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대몽주-1114화 (1,114/1,214)
  • 1114화. 음양조화도(陰陽造化圖)

    “반고진공이 원만에 이르러야만 선마 두 힘의 부작용을 완전히 제거할 수 있지. 허나 9할만 융합해도 그 부작용을 충분히 완화했다 할 수 있으니 적어도 천 년 동안은 아무 문제가 없을 걸세.”

    “그럼 천 년 뒤에는요?”

    섭채주가 따지듯 물었다.

    “모든 것이 지금의 상태로 돌아올 터. 그때 심 소우 몸에 마기가 지금보다 훨씬 많이 쌓였을 테니 부작용도 더 강해지겠지. 그러니 소우에게는 오랜 시간이 주어지지 않을 걸세.”

    헌원 잔혼이 심협을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

    섭채주가 고운 얼굴이 창백해져 심협을 바라봤다.

    “전 본래 속세의 사람이었고 몸이 연약하여 오래 살기 어려웠습니다. 우연히 선도에 발을 들인 덕에 지금까지 수명을 연장해왔으니 천 년을 더 살 수 있다면 더는 바랄 것이 없지요. 또한, 삼계가 혼란스럽고 치우가 부활하여 그에게 천하를 빼앗기면 세상에는 생명이 살아남을 수 없을 터. 제가 비록 천하를 품은 의인은 아닐지라도 그냥 두고볼 수는 없습니다.”

    심협은 개의치 않는 듯 웃으며 답했다.

    “훌륭한 각오로군!”

    헌원 잔혼이 고개를 끄덕이고는 소매를 휘둘렀다.

    금색 광진에 틈이 생기면서 탁자 위의 무언가가 나타났는데, 두꺼운 금색 서적이었다. 그 위에는 ‘반고진공’이라고 쓰여 있었다.

    심협이 눈을 반짝이며 손을 내밀었다.

    “심 소우, 잠깐! 아까도 말했지만 지금 다시 한번 말하겠네.”

    헌원 잔혼이 손을 내밀어 막으면서 말했다.

    “말씀하십시오.”

    “반고 진공 수련은 어려워서 구사일생이라 해도 과언이 아닐세. 이 공법이면 선마 두 힘의 부작용을 완화하고 천 년은 무사할 것이라고 했지만, 모든 것은 자네가 반고진공을 순조롭게 수련했을 경우일 뿐, 중간에 문제라도 생기면 천 년은커녕 반나절도 못 살 수도 있네.”

    헌원 잔혼이 신중한 표정으로 말했다.

    “알겠습니다. 그리 된다 해도 선배님을 원망하는 일은 없을 겁니다.”

    심협이 대수롭지 않다는 듯 답하자 헌원 잔혼은 길을 비켜섰다.

    심협은 앞으로 걸어가 금색 서적을 들어 올렸다.

    탁자 주위의 금색 광진이 수많은 금빛이 되어 허공으로 흩어졌다.

    헌원 잔혼은 수만 년간 지고 있던 무거운 짐을 내려놓은 것처럼 표정이 한결 가벼워졌다.

    심협은 주위를 신경 쓰지 않고 서적을 펼쳤다. 첫 장에는 아무런 글씨가 없었고 수많은 선이 심오한 그림을 이루고 있었다.

    그가 놀란 표정으로 자세히 바라보니 법력 운공도(運功圖)였다.

    이 그림은 언뜻 무질서하게 보이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니 이 안에는 무궁무진한 뜻과 일월성진의 운행, 천지만물의 변화가 모두 담겨 있었다.

    뿐만 아니라 심협은 이 법력 운공선에서 많은 익숙한 공법의 흔적을 발견했다. 황제내경, 치우무결, 황정경, 순양검결 등이 모두 내포되어 있었다.

