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대몽주-1134화 (1,134/1,214)
  • 1134화. 수미전(須彌殿)

    “미소, 잘 생각하는 게 좋을 거야. 이자의 음흉함은 마족 못지않거든. 그리고 저자는 지금 수십 마리의 요족 괴뢰를 가지고 있는데, 그중에는 태을 경지 존재도 있지. 만약 법문이 그것들을 사람으로 판단하지 않으면 나중에 큰 화를 입게 될 거야.”

    심협의 거침없는 설명에 조룡의 수단을 몰랐던 사람들은 긴장한 눈으로 일제히 그를 바라봤다.

    조룡의 눈가가 씰룩거리더니 분노가 솟구쳤다. 당장이라도 심협을 쳐 죽이고 싶어 하는 것이 분명했다.

    “이건 심협 말이 옳소. 나도 진요탑에서 하마터면 저자에게 당할 뻔했지.”

    원조의 이어진 설명에 미소는 한참을 생각하더니 마침내 입을 열었다.

    “저는 원조 도우만 데려가겠습니다.”

    그녀는 말을 마치고는 다른 사람에게 반박할 기회도 주지 않고 바로 원조와 함께 탑의 문 쪽으로 향했다.

    “칫!”

    자 선생이 눈살을 찌푸리며 투덜거리더니 조룡을 노려보고는 그대로 돌아서 광장을 벗어났다.

    조룡의 눈은 오직 심협에게로 향했는데, 그 눈빛은 매섭도록 차가웠다.

    심협은 표정에 아무런 변화 없었지만, 섭채주에게 전음으로 조심하라고 전했다.

    “조심할 테니까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저도 태을 수사고 제 몸을 지킬 힘 정도는 있으니까요.”

    섭채주는 씩씩하게 대답하고는 멀리 날아가는 자 선생을 힐끗 보며 생각에 잠겼다.

    탑으로 들어갈 사람들이 정해지자 일제히 각 조가 들고 있는 보물에 법력을 주입했다. 그들은 보물에서 뿜어져 나오는 빛의 보호를 받으며 탑으로 들어갔고, 이내 모두의 시야에서 사라졌다.

    만불금탑의 문이 굳게 닫히자 문은 다시 원래의 붉은색으로 돌아왔지만, 탑은 여전히 유리 광택에 뒤덮여서 마치 호체 광막을 입은 것 같았다.

    조룡은 차갑게 웃더니 돌아서서 떠나갔다.

    얼마 지나지 않아 탑 앞에는 섭채주와 소백룡 그리고 여아촌의 세 사람만 남게 됐다.

    “저는 할 일이 있어서 먼저 가볼게요.”

    섭채주가 그들에게 포권하며 말했다.

    “섭 도우 어디를 가려는 거요? 조룡과 마족의 자 선생이 근처에 있을 테니 소서천 안은 위험하오.”

    소백룡이 서둘러 만류했다.

    “광력보살의 깨우침에 감사합니다. 하지만 저에게도 생각이 있으니 걱정하지 마세요.”

    섭채주가 담담하게 웃으며 말하고는 소매를 휘둘렀다.

    칠흑 같은 흑암이 순식간에 그녀의 몸을 뒤덮더니 바로 땅속으로 들어가 사라졌는데, 일말의 기운도 남지 않았다. <무신결>을 얻은 뒤, 섭채주는 비록 수련할 시간이 없었지만 적잖은 깨달음을 얻어서 곤륜경의 흑암 무력을 더욱 능숙하게 쓸 수 있게 된 것이다.

    소백룡은 섭채주의 절묘한 둔술에 감탄을 금치 못했다.

    한편, 유비연은 섭채주가 떠나는 것을 보고는 몸이 근질근질해졌는지 손 파파를 돌아봤다.

    “파파, 어렵게 신마의 우물 입구에 왔으니 저희도 보물을 찾으러 가죠. 여기까지 와서 빈손으로 돌아갈 수는 없잖아요.”

    “안 된다! 조룡이나 그 마족이나 모두 속을 알 수 없는 자들이다. 우리 실력으로는 누구를 만나도 이길 수 없으니 얌전히 여기서 기다려야 한다.”

    “……네.”

    손 파파의 단호한 목소리에 유비연은 어깨를 축 늘어트렸다.

    소백룡은 금탑 앞에 가부좌를 틀었고, 손 파파 일행도 금탑 옆에 앉아서 얌전히 기다리기 시작했다.

    * * *

    소서천 깊숙한 곳의 금색 대전. 10여 장 높이에 비첨(飛檐)과 화려한 무늬가 새겨진 기와, 그림이 그려진 마룻대까지 장관을 이루는 대전의 입구에는 수미전(須彌殿)이라는 현판이 걸려 있었다.

    대전은 부서진 곳이 없었고, 겉보기에도 평범한 불전이 아닌 것 같았다.

    검은 빛이 멀리서 빠르게 날아와 대전 앞에 내려섰고, 이내 자 선생이 모습을 드러냈다.

