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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몽주-1122화 (1,122/1,214)
  • 1122화. 진요탑

    진요탑 꼭대기 층.

    완벽하게 어두운 공간에서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허! 대단한 자들이 몰려왔는데, 다 익숙한 얼굴들이군.”

    말이 끝나자마자 어두운 공간이 희미한 빛이 번득이더니 각 변의 길이가 3척인 사각형의 하얀 광막이 나타나 진요탑 밖의 상황을 비췄다.

    “오, 이자들까지 온 건가? 뭐, 상관은 없지. 우리에게는 적을 물리칠 방법이 있으니까.”

    곧이어 다른 목소리도 들려왔는데, 처음에는 놀란 듯했지만 금방 평온해졌다.

    어둠 속의 하얀색 광막은 이내 꺼졌다.

    * * *

    진요탑으로 들어선 심협은 한동안 눈앞이 어두웠지만, 위에서 빛이 내려왔다.

    빛에 의지해 주위를 둘러본 심협은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진요탑은 밖에서 보면 높이가 10여 장에 폭도 수십 장에 불과했지만, 막상 들어와 보니 안은 별천지였고 매우 넓었다.

    앞에는 10장 크기의 둥근 대청(大廳)이 있었고, 그 주위에는 하얀 통로가 사방으로 뻗어 있었다. 통로는 빛이 닿지 않는 곳까지 쭉 이어져 있었다.

    “우리는 위로 가세.”

    심협이 주위를 제대로 살펴보기도 전에 북명곤이 말하고는 얼른 대청 중앙을 향해 뛰었다.

    “이 진요탑은 모두 5층이라네. 보기에는 그리 높지 않은 불탑처럼 보이지만, 불문의 신통을 운공하여 수미개자(須彌芥子)의 방법으로 공간을 구속해 만든 곳이라 각 층이 상당히 넓지.”

    “내 친구들은 지금 몇 층에 있습니까?”

    “내가 그들과 싸운 곳은 2층인데, 지금은 어디 있는지 모르겠군.”

    한데 그들이 대청에 도착하자 쇠사슬 끌리는 듯한 소리가 들려왔다.

    심협이 고개를 돌려 보니 어둠 속에서 거대한 그림자가 달려오고 있었는데, 두 개의 쇠사슬이 바닥에 끌려 불꽃이 끊임없이 튀었다.

    “크아아아!”

    나지막한 포효가 어둠 속에서 들려오더니 그 검은색 그림자는 높이 뛰어올라 심협 등을 덮쳐왔다.

    거대한 몸집에 근육이 가득하고 온몸에는 단단한 금색 털이 자란, 마치 산 원숭이 같은 생김새였다. 그러나 머리에 뿔이 달린 대요로, 요동치는 불안정한 기운으로 봐서는 아마 진선 초기의 실력은 되어 보였다.

    “거력신원(巨力神猿)인가.”

    북명곤이 중얼거렸다.

    이 거력신원의 상태는 좋지 않았다. 가슴과 어깨에는 날카로운 무기에 찔린 듯한 상처가 많았는데, 상처에 흐른 피가 이미 까맣게 굳은 것을 보면 다친 후로 제법 시간이 지난 것 같았다.

    거력신원은 화가 잔뜩 난 표정으로 두 눈이 붉게 달아올라 있었고, 심협 등이 길을 막은 것을 보자 파초선 같은 커다란 손바닥을 휘둘렀다.

    심협은 고개를 살짝 숙여서 가볍게 피한 뒤 거력신원의 배를 걷어찼다.

    강력한 힘에 거력신원은 몸이 구부러지더니 새우처럼 뒤로 나가떨어졌다.

    “뭐야, 보기보다 더 약하군.”

    심협은 고개를 갸웃했다.

    한데 그가 더 살펴보기도 전에 뒤편 어둠 속에서 쨍그랑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얼른 돌아보니 어둠에서 약한 금빛이 반짝였고, 이어서 키가 큰 금갑괴뢰(金甲傀儡)가 창을 들고 자신이 쓰러트린 거력신원을 쫓아갔다.

    거력신원이 몸을 일으키기도 전에 금갑괴뢰의 금색 창이 그 머리를 관통하더니 빠르게 회전했다. 그러자 금속이 마찰하는 듯한 소리가 빠르게 울려 퍼졌고, 창이 불꽃을 튀며 거력신원을 전부 집어삼켰다.

    이때, 금갑괴뢰가 갑자기 기계처럼 고개를 돌리고 두 눈을 반짝였다. 그리고는 창을 뽑자마자 마치 심협을 다음 목표로 삼은 듯 달려들었다.

    허나 이 금갑괴뢰도 이미 중상을 입었는지 한쪽 다리는 부서져 땅에 질질 끌렸다.

    심협이 녀석의 남은 다리 하나를 박살내려는 순간, 누군가가 그의 옆을 스쳐 지나갔다.

    북명곤이 슬쩍 뛰어오르더니 요력 신통을 쓰지 않고 손바닥을 금갑괴뢰의 머리에 댔다. 그의 손이 번득이자 보이지 않는 강력한 힘이 순식간에 쏟아져 나왔다.