    “이 그림의 이름은 <음양조화도(陰陽造化圖)>일세. 내가 그 반고지체 고인의 몸을 참고로 삼계 1,640개 종족의 체질적 특징과 566마리 상고 이수의 몸을 연구하여, 13,571개의 공법과 <주역>의 전적을 융합하여 만들어낸 법력 운공도지. 이 그림에는 음양오행의 변화가 담겨 있어 천도를 들여다볼 수 있으니, 수련하면 모든 원기를 자기 뜻대로 제어할 수 있게 된다네. 즉, 이 음양조화도가 반고진공의 근간일세.”

    헌원 잔혼의 목소리에서는 오만할 정도의 자부심이 느껴졌다.

    심협은 설명을 듣고는 더욱 놀라워했고 호기심도 더 커졌다. 그는 뒷장을 펼치지 않고 두 눈을 감은 채 법력과 마기를 음양조화도의 선을 따라 체내에서 주천(周天)하듯 운공했다.

    법력과 마기는 본래 대립하는 기운이니 지금 하나의 경맥에서 같이 운공하자 뜨거운 기름이 물을 만난 것처럼 격렬하게 충돌하기 시작했다.

    다행히 두 힘 모두 매우 약해서 충분히 억제할 수 있었고, 계속해서 두 힘을 발동하여 앞으로 나아가게 하자 금방 음양조화도의 절반을 운공할 수 있었다.

    음양조화도는 매우 현묘하여 심협의 높은 경지와 풍부한 견식으로도 많은 부분이 완벽히 이해되지 않아 처음 배우는 것처럼 운공하다가 뒤틀렸다.

    그러나 여기까지 운공한 것만으로도 본래 격렬하게 충돌하던 법력과 마기가 얌전해지더니 더는 충돌하지 않고 조금씩 융합하기 시작했다.

    “음양조화도는 과연 천지의 조화를 이룰 정도군요. 정말 감복했습니다.”

    심협이 눈을 뜨며 진심으로 감탄했다.

    “이 그림은 내 평생의 심혈이 담긴 것이지만 안타깝게도 여전히 선마의 힘을 완전히 융합할 수는 없었네.”

    헌원 잔혼이 한탄했다.

    “그렇다고는 해도 음양조화도는 이미 전대미문의 신공 선법입니다.”

    심협의 진심 어린 칭찬에 헌원 잔혼은 말없이 웃었다.

    심협이 한 장을 넘기자 반고진공 문자 구결이 나타났고, 그의 표정은 갈수록 진지해졌다.

    반고진공의 현묘함은 그의 생각을 훨씬 뛰어넘었다. 선마 두 힘의 변화를 좌조(坐照), 동진(洞眞), 금서(金書), 혼동(混洞), 현도(玄都), 옥허(玉虛), 태묘(太妙), 은진(殷眞), 귀일(歸一) 등 아홉 편의 비법으로 구분했는데, 하나하나가 다 심오했다.

    한 편을 수련할 때마다 선마의 힘이 1할씩 융합돼 가장 마지막인 귀일 편을 수련하면 9할까지 융합할 수 있게 된다.

    선마 두 힘의 융합 외에도 반고진공에는 육체를 단련하고 신혼을 달래며 심마를 제압하는 비법이 있었다. 이 공법에는 미흡한 점이 있으나, 현양화마 신통보다는 훨씬 절묘했다.

    단, 반고진공은 절묘한 만큼 수련 과정이 매우 힘들었다.

    특히 처음 익힐 때가 가장 힘들었는데, 동시에 천지영기와 마기를 흡수하여 수시로 두 힘의 균형을 이루며 음양조화도의 방식대로 운공하여 이 그림의 심오함을 깨달아야 했기 때문이다.

    더욱이 이 과정에서는 어떤 착오도 있어서는 안 됐다. 조금이라도 오류가 있으면 모든 기운이 사라지는 것은 물론이고 몸이 터져서 죽을 수도 있다.

    그러나 일단 음양조화도를 익히면 그렇게까지 조심할 필요는 없었다. 이 그림에는 천지의 현기가 망라되어 있어 한번 수련하면 이끌지 않아도 저절로 운공되니 영기와 마기를 흡수할 수 있다. 게다가 직접 운공하면 영기와 마기를 흡수하는 속도가 더욱 빨라진다.

