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대몽주-1121화 (1,121/1,214)
  • 1121화. 불문의 중보(重寶)

    “그렇다네. 자네가 본 건물은 영산 대서천을 본떠 만든 소서천일세. 만불금탑(萬佛金塔) 안에 있는 신마의 우물에 대진영상공간영부와 자신의 정혈을 떨어트리면 소서천의 모든 것을 장악할 수 있지.”

    북명곤의 설명에 심협의 눈동자가 반짝였다.

    “자네에게 대진영상공간영부가 있다는 것을 알고 있네. 자네가 이 영역을 장악하는 데 관심이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북명곤이 비둔을 멈추고 허공에서 물었다.

    “이곳을 장악한다고요? 저의 목적은 신마의 우물을 찾는 것뿐입니다.”

    심협이 피식 웃으며 대답했다.

    “소서천을 장악하지 않고 어떻게 신마의 우물을 장악하려는 건가? 지금 영산 사람들과 마족, 요족까지 모두 신마의 우물 통제권을 쟁탈하려고 하고 있는데 말일세. 그런데도 정말로 관심이 없는가?”

    북명곤도 개의치 않고 담담하게 물었다.

    “그 말은, 그자들이 이미 그곳에 있다는 뜻입니까?”

    심협이 진중한 표정으로 물었다.

    “그렇다네. 다만, 그곳은 공간의 힘이 막고 있으니 원하는 대로 되지 않고 있지. 자네만 원한다면 내 힘을 보태주겠네. 그럼 이길 가능성이 그들보다 훨씬 클 게야.”

    심협은 잠깐 생각에 잠겼다가 이내 웃기 시작했다.

    “심 도우, 어째서 웃는 건가?”

    북명곤이 불쾌한 목소리로 물었다.

    “도우의 상처는 영산과 마족, 요족들에게 당한 것 아닙니까? 한데 지금 나에게 당신과 손을 잡으라니, 다른 목적이 있겠지요?”

    심협이 웃음을 그치며 물었다.

    “누구든 각자의 뜻을 품는 것은 당연한 일. 영산 놈들도 자네와 함께 움직이다가 도중에 일부러 떨어트리지 않았던가? 마족과 요족은 또 자네와 원한이 깊으니 내가 아니면 자네도 손잡을 사람이 없을 텐데?”

    북명곤은 웃으며 말했다.

    “잘도 알고 있군요.”

    “이곳은 내 영역이니 당연히 아는 방법이 있지. 내가 힘만 찾으면…… 허허허.”

    북명곤은 헛웃음을 짓더니 입을 닫았고, 심협은 그 말을 못 들은 척했다.

    “자네의 목적은 신마의 우물이 아니라고? 그럼 정말로 신마의 우물이 다른 사람에게 넘어가도 상관이 없나?”

    북명곤이 잠시 후에야 물었다.

    “전 그저 신마의 우물을 요족과 마족의 손에 넘어가지 않게 막고 싶을 뿐, 그 외에는 관심 없습니다. 그보다는 제 벗들의 행방이 더 궁금하군요.”

    심협이 씩 웃으며 말하자 북명곤의 눈에 일순 분노가 일렁이더니 이내 잠잠해졌다.

    “심 도우가 신마의 우물 쟁탈에 뜻이 없다니, 나도 더는 강요하지는 않겠네. 따라오게.”

    그는 담담하게 말하고는 앞장서서 날아갔다.

    심협은 북명곤의 태도가 변한 것이 의외였지만, 말없이 섭채주를 불러 그 뒤를 따랐다.

    그들은 금방 길게 이어진 궁전 근처의 푸른 돌멩이가 깔린 광장에 도착했다.

    광장을 둘러보니 이끼와 잡초에는 쓸쓸한 기운이 가득했고, 먼 곳에 있는 궁전의 금색 지붕과는 극명한 대조를 이뤘다.

    광장은 건물들과 연결되어 있었고, 궁벽 같은 것이 간격 없이 어수선하게 늘어서 있어 대당의 수도 같은 정교함은 없었다.

    북명곤은 심협 일행을 데리고 굴곡진 거리를 지나 성안의 탁 트인 광장에 도착했다.

    이곳에는 사찰이 없는데도 광장 중앙에 10여 장 높이의 검은색 고탑이 덩그러니 서 있었다.

    보병(寶甁)처럼 둥근 탑은 중원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누각식 보탑이 아니라 서역에서 흔히 보이는 복발식(覆鉢式)이었다. 탑신 밖의 정중앙에는 2장 높이의 안광문(眼光門)이 있었고, 커다랗게 만(卍)자가 새겨져 있었다.

    탑신 아래의 불좌(佛座) 앞에 세워진, 탑으로 들어가는 권문(券門)은 팔보(八寶) 지붕에 금문이 박혀 있었고, 문기둥에 새겨진 불문의 육자진언(六字眞言)에서는 법력 파동이 뿜어져 나오고 있었다.

    권문 바로 위에는 현판이 걸려 있었는데, 크게 진요탑(鎭妖塔)이라고 쓰여 있었다.

