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대몽주-1118화 (1,118/1,214)
  • 1118화. 거대한 괴수

    심협은 검을 쥔 채 숨을 격렬하게 몰아쉬었다. 온몸의 법력이 전부 빨려 나간 것 같았고, 오장육부는 마치 바늘이 찌르듯 아파서 절로 미간이 찌푸려졌다.

    아무리 태을 후기 수사라 해도 홀로 세 명의 태을 수사와 싸우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었다.

    유웅곤은 몰래 도망치려 했으나, 안타깝게도 섭채주의 만리권운에 묶이고 말았다.

    그는 심협이 토혼축과 노수 두 사람을 연속으로 베는 것을 보자 간담이 서늘해졌다.

    “너만 남았군.”

    심협이 단약을 먹고 탁한 숨을 내쉬며 검을 들고 그에게 다가왔다.

    유웅곤은 얼굴이 잿빛이 되었다. 도망칠 수 없음을 깨달은 그는 최후의 발악을 시도했다.

    “죽어어어어!”

    성난 포효와 함께 거대한 곰으로 변한 그는 양손으로 반룡주를 꽉 끌어안고 법력을 있는 대로 뿜어냈다.

    반룡주의 구름무늬가 빛을 내며 전광을 뿜어내 만리권운을 밀어냈다. 그는 그 틈에 얼른 도망치려 했다.

    심협이 날아올라 명홍도를 쥐었다. 체내의 법력이 솟구쳤고, 검광과 도광이 교차하며 허공을 찢었다.

    반룡주에서 막 솟아오른 전광이 위력을 제대로 뿜어내기도 전에 도와 검의 광망에 찢어졌고, 거대한 몸은 허공에서 폭발했다. 그렇게 유웅곤 역시 죽음을 맞았다.

    하늘에서 천천히 내려온 심협은 명홍도를 거뒀고, 헌원신검에 의지해 간신히 몸을 지탱했다. 힘이 다 빠져 더는 버티기 힘들었다.

    섭채주가 서둘러 다가왔지만, 심협은 괜찮다는 듯 손을 내저었다.

    “저들이 놓고 간 저물 법기나 법보가 있는지 봐줘.”

    그렇게 말하고는 심협은 가장 먼 곳에 있는 토혼축의 시체를 향해 갔다.

    섭채주는 조금 어리둥절했지만, 바로 다른 사람의 시체를 수습하러 갔다.

    심협은 한참을 뒤적거리더니 마침내 검은색 저물 팔찌를 찾았다.

    손을 휘둘러 위에 묻은 피와 살점을 깨끗이 쓸어낸 뒤 잠시 살펴보던 그는 법력을 운공하여 연화하려 했다.

    그러나 방금 많은 법력을 발동한 뒤라 체내가 텅 빈 것만 같았고, 더 버티지 못하고 비틀거리며 하마터면 쓰러질 뻔했다. 연화는 포기해야만 했다.

    섭채주는 줄곧 심협을 살피고 있었기에 곧장 달려왔다.

    한데 그때였다!

    심협의 그림자에서 갑자기 은빛이 번득이더니 여우 모피를 쓴 남자가 갑자기 튀어나왔고, 은색 지팡이를 장검처럼 휘둘러 심협의 머리를 찔렀다.

    “죽어라!”

    숨어서 잠복하고 있던 백천이었다.

    그는 격렬한 전투 뒤에도 방심하지 않고 관찰한 끝에 심협이 이미 한계에 달했음을 확신했고, 자신의 일격을 절대 피할 수 없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가 갑자기 모습을 드러내는 순간, 땅에서 갑자기 커다란 금빛이 번득이더니 금색 법진이 땅에서 솟아올랐다. 눈부신 광망이 비추자 그의 움직임이 일순 지체됐다. 이는 그야말로 찰나였지만, 백천은 공격을 포기하고 다시 그림자로 들어가 사라졌다.

