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23화. 기습
모든 요물이 야수처럼 낮게 포효하며 미친 듯이 수막 장벽을 공격해댔다. 그것들은 장벽을 찢고 그 안에 있는 사람을 산 채로 먹으려 했다.
“가라!”
심협이 낮게 외치자 서른 자루의 순양비검이 쏜살같이 날아갔고, 허공에서 금과 적의 불꽃이 제비처럼 가볍게 날아다니며 검명이 울려 퍼졌다.
검광이 지나가며 수많은 요물이 죽었고, 나머지는 얼른 뒤를 돌아봤다.
이들은 심협 등을 발견하자 피에 굶주린 눈빛으로 곧장 달려들었다.
몰려오는 요물들 사이로 심협은 수막 뒤에 있는 자를 바라봤다. 바로 눈물 요괴였다.
그녀는 벽에 바짝 기대 있었는데, 별다른 상처는 없었지만 표정은 좋지 않았다.
“꺼져!”
심협이 낮게 외치며 검결을 맺자 순양비검에서 불꽃이 타오르더니 더 강해진 기세로 달려오는 요물들을 향해 날아갔다.
이와 동시에 손을 뒤집어 헌원신검을 꺼내서 휘둘렀다. 검광이 어두운 공간에서 교차하자 요물들의 몸이 잘리고 피가 튀었다.
섭채주도 바로 가세했고, 북명곤은 눈물 요괴 앞에서 자신을 드러내지 않으려는 듯 거리를 두고 공격했다.
잠시 후 눈물 요괴를 에워싸고 있던 요물은 전멸했다.
눈물 요괴도 안도하며 수막을 거뒀고, 벽에 기대어 간신히 일어났다.
“왜 혼자 있소? 오홍과 원구는?”
심협은 눈물 요괴에게 다가가며 물었다.
“조룡의 혼이 오홍의 몸에서 깨어나 오홍과 원구를 장악했다. 내가 막아보려 했지만 적수가 되지 않았어.”
눈물 요괴가 눈물을 글썽이며 말했다.
“도대체 어떻게 된 거지? 왜 오홍과 원구를 조종해서 떠난 거야?”
“그의 말로는 두 사람의 기혈의 힘을 제물로 바쳐서 보물을 얻는 데 쓴다며 그들을 잡아서 5층으로 향했어. 나에게는 누구도 올라오지 못하도록 여기를 지키라더군. 안 그러면 오홍과 원구의 기혈 일부가 아니라 그들의 모든 기혈을 제물로 바치겠다고 했다.”
“조룡의 혼은 오홍의 몸에 깃들어 있는데 어떻게 그를 제물로 바친다는 거지?”
“그건 나도 모르지. 아무튼 그가 그렇게 말했다. 방금 원조와 문수보살도 여기에 왔었는데, 날 보자마자 공격했다. 간신히 도망쳤는데 다시 요물들에게 포위됐지.”
심협은 한숨을 내쉬고는 백옥 병을 꺼냈다.
“이걸 먹고 정양 좀 해.”
심협은 잠시 멈칫하다가 병째로 건넸다.
눈물 요괴는 미묘한 표정으로 심협을 바라보다가 천천히 손을 내밀어 받았다.
그녀는 단약을 먹은 뒤 눈을 감고 가부좌를 틀고 회복하기 시작했다.
북명곤이 다가와 목소리를 낮춰서 말했다.
“그녀는 여기서 회복하게 두고 우리는 서두르세. 시간이 촉박하니 지체해서는 안 되네.”
“아무리 급해도 지금은 아닙니다. 그리고 직접 찾는 것보다는 누군가 안내해주는 게 더 낫지 않겠습니까?”
심협의 말에 북명곤은 눈살을 찌푸렸지만, 이내 고개를 끄덕이며 한숨을 쉬고는 자신도 앉아서 이참에 상처를 치료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서 초조한 듯 다시 눈을 떴고,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때마침 눈물 요괴도 눈을 뜨고 바닥에서 일어났다.
