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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몽주-1117화 (1,117/1,214)

1117화. 몸을 도에 바치다

핏빛 달에서 화광이 번득이자 내려오던 마기가 강해지면서 허공의 영기가 소멸했고, 칠흑 같은 마기가 먹구름처럼 심협을 뒤덮어 왔다.

심협은 살짝 눈살을 찌푸렸다. 주위의 허공에서 전해오는 썩은 기운에 체내의 기혈이 영향을 받았는지 기운이 가라앉았다.

그는 차갑게 비웃고는 현양화마 신통을 시전했다. 그러자 몸의 마기와 순양 법력이 동시에 솟구치면서 몸에도 변화가 일어나 왼쪽은 칠흑같이 검은색으로, 오른쪽은 황금색으로 변했다.

그는 왼손에는 명홍도, 오른손에는 헌원신검을 들었다. 반마반선의 자태는 매우 이질적이었지만, 실제로는 균형이 잘 잡히고 기운도 강성했다.

“뭐지? 저 녀석 몸이 어떻게 된 거야?”

기혈을 제거하며 내려오던 핏빛 달의 압박이 순식간에 절반이나 사라지자 토혼축은 깜짝 놀랐다.

그때, 어디선가 또 다른 목소리가 들려왔다.

“한상계!”

온몸에 바람과 서리를 감싼 백천이 심협을 향해 날아가더니 순식간에 수많은 얼음 칼날로 변한 설상(雪霜)이 떨어졌다.

설상의 얼음 칼날이 지나는 곳마다 허공이 순식간에 얼어붙었고, 모든 영기와 마기마저 흐름을 멈추었다.

심협은 명홍도를 들어 마기를 뿜어내고는 천지를 가를 기세로 도를 비스듬하게 휘둘렀다. 그러자 초록색 빛의 도망이 허공을 찢었다.

쫘아악!

하늘 가득했던 얼음 칼날에 갑자기 골짜기가 생겼고, 그 가운데 있던 백천도 화를 피하지 못해 이마부터 시작해 선이 그어지더니 몸이 둘로 갈라졌다.

“맹주님!”

유웅곤이 깜짝 놀라 외쳤으나, 그 순간 백천의 몸이 갑자기 펑 하며 터졌고 수많은 피가 되어 흩어졌다.

이와 동시에 심협 뒤의 그림자에서 여우 털을 뒤집어쓴 남자가 갑자기 나타나더니 양손을 빠르게 결인했다. 하얀 빛이 순식간에 솟아올라 심협을 뒤덮었다.

이는 심협도 예상하지 못한 일이라 갑자기 온몸이 굳더니 혈관의 피가 모두 얼어붙어 기혈과 법력이 얼어붙은 것 같았다.

심협은 황제내경을 운공하여 단전에서 폭발하는 웅장한 법력으로 침투해오는 빙한의 법칙을 막아냈지만, 곧바로 벗어날 수는 없었다.

“지금이다, 어서!”

백천의 외침에 허공의 핏빛 달이 더 빠르게 떨어졌다. 심협의 머리를 통해 온몸의 정혈이 제어를 벗어나 몸 밖으로 뽑혀 나갈 것만 같았다.

정혈이 빠르게 솟아오르자 신식에도 충격이 전해져 눈앞이 핏빛으로 물들었고 시선이 흐려졌다.

검은 그림자가 그를 향해 곧장 날아오더니 갑자기 사라지면서 칠흑의 장도로 변하여 예망을 거두었다. 소름 끼치는 광택이 감돌았다.

자세히 바라보니 그 장도에서 수많은 귀신 얼굴이 다시 떠올랐고, 입을 크게 벌려서 그의 신혼을 단숨에 삼키려 했다.

섭채주가 보니 그것은 칼날로 변한 노수가 귀소마도와 온몸의 기운을 융합한 필살의 일격이었다.

“안 돼!”

놀란 섭채주가 바로 심협을 도우러 가려 했지만, 금전과 유웅곤이 좌우에서 그녀를 막아섰다.

