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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몽주-1126화 (1,126/1,214)
  • 1126화. 첩자

    오홍이 이화금창을 번쩍 들자 하얀 빛이 폭증하더니 창에서 나온 가느다란 하얀색 실이 사방으로 뿜어져 나가 허공으로 사라졌다.

    주위의 허공이 일그러지면서 순식간에 만들어진 여섯 겹의 공간 회오리가 금발이 뿜어낸 힘을 간신히 막아냈다.

    원조는 오홍이 묶여 있는 것을 보고는 검은 봉을 미친 듯이 휘둘렀다. 수백 개의 곤봉 허상이 남은 몇 마리 요족을 완전히 떨어뜨려 놓았다.

    요족들은 그 수가 많아 협공하면 원조에 대적할 수 있었지만, 이렇게 서로 떨어지니 도마 위의 고기와 다름없었다. 순간, 원조의 눈에서 살기가 번득였다.

    한데 그때, 갑자기 구렁이 요족이 입을 쩍 벌리고는 끈적끈적한 보라색 독무를 뿜어 주위의 곤봉 허상을 뒤덮었다.

    곤봉 허상들은 보라색 독무에 닿자 바로 구멍투성이가 되더니 순식간에 녹아서 사라졌다.

    다른 몇 마리 요물도 입에서 독무를 뿜어내 곤봉 허상들을 눈 깜짝할 사이에 부식시켜 없앴다.

    보라색 독무는 곤봉의 허상뿐만 아니라 힘의 법칙 공간까지 격렬하게 흔들었고, 구멍이 하나둘씩 떠오르면서 공간조차 빠르게 무너졌다.

    깜짝 놀란 원조는 서둘러 힘의 법칙 공간을 거두고는 뒤로 물러났다.

    그 틈에 구렁이 요족은 부도금발에도 독무를 뿜어냈다. 독무에 닿자 금발의 금빛이 빠르게 사라졌다.

    문수보살도 놀란 기색으로 서둘러 부도금발을 거뒀다.

    보라색 독무는 점점 널리 퍼져 나가더니 오홍 등을 뒤덮어 전방의 길을 완전히 차단했다.

    원조와 문수보살의 표정이 무겁게 가라앉았다.

    * * *

    산하사직도 안. 심협이 눈물 요괴 머리에 손을 대고 초록빛을 주입하자 그녀의 상처가 빠르게 회복되고 흐트러진 기운도 빠르게 회복되어 갔다.

    “심협, 황제내경이 어떻게 이렇게 빨리 정진한 것이냐? 헌원전에서 뭔가 얻은 건가?”

    화령자가 놀란 목소리로 물었다.

    “그런 셈이지.”

    심협은 모호하게 답하며 그대로 술법을 시전했다.

    헌원전에서 헌원 황제의 잔혼을 만나 들었던 내용과 반고진공 공법은 아직 화령자에게도 폭로할 수 없었다. 섭채주에게도 이미 입단속을 시켜놓은 후였다.

    화령자는 심협이 뭔가 숨기는 것이 있음을 눈치채고는 더 캐묻지 않았다.

    심협의 손은 초록색 빛으로 계속 반짝이다가 일각이 지나서야 그쳤고, 그제야 그도 손을 거두며 눈물 요괴의 경맥을 봉인한 황제내경의 영력을 회수했다.

    눈물 요괴의 기운이 격렬하게 파동을 일으키는 것은 체내에 외부의 힘이 담겨 있기 때문이었다.

    ‘눈물 요괴와 근원이 같은 것으로 미루어 아마도 경지가 더 높은 다른 눈물 요괴가 남긴 힘 때문이겠지.’

    심협이 황제내경으로 그 힘을 절반쯤 연화했으니 훗날 이 힘을 완전히 장악한다면 눈물 요괴는 잘하면 태을 경지로 들어설 수도 있을 것이다.

    눈물 요괴는 기운이 완전히 안정되자 천천히 일어나 심협을 바라봤다.

    “이제 말해봐. 왜 조룡의 혼을 도운 거야? 사실대로 말하면 살려줄 수도 있어.”

    심협이 담담한 말투로 물었다.

    “네가 약속을 지킬거라고 어떻게 믿지? 심마를 걸고 맹세해라!”

    눈물 요괴는 한참을 조용히 있다가 말했다.

    “난 함부로 심마를 걸고 맹세하지 않아. 내키지 않으면 말하지 않아도 돼. 정 안 되면 네 혼백을 뽑아서 섭혼하면 되니까.”

    심협은 차갑게 말하고는 전신편을 꺼내 검은 빛을 조금씩 뿜어냈다.

    눈물 요괴는 전신편에 담긴 서혼 대진의 무서움을 잘 알았기에 흠칫 놀랐다.

    “뭐, 조룡의 혼은 이미 날 버렸으니 사실대로 말해도 상관없겠지. 다만, 내 목숨을 살려준다고 약속해라! 나는 거울 요괴와 친자매와 같으니 네가 날 죽이면 그녀도 널 절대 용서하지 않을 것이야.”

    그녀가 이를 악물고 협박하듯 따졌다.

