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대몽주-1115화 (1,115/1,214)
  • 1115화. 헌원검(軒轅劍)

    옥침을 살피는 헌원 잔혼은 추억에 잠긴 듯한 표정이었다.

    “나도 이 물건을 자세히 알지는 못한다네. 그 이름이 천몽침이라는 것과 시공을 넘나드는 능력이 있다는 것만 알고 있지. 내력은 아무도 모르는데, 축록대전 때 구천현녀(九天玄女)가 들고 있는 것을 본 적이 있네.”

    “이 옥침이 구천현녀의 것이라는 말씀입니까? 전적의 기록을 보니 선배님과 구천현녀는 관계가 깊었다고 하던데, 혹시 이걸 어떻게 제어하는지도 아십니까?”

    상고의 전설에 의하면, 구천현녀는 하늘의 명을 받아 인간 세계로 내려와 헌원을 도와 마족에 대항했다. 그녀는 지략이 뛰어났고 가히 절세의 미모라 할 만했다. 오랫동안 함께 지내면서 헌원 황제는 구천현녀를 진심으로 흠모했지만, 그녀는 인간 세계에 머물 뜻이 없어서 마족을 멸하고는 인간 세계를 떠났다고 한다.

    헌원 잔혼은 이 말을 듣자 민망한 기색을 띠었다.

    심협은 그제야 자신이 헌원 황제의 감추고 싶었던 사생활을 꺼냈음을 깨닫고 사과하려 했지만, 오히려 더 어색해질까 봐 그러지 못했다.

    “구천현녀가 이 옥침에는 시공의 법칙이 담겨 있다고 말한 것을 들은 것뿐이네. 아마 시간의 법칙이나 공간의 법칙을 익혀야만 완전히 발동할 수 있을 걸세.”

    다행히 헌원 황제는 옛일에 크게 신경 쓰지 않는 듯했다.

    하지만 시간 법칙 또는 공간 법칙을 익혀야 한다는 말에 심협은 내심 눈살이 찌푸려졌다.

    이 두 법칙은 원한다고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촉구음 혈맥을 가진 섭채주도 여러 번의 정진 끝에 간신히 시간의 법칙을 깨달았고, 공간의 법칙을 진정으로 깨달은 자는 아직 본 적이 없었다.

    “선배님은 이 옥침에 어떻게 이런 현묘한 신통이 있는지 알고 계십니까? 솔직히 말씀드리자면, 이 옥침은 이전에 저를 꿈속에서 천 년 뒤의 미래로 데려갔는데, 안타깝게도 마겁이 일어나기 전에 옥침이 부서졌고, 저는 백여 년간 잠들어 있다가 깨어났습니다. 후에 연기 고인을 찾아서 고치긴 했으나 미래로 갈 수는 없었고, 오랫동안 모색한 끝에 꿈속 세계를 통해 신혼이 과거로 넘어갈 수 있게 되었습니다.”

    “미래로 넘어갔었다고? 그건 나도 모르겠군. 오래전에 이 옥침을 이용해 과거로 돌아가는 신통은 본 적이 있네. 구천현녀의 말에 따르면, 이 옥침에는 네 개의 시공 신통이 있어서 묘용이 무궁무진한데 그 사대 신통이 무엇인지는 나도 들은 바가 없다네.”

    “선배님 덕분에 많은 의혹이 풀렸습니다.”

    심협은 실망하지 않고 감사 인사를 올린 후 옥침을 챙겼다.

    이 무렵, 섭채주도 깨달음에서 깨어났는데, 얼굴에는 화색이 돌았다.

    “선배님, 무신결을 주셔서 감사합니다. 이제야 무족 신통의 현묘함을 깨달을 수 있었습니다.”

    “별 것 아니네. 이 무신결은 위력이 놀라우니 잘 익힌다면 반고진공에도 뒤처지지 않을 걸세. 잘 수련하여 치우에 대항하는 데 도움을 주게.”

    “예, 열심히 수련하겠습니다.”

    심협은 반고진공의 깨달음에 집중하느라 두 사람의 대화를 듣지 못했는데, 듣고 보니 헌원 잔혼이 섭채주에게도 공법을 준 듯했다. 궁금해진 그는 전음으로 섭채주에게 물어보려고 했다.

    한데 그때였다.

    콰쾅!

    굉음이 대전 문밖에서 들려왔다.

    “이 방어를 흔들다니, 저 마족들도 제법이군.”

    헌원 잔혼이 조금 놀란 듯이 말했다.

    “어리석은 어릿광대들 따위 제가 가서 쫓아내겠습니다.”

    심협은 수련 경지가 크게 정진한 데다 반고진공을 얻은 터라 자신감이 넘쳤다. 비록 반고진공은 아직 완전히 익히지 못했지만, 보는 눈이 이전과는 확연히 달라져 혼자서도 만요맹과 노수 등을 충분히 상대할 수 있었다.