“꺼져!”

섭채주는 분노하여 그녀답지 않게 상스러운 욕설을 내뱉으며 약목신궁을 꺼내 순식간에 잡아당기더니 금전을 향해 발사했다.

금전은 약목신궁에서 폭발하는 웅장한 힘을 감지하고는 얼른 체내의 법력을 손바닥 위에 있는 사각형의 도장에 끌어모았다.

도장에서 눈부신 금빛이 번쩍이더니 뿜어져 나온 빛이 몸 앞에 빠르게 모여들어 작은 산의 허상이 만들어졌다. 산의 허상에 법칙의 기운이 뭉치며 실제처럼 변했다.

그러나 금색 산이 뭉쳐질 때, 예상을 깨고 금색 화살이 날아가 아직 실체화되지 않은 부분을 쏜살같이 지나더니 그대로 금전의 가슴을 꿰뚫었다.

금전이 비명조차 지르지 못하고 가슴이 관통되며 심장이 터지는 순간, 일순 시간이 멈추는 것 같더니 뒤이어 폭발음과 함께 그의 몸은 가루가 됐다.

그 여파에 휩쓸렸던 유웅곤은 정신을 차리며 몸을 일으켰지만, 무슨 일이 일어난 것인지 이해할 수 없었다. 섭채주가 활을 쏘고 금전이 죽기까지 눈 깜빡할 시간이었는데, 너무도 빨라서 그는 반응조차 할 수 없었다.

“시간 법칙의 힘!”

유웅곤이 퍼뜩 깨닫고는 기겁했다.

방금 금전과 전음으로 상의하여 만만해 보이는 저 여자를 인질 삼아 심협을 협박하려 했는데 상대는 만만하긴커녕 터무니없이 강한 존재였다.

섭채주는 유웅곤의 반응에 신경조차 쓰지 않았다. 그저 두 사람의 방해로 심협을 도우러 가지 못한 것이 괴로웠을 뿐이다.

위협적인 귀소마도가 허공을 가르며 심협의 가슴 앞까지 다가왔다. 곧 관통당할 상황이었으나 심협은 여전히 꿈쩍도 하지 않았다.

심협의 얼굴에 돌연 미소가 떠올랐다.

이어서 그의 시선이 아래로 향했다. 반짝이는 눈은 마치 이렇게 말하는 것 같았다.

기다리고 있었다!

가슴이 철렁 내려앉은 노수는 도(刀)와 합체한 몸을 떨었다.

다음 순간, 심협이 움직였다.

그는 지금까지 억눌렀던 태을 후기의 기운을 완전히 방출했다. 그러자 헌원신검이 갑자기 떨려왔다. 그 검명은 마치 용의 울부짖음 같았다.

뿜어져 나온 강력한 기세에 백천이 뒤로 튕겨 나가듯 밀려났다.

심협이 도를 앞으로 휘두르자 검푸른 도광이 번쩍이더니 다시 귀소마도를 베었다

쾅!

굉음이 울려 퍼지는 동시에 심협이 오른손의 헌원신검으로 위쪽을 찌르자, 금색 검광이 하늘을 관통했다.

노수와 귀소마도는 피를 뿜으며 나뒹굴었다.

펑!

폭발음이 울려 퍼졌다.

하늘로 곧장 날아간 금색 검광이 피의 보름달 같은 적혈주를 찔렀다. 적혈주는 눈보라를 만난 태양처럼 혈광이 끊임없이 줄어들었지만, 강렬히 저항했다.

그러나 헌원신검은 마기에게는 천적과도 같아서, 적혈주가 원래 크기까지 줄어든 순간, 결국 버티지 못하고 폭발했다.

왼손에 명홍도, 오른손에 헌원신검을 쥔 심협의 기운은 더없이 강렬했다. 그가 한 걸음 내딛자 축지척이 그를 토혼축 앞까지 이동시켰다.