“좀 어때?”
심협이 물었다.
“이제 괜찮다.”
“좋아, 그럼 5층으로 가지.”
이번에는 눈물 요괴가 앞장섰고, 일행은 금방 3층에서 4층으로 향하는 통로 입구에 도착했다.
이곳의 수막 통로는 이미 열려 있어서 그 위로 잔잔한 물결이 일렁였다.
“내가 먼저 가서 살펴볼 테니 내 뒤를 쫓아오는 게 좋겠어.”
눈물 요괴가 몸을 숙이며 말하더니 수막 통로를 향해 몸을 굽혀서 안으로 들어가려 했다.
“아직 부상이 있을 테니 내가 먼…….”
한데 심협은 말을 마치기도 전에 갑자기 표정이 돌변했다.
앞으로 몸을 숙인 눈물 요괴가 갑자기 몸을 돌려 차가운 미소를 짓더니 검은색 단추(短錘)로 그의 심장을 찔러온 것이다.
심협은 전혀 예상치 못한 데다 두 사람의 거리가 너무나 가까웠던 터라 막지 못하고 뒤로 피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발을 들기도 전에 검은색 단추에서 번개 같은 흑망이 번쩍이며 그의 미간으로 날아왔다.
심협은 잠깐 정신이 아득해졌고, 다시 정신을 차렸을 때는 검은색 단추가 이미 그의 가슴을 찌른 뒤였다.
피가 사방으로 튀었고, 심협은 믿을 수 없다는 눈빛으로 눈물 요괴의 요염한 웃음을 바라봤다.
심협이 손을 내밀어 눈물 요괴를 내려치려는데, 가슴에서 갑자기 무감각한 느낌이 전해왔다.
“독?”
“오라버니!”
“심 도우!”
두 목소리가 울려 퍼졌고, 동시에 두 사람이 거의 동시에 공격했다.
섭채주의 손에서 뿜어져 나온 빛이 자신을 뒤덮으려고 하자 눈물 요괴는 바로 수막 입구로 도망치려 했다.
그러나 몸을 돌리는 순간, 그녀는 어떻게 된 일인지 자신의 동작이 매우 느려졌다는 것을 느꼈다. 뒤에서는 다른 손이 날아와 그녀의 등을 가격했다.
펑!
폭발음이 울려 퍼졌고, 눈물 요괴는 비명과 함께 몸이 급속도로 팽창하더니 곧이어 폭발했다.
허공에 대량의 푸른색 안개가 일어났다가 뿌옇게 쏟아지자 눈물 요괴의 몸이 완전히 무너져내렸다.
“어딜 도망가느냐!”
북명곤이 소리치며 손을 모으자 공간의 힘이 빠르게 퍼져 나갔다가 다시 빠르게 모여들었다. 흩어진 푸른색 안개가 강제로 다시 뭉쳐졌다.
하지만 흩어진 안개는 영식이 있는 것처럼 수막 입구로 도망쳤다.
결국, 북명곤도 약간의 안개만 완전히 증발시킬 수 있었고, 대부분의 푸른색 안개는 진요탑 4층으로 도망치고야 말았다.
“오라버니, 괜찮아요?”
섭채주가 심협을 부축하며 물었다.
심협은 대답 대신 가슴에서 검은색 단추를 뽑았고, 힘을 줘서 터트렸다.
북명곤도 다가와 살펴보더니 의외라는 듯이 웃었다.
“자네 육체는 예상보다 훨씬 더 단단하군. 그녀의 일격은 피부만 겨우 뚫었지 근육은 제대로 뚫지도 못했어.”
“그녀가 왜 저를 공격했을까요?”
“아까 그녀가 했던 말은 전부 거짓이란 소리겠죠.”
섭채주가 눈살을 찌푸리며 대신 답했다.