    “저런 요마 무리는 들어올 수 없으니 신경 쓸 것 없네. 시간은 한정되어 있으니 나를 따라오게. 두 사람에게 줄 것이 있네.”

    헌원 잔혼이 담담하게 말하고는 심협 등을 암금색 화로 앞으로 데려갔다.

    심협은 진즉부터 이 화로를 주시하고 있던 터라 호기심이 커졌다.

    화로를 살펴보던 그의 시선이 바로 화로 아래의 금색 불꽃으로 향했다.

    “태양진화? 다른 무언가 섞여 있는 것 같은데…….”

    심협이 조금 놀라며 말했다.

    “안목이 훌륭하군. 이 영화의 절반은 태양진화지만, 거기에 육정신화와 팔보유리염(八寶琉璃焰)이 섞여 있다네.”

    “팔보유리염! 보타산의 서적에서 기록을 본 적이 있어요! 이 불꽃에는 파손된 법보의 영성을 빠르게 복구하는 이능이 있어서 천하에서 가장 신기한 영염 중 하나라고……. 이미 삼계에서 사라졌다고 했는데 선배님께 있을 줄은 몰랐네요!”

    섭채주가 놀란 목소리로 말했다.

    “팔보유리염은 상고 시기에도 매우 귀해서 나도 조금밖에 얻지 못했네.”

    헌원 잔혼이 손을 휘둘러 화로의 덮개를 열고는 금색 뇌전이 은은하게 흐르는 금색 영목을 꺼내서 화로 안으로 던져 넣었다.

    “헌원신목!”

    심협은 한눈에 이 금색 영목을 알아봤다.

    헌원 잔혼이 양손을 빠르게 결인하자 화로 아래의 불꽃이 갑자기 맹렬하게 솟아올랐고, 주위의 온도가 몇 배나 올라갔다.

    암금색 화로 안팎에서 금빛이 쏟아져 나오자 천둥소리가 울려 퍼졌다.

    일각 정도가 지나자 헌원 잔혼이 손을 멈췄다.

    암금색 화로의 덮개가 펑 하며 날아가자 2척 길이의 금색 보검이 화로 안에서 천천히 떠오르며 휘황찬란한 금빛을 뿜어냈다. 신성(神聖) 법칙의 기운이 담긴 보검은 마치 천하 모든 마기와 상극 같았다.

    “참마신검!”

    심협은 한눈에 이 금색 보검을 알아봤다. 바로 방금 대전 밖에서 잃어버렸던 참마신검이었다.

    다만 참마신검에는 이런 방대한 기운이 없었기에 아무래도 헌원 잔혼이 암금색 화로와 방금 그 헌원신목으로 신검을 복구한 것 같았다.

    “소우는 정말 나와 인연이 깊은 모양이군. 이 헌원신검을 보고 나도 놀랐다네. 지금 이 검은 원기가 크게 손상되고 내부의 정뢰법칙(正雷法則)도 거의 다 부서졌지. 허나 다행히 내게 헌원신목이 있어서 복구했네. 자네는 아직 반고진공의 성취를 이루지 못했으나 이 보검이 자네를 안전하게 지켜줄 걸세.”

    헌원 잔혼이 손을 들어 올리자 참마신검이 얌전히 손 위로 날아왔다.

    “이 검이 헌원신검(軒轅神劍)입니까? 검신의 금제에 참마라고 새겨져 있어서 저는 참마신검인 줄 알았습니다.”

    심협이 의아한 듯 물었다.

    “본명이 참마이긴 한데, 이 아이가 그 이름을 싫어해서 헌원검이라고 바꿔 불렀네.”

    헌원 잔혼이 보검을 툭툭 치자 헌원 잔혼의 보검이 대들듯이 웅웅 울렸다.

    “그랬군요.”

    심협이 고개를 끄덕였다. 헌원검에 이런 영동(靈動)이 있는 것을 보면 검령이 있는 듯했다.

    “헌원검…… 나와 오랜 세월을 함께 했지만 내 시대는 이미 오래전에 끝이 났구나. 치우가 부활하려 하나 내게는 더 이상 그를 막을 힘이 없단다. 그러니 앞으로는 심 소우를 따라다니며 그를 돕거라.”

    헌원 잔혼의 말에 헌원검이 아쉽다는 듯이 웅웅 떨었다.

    “만남이 있으면 헤어짐도 있는 법. 바깥 세상이 널 기다리고 있으니 가거라.”

    헌원 잔혼이 팔을 휘둘러 검을 던졌다.

    심협이 손을 들어 받자 헌원검이 두 번 울리더니 바로 얌전해졌다. 심협을 인정한 것이다.

    “착한 녀석이구나. 앞으로 잘 부탁한다!”

    심협이 미소지으며 말하자 헌원검이 맑은 소리를 내더니 웅장한 금빛을 뿜어내 그의 몸에 주입했다.