    콰지직!

    소름 끼치는 소리와 함께 금갑괴뢰는 순식간에 고철 더미가 되었다.

    “몸에 불문의 비밀 무늬가 있군요. 이 진요탑을 지키는 괴뢰요?”

    심협은 북명곤의 힘에 은근히 놀라며 물었다.

    이때, 섭채주가 곤륜경을 꺼내 다른 쪽에서 달려드는 괴뢰를 막아냈다.

    “정확하네. 이런 괴뢰 호위가 1층에만 365구가 있는데, 진선 중기의 경지일세. 1층에 봉인된 요물을 진압하고 처단하지.”

    북명곤이 심협의 옆으로 다가오며 이어서 말했다.

    “한데 이곳의 감옥 금제가 누군가에 의해 열려서 모든 요마가 이미 풀려났네. 괴뢰 호위들의 공격에도 불구하고 적잖은 수가 도망쳤지. 이제 괴뢰 호위도 얼마 남지 않았지만, 상대가 인간족이든 요족이든 일단 들어오면 다 죽이려 한다네.”

    심협이 두 눈을 감고 자세히 들어보니 정말로 사방에서 싸우고 죽이는 소리가 들려왔다.

    “자, 어서 가세. 자네 벗들이 자네를 기다리고 있지 않은가.”

    북명곤이 재촉했다.

    그는 심협과 섭채주를 맞은편의 어둠으로 데려갔다. 통로 곳곳에는 점점 많은 요족 시체가 보였는데, 어떤 것은 몇 토막으로 잘렸고 어떤 것은 불에 탄 상태였다. 물론 분해된 금갑괴뢰의 수많은 파편도 길을 따라 흩어져 있었다. 격전이 매우 처참했음을 알 수 있었다.

    잠시 걷다 보니 심협은 공중에 있는 빛을 통해 진요탑의 벽과 굽어지는 돌계단이 2층으로 연결되어 있음을 볼 수 있었다.

    계단 입구에 도착하자 북명곤이 잠깐 멈추고는 양손을 결인해 법력 파동이 일어난 손으로 계단 입구 허공을 가리켰다.

    곧이어 허공에서 하얀 빛이 일렁이더니 물의 장막 같은 파문이 나타났다.

    “이 계단은 본래 법력과 특수한 신물을 조합해야만 열 수 있지. 원래는 바로 2층으로 갈 수 없게 되어 있네. 지금은 법진이 파괴되었으니 신물이 필요 없군.”

    북명곤은 간략하게 설명하고는 물의 장막 파문으로 들어가 사라졌다.

    심협은 괜히 또 어디로 전송될까 봐 걱정되어 들어가기 전에 섭채주의 손을 잡았다. 따로 보내지는 것을 방지하기 위함이었다.

    물의 장막 파문을 통과하자 다행히도 북명곤이 기다리고 있었다.

    앞의 어둠 속에서 온갖 포효와 무기가 충돌하는 소리 등이 요란하게 들려왔고, 천지영기 파동도 끊임없이 몰려왔다.

    “가세. 이 2층의 요물은 강해봐야 진선 후기에 불과한데, 이미 제압당했던 터라 매우 약해져 있을 테니 크게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네. 금신역사(金身力士)만 조금 조심하면 돼. 그것들은 여전히 강력하니 미리 대비하지 않으면 놀랄 수도 있으니 말일세.”

    말이 씨가 되는 걸까? 북명곤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커다란 금신역사가 양머리에 사람 몸을 한 요물을 추격하며 이쪽으로 달려왔다.

    금신역사의 벌거벗은 몸뚱이는 근육질이었고, 표정은 엄숙했으며, 살기등등했다. 손에는 커다란 금색 항마저(降魔杵)를 쥐고 있었고, 살아 있다는 기운이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괴뢰 부류임이 분명했다. 다만 앞서 본 금갑괴뢰에 비하면 사람 같은 분위기가 더 짙었고, 몸에서 뿜어져 나오는 기운도 진선 중기에 도달해 있었다.

    쫓기던 양머리 요물은 비쩍 마른 것이 눈 주위가 움푹 파여서 초췌해 보였다. 기운도 매우 불안정하여 많이 허약해져 있어 몇 걸음 도망가지 못하고 금신역사에게 따라잡혔고, 항마저에 머리가 터져 버렸다.

    요물을 멸한 금신역사는 고개를 휙 돌려 심협 등을 보더니 곧장 달려왔다.

    북명곤이 바로 달려나가 다시 손을 내리쳤다.

    콰직!

    금신역사는 금갑역사와 마찬가지로 이번에도 한 방에 고철 덩어리가 되었다.

    길을 따라 안으로 들어가는 동안 끊임없이 금신역사와 요물이 습격을 해왔지만, 대부분 진선 초기나 중기라서 위험은 없었다.

    심협은 2층을 서둘러 떠나지 않고 층 전체를 샅샅이 찾았지만, 오홍 등의 흔적은 찾지 못했다.