    심협은 눈물 요괴의 협박에 어처구니가 없었지만, 고개를 끄덕였다. 조룡의 혼에 대해 알아낼 수 있다면 그녀의 목숨은 살려줘도 상관없었다.

    “나는 수백 년 전에 조룡의 혼의 첩자였다. 줄곧 그를 위해 삼계 곳곳에 흩어진 뼈와 힘을 찾아다녔지.”

    심협은 이야기가 시작되기가 무섭게 깜짝 놀랐다.

    “수백 년 전? 조룡의 혼은 계속 심혈구이주에 갇혀 있던 게 아니었나?”

    섭채주가 심협보다도 먼저 놀란 목소리로 물었다.

    “조룡의 혼은 만조의 선조다. 평범한 용족과는 다르지. 또, 그는 괴뢰법칙을 수련했으니 심혈구이주 따위로 그를 완전히 가둘 수 있겠는가. 조룡의 혼은 진즉부터 여러 수단으로 외부로 나와서 나 같은 수하를 적잖이 만들어두었다. 그렇게 자신이 힘을 회복할 수 있도록 돕게 했지.”

    심협은 그 용의 깊은 심계를 알고는 있었지만, 이 정도일 줄은 몰랐기에 내심 감탄했다. 이미 모든 힘을 잃은 잔혼에 불과하다고 생각해 경계를 늦춘 것이 어리석은 짓이었다.

    “그래서, 그는 얼마나 회복되었지?”

    “조룡이 그런 걸 나에게 말해주었을 것 같은가? 다만, 내가 봤을 때는 3할 정도는 회복한 것 같다.”

    “3할이라…….”

    그 정도라면 그래도 아직은 상대할 자신이 있었다.

    “너무 기뻐하지 마라. 조룡은 지금 진요탑 5층에서 어떤 용족의 몸을 연화하고 있다. 성공한다면 실력이 절반 이상은 회복될 것이다.”

    “어째서지?”

    “내가 오랫동안 동해에서 활동한 것은 흑룡(黑龍)의 흔적을 찾으라는 조룡의 명 때문이었지. 지금 조룡이 연화하고 있는 게 바로 그것이다.”

    “흑룡!”

    심협의 눈가가 떨려왔다.

    그는 꿈속 세계와 현실에서 여러 번 동해 용궁을 출입하며 적잖은 용궁의 서적을 봤기에 용족에 대해 잘 알고 있었다. 흑룡은 용족 중에서도 매우 특별한 존재로, 심성이 악하고 용족에 통치되는 것을 좋아하지 않았다.

    흑룡 일족은 힘이 강력하고 신통도 매우 기이했다. 심협은 이전에 염룡의 뿔을 얻은 바 있는데, 염룡도 흑룡 일족에 속했다.

    “이 흑룡은 선천적인 이종(異種)으로서, 날 때부터 머리가 두 개인데, 하나는 역병 신통을 쓸 수 있고 다른 하나는 저주 신통을 쓸 수 있지. 천여 년 전, 적수(赤水) 강가에서 수많은 생령을 도륙했으나 천정이 보낸 선장(仙將)에 중상을 입고 동해지연으로 숨어들어 상처를 회복하던 중이었다.”

    “흑룡 한 마리로 조룡의 힘이 그렇게까지 회복될 수 있는 것인가?”

    심협이 의아한 듯 물었다.

    “평범한 흑룡이 아니다. 어디서 찾았는지 모르겠지만, 오래전 조룡의 유해 절반을 찾아내 몸에 연화함으로써 신통이 크게 정진했지. 조룡이 그 흑룡의 몸을 연화한다면 원래 자신의 몸에 담겼던 힘을 되찾는 것과 같다.”

    눈물 요괴가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그렇군. 계속해봐.”

    “나는 오래전부터 동해지연에서 그 흑룡의 흔적을 찾았고, 백여 년 전 마침내 단서를 찾아내 조룡에게 보고하려 했다. 그런데 동해지연에 갑자기 이변이 일어나 흑룡의 흔적이 사라졌다. 조룡의 혼은 자비가 없어서 정확한 증거 없이 보고할 엄두가 나지 않았고, 그렇게 이곳에서 백여 년을 고생한 끝에 신마의 우물 입구가 강림하면서 그 흑룡마저 삼켰음을 알아냈지.”

    눈물 요괴의 목소리에서 조룡을 얼마나 두려워하는지 알 수 있었다.

    “이후의 일은 너도 잘 알 것이다. 조룡의 혼은 내가 알려준 정보를 듣고는 당신들을 이곳으로 유인했고, 괴뢰법칙으로 오홍과 원구를 조종하여 서로 흩어지자는 의견을 냈지. 그렇게 진요탑으로 와서 그 용의 흔적을 찾아낸 것이다.”

    심협은 눈물 요괴의 말에 허점이 없어 보였기에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는 북명곤에게 물었다.

    “흑룡에 관해서는 왜 말을 안 했습니까?”

    미리 알고 있었다면 형세는 지금과 달랐을지도 모른다.

