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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몽주-1139화 (1,139/1,214)
  • 1139화. 전의(戰意)

    원조는 눈을 가늘게 뜨고 이미 수박만 해진 법력 결정을 자세히 들여다봤다. 안쪽에 불타는 용의 허상이 도사리고 있는 것 같았고, 다시 자세히 바라보니 봉황이 날아다니는 것 같기도 했다.

    하지만 그가 더 자세히 살피기도 전에 극도로 억압되어 있던 힘이 갑자기 폭발했다.

    파원섭령부에 불이 붙더니 잿더미가 되었고, 천사쇄원진은 수많은 불꽃과 빛이 쏟아져 나오며 폭발했다.

    펑!

    하늘이 흔들릴 정도의 폭발과 함께 불꽃이 홍수처럼 터졌고, 천사쇄원진을 뚫고 나와 사방으로 쏟아지며 순식간에 골짜기 대부분을 뒤덮었다.

    폭발한 기운에는 강력하기 그지없는 힘이 담겨 있었고, 모든 것을 파괴할 듯한 뜨거운 공기와 불꽃이 사방으로 쏟아져 나갔다.

    원조가 미소 등을 놓고 팔을 휘두르자 상고의 토원(土黿) 무늬가 새겨진 둥근 방패가 날아올라 세 사람 앞에서 순식간에 커지더니 벽처럼 막아섰다. 그 위로 두툼한 노란색 빛이 퍼져 나와 원조 등을 보호했다.

    거의 동시에 거센 불꽃이 방패를 휩쓸었다.

    이윽고 불바다 속에서 심협의 모습이 천천히 떠올랐는데, 검은 머리카락이 하늘로 솟구쳤고, 등에는 거대한 원형 불꽃 고리가 천천히 돌았다. 그 모습이 마치 원고의 화신(火神) 축융의 재림 같았다.

    한참 뒤, 골짜기로 몰아친 불길이 조금씩 사라졌다. 그러나 골짜기 안은 여전히 타오르는 기운으로 가득했다.

    방금 뜨거운 불길을 막았던 토원현순(土黿玄盾)은 검게 그을렸고, 그 위의 부문은 절반이나 타버려 영기가 완전히 사라져 이미 쓸모가 없어졌다.

    이 방패는 빛을 잃고 빠르게 줄어들더니 땅으로 떨어졌다.

    원조 등이 주위를 훑어보니 산골짜기는 곳곳이 검게 그을렸고, 바위들 틈에서는 여전히 불꽃이 타올랐으며, 푸른 초목은 재가 되어 있었다.

    화신 같은 심협의 발아래 땅은 이미 녹았다가 식으면서 물결같은 파문이 만들어지고 있었다.

    그의 뒤에 있던 연못은 완전히 증발했고, 이미 끊어져 버린 거센 폭포는 녹아내린 산 벽을 타고 약한 물줄기처럼 졸졸 흘렀다.

    심협은 세 사람을 노려보더니 식해에서 부주진신법을 폭발적으로 운공했다. 그러자 삽시간에 천존급 신식의 힘이 흘러나왔다.

    “죽기를 원한다면, 내 들어주지!”

    짙은 살기가 담긴 천둥 같은 목소리가 산골짜기 전체를 뒤흔들었다.

    웅장한 신식의 힘 앞에 도산동이 경악해 외쳤다.

    “처, 천존의 경지! 어, 어떻게……?”

    미소도 표정이 급변하여 거의 넋이 나가 있었다.

    “이, 이건 환술이 분명해!”

    원조는 그렇게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동해지연에 들어온 이후로 심협과 여러 번 싸우면서 상대의 경지가 계속 상승하는 것을 보긴 했지만, 벌써 천존의 경지에 도달했다고는 믿을 수 없었던 것이다.

    “말인 안 되오. 그가 진짜로 천존 경지라면 처음부터 우리를 제압했겠지 아까처럼 빈틈을 보였을 리가 없소. 이건 속임수가 분명하오.”

