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대몽주-1140화 (1,140/1,214)

1140화. 관음주(觀音呪)

주위의 광경이 순식간에 변했다.

두 눈에 비치던 혼란스러운 하얀 빛이 사라지고 시야가 회복됐을 때, 심협은 광활한 검은 광장에 서 있었다.

눈을 가늘게 뜨고 주위를 둘러보니 백여 장 떨어진 곳에 세 사람이 가부좌를 틀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그중 더 가까운 곳에는 갑옷 위에 가사를 걸친 전투승불 손오공과 장엄한 분위기의 문수보살이 있었다.

그들보다 조금 먼 곳에 있던 사람이 심협을 발견하고는 자리에서 일어나 다가왔다.

“백 도우.”

심협은 자신에게 다가오는 사람을 불렀다.

“심 도우, 그대도 왔는가.”

백영롱이 고개를 끄덕이고는 담담하게 말했다.

“한데 북명 도우가 안 보이는군요.”

심협은 살짝 고개를 숙여 인사하며 물었다.

“중간에 헤어졌는데 아직 오지 않았다.”

백영롱이 고개를 저으며 답했다.

손오공은 심협에게 다가오려 했지만, 문수보살이 고개를 저어 말렸다. 이에 손오공은 잠시 머뭇거리더니 멀리서 인사만 했다.

심협은 답례한 뒤 다시 백영롱을 돌아보며 물었다.

“여기서 저와 북명 도우를 기다리신 겁니까?”

백영롱은 고개를 젓더니 그를 10여 장 떨어진 곳의 검은색 비석 앞으로 데려갔다.

“이걸 보면 알게 될 거다.”

심협이 의아해하며 자세히 살펴보니, 검은색 비석에서 은은한 빛이 떠올랐고, 이어서 금색의 작은 글씨들이 나타났다.

“두 번째 시련은 사흘 뒤 시작된다. 이곳에 오지 못한 자는 영원히 1층에 갇히게 된다. 이곳을 함부로 이탈하는 자, 탑 밖으로 보내지리라.”

간단한 말이었지만, 의미는 확실했다. 1층 시련을 통과하고 온 사람만이 2층의 시련을 받을 수 있고, 그 시험 장소는 지금 서 있는 검은색 광장이었다.

심협은 서두르지 않고 고개를 끄덕이며 가부좌를 틀었다.

“2층의 시련은 무엇인지 안 적혀 있었습니까?”

“못 봤다. 나도 이틀 전에 도착했는데 저 비석에서 바뀐 글자라고는 시간뿐이었다. 다른 정보는 없더군.”

“그럼 기다리는 수밖에 없겠군요.”

백영롱의 대답에 심협은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 * *

하루 정도 지나자 광장에는 한 사람이 늘었다. 바로 보현보살이었다.

처음 나타났을 때 옷이 흐트러져 있었던 것으로 보아 막 격렬한 전투를 치르고 온 것 같았다. 다만 확실한 이야기를 하지 않았기에 무슨 일을 겪었는지는 알 수 없었다.

그날 저녁, 검은 광장에는 세 사람이 더 나타났다. 미소와 원조, 도산동이었다.

세 사람은 심협을 보자 표정이 미묘하게 변했다. 그러나 심협은 신경 쓰지 않았고, 심지어 옅은 미소를 짓기까지 했다.

세 사람은 비석의 글자를 확인한 후, 심협 등과 조금 멀어진 곳으로 가서 가부좌를 틀고 정양하며 두 번째 시련의 시작을 기다렸다.

그리고 세 번째 날 저녁 무렵, 북명곤이 나타났다. 그는 전투를 치른 적이 없는지 기운은 안정적이었고 조금도 다친 곳이 없었다.

심협은 고개를 살짝 숙여 인사했을 뿐, 다른 건 묻지 않았다.

북명곤은 다른 사람들이 자기보다 먼저 2층에 온 것에도 별다른 감정을 드러내지 않았다. 그저 주위를 잠시 둘러보더니 바로 검은색 비석으로 가서 잠시 들여다보았고, 알아서 구석에 가부좌를 틀고는 눈을 감았다.

‘모두 운이 좋은 편이군.’

심협은 곳곳에 흩어진 여덟 명을 보며 속으로 생각했다.

첫 번째 시련이 운이라 하니 좀 어색하긴 했지만, 시련 중에서는 그리 어려운 편이 아니었다. 더욱이 이 탑에 들어온 사람들은 모두 비범한 사람들이니 모두 순조롭게 통과한 것도 이상한 일이 아니었다. 시련은 틀림없이 갈수록 어려워질 것이다.

얼마 지나지 않아 먼 하늘의 가짜 태양이 조금씩 지평선 아래로 내려가면서 하늘은 점점 어두워졌지만, 완전히 어둠에 잠기지는 않았다.

검은 광장 곳곳에서 반딧불 같은 미약한 빛이 번득이며 광장 전체를 비추었다. 그러자 광장은 신비롭고 예측할 수 없는 분위기에 휩싸였다.

