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대몽주-1129화 (1,129/1,214)
  • 1129화. 세 개의 우리

    어느 보라색 공간 안, 하얀색 광망이 번쩍이더니 기이하게 변해 희끄무레한 작은 소인이 되었다. 한데 그 외모는 심협과 똑같았다. 이는 그의 신식이 변한 것이니 당연한 일이었다.

    보라색 공간 곳곳에는 끈적끈적한 독무가 가득했다. 방금 흡수한 만독강기였다. 만독강기는 맷돌만 한 보라색 빛 덩어리 주위를 천천히 회전하고 있었다.

    “만독강기!”

    심협은 긴장했다. 만독강기는 심지어 신식마저 부식시키니 어찌 위험하지 않겠는가!

    하지만 주위의 만독강기가 자신에게 아무런 영향을 주지 않는다는 것을 금방 알아챌 수 있었다. 하얀색 소인 주위에 어렴풋이 보이는 한 겹의 보라색 빛무리가 만독강기를 차단해 주었던 것이다.

    보라색 빛무리에서는 법칙의 힘의 파동이 은은하게 뿜어져 나왔다.

    “만독강기를 막아내다니, 이게 독의 법칙인가?”

    심협이 중얼거렸다.

    위험하지 않음을 알고, 일단 안도한 그는 주위를 둘러봤다.

    이곳의 공간은 폭은 백 장 정도로 넓지 않았다.

    곳곳에서는 만독강기가 가운데의 보라색 빛 덩어리를 맴돌고 있었다.

    그 보라색 빛 덩어리는 세밀한 영문으로 가득했고, 강력한 법칙의 힘 파동을 뿜어냈다. 심협의 몸을 감싸고 있는 보라색 빛무리 안의 법칙의 힘과 똑같았다.

    “독의 법칙이 저 보라색 빛 덩어리 안에 있는 것 같군.”

    보라색 빛 덩어리에서 뿜어져 나오는 밝은 광망이 주위를 비추자 만독강기는 색이 조금씩 옅어졌지만, 독성은 오히려 더 강해졌다.

    “저 빛 덩어리가 만독강기를 연단하는 건가?”

    심협은 진중해지더니 신식으로 빛 덩어리 내부를 살펴보려 했지만, 보이지 않는 힘에 가로막혔다.

    그는 콧방귀를 뀌고는 작은 적색 검으로 변하여 보라색 빛 덩어리를 강하게 베었다.

    파지직!

    날카로운 소리와 함께 보라색 빛 덩어리에 작은 구멍이 생기더니 강력한 흡입력이 뿜어져 나와 다시 심협의 신혼을 빨아들였다.

    * * *

    다시 눈앞이 밝아지고 정신을 차렸을 때, 심협은 본체로 돌아와 있었다.

    그는 만독혼원주를 빤히 바라보다가 챙겨 넣었다.

    “심 도우, 독무를 치워져서 정말 고맙군그래. 하하하!”

    원조의 웃음소리가 들려오더니 검은 빛이 번쩍이며 5층 입구로 들어갔고, 거의 동시에 문수보살도 금홍(金虹)으로 변하여 입구로 향했다.

    이를 본 심협은 표정이 굳어졌지만, 두 사람을 제지하지 않고 소매를 휘둘렀다.

    산하사직도가 날아오르더니 눈부신 하얀 빛이 반경 10여 장을 순식간에 뒤덮었다.

    하얀 빛이 사라지자 섭채주와 여아촌 세 사람이 나타났다. 그러나 북명곤은 나타나지 않았다.

    모습과 기운을 바꿨어도 조룡 정도의 경지라면 정체를 간파할지도 모른다는 우려에 북명곤은 이미 전음으로 자신은 산하사직도에 있겠다고 했다.

    “우리도 가죠!”

    심협과 일행은 5층 입구로 들어갔다.

    5층 공간은 매우 어두웠다. 빛이 차단돼 생긴 어둠이 아닌, 짙은 검은색 안개가 가득 뒤덮은 것 같은 어둠이라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손 파파가 손가락을 비비자 손바닥에 커다란 하얀 빛이 나타났는데, 조금 퍼지는가 싶더니 어둠에 눌려 주먹만 해졌고, 더는 비추지 못했다.

    심협은 눈에서 빛을 번득이며 영목 신통으로 주위를 둘러봤지만, 시선이 닿는 곳마다 어둠뿐이라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다만 들쑥날쑥한 호흡 소리를 통해 일행이 모두 그곳에 있음은 알 수 있었고, 그제야 조금 안도했다.

    “아무래도 법진 금제가 설치되어 아무것도 안 보이는 것 같소.”

    손 파파가 먼저 침묵을 깼다.

    “영목 신통으로도 보이지 않고 신식으로 탐색하는 것도 제약이 있으니 먼저 이 금제를 부숴야 할 것 같습니다.”

    심협이 잠시 생각하더니 그렇게 말하고는 소요경을 열어 화령자를 소환했고, 방법이 있는지 물었다.