    음양조화도의 연화 능력은 더욱 출중하여 어떤 속성의 영력과 미기라도 그 안에 들어오면 연화되고 자신의 것으로 흡수된다.

    즉, 음양조화도만 무사히 익히면 반고진공의 수련 효율이 높아져 어떤 공법보다도 백 배는 더 뛰어나고 정진이 빠르다. 그 속도는 일취월장이라는 말로도 부족할 정도였다.

    단, 이 단계에 도달하면 다시 새로운 폐단이 생긴다. 반고진공의 정신 신속(神速)에 선마의 힘을 융합하는 속도도 더 빨라지니 육체와 신혼에 생기는 부담이 급증하는 것이다.

    선마의 힘을 융합하는 모든 법문에 이런 폐단이 있긴 하나 수련 속도를 조절한다면 큰 문제가 되지 않는다. 그러나 음양조화도는 너무도 현묘하여 일단 수련에 성공하면 통제를 벗어나 엄청난 속도로 선마의 힘을 융합하니, 다른 공법이 백 년에 이룰 만한 성과를 1년이면 이룬다. 그만큼 몸이 받는 부작용도 비례하여 압축되니, 의지가 아무리 강한 자도 감당하기 힘들었다.

    헌원 잔혼도 반고진공의 이 폐단을 잘 알고 있었기에 아홉 편의 비술로 이 결함을 완화하려고 안간힘을 썼다.

    그는 당대의 천재답게 아홉 편의 반고 비술의 인도로 선마의 부작용을 뇌겁으로 바꿔 융합이 1할씩 정진할 때마다 특수한 뇌겁이 강림하게 했다. 이것을 겪으면 계속해서 다음 반고 비술을 익힐 수 있고 만약 이것을 넘기지 못하면 몸이 터져서 죽게 된다.

    반고 진공의 가장 마지막에는 몇 개의 절세 신통이 기록되어 있었는데, 하나같이 놀랄 정도로 위력이 강하고 발상이 뛰어났다.

    심협은 반고 진공에 빠져 오랫동안 깨어나지 않았다.

    헌원 잔혼은 그런 심협을 보자 흐뭇해 미소를 지었다.

    “헌원 선배님, 저에게도 가르쳐주실 공법이 있을까요? 치우 마겁이 눈앞에 다가오고 있으니, 비록 제게는 오라버니 같은 의지는 없지만 그래도 힘을 보태주고 싶습니다.”

    섭채주가 헌원 잔혼에게 다가와 말했다.

    “섭 소우는 촉구음 무족 혈맥에 금의 조무 욕수와 물의 조무 공공의 힘까지 가진 것으로 봐서는 무족과 인연이 있는 듯하군. 내게 무신결(巫神訣)이 있지. 상고 시기 어느 무족 대능이 남긴 걸세. 그는 무신결로 열두 조무의 힘을 하나로 합치려 했으나 안타깝게도 완성하기 전에 축록대전에서 목숨을 잃고 말았지. 섭 소우가 이 신결을 수련하는 데 성공한다면 그 대능의 숙원을 이뤄줄 수 있을 걸세.”

    헌원 잔혼이 섭채주를 한참이나 바라보다가 소매를 휘둘렀다.

    검은색 서적이 섭채주 앞에 나타나더니 검은 빛을 발했다.

    “감사합니다, 선배님.”

    이 서적은 섭채주가 받아 들자 갑자기 산산조각이 났고, 수많은 검은색 글자가 그녀의 몸속으로 사라졌다.

    섭채주는 몸이 크게 흔들렸고, 이내 깨달음에 빠졌다.

    이를 본 헌원 잔혼은 흐뭇한 얼굴로 두 사람을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한참 뒤, 심협이 먼저 깨어나 헌원 잔혼에게 감사의 예를 올렸다.

    “이런 귀한 보전(寶典)을 주셔서 감사합니다. 후배 반드시 최선을 다해 수련해 하루빨리 대성을 이루겠습니다.”