“쫓아가자!”
심협은 금빛으로 변하여 수막 입구로 쫓아갔다.
눈앞이 밝아졌다가 다시 정상으로 돌아와보니 그곳은 어두운 통로 안이었다. 눈물 요괴는 이미 보이지 않았고, 조금의 기운도 남아있지 않았다.
섭채주와 북명곤도 뒤따라 나타났다.
“빨리도 도망쳤군.”
북명곤이 쭉 훑어보더니 의아해하며 말했다.
“오라버니, 상처는 어때요?”
섭채주는 심협의 몸이 더 걱정됐다.
“괜찮아, 황제내경이 이미 대성해서 이런 상처는 아무것도 아니야.”
심협의 등 뒤에서 초록색 빛이 번득이며 상처가 빠르게 아물었다.
섭채주는 안도하고는 눈을 감고 곤륜경을 발동했다.
거미줄 모양의 수많은 검은 빛이 뿜어져 나가 근처의 허공으로 들어갔다. 암영천라망(暗影天羅網) 신통이었다.
심협과 북명곤은 이를 보고는 조용히 기다렸다.
잠시 후, 섭채주가 눈을 떴다.
“어떤가?”
북명곤이 다급히 물었다.
“눈물 요괴의 은신술이 이렇게 절묘할 줄은 몰랐네요. 암영천라망으로도 찾을 수가 없어요.”
섭채주가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분명히 안으로 들어갔을 테니 애써서 찾지 않아도 돼.”
심협은 담담하게 말하고는 안으로 들어갔고, 섭채주와 북명곤도 뒤를 따라갔다.
4층의 상황도 아래와 비슷했다. 통로 양쪽에는 감옥이 있었는데, 그 수는 현저히 적었지만 설계가 더 절묘해 곳곳이 부적과 영문으로 가득했다. 아무래도 더 강력한 요물을 가둬두고 있었으리라.
이전과 마찬가지로 이곳의 감옥도 모두 비어 있었고, 안에 갇혔던 요물들은 보이지 않았다. 유일하게 다른 점은 이곳에서는 싸우는 소리가 들리지 않았고 주위가 조용하다는 점이었다.
“아무래도 뭔가 이상하군.”
북명곤이 주위를 둘러보며 말했다.
“뭔가 오고 있어요!”
섭채주의 외침이 끝나자마자 땅속에서 검은 빛이 튀어나오더니 세 사람을 뒤덮었다. 이어서 미처 대응하기도 전에 푸른색 발톱에 검은 빛으로 빛나는 커다란 촉수, 물고기 비늘로 가득한 금빛 주먹이 어둠속에서 튀어나와 공격해왔다.
심협은 제자리에서 손을 결인했다.
손에서 뿜어져 나온 금색 검기에 금색 뇌전이 흐르더니 헌원신검으로 변하여 짐승의 발톱을 반으로 잘랐다.
섭채주는 민첩하게 바닥을 한 바퀴 굴렀는데, 착지할 때는 이미 약목신궁을 쥐고 있었다. 금빛 화살이 손에서 떠나 정면으로 다가오던 검은색 촉수를 관통했다.
북명곤은 신통을 시전하지 않고 앞으로 달려가며 주먹을 휘둘러서 뇌전을 감싼 주먹과 충돌했다. 그는 요력을 얼마 쓰지 않았음에도 오랫동안 단련해온 요체(妖體)는 어떤 법보보다 강인했다.
금색 주먹이 콰직 하는 소리와 함께 움푹 파이더니 그대로 부서졌다.
심협은 적이 밀려나는 기세를 틈타 손을 내밀어 허공을 움켜쥐었다. 그러자 다섯 개의 금색 검기가 주위의 어둠을 베었다.
모든 어둠 장막이 찢겨 나가자 세 사람은 눈앞이 밝아졌다가 다시 어둠의 통로에 나타났다.