    “나는 전혀 모르는 일이네. 내가 영산에서 신마의 우물을 가져오긴 했지만, 그 안에 있는 소서천은 내가 아닌 또 다른 신비한 힘이 모든 것을 조종하고 있지. 내가 이곳을 장악했다면 백여 년 전에 소서천에 있는 모든 보물을 다 긁어모았을 테니 자네들 차례까지 오지도 않았을 걸세.”

    북명곤이 두 손을 벌리며 아쉬운 듯 말했다.

    “또 다른 신비한 힘이라뇨?”

    뭔가 더 있다는 생각에 섭채주가 끼어들어 물었다.

    “나도 잘은 모르지만 백여 년간 수없이 이곳에 왔지만, 매번 어떤 눈이 날 염탐하고 있다는 기분이 들었네.”

    북명곤이 눈살을 찌푸리며 말하자 심협은 주위를 둘러보고는 생각에 잠겼다.

    사실, 소서천에 들어온 이후로 그도 누군가에게 감시당하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그 느낌이 너무 약해 이곳의 금제 때문에 착각한 것으로 여겼는데, 지금 보니 그게 아닌 모양이다. 상황이 점점 복잡해지는 것만 같았다.

    “진요탑 5층에 올라가 봤어? 그곳 상황은 어떻지?”

    심협은 다시 눈물 요괴에게 물었다.

    “나도 잘은 모른다. 그저 조룡에게서 5층에 흑룡 외에도 대단한 요물이 있다고는 들었다. 조룡과 힘을 합쳐 함께 곤경에서 벗어나기로 했다던가.”

    눈물 요괴의 그 말을 끝으로 심협은 더 물어볼 게 없었는지 고개를 끄덕이고는 생각에 잠겼다.

    “심 도우, 내 아는 것은 모두 말했으니 약속대로 살려주시오.”

    눈물 요괴는 심협이 한참 동안 말없이 생각에 잠겨 있자 참지 못하고 말했다.

    “목숨은 살려줄 수 있어. 다만 아직은 볼일이 남았다.”

    심협은 그렇게 말하고는 결인했다.

    두 사람 눈앞에 빛이 번득이더니 산하사직도의 다른 곳에 나타났다. 섭채주 등은 따라오지 않았다.

    “여기는 왜 데리고 온 거지?”

    눈물 요괴는 주위를 둘러보더니 긴장한 듯 물었다.

    “네가 솔직하게 말해주기도 했고, 또 거울 요괴와의 관계도 있으니 날 공격했던 일은 더는 묻지 않겠다. 허나 너도 알다시피 나에게는 비밀이 많으니 이대로 놔줄 수는 없어. 그러니 네게 선택권을 주겠다. 내 통령지수가 되거나 영원히 이 산하사직도 안에 갇혀 있는 것중에 선택해라.”

    심협이 담담하게 말했다.

    이 눈물 요괴는 실력이 범상치 않고, 혼독은 상대하기 까다로운 수단이다. 더욱이 체내에 있는 다른 눈물 요괴의 본명원기를 완전히 연화한다면 태을 경지로 들어설 확률이 크다.

    태을 경지의 영수! 상상만으로도 가슴이 떨려왔다.

    “결국 이런 속셈이었나! 헛소리하지 마라! 죽는 한이 있어도 네게 휘둘리는 일은 없을 것이다!”

    눈물 요괴는 불같이 화를 냈다.

    “그렇게 화를 낼 일인가? 거울 요괴는 날 오랫동안 쫓아다녔지만 다치기는커녕 경지가 크게 정진했지. 널 뛰어넘는 것도 불가능하지 않을걸?”

    “거울 요괴는 멍청해서 네 유혹에 넘어갔지만 난 다르다! 인간족에게 굴복하는 일은 절대 없을 것이다!”

    눈물 요괴는 여전히 단호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래? 그럼 두 번째를 택한 건가?”

    심협은 그렇게 말하고는 눈물 요괴의 미간을 향해 손을 내밀었다.

    눈물 요괴는 눈이 뒤집히더니 그대로 의식을 잃었다.

    심협은 술법으로 눈물 요괴의 모든 경맥을 봉인하여 그림 어딘가에 가둔 뒤, 산하사직도를 결인하여 섭채주와 북명곤을 밖으로 내보냈다.

    “많이 지체됐군요. 가시죠.”

    셋은 다시 전진했다.

    한데 얼마 가기도 전에 바람 가르는 소리가 뒤에서 들려왔다.

    “또 올 사람이 있는 건가? 설마 손 대성과 미소인가?”

    세 사람은 멈춰 서서 뒤를 돌아보며 법력을 모았다.

    얼마 뒤, 세 개의 둔광이 날아와 모습을 드러냈다. 바로 손 파파와 유비서, 유비연이었다. 그들도 심협 등을 보고는 깜짝 놀랐다.

    “당신들이 동해지연에는 왜……?”

    심협이 의아한 눈으로 여아촌 사람들을 돌아봤다.

    “허허, 심 도우. 이런 우연이 있다니! 여기서 다시 만날 줄은 몰랐군.”

    손 파파가 어색한 얼굴로 간신히 웃으며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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