본명법기이자 자신의 법칙의 힘과 직결된 적혈주가 폭발하면서 중상을 입은 토혼축에게는 반항할 힘이 없었다.

심협은 냉소하고는 긴말 없이 헌원신검을 휘둘러 그의 목을 베었다.

토혼축의 머리가 데굴데굴 굴렀다.

하지만 곧이어 땅에 떨어진 머리가 갑자기 하늘 높이 날아오르더니 심협에게로  떨어졌다.

“비두강(飛頭僵)?”

흠칫 놀란 심협은 바로 거리를 벌리며 다시 검을 휘둘렀다.

날아오는 머리에서 뿜어져 나온 푸른 안개에 영기와 마기가 부식되면서 머리가 지나간 곳은 치익 하고 타올랐다.

“조심하세요! 무고(巫蠱)의 독이에요!”

섭채주가 급히 주의를 주었다.

심협이 검광으로 날아오는 머리를 베자 펑 하고 터지는 소리가 들려왔다.

토혼축의 머리는 사방으로 터져 나갔는데, 그러면서 나온 독 안개가 사방으로 급속히 퍼져 나가 심협을 뒤덮었다.

심협이 손을 휘두르자 푸른빛을 띤 거대한 불꽃이 그 독 안개를 태웠다.

불꽃 속, 머리 없는 토혼축의 몸은 쓰러지지 않았고, 목 부분의 살들이 모여들더니 다시 머리가 자라났다.

조금 뒤에 눈과 귀가 회복되자마자 그는 곧바로 도망쳤다.

물론 심협은 도망갈 기회를 줄 생각이 없었기에 둔광을 번쩍이며 뒤쫓았다.

“꺼져!”

토혼축이 깜짝 놀라 손을 휘두르자 거대한 백골 깃발이 나타나 어두운 기운을 뿜어냈다. 그러자 수많은 음혼과 귀물이 튀어나와 심협에게 돌진했다.

“섭혼번?”

심협은 한눈에 그 보물을 알아봤다.

음혼 귀물을 자세히 보니 낡은 갑옷을 걸치고 썩은 병기를 든 것이 음병(陰兵)의 행색이었다. 그에게 흡수된 음령산 고분의 군혼들이었다.

그는 검을 거뒀다. 이것들은 후에 천존 경지로 나아갈 때 필요했기에 함부로 벨 수는 없었다.

그러나 음혼 귀물들은 토혼축의 조종 아래 그를 물어뜯기 위해 거세게 달려들었다.

“선물인가? 고맙게 받지.”

심협이 피식 웃고는 소매를 휘둘렀다. 그러자 동전 허상 같은 것이 어렴풋이 보이는 노란색 광망이 번개처럼 나와 단숨에 섭혼법과 충돌했다.

섭혼번이 바로 강하게 흔들리더니 뿜어져 나오던 검은 기운이 주춤하면서 더는 새로운 음혼은 나오지 않았다. 그렇다고 땅에 떨어지지도 않았다.

밖으로 빠져나온 음혼 귀물들은 꼭두각시처럼 허공에 떠 있을 뿐, 더는 움직이지 않았다.

“이럴 수가!”

섭혼번에 찰싹 붙어 떨어지지 않는 낙보금전을 본 심협은 다소 놀랐다.

물론 도망가려던 토혼축은 더욱 놀랄 수밖에 없었다. 그는 본래 귀물들이 가까이 다가갔을 때 섭혼번에 담긴 섭혼 법칙의 힘을 방출할 생각이었다. 허나 심협에게 중상 입히지도, 그를 잠시도 묶어두지 못한 데다가 백골 깃발마저 발동할 수가 없었다.

토혼축은 다른 것을 돌볼 틈이 없었기에 양손으로 빠르게 법결을 맺었다. 그러자 몸이 순식간에 검은 빛이 되더니 쏜살같이 날아갔다. 그러나 속도로는 심협의 상대가 되지 못했다.

