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대몽주-1133화 (1,133/1,214)
  • 1133화. 정원(定員)

    백영롱은 조룡을 보는 순간 표정이 갑자기 변하더니 살기를 뿜어냈다.

    손 파파와 유비연 자매는 바짝 긴장했다.

    하지만 조룡은 공격할 뜻이 없는지 바로 시선을 심협에게로 돌렸다.

    심협은 미소를 띠고는 태연한 얼굴로 걸어갔다.

    그가 탑 앞에 도착하자 조룡이 그제야 입을 열었다.

    “나와 그들의 연결을 어떻게 끊은 것이냐? 그건 내 괴뢰법칙으로 만든 실이었다.”

    “내가 왜 당신 궁금증을 풀어줘야 하지?”

    심협의 비웃음에 조룡의 눈에는 핏발이 섰지만, 그는 이내 시선을 돌려버렸다.

    잠시 침묵이 흐른 후, 그는 다시 입을 열었다.

    “백영롱, 그렇게 노려보지 마라. 지금 너의 실력으로는 날 죽일 수 없다. 다른 사람에게 어부지리의 득을 줄 생각이 아니라면 살의를 거두는 게 좋을 거다. 우리 사이의 원한은 네 실력이 회복한 뒤에 해결하자고. 흐흐흐.”

    백영롱은 그의 말에 망설이지 않고 바로 시선을 돌렸다.

    원조와 문수보살도 이쪽을 보았으나, 공격할 생각이 없는지 다시 눈을 감고 정양하기 시작했다.

    모두가 무언가를 기다리는 것 같았다.

    “세 개의 보물이 아직 모이지 않으니 만불금탑의 문을 열 수 없소. 우리도 서두르지 말고 이참에 회복해둡시다.”

    북명곤의 전음이 그들의 머릿속에서 울려 퍼졌다.

    그렇게 그들도 일제히 자리에 앉아 각자 단약을 먹고 기운을 다스리며 정양하기 시작했다.

    다시 한참이 지나자, 허공에서 갑자기 두 개의 둔광이 날아왔다. 모두가 이를 감지하고는 눈을 떴다.

    둔광이 땅으로 내려오자 손오공과 소백룡 오열의 모습이 나타났다. 두 사람은 이곳에 모인 많은 사람을 보고는 놀란 기색이었다.

    심협은 두 사람과 인사를 나눴으나, 그 외에는 별다른 말을 하지 않았다.

    문수보살이 바로 일어나 물었다.

    “어떻게 되었나? 물건은 가지고 왔는가?”

    소백룡이 고개를 끄덕이고는 손오공을 바라봤다.

    “헤헤, 노손한테 있지.”

    손오공이 키득거리며 손을 펼치자 손에서 붉은색 광망이 번득이더니 주먹만 한 무언가가 나타났다.

    이 네모난 물건은 나타나자마자 풍부한 영기를 거침없이 뿜어내 모두의 시선을 끌었다.

    자세히 바라보니 계혈석(鷄血石)을 깎아서 만든 붉은색 인장(印章) 같았는데, 그 위에 새겨진 불꽃무늬가 매우 특별해 보였다.

    “오화신염인으로, 조요경과 마찬가지로 만불금탑 금제를 열 수 있는 세 개의 보물 중 하나요.”

    북명곤의 설명을 듣고서야 심협은 고개를 끄덕였다.

    “보현보살이 마지막 하나를 가져오면 다 모이는 건가?”

    손오공이 오화신염인을 거두고는 웃으며 말했다.

    “우리는 조요경을 차지하지 못했네.”

    문수보살이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뭐라고?”

    당황한 손오공은 문수보살의 시선이 심협에게 향하는 것을 바라봤다.

    “심협한테 있다는 거야?”

    손오공은 안색이 변하지 않았지만, 내심 기뻐했다.

    이때, 멀리서 또 세 개의 둔광이 날아와 광장으로 내려왔다. 모두가 정양을 멈추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둔광들은 보현보살과 마족의 자 선생 그리고 미소였다.