    “나도 아무것도 안 보이고 아무것도 안 느껴져서 법진이 어디에 있는지도 모르겠는데 어떻게 법진을 파훼하겠나?”

    화령자가 투덜댈 때였다.

    “눈으로 볼 수 없고 신념도 제한을 받지만, 제게 주위를 감지할 방법이 있습니다.”

    갑자기 문수보살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주위를 감지할 수 있다면 어서 해봐.”

    화령자가 눈을 반짝이며 말했다.

    그러자 문수보살은 무언가를 읊조리기 시작했다.

    기이한 법칙 파동이 섞인 불문을 읊는 듯한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이거 좋은 방법인데?”

    심협은 음파가 퍼지는 것을 감지하고는 감탄했다.

    문수보살의 음파는 사방으로 퍼져 벽과 돌기둥 등에 닿으면 다시 튕겨서 되돌아왔다.

    그렇게 튕겨서 돌아오는 음파가 점점 많아지자 주위의 공간 배치가 그림처럼 그의 머릿속에서 만들어지기 시작했다.

    “당신이 감지한 공간 배치를 말해줘. 자세할수록 좋아.”

    화령자가 말했다.

    “삼백 보쯤 앞에 돌기둥이 있는데, 울퉁불퉁한 것이 어떤 문로가 새겨진 것 같고…… 오른쪽 사백삼십이 보 떨어진 곳의 벽에는…….”

    문수보살은 천천히 상황을 묘사했다.

    모두가 진지하게 귀를 기울였고, 화령자는 때때로 그 선들의 방향과 형태를 물었다.

    한참 뒤, 문수보살이 묘사를 멈췄고, 화령자도 질문을 멈추었다. 검은 공간에는 다시 적막이 흘렀고, 모두가 얌전히 결과를 기다렸다.

    그러던 중 어둠 속에서 부스럭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는데, 화령자가 엎드려서 바닥을 만져보는 소리였다.

    “어떤 금제 법진인지 알아냈다.”

    화령자가 고개를 들며 말했다.

    “오, 그게 무엇인가?”

    손 파파가 서둘러 물었다.

    “구현납광진(九玄納光陣). 어둠으로 주위가 뒤덮인 게 아니라 빛이 법진에 빨려 들어가고 있는 거다.”

    화령자가 일어나서 먼지를 털며 말했다.

    “어떻게 파훼하지?”

    심협이 물었다.

    “간단하다. 진추(陣樞) 몇 개만 부수면 되니까.”

    그러더니 그는 곧바로 문수보살에게 진추들의 위치를 알려주었다. 이 공간의 배치를 가장 잘 알고 있는 문수보살이 부수는 것이 가장 적절했기 때문이다.

    문수보살은 그의 말을 듣고는 몸을 움직여 짙은 어둠 속으로 사라졌다.

    그리고 잠시 후, 어디선가 쾅 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곧이어 사람들은 약한 빛이 뿜어져 나오면서 숨 막힐 듯 짙은 어둠이 한 꺼풀 벗겨지는 것을 느꼈다. 주위는 여전히 어두웠지만, 손을 뻗어도 손가락조차 보이지 않을 정도는 아니었다.

    심협이 눈을 번득이며 다시 주위를 둘러보니, 그들은 지금 아무것도 없는 넓은 공간에 있었다. 저 앞에는 벽과 기둥 외에는 어떤 장식도 없었다.

    문수보살은 앞쪽의 부서진 기둥 옆에서 그들을 돌아보고 있었다.

    사람들은 한결 가벼워진 표정으로 주위를 둘러보았다.

    “여기는 왜 아무것도 없는 거지?”

    “그러게요. 이곳을 지키는 괴뢰도 없는 것 같은데요?”

    유비연, 유비서 자매가 의아한 듯 중얼거렸다.

    “지키는 괴뢰가 없는 게 아니라 설치할 필요가 없었던 것이다. 이 층에 가둬둔 요물들이 탈출하면 괴뢰가 지키고 있어도 막을 수 없으니까.”

    심협은 설명하며 시선을 돌기둥 넘어 어둠 깊숙한 곳으로 돌렸다.

    “구현납광진뿐만 아니라 더 많은 진압 부문이 새겨져 있군. 아무래도 제압할 대상의 힘을 억누르는 용도 같다. 허나 너무 오래돼서 나도 어떤 법진인지 알아볼 수는 없어.”

    화령자가 돌기둥 옆으로 다가가 거기에 새겨진 짐승 모양의 부문을 자세히 살펴보고는 혀를 차며 말했다.

    그들은 눈빛을 교환한 뒤, 공간 깊은 곳으로 향했다. 한데 걷는 속도는 무척 느렸다.

    잠시 후, 저 앞의 어둠 속에서 갑자기 노란 빛이 나타났다. 모두의 시선이 그쪽으로 향했다. 어둠 가장 깊은 곳, 품(品)자 형태의 하얗고 커다란 우리 세 개가 우뚝 서 있었다.

    자세히 보니 가장 왼쪽 우리의 문은 활짝 열려 있었으나 텅 빈 상태였다. 오른쪽의 우리에는 초록빛 해골이 바닥에 엎드려 있었는데, 그 생김새가 기이했다.