    사실 그의 선택이 옳았다. 그가 기습을 가하는 순간, 심협이 헌원신검을 겨드랑이 사이로 찌르고 있었던 것이다. 만약 곧장 포기하고 도망치지 않았다면 그 검에 먼저 심장이 찔렸을 터였다.

    심협은 허탕을 치자 실망한 기색이었다.

    “오라버니, 괜찮아요?”

    섭채주가 서둘러 달려오며 걱정스레 물었다.

    심협이 대답하기도 전에 반대쪽 땅에서 누군가가 땅을 뚫고 나오더니 몸을 털고는 가까이 다가왔다.

    “영악한 놈이군. 내 금박만술진(金縛萬術陣)으로 아주 잠깐 지체됐을 뿐인데 바로 포기하고 도망가다니.”

    화령자는 혀를 내둘렀다. 그는 계속 대전 밖에 숨은 채, 심협이 홀로 만요맹 요물을 상대해도 나서지 않고 있었다. 그러다가 마지막에 백천이 숨어 있음을 눈치고는 몰래 금박만술진을 설치했고, 심협과 연합하여 그를 처치하려 했다.

    “저놈은 계속 실력을 숨기고 있었어. 빙설류의 법칙의 힘 외에도 그림자 법칙까지 미약하게나마 깨달아서 암살과 기습에 매우 능숙한 모양이야. 네가 미리 말해주지 않았으면 나도 당했을 거야.”

    “그렇긴 한데, 너도 참 대단한 놈이다. 저 많은 태을 수사를 혼자서 처리하다니…… 소름 끼치는군.”

    “저만 모르고 있었던 걸까요?”

    섭채주가 원망 섞인 목소리로 투덜거렸다. 그러나 방금 심협이 다가오지 못하게 한 것도 백천의 기습으로부터 자신을 지키기 위함임을 알았기에 금방 마음이 풀렸다.

    “심협의 연기력을 탓해라. 나는 정말로 법력이 다 소모된 줄 알고 손에 땀을 쥐었지 뭐냐.”

    “연기가 아니라 정말로 법력이 텅 비었어. 안 그랬으면 백천이 도망치게 두지 않았을 거야.”

    심협은 천천히 가부좌하며 앉고는 고개를 저었다.

    “제가 호법을 설 테니까 이제 걱정하지 말고 정양하세요.”

    “고마워.”

    심협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가 단약 몇 알을 먹고는 눈을 감고 정양하기 시작하자 손목에 있던 혼돈흑련의 뿌리도 늘어나 스스로 땅으로 파고들더니 사방의 천지영기와 마기를 흡수하기 시작했다.

    화령자가 옆에 앉더니 품에서 두 개의 금속 같은 물건을 꺼내서 곡현성반에 올려놨다.

    “화 도우, 뭐 하는 거예요?”

    섭채주가 다가오며 물었다.

    “번천인이 방금 노수의 일격에 부서졌다. 이 안에 남은 법칙 여운을 모을 수 있나 없나 알아봐야지.”

    화령자는 한숨을 쉬더니 아쉬운 듯 대답했고, 섭채주는 방해가 되지 않도록 조용히 있었다.

    그렇게 두 시진이 지났을 때, 심협이 깨어났으나 표정은 어딘가 멍했다.

    “왜 그래요?”

    섭채주가 의아한 듯 물었으나, 심협은 생각에 잠겼다.

    “북명곤이 있는 곳이 느껴지는 것 같아.”

    심협은 자신도 의아한 듯 고개를 갸웃거리며 답했다.

    “북명곤이 느껴진다고요?”

    “곤의 알을 흡수해서인지 아니면 태을 후기로 올라간 탓인지는 모르겠는데, 정말로 북명곤이 있는 곳이 느껴져.”

    “그게 북명곤이라는 건 어떻게 아는 거냐?”

