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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몽주-1132화 (1,132/1,214)

1132화. 9층 불탑

그들이 모두 떠나고 나자 심협도 그제야 안도하고는 손을 휘둘러 북명곤 등을 산하사직도에서 나오게 했다.

그는 의식을 잃은 오홍과 원구에게 다가가 상태를 살폈다.

“걱정할 것 없네. 신식의 소모가 크고 몸이 조금 상했으나 한동안 정양하면 회복될 걸세.”

북명곤은 말을 마치고는 가늘게 뜬 눈으로 초록색 해골을 바라봤다.

방금 조룡과 싸움을 벌였던 초록색 해골은 매우 특이한 자세로 땅바닥에 엎드려 있었다. 몸에 감도는 초록색 빛은 숨 쉬는 것처럼 커졌다 줄어들었다 하며 주위의 미미한 천지영기를 흡수했다.

오홍과 원구의 상태를 살펴본 심협은 북명곤의 말이 사실임을 확인하고는 안도하며 손을 휘둘러 두 사람을 소요경 공간 안의 죽루로 보냈다.

“조룡의 통제에서 벗어난 게 확실합니까?”

심협이 다시 물었다.

“저들을 조종하는 괴뢰법칙의 실은 내가 완전히 끊어냈으니 더는 조룡의 조종을 받지 않을 걸세. 그 점은 걱정하지 않아도 좋아. 다만, 나중에 다시 조룡의 손에 넘어가면 그때는 장담할 수 없네.”

북명곤은 심협의 질문이 불쾌했는지 살짝 눈살을 찌푸리며 답했다.

“알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심협이 포권하며 감사했다.

“약속했던 일 아닌가. 자, 이제 조요경을 넘겨주게.”

북명곤은 대수롭지 않다는 듯 말했다.

그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법력 파동이 멀지 않은 곳에서 갑자기 휘몰아쳐 두 사람의 시선을 끌었다. 그들이 바라보니 광망이 뒤덮인 초록색 해골의 위로 피와 살이 빠르게 재생되어갔다.

잠시 후, 초록색 소용돌이 광망이 초록색 해골에서 번득이면서 크기가 빠르게 줄어들었다. 광망이 사라지고 나자 거대한 해골은 이미 사라졌고, 대신에 하얀 옷을 입은 소녀가 그 자리에 서 있었다.

청아하고 앳된 모습에 정교한 이목구비와 약간의 젖살이 눈에 띄었고, 긴 머리카락이 등까지 늘어져 있었다. 두 눈에 담긴 초록색 눈동자는 신선하면서도 매력적이었다.

“조사님을 뵙습니다.”

손 파파가 가장 먼저 절을 하며 큰소리로 외쳤다.

유비연과 유비서가 뒤이어 절을 올렸다.

소녀는 그들을 바라보더니 표정 변화 없이 담담하게 말했다.

“일어나거라. 너희가 위험을 무릅쓰고 구해주지 않았다면 나는 진요탑에서 완전히 소멸했을 것이다.”

“조사님을 구하는 것은 제자의 사명. 한시도 잊지 않았습니다. 그 사명을 오늘 마침내 완수하고 조사님을 뵙게 됐으니 죽어도 여한이 없습니다.”

손 파파는 울먹이는 듯한 목소리로 일어나지 않고 덜덜 떨며 말했다.

이를 본 백의 소녀의 표정이 부드러워졌다.

“어서 일어나거라.”

손 파파는 그제야 일어나더니 조사에게 심협을 동맹이자 은인이라고 소개했다.

백의의 소녀는 심협과 섭채주를 살펴보고는 마지막에 북명곤을 바라보았는데, 그의 진짜 정체를 알아챈 것처럼 몸을 움찔하더니 눈살을 찌푸렸다.

하지만 다른 말 없이 감사 인사를 전했다.

“도우의 도움으로 무사히 빠져나올 수 있었구나. 이 은혜는 반드시 갚겠다.”

심협은 소녀의 정체를 몰랐기에 손 파파를 돌아보았다.

“이분은 우리 여아촌의 조사님이시오.”

손 파파가 심협의 의문을 알아채고는 바로 설명했다.

“나는 백영롱(白玲瓏)이라 한다.”

백의의 소녀가 맑은 목소리로 자기 이름을 밝혔다.

“후배 심협, 백 선배님을 뵙습니다.”

심협이 포권하며 예를 올리자 섭채주도 따랐다.

북명곤은 말없이 심협을 바라봤다.

심협은 망설이지 않고 조요경을 꺼내서 상대에게 건넸다.

백영롱은 조요경을 보자 눈빛이 반짝였는데, 눈동자 깊은 곳에는 꺼림칙함이 숨겨져 있었다.

반면 북명곤은 심협이 이렇게 흔쾌히 넘겨줄 것이라고는 예상하지 못했던 것인지 약간 당황해 바로 받지 않았다.

“이런 보물을 그냥 건네줘도 되는 것이냐?”

