤 것은 손바닥을 세웠으며, 또 어떤 것은 염화(拈花)했다.

    만불금탑에서 시작된 불경 소리는 탑 밖의 손 파파 등에게까지 들렸는데, 그 소리를 듣고 있으니 마음이 평안해졌다.

    곧이어 만불금탑에서 광망이 폭발적으로 번쩍이자 한 겹의 금광 금제가 더 커다란 금빛의 탑 모양 허상이 되어 보탑 주위를 뒤덮더니 검은 빛의 침투를 막아냈다.

    수십 리 떨어진 수미전에서는 자 선생이 이 변화를 감지하기라도 한 것처럼 차가운 미소를 띠었다.

    그는 바로 품에서 작은 자흑색 병을 꺼냈고, 병마개를 열어 바닥의 법진에 짙은 검은색 피를 떨어트렸다.

    똑!

    땅에 떨어진 피가 사방으로 튀자 혈광이 퍼져 대진 부문에 스며들었고, 계속해서 기둥의 부문을 타고 올라가 지붕 위의 태양 조각으로 들어갔다.

    다음 순간, 검은 빛에서 한 줄기 혈광이 뿜어져 나와 수십 리를 곧장 날아가 만불금탑의 금제에 떨어졌다.

    혈광이 꽂히자 보탑의 금제는 갑자기 크게 흔들리더니 안으로 수축하기 시작했다.

    * * *

    만불금탑 안.

    시련을 견뎌낸 심협 등은 마침내 3층으로 진입했다.

    3층은 끝없이 펼쳐진 사막이었다. 만 리 너머까지 보이는 것이라고는 황사와 태양뿐이었다.

    2층까지와는 다르게 이번에는 시련이 적힌 비석이 보이지 않았다.

    손오공과 두 보살이 앞장서서 수시로 하늘로 올라가 주위를 둘러봤다. 심협과 북명곤, 백영롱은 그들과 조금 떨어진 곳에 있었다.

    가장 뒤에는 미소와 원조가 섰는데, 이들은 한 명이 줄어들어서인지 안색이 좋지 않았다. 둘은 말없이, 고개를 숙인 채 묵묵히 걸었다.

    한데 어느 순간, 허공이 갑자기 크게 흔들리더니 평온했던 사막이 갑자기 요동치기 시작했다.

    심협이 바짝 긴장하여 주위를 둘러보니 거대한 괴수가 땅 아래서 몸부림치는 것처럼 주위의 사막이 격렬하게 요동치는 것이 보였다.

    “하늘로 피해!”

    심협이 크게 소리치며 먼저 날아올랐고, 백영롱과 북명곤이 뒤를 따랐다.

    멀지 않은 곳에서는 손오공 일행이 이미 허공에 떠올라 있었다.

    이들은 모두 땅을 내려다보고는 경악했다. 발아래만이 아니라 끝없는 사막 전체가 변하고 있었던 것이다.

    사막 전체가 격렬하게 요동쳤고, 보이지 않는 힘에 의해 수백 장 높이의 황사 파도가 끊임없이 출렁였다.

    모두가 놀라서 어쩔 줄 모르고 있을 때, 심협이 갑자기 눈을 번득이며 미소와 원조를 바라봤다. 두 사람은 날아오르지 않고 그 자리에 서서 사막의 흔들림을 따라 끊임없이 흔들리고 있었다.

    심협의 시선을 느꼈는지 미소가 돌아보고는 웃었다.

    “뭐지……?”

    뭔가 심상치 않음을 감지한 심협은 두 사람을 향해 돌진했다.

    그때, 원조와 미소가 각각 자흑색 병을 꺼내더니 한 명은 바로 으깼고, 한 명은 마개를 열어 땅에 부었다.

    부서진 병을 쥐고 있는 원조의 손에서 갑자기 칠흑 같은 마기가 흘러나와 주위의 공간을 뒤덮었다.