    미소의 손에는 화려한 색깔에 운기(雲氣)가 감도는 상반신 경갑(輕甲)이 들려 있었다.

    “몽운환갑도 도착했으니 세 개의 보물이 모두 모였군. 이제 만불금탑의 문을 열 수 있겠어.”

    북명곤이 눈을 반짝이며 천천히 말했다.

    그들이 도착하자 문수보살과 원조가 각자 맞이하러 갔다.

    한편, 주위를 둘러보던 자 선생은 마가와 노수가 보이지 않자 눈살을 찌푸렸다. 노수는 도중에 헤어졌지만, 마가는 그와 함께 소서천에 도착했기 때문이다.

    “손오공, 마가는 어디에 있지? 너희와 함께 움직이지 않았는가?”

    자 선생이 날이 선 목소리로 물었다.

    “나도 모르지. 오화신염인을 찾으러 가는데 갑자기 떠나겠다고 하고는 가버렸으니까.”

    손오공은 고개를 젓고는 전혀 개의치 않는 듯 말했다.

    “너희가 약속을 어기고 마가를 죽인 건 아니고?”

    자 선생이 차가운 표정으로 되물었다.

    “우린 안 죽였어. 믿든 말든 알아서 해.”

    손오공은 설명하기도 귀찮은 듯 대충 대꾸하고는 고개를 돌려버렸다.

    “목표를 이루기 전까지는 서로 공격하지 않기로 모두가 맹세하지 않았던가!”

    소백룡이 손오공을 대신해 따지듯 말했다.

    “흥! 오화신염인을 차지했으니 목표를 이뤘다고 그를 죽인 게로군!”

    자 선생이 차갑게 비꼬자 손오공도 더는 참을 수가 없었다.

    “그럼 연락을 해보던가. 우리 출가인은 절대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

    소백룡도 어이가 없다는 듯이 말했다.

    “연락이 됐으면 너희에게 물었겠는가!”

    그때, 섭채주가 끼어들었다.

    “마가는 이미 죽었어요. 아까 오는 길에 우리가 그의 시체를 발견했지.”

    “뭐라? 방금 뭐라고 했느냐?”

    자 선생이 놀란 듯 외치고는 살의 가득한 눈으로 심협을 노려보았다.

    “나를 보면 어쩌자는 건가? 오는 길에 시체를 발견했다고 분명히 말했을 텐데? 그를 죽인 건 아마도 백천일 게다. 그자가 만독호로라는 보물을 차지하고는 맹독 법칙으로 죽였을 거야.”

    심협은 차가운 눈으로 자 선생을 마주 보며 차분하게 대답했다.

    “나를 속이려 들지 마라! 백천은 우리 맹우인데 왜 마가를 공격하겠느냐?”

    “그야 나도 모르지. 너희는 원래가 서로 속고 속이는 자들 아닌가? 그러니 누가 누구를 죽여도 이상하지 않지. 믿든 말든 알아서 해.”

    심협은 무료하다는 듯 대충 답하고는 고개를 돌려 버렸다.

    한편, 자 선생은 심협이 자신을 속일 생각이라면 저런 황당한 거짓말을 할 이유가 없다는 생각이 들자 반신반의하기 시작했다.

    “보물이 전부 모였으니 이제 만불금탑을 열자고.”

    이때, 손오공이 불쑥 말하고는 바로 오화신염인을 꺼냈다.

    “나머지 하나는 누구한테 있죠?”

    미소도 앞으로 나와서 몽운환갑을 내밀고는 주위를 둘러보며 물었다.

    “심협, 조요경을 내놓게.”

    손오공이 심협을 바라보며 말하자 모두의 시선이 일제히 그에게 향했다.

    “어쩌다 저놈 손에 넘어간 거야?”

    자 선생은 더욱 눈살을 찌푸렸다.

    그때, 심협은 팔을 활짝 펴면서 솔직하게 말했다.

    “조요경이라……. 저한테 없는데요.”

    “심협, 그게 무슨 소리냐? 네놈이 조요경을 갖고 가는 걸 내가 직접 봤다!”