    원조가 두 사람에게 전음을 보내자 도산동이 살짝 고개를 저었다.

    “저 파괴력을 보십시오. 환술이었다면 제가 몰랐을 리가 없습니다.”

    그녀의 대답에 원조는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잠재력을 자극하는 수단을 쓴 것이라면 오래 버티지 못할 겁니다.”

    미소가 간신히 마음을 진정시키며 그렇게 말하자 원조는 동의한다는 듯 재빨리 고개를 끄덕였다.

    자신들도 아직 비장의 패를 꺼낸 것이 아니었으니 시간을 끌며 더 지켜보기로 했다.

    한편, 심협은 그들의 의도를 알아채고는 바로 팔을 휘둘렀다. 몸 주위에서 검명이 크게 울려 퍼지더니 서른두 자루의 순양검이 빠르게 날아와 이리저리 교차하며 수많은 검기를 뿜어냈다.

    이 광경을 본 원조와 미소가 조금씩 긴장하기 시작했다.

    “가라!”

    심협이 손을 휘두르자 순양비검들이 검광을 뿜어내며 세 사람에게로 돌진했다.

    서른두 개의 검의 허상이 허공에서 번쩍이더니 검광이 모호해졌고, 다음 순간 세 사람을 덮쳐왔다.

    “환술 따위로 날 속일 생각은 마라!”

    원조는 앞으로 나아가며 이 ‘눈속임’을 깨트리려 했다.

    그가 곤봉을 어지럽게 휘두르자 바람 소리가 천둥처럼 울려 퍼졌다.

    검은색 곤봉의 허상이 어지럽게 날아다니며 사방으로 끊임없이 쏟아져 나가 허공을 뒤덮었다. 천지가 흔들렸고, 허공이 찢어지며 균열이 생겨났다.

    곤봉 허상이 온 하늘을 뒤덮으며 법진을 이루더니 강력하기 그지없는 힘이 모든 비검을 막아내고 오히려 자신의 범위 안으로 끌어들였다.

    한데 곤봉 허상과 비검들이 충돌하는 순간, 원조는 이 순양비검이 이전에 봤던 것과는 뭔가 다름을 느꼈다. 이전의 비검들은 날카로운 기운이 밖으로 뿜어져 나오고 검신의 타오르는 기운을 숨길 수 없었는데, 이 서른두 자루의 비검은 기운이 함축되어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그가 미처 대응하기도 전에 폭발음이 연달아 울려 퍼졌다.

    쾅! 쾅! 쾅!

    비검들이 발천난봉의 곤봉 허상과 닿자 검신이 갑자기 붉은 빛으로 번득이더니 강하게 응축된 법칙의 힘이 빠져나왔다. 그 광경은 마치 폭죽의 도화선에 붙은 불꽃 같았다.

    “염폭!”

    심협이 씩 웃으며 중얼거렸으나, 그 목소리는 폭발음에 묻혀 버렸다. 모든 비검에서 폭발적인 검기가 터져 나왔고, 뜨거운 불꽃을 동반한 검기가 온 하늘을 불바다로 만들었다.

    환한 대낮에 폭발한 불꽃이 산골짜기에 피어났다.

    아까 폭발했던 불꽃과 비교해도 손색이 없는 불바다가 서른두 자루의 순양비검에서 뿜어져 나왔다. 바로 심협의 신혼이 천지 경지에 도달한 이후에 깨달은 염폭 법칙의 힘이었다.

    뜨거운 불꽃이 퍼지면서 충돌하며 폭발했고, 담겨 있던 검기의 날카로운 기운이 곤봉 허상을 모조리 부수고 원조의 몸까지 뒤덮어 버렸다.

    잠시 후, 원조는 힘없이 허공에서 떨어졌다. 옷은 걸레 조각처럼 너덜너덜했고, 몸 곳곳은 검기와 염폭 법칙에 찔리고 베여 검게 그을린 가운데 검붉은 피가 흘렀다. 피와 살이 벌어져 오랫동안 아물지 않았다.

