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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몽주-1128화 (1,128/1,214)
  • 1128화. 오홍

    심협의 손에서 쏘아져 나간 금빛이 소용돌이를 감쌌지만, 이 역시 바로 휘말렸다. 하얀 소용돌이를 완전히 집어삼키면서 몇 배나 강해진 보라색 독무는 심협의 금빛도 침식해 갔다.

    심협은 내심 놀랐다.

    ‘저 만독강기는 다른 사람의 법력을 흡수하면서 더 강해지는구나! 역시 맹독 공법의 최고 경지답군.’

    그는 이번에는 황제내경의 초록색 빛으로 독무를 감쌌다.

    놀랍게도 이 만독강기의 위력은 실로 예측할 수 없을 정도라, 황제내경으로도 없애기는커녕 오히려 이마저 점점 침식되어 갔다.

    허나 황제내경은 고금을 아우르는 최고의 공법이자 천하제일의 치료 공법답게 그 본원의 힘은 끝이 없었다. 만독강기가 천하제일의 독공이라 해도 쉽게 침식하지 못하고 그 금빛을 조금 어둡게 했을 뿐이었다.

    이를 본 심협은 안도하고 초록색 빛으로 만독강기를 다시 감싸 산하사직도 안으로 밀어 넣었다.

    임랑환에서 보라색의 무언가가 날아오르더니 빠르게 산하사직도 안으로 들어갔다. 바로 만독혼원주였다.

    심협이 강력한 법력을 만독혼원주에 주입하자 이 구슬이 크게 떨리더니 만독강기를 향해 신비한 보라색 유광(幽光)을 쏘아 보냈다.

    만독강기는 요동치며 보라색 유광을 침식하려 했지만, 오히려 이 유광에 뒤덮였다.

    올챙이 같은 수많은 보라색 부문이 유광에서 쏟아져 나와 만독강기에 닿자마자 그 안으로 녹아들어 갔다.

    불과 두세 호흡 사이에 만독강기는 완전히 사라져 버렸다.

    이를 본 심협은 크게 놀랐다. 그의 예상대로 만독혼원주는 만독강기를 억제할 수 있었다. 다만 그 방법은 완전히 예상 외였다.

    “어때? 이 독무를 파훼할 방법은 생각 좀 해봤나?”

    원조가 비꼬는 목소리로 말했다.

    심협은 원조를 무시하고 손 파파 등에게 전음을 전했다.

    “만독강기를 파훼할 방법이 있는데 저와 함께 돌파하겠습니까?”

    이에 세 사람은 흠칫 놀랐다.

    만독강기의 무서움은 이들이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한데 그걸 파훼할 수 있다니, 믿기 힘든 것도 당연했다.

    유비서와 유비연은 결정하지 못하고 손 파파를 돌아봤다.

    “그렇다면 당연히 심 도우를 따라야지요. 그럼 도우만 믿겠소.”

    손 파파는 잠시 생각하더니 흔쾌히 전음을 보냈다.

    “좋습니다. 그럼 우선 제 공간 법보에 들어가서 기다리시죠.”

    산하사직도에 나온 하얀 빛이 섭채주와 북명곤 그리고 여아촌의 세 사람을 뒤덮었고, 이내 이들의 모습이 사라졌다.

    심협은 산하사직도를 거두고는 몸을 초록색 빛으로 감싼 뒤 보라색 독무를 향해 뛰어들었다.

    만독강기가 바로 요동치며 침투해오려 했지만, 초록색 빛이 강하게 번득였다.

    심협은 보라색 독무 안에 있었기에 만독강기의 침식이 아까보다 훨씬 강력했다. 보라색 독무가 빠르게 몰려와 그의 몸에 닿으려 했다.

    미리 가슴팍에 숨겨둔 만독혼원주에 법력을 주입하여 발동하자 보라색 빛이 번득이더니 몸을 감싼 초록색 빛 안에 보라색 고리가 만들어졌다.

    침투해오던 독무는 이 고리와 닿자마자 깊은 바닷속에 빠진 것처럼 흡수되어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산하사직도가 완전히 닫히지 않았던 터라 유비서와 유비연, 북명곤 등은 신식을 통해 이 광경을 목격하고는 깜짝 놀랐다.