    원조가 버럭 화를 냈고, 문수보살도 좋지 않은 눈빛으로 심협을 바라봤다.

    손오공마저 표정이 기이하게 변했다.

    심협이 별다른 설명 없이 두 걸음 정도 뒤로 물러나자 노인의 모습으로 변신한 북명곤이 모두의 앞에 나섰다.

    “나에게 있소이다.”

    이에 북명곤이 헛기침을 하고는 바로 조요경을 꺼냈다.

    이제 모두가 의심스러운 눈빛으로 그를 바라봤다. 그들 모두 심협의 수행원 정도로 생각했는데 지금 보니 뭔가 심상치 않았던 것이다.

    손오공의 두 눈동자가 불꽃이 스쳐 가는 것처럼 금빛으로 번득였다. 화안금정 신통으로 북명곤을 살핀 것이다.

    “정말로 도우에게 있는 것 같으니 우리와 힘을 합쳐 보탑의 금제를 엽시다.”

    손오공은 별말 없이 제안했다.

    손오공과 미소, 북명곤은 탑 앞으로 가서 각자의 보물을 꺼내 법력을 주입했다.

    오화신염인의 불꽃무늬가 번득이더니 붉은 빛이 탑 꼭대기를 향해 뿜어져 나갔고, 몽운환갑과 조요경의 푸른 빛과 노란 빛이 뒤를 이었다.

    만불금탑 꼭대기의 크고 둥근 백옥 구슬이 갑자기 번득이더니 유리 화강이 뿜어져 나와 보탑 전체를 뒤덮었다.

    보탑에서 만 줄기 금빛이 사방으로 퍼졌다.

    범음 소리가 울려 퍼지면서 광장 연석에 새겨져 있던 경문과 경당에 쓰여 있던 불계가 모두 번쩍였다. 소서천이 눈부신 불광에 물든 것만 같았다.

    이윽고 만불금탑의 붉은 문에서 눈부신 하얀 빛이 뿜어져 나오더니 금색 글자가 떠올랐다.

    “법문이 열렸다! 세 개의 보물 가진 자는 각자 두 명을 더 데리고 들어갈 수 있지. 총인원이 아홉 명을 넘어서는 안 된다.”

    “아홉 명만 들어갈 수 있다는 건 보물이 세 명만 보호할 수 있다는 건가? 인원을 초과하면 어떻게 되지?”

    원조가 머뭇거리다가 물었다.

    미소가 시선을 돌려 광장을 둘러보더니 다시 더 먼 곳을 바라봤다.

    “소서천 전체가 불문의 법진이 된 것 같군요. 규칙을 따르지 않으면 대진에 제압될 겁니다.”

    그녀는 시선을 거두며 천천히 말했다.

    그녀의 말이 끝나자마자 보탑의 빛의 문에 금빛이 흐르더니 이전의 글자가 사라지고 새로운 글자가 나타났다.

    “법문의 법칙에 따라 거짓은 안 되니, 법보에 숨겨서 인원수를 넘겨도 모두 소멸된다.”

    이 글자가 나타나는 순간 다른 수단을 써서 더 많은 사람을 데리고 들어가겠다는 모두의 생각이 싹 사라졌다.

    “사제, 내가 문수, 보현보살과 들어갈 테니 바깥은 자네가 맡아주게.”

    “대사형, 걱정하지 말고 다녀오십시오. 저는 밖에서 기다리겠습니다.”

    손오공의 말에 소백룡이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심 도우, 백 도우, 두 사람이 나와 함께 가는 게 어떻겠소?”

    북명곤도 심협과 백영롱에게 물었다.

    “채주야, 신마의 우물은 이 탑 안에 있으니 내가 직접 가서 봐야 할 것 같아.”

    심협은 섭채주와 전음으로 대화했다.

    “……네, 알겠어요. 여기서 기다릴게요.”

    섭채주는 입술을 살짝 벌리더니 머뭇거리다가 답했다.

    “저는 가겠습니다.”