    3층에 들어서자 심협은 주위의 허공에서 보이지 않는 금고의 힘이 더해져서 공기가 무거워지고 움직이는 데 약간의 저항이 생겼음을 느꼈다.

    “3층에 갇힌 요물들은 대부분이 진선 후기인데, 그중에는 소수의 태을 경지 요물도 있어서 금제 또한 아래 두 층보다 더 강하다네. 그리고…… 4층으로 향하는 입구가 어디에 있는지는 나도 모르겠군.”

    “우선 사람부터 찾아보시죠.”

    심협은 앞장서서 탐색을 시작했다.

    잠시 후, 갑자기 앞에서 빛이 반짝였고, 심협은 곧장 달려갔다.

    가까이 가기도 전에 위력적인 법력 파동이 휘몰아쳤다. 이 파문에는 강렬한 마기가 섞여 있었다.

    속도를 높여서 다가가니 온몸이 칠흑 같은 사람 모습의 마물과 몸집이 거대한 서천호(噬天虎) 요물이 싸우고 있었다.

    서천호 요물은 진선 후기의 경지였고, 포효할 때마다 암홍색 회오리가 날카로운 칼날처럼 사방으로 휘몰아쳤다.

    양쪽 모두 상대를 흡수할 생각인지 무기도 들지 않고 박투를 벌이는 중이었다. 둘 다 온몸이 상처투성이였고, 피가 사방으로 튀었다.

    승부가 나기도 전에 어둠 속에서 무거운 발소리가 들려왔는데 마치 금속으로 땅을 짓누르는 소리 같았다.

    이 소리를 듣자 피를 흘리며 싸우던 양쪽 모두 약속이라도 한 듯이 멈추고 경계하며 동시에 어둠 속을 돌아봤다.

    온몸에 금칠을 한, 건장한 무도승이 어둠 속에서 걸어 나왔다. 눈에는 금빛이 흘렀고, 표정은 굳어 있었지만 동작은 매우 생동적이었다.

    “금신나한(金身羅漢)? 또 괴뢰인가.”

    금신나한이 나타나자 서천호 요물과 마물은 머뭇거리지 않고 연합하여 공격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금신나한은 온몸이 단단한 것은 말할 것도 없고 힘도 매우 강해서 어떤 신통도 시전하지 않고 오직 힘만으로 이들을 제압했다.

    펑!

    무언가 터지는 듯한 소리가 울려 퍼졌다.

    금신나한이 한쪽 팔로 서천호 요물을 짓누르고 다른 한 손은 주먹을 쥐어 그 머리를 강하게 내리쳤다. 요물의 머리는 일격에 관통됐다.

    이어서 금신나한은 곧바로 마물의 양쪽 팔을 잡고는 그대로 몸에서 떼어냈다.

    마물은 괴로움에 포호하며 하필 심협 쪽으로 도망쳐왔다. 심협은 가볍게 한 손을 뻗었다. 그러자 한 자루 순양검이 나타나 마물을 절반으로 갈랐다.

    요물과 마물이 모두 죽었지만, 금신나한은 떠나지 않고 심협 등을 향해 다가왔다.

    심협이 일검을 내리쳤다.

    금신나한은 몸을 굽혔다가 갑자기 두 팔을 들고 합장하여 순양검을 손바닥 사이에 꼈다. 그리고는 심협의 가슴을 걷어찼다.

    심협은 피하지 않고 오히려 가슴을 내밀며 황정경 공법을 운공했다.

    펑!

    둔탁한 소리가 울려 퍼졌다.

    금신나한이 뒤로 밀려났고, 순양검을 붙잡았던 양손도 벌어졌다.

    심협은 여세를 몰아 한 걸음 내디디며 검으로 금신나한의 목을 베었다.

    금신나한은 뒤로 두 걸음 정도 휘청거리더니 그대로 쓰러졌다.

    심협이 몸을 굽혀 살펴보니 이 금신나한 괴뢰의 구조는 천기성의 것과는 매우 달랐다. 힘의 핵심이 머리에 있었지만, 소모가 극심하여 실력을 크게 깎아 먹었다.

    북명곤의 재촉으로 세 사람은 곧장 그 자리를 떠났다.

    3층에는 살아 있는 요족과 마물이 많았지만, 대부분 중상을 입은 상태라 세 사람은 어렵지 않게 제압할 수 있었다.

    “잠깐! 저기 뭔가 있군.”

    가장자리 쪽을 살피던 북명곤이 갑자기 손을 들었다.

    싸우는 소리가 들려오는 전방의 어둠 속에서 물결 같은 파동이 쉬지 않고 전해졌다.

    심협은 거기에서 익숙한 기운을 느꼈다.

    “어서 가보죠.”

    그는 작게 말하고는 서둘러 앞으로 달려갔다.

    감옥이 있는 곳에 도착해보니 쇠사슬 부딪치는 소리와 포효가 어지러이 들려왔다.

    자세히 바라보니 요물 무리가 벽 쪽을 에워싸고 있었고, 그들의 발아래에는 일고여덟 구의 금신역사와 한 구의 금신나한 괴뢰가 산산조각 난 채 흩어져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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