    “심 소우의 자질이면 모두 깨우칠 수 있을 거라 믿네. 이 공법은 입문이 가장 어렵네. 비록 소우가 선마동수의 경험이 있다 해도 방심해서는 안 될 걸세. 선마 두 힘의 융합을 도와줄 보물을 찾아 부작용을 줄여주는 것이 가장 좋은 방법일 것이야.”

    “선마 두 힘의 융합을 도와줄 보물…….”

    심협은 심장이 세차게 뛰기 시작했다. 체내의 혼돈흑련은 아직 성장하지 않았으니 당장은 큰 도움이 되지 않겠지만, 원구가 약속한 융원고가 완성된다면 반고진공 입문에 도움이 될 것이다.

    융원고를 연단할 다른 재료는 찾기 어렵지 않으나 가장 중요한 두 개의 주재료, 각종 원기를 융합할 수 있는 영재와 상고 이충(異蟲) 서원반잠(噬元盤蠶)이 문제였다.

    원기를 융합할 수 있는 영재는 혼돈흑련의 잎사귀를 사용하면 되지만 서원반잠은 실마리조차 없었다.

    “헌원 선배님, 서원반잠을 삼계 어디에서 찾을 수 있는지 혹시 아십니까?”

    “서원반잠? 반왕(盤王) 일맥의 융원고를 만들 생각인가? 분명 반고진공을 익히는 데 도움이 되겠군. 마침 여기 신마의 우물 입구에 서원반잠이 있네. 여기를 나가면 이 지도를 보며 따라가게.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을 걸세.”

    헌원 잔혼이 옥간을 꺼내 심협에게 건넸다.

    심협이 옥간을 받아 신식으로 살펴보니 안에는 간단한 지도가 들어 있었다. 헌원전에서 매우 멀어서 찾아가려면 상당한 시간이 걸릴 듯했다.

    “선배님의 가르침에 감사드립니다.”

    “융원고가 자네를 도와서 선마 두 힘을 융합할 수 있다 해도 외물(外物)은 외물일 뿐이니 너무 의존해서는 안 되네. 특히 고충은 더욱 그러하지. 반고진공의 깨달음이 근본임을 잊지 말게.”

    “예, 명심하겠습니다. 한데 융원고가 상고 시기에도 존재했던 겁니까? 반왕 일맥의 고술이 무엇인지 가르침을 주실 수 있습니까?”

    “반왕은 상고 시기 고술의 일인자였다네. 한데 자네 고충에도 관심이 있는가? 하면 이 <반왕경(盤王經)>을 선물로 주지. 고충에 대한 많은 기록이 적혀 있는데 아쉽게도 연고(煉蠱)에 필요한 재료가 대부분 사라졌네.”

    헌원 잔혼이 회색 옥간을 꺼내 건넸다.

    “감사합니다, 선배님.”

    심협은 크게 기뻐하며 받았다. 자신은 고술에 큰 관심이 없지만, 원구에게는 큰 도움이 될 것이다.

    한데 헌원 잔혼이 갑자기 의아한 눈으로 심협을 살펴보았다.

    “왜 그러십니까?”

    이를 본 심협이 물었다.

    “심 소우, 자네의 본명원기의 흐름이 조금 이상하군. 이전에 수명을 소모하는 신통을 사용한 적이 있는가?”

    “선배님의 혜안은 속일 수 없군요. 이전에 시공의 힘이 담긴 보물을 여러 번 사용하느라 수명이 깎였었습니다.”

    심협은 숨기지 않고 사실대로 말했다.

    “수명을 깎는 시공의 보물? 혹시 하얀색 옥침인가?”

    “그렇습니다! 선배님께서는 이 법보를 아십니까?”

    심협은 옥침에 대해 다른 사람에게서 들은 것은 처음이었기에 기뻐하며 물었다.

    “천몽침(天夢枕)이 확실하군.”

    헌원 잔혼이 탄식했다.

    “천몽침이요?”

    심협이 중얼거리며 하얀색 옥침을 꺼냈다.

    “그래, 확실해. 이걸 다시 보게 될 줄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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