    그는 고개를 들어 현판을 보고는 씩 웃더니 주위를 두리번거리더니 주위에 아무도 없는 것을 확인하고는 대전 앞으로 다가갔다. 그리고 푸른 깃털을 꺼내 결인하여 발동했다.

    깃털에서 푸른 빛이 번득이기 시작하더니 점점 밝아졌고, 몇 호흡 뒤 날카로운 소리를 내며 자 선생의 몸을 감싸고는 수미전 대문을 향해 날아갔다.

    대문에서 어떤 금제 같은 금빛이 솟구치며 푸른색 깃털을 막았다.

    자 선생이 낮게 기합을 넣자 깃털의 빛이 더 강해지면서 반투명하게 변했고, 주위의 허공에는 수많은 투명한 파문이 일어났다.

    그가 깃털 안으로 들어가자 깃털이 휙 하며 금빛의 방해를 뚫고 금색 대전 안으로 들어갔다.

    대전 주위는 다시 조용해졌다.

    그리고 몇 호흡 뒤, 멀지 않은 곳의 폐허에서 누군가 걸어 나왔다. 바로 조룡이었다.

    금색 대전을 바라보더니 어딘가를 향해 소매를 휘둘렀다. 그러자 누군가가 옆에 나타났는데, 바로 백천이었다.

    “마족의 자 선생이란 놈이 방금 저 대전으로 들어갔다.”

    조룡이 턱으로 수미전을 가리키며 말했다.

    “수미전? 수미공명불(須彌空明佛)의 동부라고 들은 적이 있다. 역시 다른 꿍꿍이가 있었군.”

    백천이 차갑게 웃으며 말했다.

    “수미공명불? 새로 올라온 부처인가? 동해 용궁에 오랫동안 갇혀 있었더니 아무리 첩자들을 통해 정보를 듣는다 해도 모든 것을 알 수는 없군.”

    “그래, 수미공명불은 수백 년 전에 새로 부상한 부처다. 듣기로는 공간 법칙을 익혀서 새로운 불자임에도 영산에서 위치가 낮지 않다고 했다.”

    백천은 여전히 수미전을 바라보며 고개를 끄덕이다가 불쑥 물었다.

    “자 선생이 여기 들어간 게 확실한가?”

    “그자가 푸른깃털로 안으로 들어가는 걸 내 분명히 봤다. 공간 둔술을 시전할 수 있는 창령설우(蒼靈雪羽)가 분명했어. 왜? 못 믿겠나?”

    “당연히 아니지. 아무튼 여기로 숨어들었다니, 잘됐군. 찾으러 다닐 수고를 덜었어.”

    백천이 미안하다는 듯이 급히 웃어 보이고는 바로 수미전을 바라보며 차갑게 말했다.

    “너는 왜 저자를 따라다니는 거지?”

    “그가 가진 물건이 필요하다. 날 도와준다면 네가 신마의 우물을 차지할 수 있게 나도 돕겠다.”

    “좋다. 다만, 이 대전에 어떻게 들어갈지는 조금 더 생각해 봐야 할 것 같군.”

    조룡이 씩 웃으며 말했다.

    “생각할 게 뭐가 있는가? 바로 금제를 부수면 그만이지.”

    백천이 자신 있게 웃더니 보라색 조롱박을 꺼냈다.

    우우웅!

    수많은 보라색 독무가 쏟아져 나오더니 몇 호흡 뒤에는 백 장 크기의 보라색 독운(毒雲)이 되어 금색 대전을 뒤덮었다. 대전 곳곳에서 눈부신 금빛이 번득이면서 이 독운을 막으려 했지만, 쌍방이 충돌하자 금빛은 바로 보라색으로 물들어 순식간에 대전 본체로 침투해 갔다. 금색 금제로는 도저히 막아내지 못했다.

    몇 호흡 사이에 보라색 맹독이 수미전에 침투하자 바로 치익 하는 소리가 들려왔고, 대전은 썩은 나무처럼 빠르게 녹아내렸다.

    이 광경에 조룡은 꺼림칙한 눈빛으로 백천을 바라봤다.

    한편, 금색 대전 저 멀리 어느 그림자 속. 희미한 그림자가 조용히 숨어 있었다. 바로 조룡을 따라서 여기까지 쫓아온 섭채주였다.

    이 모든 것을 지켜본 섭채주는 놀란 기색이 역력했다.

    “매우 끔찍한 독운이군요. 저 조롱박은 도대체 뭘까요? 저 보라색 독운도 만독강기일까요?”

    조비극이 그림자 속에서 튀어나와서 물었다.

    옆에는 푸른색 그림자도 나타나 있었는데, 거울 요괴였다.

    “그런 것 같아. 백천한테 저렇게 대단한 법보가 있었다니, 이전에 쓰는 것을 못 봤는데……. 얻은 지 얼마 안 된 건가?”

    두 사람의 목소리는 검은 그림자 안에서만 울려 퍼졌고 밖으로는 조금도 새어나가지 않았다.

    “섭 도우, 저들은 왜 쫓아온 겁니까? 설마 저들과 싸우려는 건 아니죠? 조룡이나 백천 모두 실력이 막강하니 우리들로는 적수가 되지 못합니다.”