    그는 비틀거리며 일어나 허공에 떠 있는 심협을 보고는 두 주먹을 꽉 쥐었다. 굴복한 것이 아니라 오히려 짙은 전의가 흘러나왔다.

    항고의 존재인 원조의 몸에 흐르던 사나운 기운이 이 순간 완전히 깨어났다.

    미소가 심협을 한동안 바라보더니 갑자기 얼굴에 화색이 돌았다.

    “아직 천존 경지에 도달한 게 아니라 신혼의 힘이 강해진 것뿐이로군. 아직 태을 수사라면 두려울 게 없지.”

    그녀는 가볍게 웃더니 앞으로 달려나갔다.

    삽시간에 빠르게 커지면서 온몸에 털이 자라더니 구미영호 본체로 변했고, 거대한 꼬리가 하늘 높이 치솟으면서 온몸에서는 강렬한 요기가 뿜어져 나왔다.

    산골짜기를 덮은 하늘 위로 요기가 뭉치면서 구름으로 변하자 대기가 무겁게 변했다.

    도산동은 마음을 가라앉히고 가부좌를 틀었다. 두 눈에서 영광이 번득이더니 온몸에서 일어난 기이한 파문과 함께 강력한 법력 파동이 뿜어져 나왔다. 그러자 심협을 둘러싼 경치가 갑자기 바뀌면서 산골짜기와 불꽃이 사라졌고, 어느 정원이 나타났다. 입고 있던 옷도 변하여 푸른 옷 위로 추위를 막아주는 두봉(斗篷: 소매가 없는 외투, 망토)을 두르고 있었다.

    “협아…….”

    익숙한 목소리가 뒤에서 들려왔다.

    심협은 오랜만에 듣는 이름에 고개를 홱 돌렸다. 부친이 애절한 표정으로 내당에서 걸어 나오고 있었다.

    “넌 몸이 약하니 찬바람을 오래 쐬면 안 된다. 어서 들어오너라.”

    심원각이 근엄한 목소리로 부르고는 손을 들어 아들의 팔을 잡았다.

    심협은 아버지의 희끗희끗한 머리카락을 보며 속으로 한숨을 쉬었다. 이 모든 것이 환술임을 알면서도 저절로 눈이 갔다.

    심원각의 손이 닿는 순간, 심협의 신식의 힘이 폭발하여 순식간에 환상을 부수었고, 주위의 풍경은 원래대로 돌아왔다.

    그를 향해 날아오고 있는 것은 아버지의 손이 아니라 검은 불꽃을 두른 칠흑의 쇠사슬이었다. 그 위로 튀어나온 날카로운 가시와 복잡한 부문이 선명했다.

    심협은 손을 휘둘러 쇠사슬을 쳐내고는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그곳에는 원고의 괴수 같은 두 개의 거대한 존재가 있었다. 하나는 주먹을, 하나는 손톱을 휘두르며 산사태처럼 온몸에서 기운을 폭발시켰다.

    검은 빛이 뒤덮은 원조의 주먹이 지나가는 곳마다 검은색 뇌전이 뿜어져 나왔고, 하얀 빛으로 번득이는 호조의 날카로운 발톱은 허공을 찢어발겼다. 두 사람의 공격은 완벽한 합을 이루어 강력한 기세로 심협을 뒤덮어왔다.

    심협도 이 순간만큼은 강력한 압박감에 몸이 굳어 일순 움직일 수 없었다.

    하지만 그는 피하려 하지 않고 눈을 싸늘하게 반짝이더니 한 손으로 검결을 맺어 크게 휘둘렀다.

    서른두 자루의 순양비검이 갑자기 웅웅거리며 떨더니, 전장의 병사들처럼 진(陣)을 이루어 춤을 추며 허공으로 날아들었다.

    모든 비검이 한계에 달한 속도로 날아갔다.

    도산동의 두 눈이 검광을 따라 움직이더니 이내 시야가 어지러워졌다.

    미소와 원조의 눈빛이 변했다. 이들의 눈에는 모든 비검이 모호하게 보여서 마치 혜성이 꼬리를 번쩍이며 지나가는 것만 같았다.