    “다른 것들과는 달리 혼란스러우면서도 질서가 있고 방대하면서도 억압되어 있어. 마치 삼라만상이 다 담겨 있는 것처럼……. 아무튼 미약하게나마 연결되어 있는 게 느껴져.”

    “정양이 끝나면 가보는 게 좋겠군.”

    화령자는 더 캐묻지 않고 그렇게 말했다.

    심협은 오장육부에서 느껴지던 격동이 이미 가라앉았고, 약간 남은 부상은 큰 지장이 없어서 법력만 회복하면 될 터였다.

    “가는 길에 천천히 회복하면 되지. 어서 그쪽으로 가보자.”

    “그럼 오홍 도우 쪽은 어쩌죠?”

    섭채주가 머뭇거리며 물었다.

    “기다릴 새가 없어. 그리고 정말로 고충으로 연결되어 있다면 우리가 그 고충을 부쉈을 때 왔겠지. 아직 안 온 것을 보면 연결이 끊겼거나 어떤 곤경에 빠졌다는 뜻일 거야.”

    “그럼 구하러 가야 하는 거 아닌가요?”

    “매개체가 되는 고충이 없는 지금은 찾을 수도 없으니 시간 낭비야. 지금은 북명곤을 찾으러 가는 게 나아. 나중에 꼭 찾아올 거라고 믿고 기다리는 수밖에…….”

    결정을 내린 후,  심협은 다시 두 개의 단약을 먹었고, 연화하지도 않은 채 북명곤이 느껴지는 곳을 향해 달렸다.

    세 사람은 헌원전을 벗어나 안개로 뒤덮인 구불구불한 산길을 빠르게 가르며 지나갔다. 가는 길에 누구도 마주치지 않았다. 간혹 나타나는 부서진 건물을 외에는 황량한 산등성이뿐이었다.

    북명곤의 기운은 점점 강하게 느껴졌지만, 안개 또한 갈수록 짙어져 두꺼운 벽을 이루었다.

    그 안개의 벽을 뚫고 들어가자 얼마 지나지 않아 시야가 탁 트이더니 텅 빈 광야가 나타났다.

    광야에는 안개가 없었다. 오직 거대한 물체만이 허공에 떠 있을 뿐이었다.

    그 거대한 물체는 길이가 천 장에 온몸에는 검은색 비늘이 자라 있었고, 외모는 물고기 같으면서 아니었고, 새 같으면서도 또 그렇지 않았다. 하얀 날개가 흔들리지 않는데도 몸은 공중에 떠 있었다.

    “북명곤!”

    심협이 외쳤다.

    섭채주와 화령자는 한 걸음 늦게 안개의 벽을 뚫고 나왔는데, 그 거대한 물체를 보고는 깜짝 놀랐다.

    심협은 북명곤의 상태를 살피더니 표정이 진중하게 변했다.

    북명곤은 복부에 백 장 길이의 거대한 상처가 있었는데, 오랫동안 아물지 못했는지 살점이 벌어진 상태였다. 그 안에는 검은 기운이 감돌고 있었고, 상처 부위의 근육은 경련을 일으키고 있었다.

    두 날개 아래에도 커다란 상처가 있었는데, 복부의 상처만큼 크지는 않았지만 하얀 뼈가 드러난 상태였다.

    북명곤이 콧구멍으로 뿜어내는 흑백 안개는 마치 두 줄기 연기처럼 허공으로 치솟았고, 목구멍에서도 서글픈 비명이 끊이지 않았다.

    큰 고래의 울부짖음 같은 그 소리는 공허하면서 적막했고, 천지에 울려 퍼지는 그 소리에 듣는 사람마다 가슴 깊은 곳에서 애통함이 느껴졌다.

    “어쩌다 이리 심한 부상을 당한 걸까요?”

    섭채주가 놀란 목소리로 물었다.

    그녀의 목소리가 들리자마자 그 거대한 몸이 갑자기 방향을 틀었고, 날개에서 광풍이 일며 혼란스러운 기류의 소용돌이가 휘몰아쳤다.