    심협은 북명곤을 바라보며 말하고는 건곤대와 소요경을 꺼내 섭채주의 손에 올려놨다. 다만 소요경을 건넬 때는 그 안에서 명화연로와 그 안의 화령자도 같이 뺐다.

    “채주야, 이걸 잠시만 맡아줘.”

    섭채주가 고개를 끄덕이고는 두 법보를 챙겼다.

    “심협, 이 탑 안에 어떤 위험이 있을 줄 알고 날 데리고 가려는 거냐? 난 안 갈 거야! 어서 날 소요경으로 돌려보내 줘.”

    심협의 머릿속에서 화령자의 목소리가 다급하게 들려왔다.

    “화령자, 넌 아는 게 많잖아. 네 도움이 필요해.”

    “안 가, 절대 안 가! 난 저런 위험한 곳은 싫어. 그리고 세 명만 된다잖아! 어차피 난 못 간다고!”

    화령자는 더욱 격렬히 거부했다.

    “넌 기령이니까 인원수에 안 들어가. 소서천은 본래 불문의 대진이니까 만불금탑 안에도 아마 수많은 법진과 함정이 있을 거야. 나 혼자서는 못 해. 네 혜안이 필요해.”

    법진이라는 말에 한참을 고민하던 화령자는 끝내 같이 가기로 했다.

    한편, 반대편에서는 백영롱도 북명곤의 요청에 손 파파와 유씨 자매를 두고 가기로 했다.

    조요경과 오화신염인이 데리고 갈 여섯 명은 정해졌으니 이제 몽운환갑이 데리고 갈 사람들만 정하면 되는데, 미소 쪽은 바로 정하지 못했다.

    “미소 도우, 뭘 망설이는 겁니까? 당신들 둘이서 저들과 맞설 수 있다고 생각합니까? 차라리 우리와 동맹을 맺고 저를 데려가시죠. 어떻습니까?”

    자 선생이 초조한 기색으로 물었다.

    미소는 고민하고 있는지 대답하지 않고 원조를 바라봤다.

    “저자의 말도 일리가 있소. 우리 두 사람으로는 영산 놈들에게 맞설 수 없지. 심협 무리까지 있으니 말이오. 지금은 많은 걸 신경 쓸 때가 아니오.”

    원조가 진중한 목소리로 말했다.

    “미소 도우, 마족은 삼계의 공적(公敵)입니다. 과거 마조 치우가 삼계를 멸망시키려 했을 때 요족도 함께 멸망할 뻔했거늘, 어찌 마족의 말을 쉽게 믿으려는 겁니까?”

    이때, 문수보살이 불쑥 끼어들었다.

    그 말에 미소의 표정이 잠시 굳었으나, 이내 신경 쓰지 않는다는 듯이 바로 펴졌다.

    “미소 도우, 내가 잘못 본 게 아니면 두 사람한테는 대영진공간영부가 없을 겁니다. 이것이 없으면 만불금탑에 들어간다 해도 신마의 우물을 차지할 수 없지요. 그러니 내 여러분을 돕겠습니다. 내가 신마의 우물을 차지하도록 도와준다면 우리 마족이 반드시 전력을 다해 호족의 부흥을 돕겠습니다.”

    자 선생의 이 말이 마음에 들었는지 미소의 표정이 부드러워지고 마음이 흔들렸다.

    “그럼…….”

    미소가 막 무슨 말인가를 하려는데, 다른 목소리가 그녀의 말을 끊었다.

    “호조 도우, 마족의 말을 믿어서는 안 되오. 만약 저자가 신마의 우물을 차지한다면 만불금탑에 들어간 사람은 모두 화를 입을 것이오.”

    그 목소리에 돌아보니 검은 갑옷의 남자, 흑룡이 서 있었다.

    “지금 뭐라고 지껄이는 것이냐?”

    자 선생이 차가운 표정으로 호통을 쳤다.

    “호조 도우, 나는 용족의 선조이니 당신과 원조 도우처럼 같은 요족 선조요. 그러니 우리야말로 진정한 전우라 할 수 있소. 저 음흉한 마족을 데려가느니 차라리 나를 데려가는 게 어떻겠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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