    “저건……?”

    손 파파가 심협의 가슴팍에서 빛나는 보라색 빛을 보고는 놀란 기색으로 중얼거렸다.

    원조 또한 경악한 기색이었고, 문수보살도 놀라기는 마찬가지였다.

    주위의 독무를 막아낸 심협은 초록색 번개가 되어 곧장 독무 깊숙한 곳의 존재들에게로 달려갔고, 눈 깜짝할 사이에 구렁이 요물 앞에 나타났다.

    이 요물이 입을 크게 벌려 물으려 했지만, 심협이 더 빨랐다. 순양검이 순식간에 구렁이 요물 코앞에 나타났고, 작은 붉은색 검의 허상이 분리되더니 쏜살같이 요물의 체내로 들어갔다. 바로 심검 신통이었다.

    구렁이 요물의 눈에서 광망이 크게 줄어들면서 우뚝 멈췄다.

    다음 순간, 붉은 검광이 번득였고, 이 요물의 머리가 빙글빙글 돌며 날아갔다.

    이어서 심협은 곧장 오화칠금선을 꺼내 강하게 휘둘렸다.

    오색 불꽃이 날아가 구렁이 요물의 머리를 감싸더니 펑 하고 폭발했다. 요물의 머리는 뜨거운 불꽃 속에서 순식간에 재가 되어 흩어졌다.

    그러나 이 요물의 몸통은 죽지 않았고, 잔해에서 푸른 빛이 번득이더니 심협에게 커다란 꼬리를 채찍처럼 휘둘렀다.

    이 무렵, 다른 요물들도 달려들어 공격을 폭풍처럼 쏟아냈다.

    심협은 비록 주위의 독무를 막아낼 방법이 있었지만, 이런 위험한 곳에 오래 머물 생각은 없었기에 낮게 포효하며 한 손을 결인했다. 그러자 몸에서 금과 흑의 광망이 뿜어져 나왔다.

    그의 몸이 순식간에 몇 배로 커졌고, 몸에는 수많은 금과 흑의 무늬가 떠올라 몸의 절반은 금색으로, 다른 절반은 검은색으로 변하였다. 현양화마 신통이었다.

    심협이 주먹으로 가슴을 내리치자 펑 하는 소리가 울려 퍼졌고, 몸에서 뿜어져 나오던 두 가지 색의 광망이 줄어들어 한 겹의 금과 흑의 빛무리가 되었다.

    이 빛무리는 매우 두꺼웠고, 영문과 마문이 곳곳에 퍼져 있어서 매우 기이해 보였다.

    이것은 반고진공 중 방어 신통인 반고호신주(盤古護身呪)로, 선과 마의 힘을 동시에 발동할 수 있어야만 시전할 수 있다. 대성할 경우 엄청난 방어 능력을 발휘한다.

    심협은 아직 반고진공을 수련하지 않았지만, 이미 현양화마 신통을 통해 선과 마의 힘을 어느 정도 장악하였기에 이 신통을 간신히나마 시전할 수 있었다.

    금과 흑 빛무리가 형성되자마자 몇 마리 요물이 동시에 위를 공격해왔다.

    쾅! 쾅! 쾅!

    굉음이 연이어 울려 퍼졌고, 금과 흑의 빛무리는 약간 흔들렸으나, 이내 원래대로 돌아왔다. 오히려 공격을 퍼부은 요물들이 타격을 받은 듯 입에서 피를 뿜으며 뒤로 날아갔다. 반고호신주는 방어에 유용할 뿐만 아니라 적의 공격을 반사하는 위능이 있어 요물들이 중상을 입은 것이다.

    심협은 반고호신주의 강력함에 기뻐하며 헌원검을 꺼내 법력을 주입했다.

    콰쾅!

    주위의 천지영기가 솟구쳤고, 방대한 뇌전 법칙이 허공에 강림하더니 만독강기를 흩어버렸다.