백영롱이 매우 의아해하며 말했다.

“약속된 일입니다. 일종의 보수를 주는 셈이지요.”

심협은 길게 설명하지 않았다.

“너는 저들이 왜 이 보물을 차지하려고 했는지 아느냐?”

백영롱이 눈살을 찌푸리며 물었다. 그녀는 심협이 이 보물의 중요성을 모르기에 이렇게 쉽게 조요경을 북명곤에게 건네는 것이라 생각했다.

심협은 고개를 저었다.

“이제 곧 열리는 만불금탑은 세 가지 보물이 있어야만 안으로 들어갈 수 있다. 조요경이 그중 하나지. 만불금탑에는 진요탑과 달리 수많은 보물이 있다.”

백영롱의 설명에 심협은 놀란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으나, 내민 손을 거두지는 않았다. 오히려 어서 받으라는 듯 손을 흔들기까지 했다.

“심 도우 그리고 백 도우. 나와 함께 만불금탑에 들어가는 게 어떻겠소?”

북명곤이 조요경을 받으며 물었다.

“그리 말씀하시니 가보고 싶습니다.”

심협이 고개를 끄덕였다. 이번 여정의 목적지인 신마의 우물이 만불금탑에 있으니 당연히 가고 싶었다. 사실 북명곤이 제안하지 않아도 어떻게 해서든 같이 갈 생각이었다.

“백 도우는……?”

북명곤이 백영롱을 바라보며 물었다.

“저도 갑니다.”

백영롱은 명쾌하게 답했다.

심협 일행은 진요탑에서 나온 뒤 소서천의 건물들을 지나 만불금탑이 있는 곳으로 향했다.

백영롱은 불국의 특징이 가득한 건물들을 보자 눈 깊은 곳에서 밀려오는 혐오감을 감추지 못했다. 그녀가 진요탑에 갇혀 있는 세월은 너무 길었고 또 너무 힘들었던 만큼 그간 쌓인 분노와 증오는 절대 가볍지 않았다.

심협은 섭채주와 나란히 걸으면서도 백영롱을 주시했다.

그녀는 홀로 가장 앞에서 걸었고, 손 파파와 유씨 자매는 그녀와 멀찍이 떨어진 채 걷고 있었다.

백영롱은 진요탑에서 나온 순간부터 기이한 분위기를 풍겼다. 마치 몸 주위에 보이지 않는 천지의 깔때기가 쉬지 않고 원기를 빨아들여 그녀 몸으로 흡수되고 있는 것 같았다.

하지만 조룡과의 싸움이 끝난 이후부터 그녀가 뿜어내는 기운은 진선 초기에 불과했고, 가는 내내 쉬지 않고 천지영기를 흡수하고 있음에도 기운은 뚜렷한 변동을 보이지 않았다.

진요탑 꼭대기에 갇힐 때 그녀는 적어도 태을 초기였을 것이고, 지금 보이는 모습도 그녀의 실제 힘은 아니라고 심협은 확신했다.

그리고 북명곤의 진짜 목적이 뭔지도 알 수 없었기에 지금까지의 순조로운 협력에도 불구하고 쉽게 믿을 수 없었다. 모든 것은 만불금탑 안에 들어가야만 어느 정도 결론을 낼 수 있을 것 같았다.

오홍이 아직 의식을 차리지 못한 지금, 심협이 진정으로 믿을 수 있는 사람은 섭채주뿐이었다.

섭채주는 심협의 생각을 눈치챘는지 가볍게 잡고 있던 손에 힘을 주었다.

심협은 바로 환하게 웃었고, 표정도 한껏 폈다. 두 사람은 말이 필요 없다는 듯 조용히 눈을 마주쳤다. 서로가 있어서 안심할 수 있었다.

만불금탑으로 가는 길 곳곳에는 휘황찬란한 건물들이 있었다. 비록 대당 왕조의 건물처럼 웅장하지 않아도 이국적인 풍미가 느껴졌다.

심협은 건물의 각종 금장식을 보며 속으로 감탄했다.

가는 길에 가끔 진요탑에서 도망친 요물을 마주쳤지만, 감히 그들을 공격하는 요물은 없었다. 전부 그들을 보자마자 겁을 먹고 도망치기 바빴다.

한참을 걸은 뒤, 만불금탑과 가까워지자 백영롱이 갑자기 손을 들었다.

“잠깐!”

심협도 동시에 뭔가 다른 기운을 느꼈다.

“왜 그러세요?”

섭채주가 조용히 물었다.

손 파파 등도 경계하는 표정으로 주위를 둘러봤다.

하지만 주위는 조용했고, 아무런 기척도 없었다.

좌우를 잠시 둘러보던 백영롱이 갑자기 왼쪽 골목으로 들어갔다.

심협이 앞장서서 따라갔고, 다른 사람들도 뒤를 따랐다.

북명곤은 이렇게 시간을 끄는 게 불만이었는지 눈살을 찌푸리고는 만불금탑을 바라봤지만, 이내 고개를 저으며 골목으로 따라 들어갔다.