    한편 미소의 병에서는 한 방울의 짙은 검은색 피가 땅에 떨어지자마자 사막 전체를 순식간에 검게 물들였다. 그 넓은 사막이 눈에 보일 만큼 빠른 속도로 검게 물들어가는 것을 모두가 지켜봤다.

    허공의 무언가가 마기에 의해 심하게 침식되어 파괴되는 것처럼 주위의 공간이 격렬하게 흔들렸다.

    이와 동시에 만불금탑이 크게 흔들렸다. 그러자 보탑 3층 바깥에 새겨진 불상에서 갑자기 검은색 기운이 뿜어져 나왔고, 보탑을 뒤덮고 있던 금광탑 허상이 강렬하게 떨리더니 광망이 갑자기 흐려졌다.

    혈광을 감싼 검은 빛은 이 기회를 놓치지 않고 바로 금광탑 허상의 금제 방어를 부쉈다.

    이 충격으로 흑백의 존재는 비틀거렸고, 검은 빛줄기가 바로 모든 방어를 뚫고 만불금탑 꼭대기로 향했다.

    * * *

    수미전 바깥. 꼭대기에서 뿜어져 나오던 검은색 빛줄기가 사라졌다.

    대전 밖. 금하 금제가 번쩍였고, 금색 첨추의 나선형 빛줄기가 강하게 번득이며 금광을 폭발했다. 그리고 마침내 마지막 방어가 뚫렸다.

    곧이어 하늘을 뒤덮은 독운이 첨추가 뚫은 틈으로 파고들어 금하 금제까지 들이닥쳤다.

    금색 하광마저 마침내 뚫렸고, 독운이 침입하기 시작하자 빠르게 녹아서 사라졌다.

    백천과 조룡은 득의양양하게 웃고는 만독호로로 독운을 거두고 손을 휘둘러 금색 첨추를 거둔 후, 곧장 수미전의 대문을 부쉈다.

    “이 망할 놈들, 네놈들이 죽음을 재촉하는구나!”

    대전 안에서 상황을 파악한 자 선생이 눈살을 찌푸리며 분노했다.

    조룡 등은 대전 안을 훑어보고는 의아해했지만, 이내 자 선생을 협공했다.

    자 선생은 더 이상 숨기지 않고 온몸에서 마기를 뿜어내며 조룡과 백천에게 맞섰다.

    멀리 숨어 있던 섭채주는 수미전의 금제가 부서지는 것을 지켜봤고, 안에서 싸움이 벌어지면서 천지영기가 요동치는 것을 느끼고는 곧장 둔술을 시전하여 대전 입구로 향했다.

    문밖에 선 그녀는 세 사람이 싸우는 것을 잠시 지켜봤는데, 법전이 여전히 바닥과 기둥에서 운공 중인 것을 확인하고는 눈살을 찌푸렸다.

    저 법진의 용도는 모르겠지만, 방금 날아간 검은색 빛줄기로 미루어, 자 선생에게 다른 꿍꿍이가 있음을 알아채고는 바로 대전 안으로 뛰어들었다.

    그녀는 땅으로 내려오기도 전에 손에서 광망을 쏘아 보내 기둥 아래에 있는 칠흑 같은 손가락뼈를 맞혔다.

    펑!

    손가락뼈가 폭발하면서 검은 안개가 흩어졌다.

    그러나 대전 안의 법진은 바로 부서지지 않았고, 흐르던 마기만 중단되었다. 그러자 법진 진문을 가득 채웠던 검은 빛이 사라지고 대신에 천지영기가 뭉쳐진 푸른 빛이 나타났다.

    ‘저게 진추였나?’

    의아해진 섭채주는 손에서 다시 빛을 뿜어냈다.

    “멈춰라!”

    이를 눈치챈 자 선생이 호통치며 막아서려 했다.

    조룡과 백천은 섭채주가 같은 편이라고 생각하지는 않았지만, 지금은 자 선생을 쓰러트리는 것이 더 중요했기에 그를 막아섰다.