앞에서 세 개의 커다란 대요 허상이 나타났다. 그중 한 마리는 상어 머리에 푸른색 요갑을 입은 상어 요물이었고, 가운데는 검은색 문어 요괴였다. 커다란 몸집에 여덟 개의 커다란 문어다리 촉수를 빠르게 움직이자 광풍이 휭휭 불었다. 마지막은 크고 건장한 몸에 수사자 갈기와 강철 침처럼 곤두선 털을 가진 사자 요괴였다.
세 마리 요물의 요력은 모두 태을 경지였으나, 표정이 멍한 것이 누군가에게 조종당하고 있는 것 같았다.
이 요물들 뒤에는 푸른색 인영이 허공에 서 있었다. 바로 눈물 요괴였다.
“호호, 역시 여기까지 쫓아왔구나. 찾아다닐 수고를 덜게 해줘서 고맙구나.”
눈물 요괴가 차갑게 웃으며 말했다.
“눈물 요괴, 우리는 오랫동안 알고 지낸 데다 이번 동해지연에서도 섭섭하게 대하지 않았는데 왜 날 공격한 거지?”
심협은 감정을 드러내지 않고 담담한 말투로 물었다.
“넌 인간족이고 난 요족이다. 두 종족은 본래부터 가는 길이 다른데, 내가 널 공격한 게 뭐가 이상하다는 거냐?”
눈물 요괴가 비웃듯 답했다.
“아무래도 솔직하게 말할 생각이 없는 것 같군. 좋아, 그럼 생포해서 입을 열게 해야겠지.”
“호호호! 이제 막 법칙의 힘을 깨우친 인간족이 날 잡겠다고? 허풍이 심하구나. 좋다, 내 법칙의 힘의 진정한 위력을 보여주마! 저것들을 잡아라!”
눈물 요괴는 깔깔대며 웃더니 갑자기 명령을 내렸다.
세 마리 요물은 하얀 빛과 함께 상처가 빠르게 아물더니 갑자기 달려들었다.
상어 요물이 팔을 휘두르자 손에 푸른색 비차(飛叉)가 나타났고, 비차를 한 번 휘두르자 갑자기 열 배로 커졌다.
상어 요물은 몸도 함께 커져 양손으로 비차를 꽉 쥐고는 강하게 내리쳤다.
수많은 푸른색 뇌전이 번쩍이는 푸르스름한 칼날이 산과 바다를 가를 기세로 폭포처럼 심협을 향해 떨어졌다.
심협은 헌원신검을 꺼냈고, 순식간에 금색 대검으로 변화시켜 푸른 빛의 칼날을 막았다.
푸른 빛의 칼날은 강력해 보였지만, 헌원신검에 비할 바는 아니었다.
펑!
가벼운 소리와 함께 푸른 빛 칼날은 폭발했고, 수많은 빛의 점이 되어 사방으로 흩어졌다.
심협이 다시 결인하자 헌원신검은 뇌전검의 허상이 되어 하늘 높이 솟구쳤고, 단숨에 상어 요물의 머리부터 베었다.
검이 떨어지기도 전에 수많은 금색 뇌전이 굉음을 내며 떨어져 내렸다.
상어 요물은 서둘러 푸른색 비차를 들어 푸른 빛을 뿜어내며 앞을 막았다.
챙!
경쾌한 소리가 울려 퍼졌고, 이어 헌원신검이 떨어지자 비차는 반으로 쪼개졌지만, 그래도 간신히 헌원신검의 일격을 막아낼 수 있었다.
심협이 눈에서 정광을 반짝이자 희미한 붉은 검의 허상이 헌원신검에서 날아오르더니 쏜살같이 상어 요물의 머리를 관통했다. 심검 신통이었다.
상어 요물은 몸이 크게 흔들리고 온몸의 푸른 빛이 순식간에 절반으로 줄어들었는데, 비차의 푸른빛도 마찬가지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