    지금 그의 법력으로는 헌원검의 위력을 완전히 끌어낼 수 있었다.

    몇 마리 요물은 주위에서 기이한 파동이 일어나는 것을 느꼈고, 몸이 마비된 것처럼 움직일 수 없게 됐다. 눈앞에서 금색 뇌전이 번쩍이자 요물들의 몸이 대번에 머리부터 반으로 갈라졌다.

    심협은 다시 오화칠금선을 꺼내 요물들을 향해 강하게 휘둘렀다.

    한데 그때, 뒤쪽 허공에서 파동이 일더니 금과 백의 광망을 번쩍이는 이화창이 심협의 등을 노리고 날아왔다.

    창에서 뿜어져 나온 몇 줄기 하얀 빛이 반고호신주를 찌르자 금과 흑의 빛무리가 크게 흔들리면서 한 줄의 금이 생겨났다.

    이화창의 창날이 뱀의 혀처럼 그 틈을 파고들어 심협의 단전을 노렸다.

    심협은 마치 상황을 예상한 것처럼, 당황하지 않고 오화칠금선을 거두고는 뒤로 손을 뻗어 이화창의 날을 잡았다.

    이화창은 몇 촌 정도를 더 나아갔으나, 이내 완전히 멈췄다. 강렬한 기세로 광망을 뿜어내도 더는 나아가지 못했다.

    뒤쪽 허공에서 차갑게 비웃는 소리가 나더니 이화창이 하얗게 빛나기 시작했다.

    그러나 심협이 더 빨랐다. 그는 번개처럼 몸을 돌려 오른손의 헌원검을 거두고는 방대한 힘의 법칙이 감도는 주먹으로 이화창 너머의 허공을 찔렀다.

    금과 흑의 태양이 허공에 나타나 반경 백 장을 무너뜨렸고, 그 너머로 몸의 절반이 갈라진 채 피를 뿜어내는 사람이 나타났다.

    “오형!”

    심협이 깜짝 놀라 상대의 머리로 향하던 금흑의 주먹을 서둘러 거뒀다.

    하지만 엄청난 권풍은 이미 뿜어져 나간 터라 오홍은 소용돌이 속의 낙엽처럼 멀리 날아갔다.

    “심 도우, 오홍을 산하사직도 안에 넣게! 그를 돌이킬 방법이 있네!”

    북명곤의 목소리가 머릿속에 울려 퍼진 순간, 심협은 기뻐하며 뇌광으로 변하여 오홍을 쫓아갔다.

    오홍은 부상도 신경 쓰지 않고 열 개의 손가락에서 눈부신 하얀 빛을 발하며 허공을 잡았고, 공간 안쪽까지 깊게 파고들자 힘껏 잡아당겼다.

    반경 10여 장의 공간이 일그러지면서 파지직 하는 소리와 함께 일고여덟 개의 공간균열이 나타나더니 오홍의 손가락질을 따라 심협을 베며 날아갔다.

    이 공간의 균열들은 질풍처럼 빨라서 뇌전으로 변한 심협과 비교해도 속도가 뒤처지지 않았고, 금세 그의 길을 막았다.

    표정이 어두워진 심협은 헌원신검을 크게 휘둘렀다.

    10여 줄기의 금색 뇌전이 담긴 검홍이 강력한 힘의 법칙을 뿜어내며 사방으로 휘몰아쳤다.

    챙! 챙!

    굉음과 함께 몇 줄기 공간 균열이 사라졌다.

    오홍은 놀란 듯 표정이 변하더니 용 모양의 금빛으로 변하여 5층 입구로 빠르게 날아갔다.

    이를 본 심협은 서둘러 쫓아갔지만, 거리가 워낙 멀어서 막을 수가 없었다. 그저 그가 5층으로 사라지는 것을 지켜봐야 했다.

    다른 요물도 몸이 회복된 듯 오홍의 뒤를 따라 입구로 향했다.

    심협은 바로 쫓아가지 않았다. 조룡의 혼과 여아촌의 선배라는 자가 있는 5층의 상황을 알지 못하니 섣불리 움직일 수 없었던 것이다.