    광포한 소용돌이에 사방의 영기가 흐트러졌고, 화령자는 바람에 펄럭이며 몸을 가누지 못하다가 심협이 잡아준 후에야 간신히 안정되었다.

    광풍이 퍼지면서 아주 먼 곳에 있던 안개가 휘말려 찢어지고 뒤섞여 본래 텅 비어 있던 곳마저 가려버렸다.

    심협은 곧장 섭채주와 화령자를 뒤로 보내고는 양손으로 헌원신검을 쥔 채 짙은 안개를 응시했다.

    뿌연 안개가 갑자기 빠르게 흐르더니 소용돌이가 안개를 뚫고 허공을 갈기갈기 찢으며 덮쳐왔다.

    소용돌이에서 법칙의 기운이 느껴지자 심협은 방심할 수 없어 한 걸음을 내디디며 헌원신검을 양손으로 쥐고 크게 베었다.

    거대한 검광이 산처럼 뿜어져 나가 소용돌이와 강하게 충돌했다.

    꽈르릉!

    천둥 같은 폭발음과 함께 예리한 기세가 폭증한 검광이 그대로 날아가 거대한 소용돌이를 완전히 찢었다.

    그때, 갈라진 소용돌이에서 어떤형체가 나타났다. 백 장 정도 크기의 북명곤이었는데, 오히려 그 압박감은 더욱 컸다.

    심협은 움찔 떨었다. 전방의 허공이 점점 부서지더니 공간이 보이지 않는 힘에 뒤틀리는 게 느껴졌고, 전방에서는 수많은 균열이 점점 더 무거워지며 밀려왔다.

    심협은 일순 호흡이 멈추는 것만 같았다.

    그는 다시 현양화마 비술을 시전해 몸이 열 배로 커진 상태에서 명홍도와 헌원신검을 각 손에 꼭 쥐었다. 등 뒤에는 순양비검이 나란히 정렬했다.

    챙!

    가장 먼저 울려 퍼진 것은 도명(刀鳴)이었다. 명홍도의 초록색 도광이 천 장으로 늘어나 크게 베었다.

    전방에 압축되던 허공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또한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그럼에도 도광과 강렬한 충돌을 일으켰다.

    꾸르릉!

    굉음이 천지에 울려 퍼졌고 허공에서는 마찰음이 끊임없이 울려 퍼졌다. 초록색 도망이 허공을 조금씩 베자 모든 힘이 칼끝에 모여들었다.

    마침내 무언가 갈라지는 소리와 함께 허공에 거울처럼 균열이 생겼고, 곧이어 콰지직 하는 소리가 연달아 울려 퍼졌다.

    검은색 균열의 뒤를 이어 또 연달아 균열이 생겼다. 그것들은 하나의 선 같았지만, 사실은 다른 공간에 나누어져 있었다. 다만 서로 겹치고 압축되어 합쳐져 있는 것처럼 보이는 것뿐이었다.

    몇 번의 굉음이 울려 퍼진 뒤, 북명곤 앞의 허공이 완전히 부서지지는 않았지만 심협의 명홍도도 힘을 다해서 더는 안으로 돌파할 수 없었다.

    그렇다고는 해도 이 상황은 북명곤을 놀라게 하기에 충분했다.

    충격이 가시기도 전에 기세가 더 강해진 검광이 방금 도광이 지나간 곳을 똑같이 지나며 내려왔다. 강력한 위능이 다시 허공을 관통했다.

    콰직! 콰지직!

    무언가 부서지는 소리가 다시 연달아 울려 퍼졌고, 곧이어 마침내 폭발음이 울렸다.

    공간 균열들이 점점 하나로 연결되더니 마침내 겹쳐졌던 공간이 전부 부서졌다. 위세가 많이 줄어든 검광이 마침내 공간 장벽을 찢고 북명곤 머리 위로 떨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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