    이 금빛에는 뇌전 법칙이 들어 있었다. 평범한 뇌전과는 확연히 달라서 세상 모든 음회(陰晦)한 것과 상극인 듯한 순양지정(純陽至正)의 기운이 담겨 있었다.

    심협의 단전에서 순양검이 웅웅 떨면서 헌원검과 공명했다.

    체내의 법력도 이에 이끌렸는지 우르릉 하며 운공하기 시작했고, 기운도 움직이려 했다. 다시 정진하여 태을 후기로 돌파할 기세였다.

    “이럴 때 돌파라니!”

    심협이 놀라서 서둘러 가부좌하고 앉아서 황정경을 운공했다.

    “깨달음이 훌륭하군. 이것도 인연이니 내 조금 도와주지.”

    헌원 잔혼이 바로 심협의 미간을 향해 손가락을 내밀었다.

    심협의 머릿속에서 초록색 검의 허상이 나타나 허공을 휙 그었다.

    순수한 검의가 순식간에 머릿속을 훑고 지나갔지만, 그에게는 아무런 피해도 없었다.

    마치 샘물로 씻은 것처럼 그의 머릿속에서는 모든 잡념이 사라졌고, 의식이 또렷해져서 머지않아 열리려던 태을 후기 한계가 갑자기 확 열렸다.

    콰쾅!

    주위의 천지영기가 미친 듯이 몰려와 심협의 몸으로 들어갔다.

    이곳의 천지영기는 매우 순수하여 그의 몸을 감돌고 있는 기운이 급격히 치솟더니 금세 거의 두 배로 증폭했다.

    심협은 서둘러 눈을 감고 운공하여 경지를 안정시켰다.

    한참 후, 심협은 천천히 눈을 뜨고 숨을 내뱉었다. 몸의 기운은 이미 어느 정도 안정된 상태였다.

    연이은 돌파로 경지가 매우 불안정하여 기회를 봐서 폐관하고 한동안 공고히 다지려 했는데, 헌원전의 정세가 아직 혼란스러우니 이를 허락하지 않았다.

    “오라버니, 축하해요.”

    섭채주가 환하게 웃으며 자신의 경지가 돌파했을 때보다 더 기뻐했다.

    “선배님, 도움에 감사드립니다. 선배님이 아니었다면 태을 후기로 돌파하는 데 얼마나 걸렸을지 알 수 없었을 겁니다.”

    심협은 헌원 잔혼을 향해 다시 예를 올렸다. 오늘 이토록 큰 은혜를 받았는데 보답할 길이 없으니, 전력을 다해 반고진공을 수련하여 하루빨리 대성하겠다는 각오를 다졌다.

    “별것 아닐세. 경지가 높을수록 반고진공 수련에 더 유리할 게야. 자, 전수할 수 있는 건 전부 전수했으니 치우의 일은 이제 두 소우에게 맡기겠네.”

    헌원 잔혼이 담담하게 웃으며 말했다.

    “예, 걱정하지 마십시오. 약속은 절대 잊지 않겠습니다.”

    심협이 정중하게 답했다.

    “후배님들, 그럼 잘 부탁하네. 하하하!”

    헌원 잔혼이 크게 웃고는 소매를 휘둘렀다.

    심협과 섭채주의 몸이 금빛으로 뒤덮이더니 그 자리에서 사라졌다.

    한데 헌원전에 갑자기 목소리가 울려 퍼지더니 흑백의 그림자가 허공에 나타났다.

    “반고진공을 심협에게 전수할 줄이야. 저자가 정말로 그 신공을 익힐 수 있을 것 같은가?”

    그는 외모가 보이지 않았지만, 목소리는 남자인 듯했다.

    “반고진공을 세상에 전하고 싶었는데 저 아이는 선마의 힘을 융합하는 자질이 뛰어나고 심성도 훌륭하더군. 이 공법을 수련하기에 아주 알맞아. 성취할 수 있을지 없을지는 하늘의 뜻에 달린 게 아니겠나.”

    헌원 잔혼은 흑백 그림자의 출현에 놀라지 않고 담담하게 말했다.

    “하늘의 뜻이라……. 가장 믿을 수 없는 게 하늘의 뜻 아니던가? 내 보기에 자네가 저자에게 반고진공을 전수한 것은 그의 몸에 있는 혼돈흑련 때문인 같은데……?”

    흑백의 그림자가 웃으며 말했다.

    “자네도 알아챘나?”

    헌원 잔혼이 눈살을 찌푸리며 대꾸했다.

    “저렇게 빨리 북명곤의 알을 흡수했으니, 다른 사람은 몰라도 나는 속이지 못하지.”

    “자질이 뛰어난데 혼돈흑련까지 있으니 천 년에 한 번 만날까 말까 한 인재야. 게다가 치우의 부활이 가까워졌으니 그에게 손을 대서는 절대 안 돼.”

    “당연하지! 자네가 그리 마음에 들어 한다니 나도 뭔가 도움을 줘야겠군.”

    흑백 그림자가 씩 웃더니 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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