주위는 고요하여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심지어 바람 소리조차 없었기에 모두의 숨소리와 심장 소리가 들릴 정도였다.

모두의 인내심이 바닥을 보일 무렵, 신비한 목소리가 사방에서 울렸다.

“너희가 이곳에 들어온 것은 신마의 우물을 차지하기 위함이니 심성이 강인하고 의지가 뛰어나야 한다. 만약 사람의 심성을 뛰어넘지 못하거나 이곳에서 연마하길 원하지 않는 자, 조용히 탑 밖으로 나가라.”

아득한 목소리는 천지에 울려 퍼진 후 끊겼고, 한참이나 아무 소리도 들려오지 않았다. 그러나 아홉 명 모두 태산처럼 차분하게 기다렸다.

“포기한 자가 없으니, 범음(梵音)으로 도화(度化)하라!”

댕-! 댕-!

잠시 후, 다시 들려온 목소리에 이어 종소리가 유유히 사방으로 퍼졌고, 그 소리를 들은 사람들은 심경이 텅 비고 심신이 저절로 풀어졌다.

곧이어 무언가를 읊는 소리가 들려왔는데, 처음에는 모기 소리처럼 가늘었지만 점점 커졌다. 그 소리는 승려가 속삭이는 것 같았고, 백 명이 동시에 경문을 읽는 것 같더니 마지막에는 만 명이 공명하는 것처럼 변했다.

소리가 분명하지 않았지만, 듣고 있자니 범어 경문 같았다. 한참을 들어봐도 심협이 이전에 알고 있던 불가의 경문은 아니었다.

하지만 이 목소리가 울려 퍼질 때마다 듣는 이들은 심경을 평화롭게 하는 알 수 없는 힘을 느꼈고, 투쟁심이 점점 가라앉았다. 심지어 원조의 눈에서 번득이던 흉광도 약해졌다.

그러나 문수보살 등은 오히려 눈빛이 반짝거리는 것이, 상대적으로 영향을 덜 받는 것 같았다.

진요탑에서 벗어난 지 얼마 되지 않은 백영롱은 법력이나 신혼의 힘이 절정이었을 때보다 한참 약해진 터라 지금은 두 눈이 흐려졌고, 자기도 모르게 깊은 잠에 빠져들 듯했다.

“이게 무슨 비법이지? 듣는 것만으로 투지가 사라지다니!”

북명곤이 의아한 목소리로 물었다.

“이건 관음주(觀音呪)요.”

백영룡의 가냘픈 목소리가 들려왔다.

심협은 처음 듣는 이름이었다. 이제 그도 눈꺼풀이 점점 무거워져서 참기 힘든 졸음이 몰려왔고, 정신이 몽롱해지면서 곧 잠이 들 것 같았다. 이는 그의 신혼의 힘이 약해서가 아니라, 관음주는 신혼을 보호하는 주문에 가까워서 무의식중에 부담감을 내려놓고 신혼을 정양했기 때문이다.

심협은 단 한 번도 이런 느낌을 받아본 적이 없었다. 마치 신혼이 더없이 피로하여 쉬고 싶어 하는 것 같았고, 부주진신법으로도 저항할 수 없었다.

그가 막 그 안으로 가라앉으려 할 때, 식해에서 불쑥 목소리가 들려왔다.

“신혼으로 금강경을 묵독해!”

매우 낯익은 손오공의 목소리였다.

심협은 잠시 머뭇거렸으나, 이내 신혼으로 묵독하기 시작했다.

‘이처럼 내가 들었사오니, 한때 부처께서 사위국(舍衛國)으로…….’

금강경을 읊는 소리가 식해에서 울려 퍼지자 금색 광망이 그의 신혼 소인에서 번득였다. 이어서 뿜어져 나온 광망이 식해를 비추자 관음주의 영향이 차단됐다.

심협은 식해가 다시 맑아지면서 피곤함도 함께 사라졌다.

“감사합니다.”

심협은 전음으로 손오공에게 감사를 전했다.

손오공은 마치 아무 말도 한 적 없다는 듯, 모든 것이 자기와 무관하다는 듯 두 눈을 감고 있었다.

심신이 안정된 심협은 북명곤과 백영롱을 돌아봤다. 북명곤은 뚜렷한 변화가 없어 괜찮아 보였지만, 백영롱은 몸이 흔들리는 것이 얼마 못 버틸 듯했다.

그가 파훼법을 백영롱에게 알려줘야 하나 말아야 하나 고민하고 있을 때, 그녀의 몸이 다시 안정되더니 머리 뒤에서 불광(佛光) 같은 초록색 보광이 비치자 기운이 다시 안정되어갔다.

‘관음주의 힘을 빌려 신혼 손상을 고치는 건가? 이렇게도 할 수 있구나!’

심협은 백영롱의 수단에 감탄했다.