심협은 그를 쫓는 동시에 웅장한 법칙의 힘을 뿜어냈다. 토혼축은 몸에 거대한 산을 짊어진 것처럼 갈수록 느려졌다.

“심협, 날 건드리면 마족이 널 절대로 가만두지 않을 것이다!”

토혼축은 더는 도망칠 수 없다는 것을 깨닫고는 크게 외쳤으나, 거의 동시에 신혼과 단전이 폭발하고야 말았다.

퍼펑!

폭발음 속에서 수많은 마기를 담은 광포한 기의 파도가 사방으로 뿜어져 나갔다.

심협은 얼른 축지척을 사용하여 피하긴 했지만, 그럼에도 마기의 불꽃 여파에 휩쓸려 마의 몸 반쪽이 화상을 입었다.

더 많은 마기가 사방에서 몰려와 그의 육신에 침투하려 했다.

심협은 간신히 상처를 억누르며 백천을 찾았지만, 그의 기운은 느껴지지 않았다. 그가 토혼축을 죽이는 사이에 이미 도망간 것이다.

심협은 어쩔 수 없이 손을 들어서 낙보금전을 회수했다.

주인을 잃은 섭혼번도 땅으로 떨어졌고, 밖으로 빠져나왔던 음혼들은 이 깃발로 돌아갔다.

심협이 백골의 깃발을 저물대에 집어넣었다.

다시 시선을 돌려 보니 어째서인지 노수는 토혼축의 죽음을 보고도 도망치지 않고 있었다. 대신 그의 두 눈에서는 분노의 불길이 뿜어져 나오고 있었고, 온몸은 마염으로 뒤덮여 있었다. 손에 든 귀소마도는 귀신의 얼굴들이 도에서 빠져나오려는 것처럼 입을 벌리고 발악하고 있었다.

“심협, 우리 마족을 위해 널 반드시 제거하겠다!”

노수의 외침은 악마의 포효 같았다.

다음 순간, 귀소마도가 살아났고, 수많은 귀신 얼굴이 도신에서 뻗어 나와 일제히 노수의 몸을 물어뜯어 한 입씩 집어삼켰다.

더는 인도합일이 아니라 주인이 마도에 먹혀 삼켜진 것이다.

마도가 노수를 완전히 삼키는 순간, 도신에서 핏빛 무늬가 떠오르더니 강력하기 그지없는 기운이 뿜어져 나와 심협을 덮쳐왔고, 짙은 살의가 느껴졌다.

자신의 몸을 도에 바친 노수에게 남은 것은 오직 심협을 죽이겠다는 의지뿐이었다.

휙!

도광이 갑자기 번득였고, 만귀가 울부짖었다. 검은 빛이 된 귀소마도가 천지를 가르며 심협에게로 곧장 떨어졌다.

심협은 어떻게 해도 이 도를 피할 수 없음을 알고 있었기에 손을 휘둘렀다. 그러자 번천인이 한 줄기 빛처럼 날아가 도광과 충돌했다.

콰쾅!

쌍방이 충돌하는 순간, 번천인은 두부처럼 쉽게 갈라졌다.

반면 귀소마도는 멈추지 않았다. 도광이 잠깐 느려지긴 했으나 여전히 강력한 기세로 날아왔다.

심협은 명홍도를 내려놓고 양손으로 헌원신검을 꽉 쥐고는 황제내경을 극한으로 운공했다. 단전의 법력이 거센 강물처럼 신검으로 주입되었다.

“파마(破魔)!”

심협은 크게 외치며 검을 강하게 휘둘렀다.

천지가 뒤흔들렸다. 아침 햇살과 같은 빛이 밤의 장막을 찢고 온 세상에 빛을 가져다주는 것처럼 모든 어둠이 갈라졌다.

도광과 검광이 충돌했고, 폭발음과 함께 천지가 무너졌다.

“안 돼!”

승패는 순식간에 갈렸다. 남은 것은 온 천지에 울려 퍼지는 노수의 처절한 비명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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