    두 사람의 공격이 임박했을 때, 심협 앞의 검광들은 이미 검진을 완성하여 뜨거운 공간 속에서 허상이 뭉쳐져 기이한 별의 진을 만들어냈다.

    본래 희미했던 광흔이 점점 뚜렷해지면서 천추(天樞), 천선(天璇), 천기(天璣), 천권(天權), 옥형(玉衡), 개양(開陽), 요광(搖光) 등 일곱 개의 별들이 생겨났다. 순양칠살검진이 완성된 것이다!

    콰쾅!

    원조의 주먹이 강하게 내리쳤고, 호조의 날카로운 발톱이 허공을 찢었다. 그러나 서른두 자루의 순양비검이 만든 검진은 미동도 없었다.

    쌍방이 충돌하는 순간, 일곱 개의 찬란한 별이 크게 번득이면서 살의를 품은 주검의 기운 일곱 줄기가 뿜어져 나왔다. 이 붉은 광선들이 연이어 허공을 잘라냈다.

    다음 순간, 공간이 찢어지면서 주먹 허상과 날카로운 발톱이 사라졌다.

    일곱 개의 검광도 부서졌지만, 뒤이어 가늘고 작은 하얀색 검기가 줄기줄기 뿜어져 나와 잠시의 틈도 두지 않고 원조와 미소의 본체를 쫓아갔다.

    미소는 거대해진 몸을 한순간에 줄일 수 없었기에 속도가 현저히 느렸다. 그녀는 재빨리 발톱을 휘둘렀으나, 그 팔은 검광이 스쳐 지나가자 피와 살이 순식간에 사라지고 뼈만 남았다.

    검기는 원조의 팔도 휩쓸고 지나가면서 싶은 상처를 남겼다.

    두 사람은 백여 장 뒤로 물러났고, 검기가 소진되어 진형이 조금씩 흩어지는 서른두 자루의 비검을 꺼림칙한 눈빛으로 바라봤다.

    미소의 체내에서 혈기가 솟구치더니 팔의 피와 살이 빠르게 재생됐다.

    “어떻게, 끝까지 싸우겠소?”

    원조의 목소리에서 망설임이 느껴졌다.

    미소는 이를 악물었지만, 이내 힘을 빼고는 한숨을 내쉬었다.

    “굳이 싸워서 양쪽 다 고생할 필요는 없죠. 이기든 지든 다른 자에게 어부지리를 안겨줄 뿐이니까요.”

    그때, 심협이 두 사람의 대화를 듣기라도 한 것처럼 웃으며 말했다.

    “두 사람, 계속 싸울 건가?”

    그는 두 사람에게 점점 다가왔고, 서른두 자루 순양비검도 함께 날아왔다.

    “가죠.”

    미소가 바로 결단을 내리고는 먼저 산골짜기 밖으로 날아갔고, 원조와 도산동이 바로 뒤를 따랐다. 세 사람은 무지개가 되어 눈 깜짝할 사이에 시야에서 사라졌다.

    그들이 도주하는 것을 지켜보던 심협은 단약을 먹고 정양한 뒤, 연못가로 다가갔다.

    연못은 모두 말라버려서 암초 외에는 아무것도 남지 않았다. 그러나 한가운데의 전송 법진은 아무런 영향도 받지 않아서 온전한 모습 그대로였다.

    심협은 날아올라 법진 중앙으로 가더니 잠시 살펴본 후 법력을 주입했다.

    이내 전송 법진의 부문이 연이어 번득이더니 희미한 하얀 빛이 솟아올랐고, 이내 한 줄기의 빛이 되어 심협을 뒤덮었다.

    뒤이어 공간 파동이 일어나며 심협의 모습이 하얀 빛줄기 속으로 사라졌다.

    그가 전송되고 나자 전송 법진 주위의 허공이 크게 뒤틀리더니 법진 전체가 희미해졌고, 다음 순간 그 자리에서 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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