반대편의 문수보살도 이상을 느꼈는지 이쪽을 돌아보고는 심협이 관음주의 영향을 전혀 받지 않은 듯하자 눈살을 찌푸리더니 손오공을 힐끗 봤다.

손오공은 아무 일 없다는 듯 태연자약했다.

심협은 미소 쪽을 살폈다. 그들 중 경지가 비교적 약한 도산동만이 괴로운 표정이었고, 다른 두 명의 요조는 어떤 수단을 썼는지 몰라도 아무런 영향도 받지 않은 듯 평온해 보였다.

도산동은 몰려오는 피곤함을 간신히 버티고 있었다. 그녀의 신혼은 수면이 간절했고, 이런 쟁탈에 더 이상 관여하고 싶지 않았다. 두렵고 싫증이 났다.

이때, 미소의 목소리가 갑자기 그녀의 식해에서 울려 퍼졌다.

“너의 사명을 잊지 말거라.”

깜짝 놀란 도산동은 신식이 잠깐이나마 회복됐고, 그 틈에 그녀의 식해 안에 갑자기 뿌연 안개가 피어올라 신혼 소인을 감쌌다.

“음, 환술로 관음주를 차단할 줄 알다니, 나름 머리를 썼구나.”

미소가 몰래 고개를 끄덕였다.

“두 번째 시련이 이렇게 어설플 리가 없으니 방심해서는 안 되오.”

원조가 금색 무늬가 감도는 눈을 뜨며 주의를 주었다.

그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방금까지 사람의 심경을 평화롭게 하던 관음주가 갑자기 멈추었다.

챙!

갑자기 징 소리가 울려 퍼지자 광장에 있던 사람은 모두 당황했다. 징 소리를 뛰어넘는 어떤 날카로운 소리가 순식간에 고막을 뚫고 머릿속으로 파고들었다. 동시에 눈동자가 갑자기 수축하면서 긴장감이 치솟았다.

그들이 방어하기도 전에 종소리와 북소리 등 온갖 소리가 연달아 울려 퍼졌다. 어떤 것은 금속이 마찰하는 것 같았고, 어떤 것은 천둥소리처럼 들렸다. 이 모든 소리는 영혼을 곧바로 두드리는 것 같았다.

둥!

북소리가 다른 소리를 뚫고 나와 온 하늘에 울려 퍼지자 모두 심장이 쿵쾅대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뒤이어 온갖 금속음이 울려 퍼졌는데, 규칙도, 아름다움도 없었다. 그저 시끄러울 뿐이었다.

그들이 어떤 수단과 방법을 동원해도 이 소리는 귓속을 파고 들어왔다.

둥! 둥! 둥!

북소리가 마치 심장을 두드리는 것 같았다.

챙! 챙! 챙!

이어 징 소리가 몸을 갈기갈기 찢어발기는 듯했다.

혼란스럽고 무질서한 소음에 모두의 오장육부가 흔들렸다. 이미 부상을 당한 상태였던 원조는 더 참지 못하고 피를 토했다.

한편, 도산동은 파도에 끊임없이 흔들리는 배 위에 있는 것처럼 오장육부가 뒤집혔다. 식해가 혼돈에 빠질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멀미, 통증, 구토, 두려움…… 온갖 부정적인 감정이 뒤덮었지만, 그녀는 저항할 힘이 없었다.

심협도 견디기 힘든 것은 마찬가지였다. 이번에는 육체와 신혼, 이중으로 충격이 전해졌고, 정면으로 충격을 더해왔다.

부주진신법과 심협의 신혼 소인은 전투의 욕망이 솟구치며 폭발했다.

이미 천존의 단계에 도달한 그의 신혼이 갑자기 강력한 신념을 폭발시키자 식해에 불어닥친 폭풍이 순식간에 잠잠해졌다.

이와 동시에 부주진신법이 변한 부주산도 우뚝 솟아올랐고, 거기서 파문이 뿜어져 나오면서 정해신침(定海神針)처럼 식해를 안정시키고 모든 파란을 진압했다.

한순간에 평정을 되찾자 소음으로 인한 육체적 충격도 소용이 없었다.

그는 몰래 법력을 운공하여 요동치는 기혈을 안정시키고는 시선을 돌려 다른 사람들을 살폈다.

북명곤은 몸 주위에 푸른 빛이 감돌았고, 미간에는 요체 허상이 떠다녔다. 마치 고통에 빠져 끊임없이 몸부림치고 있는 것 같았다.

백영롱의 몸에서는 기이한 현상이 더욱 두드러졌다. 온몸에서 푸른 빛이 솟아올라 온몸의 피와 살이 투명해지면서 초록색 뼈가 보였고, 두개골 안에서는 푸른 광망이 반짝이며 흔들렸다.

문수보살은 두 눈을 꼭 감고 손에 무외인(舞畏印)을 들고 있었다. 등 뒤에서는 5척 높이에 아홉 개의 꽃잎이 줄지어 달린 나무가 찬란한 금빛을 뿜어내며 그를 보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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