긴 골목을 지나고 다시 2층 높이의 누각을 돌자 백영롱이 다시 멈췄다.

다른 사람들도 잇따라 도착해서 앞의 상황을 보고는 일제히 걸음을 멈췄다.

눈앞의 무너진 건물에 몸 절반이 보라색으로 물들고 온몸에 동전 모양 같은 검은색 반점이 가득한 시체가 쓰러져 있었다.

그 시체는 큰 의자에 반쯤 누운 것처럼 두 팔을 활짝 벌리고 있었고, 옷이 활짝 열려서 커다란 배를 드러낸 상태였다. 기이하게도 얼굴에는 옅은 웃음이 남아 있었다.

“마가……?”

심협이 그 시체의 정체를 알아봤다.

몸을 굽혀 자세히 살폈으나, 이미 누군가 가져갔는지 저물 법기가 보이지 않았다.

“건드리지 말거라. 그자는 맹독의 법칙에 당해서 죽은 터라 그 시체는 독주머니나 마찬가지다. 조금이라도 닿으면 바로 감염되는데, 태을 경지의 수사도 막을 수 있을지 알 수 없을 정도다.”

백영롱의 목소리가 아니었다 해도 심협은 시체를 건드릴 생각이 없었다.

백영롱이 다가오더니 마가의 머리 위에 손을 올리고 푸른 빛을 뿜어냈다.

다음 순간, 몸 안에 남아 있던 독소가 조금씩 빠져나오며 시체의 보라색과 동전 같은 검은색 반점이 옅어지기 시작했다.

백영롱의 손이 마치 독을 빨아먹는 입처럼 마가의 몸에 있던 모든 독소를 조금씩 빨아들이더니 잠깐 사이에 독을 전부 다 흡수했다.

독성이 모두 제거된 마가의 몸은 색이 바랬고, 보통 시신처럼 회백색이 되었다.

심협은 그제야 그의 이마에 생긴 가느다란 상처가 눈에 들어왔다. 시체의 색이 너무 짙어서 보이지 않았던 것이 지금은 뚜렷하게 드러난 것이다.

“선배님, 이 독소는 선배님의 것 같은데 맞습니까?”

심협이 굳은 목소리로 물었다.

“그렇다. 그는 내 맹독 법칙에 죽은 게 분명하다.”

백영롱이 고개를 끄덕이고는 손 파파를 돌아봤다.

손 파파가 서둘러 고개를 숙이고는 설명했다.

“조사님, 저희가 무능하여 조사님의 만독호로를 회수하지 못하고 만요맹의 맹주에게 빼앗겼습니다.”

“만요맹?”

“동해의 신진 세력으로, 맹주는 태을 중기의 수사 백천입니다.”

손 파파가 서둘러 설명했다.

“태을 중기의 수사라면 너희를 탓할 수 없겠구나.”

그 말을 들은 백영롱은 고개를 끄덕였지만 심협은 의문이 들었다.

‘그럼 마가는 백천의 손에 죽은 건가? 동맹이 아니었나?’

하지만 이내 저들끼리 더 많이 싸우길 바랐다.

이들은 이내 다시 출발했고, 금방 만불금탑 아래 도착했다.

방금 멀리서 봤을 때는 전체 모습을 볼 수가 없었는데, 가까이서 보니 9층 높이의 밀첨식(密檐式) 불탑이었다. 그러나 높은 탑이라는 것 외에는 특별한 점이 없어 보였다.

보탑의 층마다 보살과 신불 법상이 있는 불단(佛壇)이 새겨져 있었는데, 하나같이 연화대에 가부좌를 튼 모습이었고, 얼굴은 희미했다.

불탑 주위에는 하얀색 돌이 깔린 넓은 광장이 있었는데, 광장 바닥에 박혀 있는 하얀 연석(緣石)에는 수많은 세월의 흔적이 남아 있었다.

가까이 다가가 보니 그중 적지 않은 연석에 불문 경전이 새겨져 있었는데, 그중에는 <금강경>과 <반야바라밀다심경> 같은 경전 불경도 적지 않았다.

광장 주위에는 경당(經幢)이 놓여 있었는데 그 위에는 ‘보리는 본래 나무가 없고 명경(明鏡)도 역시 받침대가 없구나. 본래 아무것도 없는 것인데 어디서 먼지가 일어나는고(菩提本無樹, 明鏡亦非臺, 本來無一物, 何處惹塵埃)’와 같은 불게(佛偈)가 적혀 있었다.

저 멀리, 만불금탑 문 앞의 계단에 두 사람이 가부좌를 틀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엄숙한 표정의 문수보살과 어두운 표정의 원조였다.

더 먼 곳에는 검은색 비늘 갑옷을 입은 커다란 남자가 가부좌를 튼 채 잔뜩 찌푸린 얼굴로 그들을 노려보고 있었다. 물론 흑룡의 몸을 차지한 조룡의 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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