    가운데 우리에는 온몸이 칠흑 같은 머리 두 개가 달린 악룡이 엎드린 채 매서운 눈빛으로 그들을 노려보고 있었다.

    “저게 뭐지?”

    유비서가 경악한 목소리로 낮게 외쳤다.

    심협은 한눈에 조룡의 혼이 찾고 있는 쌍두(雙頭) 흑룡임을 알아챘다.

    하지만 주위를 아무리 둘러봐도 오홍과 원구의 모습이 보이지 않았고, 심협은 그 사실에 불안해졌다.

    “가보죠.”

    문수보살이 짧게 말하고는 앞장서서 걸어갔고, 원조가 뒤를 바짝 쫓았다.

    다른 사람들은 은연중에 심협을 앞세우고 뒤를 따랐다.

    가까이 가보니 쌍두흑룡의 눈동자에는 옅은 금빛이 감돌았는데, 시선은 그들에게서 떨어질 줄 몰랐고, 그 외에는 미동조차 없었다.

    옆 우리의 초록색 해골은 몸이 온전치 않았다. 마치 척추뼈가 통째로 뽑힌 것 같았다. 보기에는 이미 죽어서 다시는 살아날 수 없을 것처럼 보였지만, 심협은 그 해골에서 어렴풋이 생기를 감지했다.

    파지직!

    백옥(白玉) 우리 위에 갑자기 노란색 전광이 번쩍이더니 우리 안으로 들어와 초록색 해골을 내리쳤다.

    전광이 꽂히자 해골에는 동전만 한 시커먼 자국이 떠올랐다. 해골은 마치 뼈를 찌르는 고통을 겪은 것처럼 온몸을 격렬하게 떨었다.

    그러나 심협은 전광이 꽂힌 곳에 생긴 자국이 매우 빠르게 사라지더니 곧 원래대로 회복된 것을 놓치지 않았다.

    이미 노란색 광망이 비치는 영역에 도착한 문수보살이 눈살을 찌푸렸다.

    뒤를 바짝 따라온 원조는 거리낌 없이 그 안으로 들어갔는데, 몸에 노란색 광망이 비치는 순간, 갑자기 하늘을 찌를 듯한 포효를 내질렀다. 그는 고통에 얼굴이 일그러진 채 주먹으로 땅을 세게 내리치기 시작했다.

    쾅! 쾅! 쾅!

    심협 등은 원조의 갑작스러운 변화에 깜짝 놀라 멍하니 서서 가까이 다가가지 않고 지켜봤다.

    어두운 노란 빛에 휩싸인 채 포효하는 원조의 몸은 빠르게 커졌고, 강철 같은 검은색 털이 자라났다. 그는 눈 깜짝할 사이에 3장 크기의 거대한 검은색 원숭이로 변했다.

    심협은 굳은 얼굴로 조금 다가섰고, 이내 안색이 변했다. 소요경 안에 숨어 있던 거울 요괴와 산하사직도에 제압해 놓은 눈물 요괴 모두에게 이변이 일어나 일제히 변신하고 있었던 것이다.

    심협은 서둘러 산하사직도를 바라봤으나, 다행히 그 안에 있던 북명곤에게는 아무런 이상도, 변화도 없었다.

    심협이 노란색 광막의 근원을 바라보니 세 개의 우리 바로 위쪽 허공에 사람 얼굴만 한 둥근 청동 거울이 떠 있었다.

    황동(黃銅) 재질의 거울에서 뿜어져 나오는 노란색 광망이 아래의 영역을 뒤덮었다.

    파지직!

    또 한 번의 가벼운 소리와 함께 노란색 뇌전이 청동 거울에서 뿜어져 나와 백옥 우리 안으로 들어가더니 초록색 해골을 내리쳤다.

    “저건…… 조요경?”

    문수보살이 경악한 목소리로 외쳤다.

    이와 동시에 심협의 머릿속에서 북명곤의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저건 상고의 중보 조요경일세. 모든 요물을 원래 모습으로 변하게 하고, 또 천하의 모든 변화술을 간파할 수 있으며, 멸요신광(滅妖神光)으로 모든 요물을 억제할 수 있네.”

    “조요경이라니, 불문과 도문의 수사가 요물을 잡을 때 갖췄던 흔한 법기 아닙니까?”

    “저건 다르네. 세상에 나타난 첫 번째 조요경으로, 후세의 불문이나 도문이 사용한 것들은 저것을 모방하여 만든 것뿐이지. 심 도우, 내가 가질 수 있게 도와달라고 했던 보물이 바로 저것일세. 저걸 얻도록 도와준다면 내 오홍과 원구를 본래 상태로 되돌려주겠네.”

    북명곤이 간절한 목소리로 말하자 심협은 잠시 머뭇거렸다.

    5층에 도달한 뒤에도 그는 오홍과 원구를 보지 못했다. 하지만 상황을 돌이켜보니 북명곤이 자신을 속이지 않았음을 알 수 있었다.

    그렇다면 그들은 도대체 어디에 있단 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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