    “진요탑? 뭐 하는 곳이죠? 제 벗이 여기에 있는 겁니까?”

    “그렇다네. 이곳은 서천영산이 요와 마를 진압하기 위해 사용했던 곳으로, 안에는 영산에 제압된 수많은 요물과 마족이 봉인되어 있지. 대부분이 삼계 곳곳에서 무고한 생명을 죽이는 죄를 저지른 극악무도한 자들이라네.”

    북명곤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그들이 왜 여기에 있는 겁니까?”

    심협이 의심스러운 듯 물었다.

    “조룡의 혼이 데리고 왔네.”

    “조룡의 혼의 존재를 알고 있었습니까?”

    “그 혼이 오홍과 원구의 심지를 조종해 두 사람을 데리고 여기로 왔네. 그 모습을 보니 아무래도 여기 갇힌 요마를 풀어서 신마의 우물 입구로 보내려는 것 같더군. 당연히 삼계라는 흐린 물을 더욱 흐리게 하려는 거겠지.”

    북명곤은 혼잣말처럼 웅얼거렸다.

    “오라버니, 북명곤의 말을 믿는 건가요? 오홍 등이 정말로 조룡의 혼에 잡혀서 온 걸까요?”

    섭채주가 걱정스런 목소리로 심협에게 전음을 보냈다.

    “거짓말은 아닐 거야. 사실, 아까 오홍 등과 연결이 끊겼을 때, 조룡의 혼이 문제를 일으킨 게 아닐까 생각했어. 북명곤의 말이 그 추측과 맞아떨어지는구나.”

    “그렇다고 해도 방심하지 말아요.”

    섭채주가 투덜거렸다.

    “왜? 북명곤이 별로 마음에 안 들어?”

    심협이 전음으로 웃으며 물었다.

    “북명곤이 우리를 여기로 데려온 것이 사람을 구하기 위해서라고 말은 하지만 뭔가 다른 생각을 품고 있는 것 같아요. 여기는 또 매우 위험해 보이고요.”

    사실 심협도 북명곤의 말을 7할 정도만 믿는 중이었다.

    “맞아, 분명 다른 목적이 있을 거야. 하지만 저자는 분명히 오 형의 비늘을 가지고 있었으니 모험하는 수밖에……. 조심하자.”

    애초에 조룡의 혼을 오홍의 몸에 깃들게 한 것은 자신이 제안한 일이었다. 또한 자신이 준 조룡의 척목으로 오홍을 태을의 경지에 들어서게 했으니, 조룡의 혼도 아마 조룡 척목의 힘을 빌려 몰래 많은 힘을 회복했을 것이다. 그렇게 힘을 키워 오홍의 신혼을 조종하는 것이리라.

    “걱정할 것 없어. 헌원전에서 얻은 수확은 생각한 것보다 훨씬 많아. 솔직히 말하면 지금 나는 북명곤 뿐만 아니라 원조와 미소가 힘을 합쳐도 지지는 않을 자신이 있어. 최소한 무사히 도망은 칠 수 있지.”

    심협은 섭채주가 여전히 걱정하는 표정이자 전음으로 말했다.

    “오라버니가 그렇게 확신한다면 됐어요.”

    섭채주는 그제야 표정을 풀었다.

    “아직 설명해주셔야 할 게 있습니다.”

    심협이 북명곤을 돌아보며 말했다.

    “말해보게.”

    “당신은 어떻게 진요탑의 상황을 알고 있는 겁니까? 또한, 오 형의 용 비늘은 어찌 가지고 있는 건지요?”

    “앞서 만불금탑 쪽에서 싸움이 있었지. 크게 다치고 이곳으로 지나던 길에 우연히 보게 됐네. 그때 조룡의 혼의 말도 듣게 됐지. 떨어진 용의 비늘도 여기서 주웠고.”

    심협이 차가워진 표정으로 말했다.

    “당신이 그들을 습격해 그 비늘로 날 속이는 것이 아님을 어찌 믿겠소?”

    “어째서 그런 말을 하는 겐가?”

    북명곤이 눈살을 찌푸리며 물었다.

    “당신이 그들을 습격하지 않은 이상, 어떻게 오홍의 비늘을 가지고 있단 말이오? 우리가 만난 것은 우연이거늘, 이 상황을 미리 안 것처럼 나를 설득하려고 그 비늘을 가져온 것이라 우기겠소?”

    북명곤의 표정이 굳어졌다.

    “오, 혹시 점을 치지 않고도 미래를 알 수 있는 신통이라도 있는 겁니까?”

    심협이 눈을 날카롭게 뜨며 물었다. 그 순간, 법력이 솟구쳤다.

    둘 사이에는 팽팽한 긴장감이 흘렀다.

    “흠, 방금 내 말은 내가 생각해도 말이 안 되긴 하지. 자네 말대로 나도 그들과 싸운 적이 있네. 다만 내가 아니라 분신이 싸웠네. 당시 대부분의 신경이 만불금탑 쪽에 집중되어 있었는데, 결과적으로는 양패구상이 된 셈이지. 비늘은 분신이 격전 중에 오홍의 몸에서 얻은 걸세.”