    섭채주는 다른 기둥에 놓인 마기 법보를 공격하지 않고 손의 광망으로 바닥 중심에 새겨진 진문을 바로 부수려 했다.

    콰쾅!

    돌판이 부서지면서 진문이 통제 불능이 되자 바닥에서 흑홍의 광망이 강렬한 공간 파동을 뿜어내며 솟구쳐 올라갔다.

    휙!

    한 줄기 바람 소리에 대전 안의 누구도 반응조차 하지 못했고, 솟구친 광망에 그대로 삼켜져 순식간에 사라졌다.

    * * *

    만불금탑 3층. 검은 마기가 탑 안으로 침식하여 빠르게 퍼져갔다.

    심협, 손오공, 백영롱 등이 원조와 미소를 포위하고 굳은 안색으로 노려보고 있었다.

    “너희는 지금 무슨 짓을 하려는 게냐?”

    손오공이 조용히 물었다.

    “손 도우는 왜 그러는가? 나와 호조는 각자의 방법으로 이 시련을 통과하려는 것뿐이다. 흑백진군은 9층에 도착하면 신마의 우물을 차지할 수 있다고 했지 반드시 한 층씩 통과해야 한다고는 하지 않았다.”

    원조가 담담하게 말했다.

    “우리를 바보로 아는 게냐? 이건 마족의 대자재화천마기(大自在化天魔氣)가 아니더냐! 너희가 어떻게 이 마기를 가지고 있는 거지? 마족과 무슨 관계냐?”

    손오공이 차가운 목소리로 따졌다.

    “흥! 마족은 지금 천정과 삼계 모든 문파의 인정을 받았다. 우리가 그들과 관계가 있다 한들 너희와 무슨 상관이지?”

    “헛소리! 대자재화천마기는 마조 치우의 독문 신통이다! 이는 네놈들이 치우와 관련이 있다는 뜻!”

    그 말에 심협과 백영롱의 표정이 변했다.

    ‘저것이 치우의 신통이라면 원조와 미소가 이미 마족에게 넘어갔다는 건가? 그렇다면 저들은 자 선생과 한패겠구나. 허나 미소는 자신을 데려가 달라고 애원하던 자 선생을 거절했다. 그럼…… 저들이 갈라선 것은 계획된 일이었단 말인가! 그렇다면 저들에게는 분명히 꿍꿍이가 있을 것이다.’

    생각을 정리한 심협은 두 발에서 뇌광을 번쩍였고, 갑자기 그 자리에서 사라졌다가 다음 순간 원조의 등 뒤에 나타났다. 뒤이어 그가 양손을 휘두르자 산하사직도가 나타나 백 배로 커졌고, 거대한 그림이 되어 두 사람 머리 위를 뒤덮었다.

    “심협, 뭐 하는 짓이냐!”

    원조가 분노하며 소리치자 검은색 봉이 검은 빛을 강하게 뿜어냈다. 수많은 검은색 곤봉 허상이 나타나 산하사직도가 내려오는 것을 막았다.

    미소도 양손을 휘두르자 두 개의 은색 갈고리 법보가 나타났고, 그중 두 개가 떨리더니 빼곡한 은색 허상이 되어 심협을 향해 날아갔다.

    다른 사람들은 당황했다. 아직 저들의 저의를 파악하지 못한 상황에서 심협이 공격을 퍼부을 줄은 몰랐던 것이다.

    “저 두 대요가 치우의 대자재화천마기로 이 공간을 삼키기 시작했다는 것은 분명히 다른 꿍꿍이가 있는 것입니다. 우선 이들을 잡아놓고 의논은 나중에 해도 늦지 않습니다!”

    그렇게 외친 심협이 양손을 휘두르자 서른두 자루의 순양비검이 붉은 검사가 되어 눈에 띄지 않게 날아가 은색 갈고리 허상을 베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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