    “어떻게 된 거야? 만독강기가 어떻게 뚫린 거지? 일부러 저들을 들여보낸 건가?”

    어두운 공간 속, 금석의 목소리가 분노한 듯 날카롭게 외쳤다.

    “내가 저들을 들여보냈다고? 오홍과 요물들을 조종한 것은 너 아닌가? 그들 몸에 만독강기가 있는 것을 알면서 나를 의심하는 건가? 문제가 있다면 네 쪽이겠지.”

    다른 목소리도 굴하지 않고 차갑게 답했다.

    “아무 문제가 없다면 어째서 심협에게는 만독강기가 통하지 않는가! 상고 독의 조무 사비(奢比)도 맹독의 도의 극치인 만독강기로 수많은 천존 경지 사람을 독살했거늘, 어째서 태을 후기 따위에게는 소용이 없느냔 말이다!”

    “내가 어찌 감히 사비 조무와 비교가 되겠는가? 내 비록 만독강기를 수련했지만, 사비 조무의 신통에 비할 바는 아니지. 게다가 심협에게는 본문의 지보, 만독혼원주가 있으니 만독강기도 파훼할 수 있는 것이다.”

    “만독혼원주? 심협에게 그런 물건이 있었던 것 같긴 한데, 그게 도대체 무엇이기에 만독강기도 파훼할 수 있다는 건가?”

    금석의 목소리가 화를 조금 가라앉히며 물었다.

    “만독혼원주는 여아촌의 성물로, 그 안에는 독의 법칙이 담겨 있다. 전해지기로는 상고 사비 조무가 남긴 물건인데, 세상 모든 맹독을 없앨 수 있다고 하지. 그러니 내 만독강기도 파훼할 수 있을 터….”

    “사비 조무가 남긴 법칙의 힘이란 말인가!”

    금석의 목소리는 크게 놀란 듯 한동안 말이 없었다.

    한참 뒤, 금석의 목소리가 다시 들려왔다.

    “아무튼, 약속을 지키지 못했으니 날 원망하지 마라!”

    “이놈!”

    다른 목소리가 화를 냈지만, 이내 마치 공격을 받는 것처럼 고통스러운 신음이 이어졌다.

    * * *

    오홍 등이 사라지자 통로 안에 있던 만독강기가 한곳으로 모여들었다. 바로 부식되면서 생긴 허공의 검은 공간이었다. 모든 만독강기는 그곳으로 빠르게 몰려갔고, 통로 안의 독무는 빠르게 옅어졌다.

    이를 지켜보던 심협은 소매를 크게 휘둘렀다.

    보라색 빛이 소매에서 날아가 검은 공간 옆에 떨어졌다. 바로 만독혼원주였다. 구슬은 검은 공간과 경쟁하듯 빙글빙글 돌면서 주위의 만독강기를 빠르게 흡수했다.

    이 강력한 만독강기를 누군가에게 빼앗길 수 없었다.

    잠시 후, 통로 안의 만독강기는 전부 사라졌다. 대부분은 검은 공간으로 들어갔고, 일부는 만독혼원주에 흡수됐다.

    심협이 구슬을 거두는데, 만독혼원주가 갑자기 크게 떨리더니 안에서 콰직 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뭐지?”

    심협은 바짝 긴장하며 서둘러 자세히 살폈다.

    이 구슬은 만독강기를 억제하는 보물이었기에 문제가 생겨서는 안 됐다.

    다행히 심협이 우려했던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만독혼원주는 여전히 둥글고 매끄러웠고, 균열 같은 것은 찾아볼 수 없었다.

    안심하고는 신식을 만독혼원주에 넣은 그는 이내 눈이 휘둥그레졌다.

    만독혼원주 안에 어느새 미세한 보라색 빛이 생겨나 마치 도깨비불처럼 반짝거렸던 것이다.

    “이게 뭐지?”

    심협이 잠시 머뭇거렸다가 신식을 움직여 보라색 빛을 건드렸다.

    우르릉하는 소리와 함께 보라색 빛에서 갑자기 흡입력이 뿜어져 나와 그의 신식을 빨아들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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