    북명곤이 한숨을 쉬며 말했다.

    이어서 북명곤이 한 손을 결인하자 몸에서 법력 파동이 일어났다.

    심협과 섭채주는 곧바로 물러나며 경계했다.

    북명곤은 공격하지 않았다. 대신 몸이 희미해지더니 심하게 떨렸고, 곧 모호한 허상이 옆에 나타났다.

    잠시 후, 허상이 굳어지면서 분신이 생겨났는데, 마찬가지로 허리가 굽은 노인의 모습이었다.

    “당신의 그 변화술은 보통이 아니군요.”

    심협은 그제야 그의 말을 믿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항고의 이수인 내게 사람의 모습으로 변하는 능력이 있는 게 놀라운 일은 아니지.”

    “아무튼, 분신을 만들어 진요탑으로 보냈다가 조룡의 혼과 충돌이 일어났다는 거군요. 그렇다면 진요탑 안에 당신이 원하는 무언가가 있다는 건데, 손을 잡자는 것도 그런 이유 아니오? 그러니 솔직하게 말하는 게 좋겠소.”

    “허허, 도우가 그렇게 말하니 그럼 나도 솔직하게 말하지. 확실히 심 도우가 도와줬으면 하는 일이 있네. 진요탑 5층에 내가 원하는 보물이 있네. 그것을 얻을 수 있게 도와주면 조룡의 혼에게서 오홍과 원구를 구해주겠네.”

    “그 보물이 뭐요?”

    심협이 머뭇거리다가 물었다.

    “불문에서 요마를 제압하기 위해 사용하는 중보라네. 진요탑에 있던 요물이 거의 다 빠져나가서 그 보물이 여기에 있어도 사실 아무런 쓸모가 없지. 그 보물은 인간족에게는 큰 효과가 없으니 내가 얻는다 해도 자네들에게 사용할 거라는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되네.”

    북명곤이 그 불문의 비보를 노리는 것은 아마도 자신에게 중상을 입힌 호조와 원조, 마족 등에게 복수하기 위함인 듯했다. 단, 저자는 이 소서천을 훤히 꿰고 있으니 조금 더 조심할 필요가 있을 듯했다.

    “좋습니다. 그들을 구하도록 도와준다면 보물을 얻을 수 있게 돕죠. 허나 나를 속이거나 수상한 움직임을 보이면 내 전력으로 당신을 상대하겠소.”

    심협은 담담하게 말했지만 짙은 경고의 의미가 담겨 있었고, 그 말을 들은 북명곤은 눈가가 떨려왔다. 그가 언제 협박을 받아본 적이 있겠는가!

    “알겠네, 약속은 지키지.”

    말을 마친 그들이 금제를 파훼하여 진요탑으로 들어가려 했는데, 그 순간 강렬한 법력 파동이 아주 먼 곳에서부터 느껴지더니 두 줄기 둔광이 쏜살같이 날아와 탑 앞에 나타났다.

    이들을 자세히 본 심협은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저들이 왜 같이 있는 거지?”

    탑 앞에 내려온 사람을 다른 사람이 아닌 문수보살과 요족 원조였다.

    그들도 심협 일행을 발견했다. 문수보살은 담담한 표정이었지만, 원조는 의아한 기색이었다. 그러나 일순 눈빛을 반짝였을 뿐, 아무 말도, 공격도 하지 않았다.

    둘은 곧장 권문 앞으로 다가가 동시에 결인했고, 각자 칠흑 같은 나무문을 향해 법결을 날렸다.

    두 줄기 광망이 문에 닿자 어둡던 나무문에서 갑자기 금빛이 번득이기 시작하더니 불문 진언과 요족의 봉인이 광막과 동시에 날아올라 문에서 떨어졌다.

    이어서 원조가 소매를 휘두르자 문이 안으로 열리면서 칠흑 같은 입구가 드러났다.

    휭!

    음산하고 습한 바람이 안에서 불어오자 비릿한 냄새가 코를 스쳤다.

    원조와 문수보살은 서둘러 안으로 들어갔고, 이내 어둠 속으로 사라졌다.

    심협은 여전히 두 사람의 조합이 의아했지만, 북명곤은 서둘러 재촉했다.

    “우리도 빨리 쫓아가세.”

    “알겠습니다.”

    “잠깐!”

    이때 다른 목소리가 들려왔다. 화령자였다.

    “왜? 뭐 이상한 게 있어?”

    “그런 건 아니고…… 우선 날 소요경 공간으로 돌려보내 줘. 나는 안전한 곳에 있는 게 좋을 것 같다.”

    화령자가 정색하며 말했다.

    “그래, 필요하면 부를게.”

    화령자는 비록 태을 경지 수사가 아니지만, 아는 것이 많고, 특히 법진의 도(道)에 관련해 큰 도움이 되었다.

    소요경 공간으로 화령자를 돌려보낸 뒤, 심협과 북명곤, 섭채주는 함께 진요탑으로 들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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