    조비극이 긴장한 목소리로 말했다.

    “오라버니가 없으니까 따라온 거야. 조룡이든 백천이든 그리고 저 자 선생이든 다 음흉한 자들이니 오라버니를 대신해서 지켜볼 필요가 있어!”

    조비극은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섭채주와 많은 대화를 해본 것은 아니지만, 이 여인의 엄청난 고집을 이미 알고 있었다. 한번 결정한 일은 심협이 와도 말리지 못했다.

    “하지만 네 말이 옳아. 저들은 너무 강하니 우리 세 사람으로는 상대할 수 없어. 서둘러서 오홍과 원구를 깨우는 게 좋겠어.”

    섭채주가 소매 속의 소요경을 결인했다.

    초록색 빛이 거울 안으로 들어가더니 비처럼 보슬보슬 내려서 기절해 있는 오홍과 원구의 몸으로 녹아들었다.

    섭채주는 태을 경지로 들어선 후 회복 신통이 더욱 정교해져서, 두 사람의 기운이 순식간에 회복되기 시작했다.

    “섭 도우, 저를 소요경을 넣어주세요. 제가 다시 한번 눈물 요괴 언니를 설득해서 돕게 해볼게요.”

    옆에 있던 거울 요괴가 말했다.

    만불금탑이 공간 법보 안에 있는 다른 사람을 데리고 가는 것을 허락하지 않았기에 심협은 소요경을 섭채주에게 건넬 때 눈물 요괴를 산하사직도에서 소요경으로 옮겨두었다.

    “그럼 부탁할게.”

    섭채주가 고개를 끄덕이고는 결인하여 거울 요괴를 소요경 안으로 넣었다.

    그때, 하늘을 뚫는 듯한 날카로운 소리가 앞에서 들려왔다.

    섭채주가 서둘러 고개를 들어 돌아보니 보라색 독운이 절반 이상 침투하여 수미전이 곧 무너지려 했다. 그리고 그 순간, 커다란 금색 빛줄기가 대전 안에서 하늘 높이 솟구쳤고, 용의 울음과 범의 포효 같은 소리와 함께 허공에서 불경을 읊는 소리가 울려 퍼졌다.

    한 겹의 투명한 금색 하광이 빛줄기에서 빠르게 퍼지더니 수미전을 뒤덮었다. 그러자 금제 위에서 예사롭지 않은 기운이 뿜어져 나와 보라색 독운의 침투를 막아냈다.

    섭채주의 눈이 휘둥그레졌고 백천과 조룡도 당황했다.

    * * *

    만불금탑으로 들어선 사람들의 눈앞이 밝아졌고, 시야가 회복되었을 때는 어느 산골짜기 안이었다. 산골짜기 안팎은 전부 단풍으로 붉게 물든 매우 아름다운 숲이었다.

    푸른 하늘에 구름이 떠 있어서 탑 안이 아니라 비경 같았다.

    심협은 얼른 신식을 펼쳤지만, 소서천 안과 똑같이 보이지 않는 힘에 막혔고, 몇 리 너머는 조금도 살펴볼 수 없었다.

    “여기가 만불금탑 안인가?”

    원조가 두리번거리며 중얼거렸다.

    백영롱과 미소, 북명곤도 의아하기는 마찬가지였다. 반면 손오공과 문수, 보현 세 사람은 담담했다.

    ‘서천 불문 사람들은 이런 상황에 익숙한 모양이군’

    심협은 속으로 중얼거렸다.

    그때, 원조 옆에 있던 미소가 갑자기 비명을 질렀고, 그녀 소매 속에서 하얀 빛이 반짝였다. 그러더니 하얀 그림자가 10여 장 높이까지 올라갔다가 멈추고는 하얀 옷의 소녀로 변했다. 바로 도산동이었다.

    허공을 본 심협은 조금 놀랐다. 도산동의 경지는 크게 정진하여 이미 태을 경지에 도달해 있었던 것이다. 다만, 경지가 아직 안정되지 않아 기운이 불안정했다.

    “미소가 자 선생을 데리고 오지 않았던 게 도산동을 몰래 데리고 들어오기 위해서였군.”

    심협이 씩 웃으며 말했다.

    도산동은 당황하여 몸에서 하얀 빛을 뿜어내 몸을 가누려 했는데, 주위의 허공에서 파동이 일어나더니 검은 빛이 그녀의 몸으로 들어갔다. 그러자 그녀 체내의 모든 요력이 굳어지면서 조금도 운공할 수 없게 됐고, 몸에서 반짝이던 하얀 빛도 완전히 사라졌다. 그녀는 허공에서 허우적거리더니 쿵 하며 바닥으로 떨어졌고, 먼지가 일었다.

    요족인 도산동은 연체 공법을 수련하지 않아도 육체가 평범한 인간족 수사보다 훨씬 강인했기에 이 정도 높이에서 떨어져도 큰 문제가 없었다.

    다만 이렇게 많은 사람이 보는 앞인지라 창피했는지, 도산동은 구멍이라도 파서 숨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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