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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몽주-1112화 (1,112/1,214)
  • 1112화. 부활을 도모하다

    거대한 핏빛 소용돌이에서 천지를 집어삼킬 듯한 흡입력이 뿜어져 나왔다. 아까 헌원 잔혼이 발동했을 때보다 몇 배는 강했다. 강력한 뇌전 광륜은 겨우 두세 호흡 버티고는 와르르 무너졌고, 곧 수많은 뇌광이 되어 마치 깊은 늪에 빠진 것처럼 핏빛 소용돌이로 빨려 들어갔다.

    핏빛 소용돌이가 바로 사라지면서 핏빛 조도가 천천히 모습을 드러냈는데, 그 위에는 아무런 상처도 흔적도 없었다. 마치 방금 있었던 모든 일이 전혀 일어나지 않았던 것 같았다.

    “주천뇌륜(周天雷輪)으로도 아무런 상처가 안 나다니, 역시 원골(源骨)의 술법답군.”

    헌원 잔혼이 어두운 표정으로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선배님, 이 핏빛 조도는 도대체 어떤 종류의 마기(魔器)입니까? 아무도 발동하지 않았는데도 이 정도의 위력이라니요!”

    심협이 다가오며 헌원 잔혼의 혼잣말을 못 들은 듯 물어봤다.

    방금 그것은 평범한 뇌전 신통이 아니었다. 안에 강력한 뇌전 법칙이 담겨 있었는데, 그것으로도 십방마옥도를 막아내지 못했다.

    “이건 평범한 마기(魔器)가 아니라 치우의 일부 신체로 만든 것일세.”

    헌원 잔혼이 심협을 보며 천천히 말했다.

    심협은 깜짝 놀랐으나, 금세 진정했다.

    마족의 수많은 수단은 매우 피비린내가 나서, 육체로 마기를 만드는 것도 드문 일은 아니었다. 다만, 그는 이것이 치우의 신체 일부로 만든 것일 줄은 전혀 생각지도 못했다.

    허나 생각해보면 그 정도는 돼야 이 마기에 그런 역천의 위능이 있다는 게 설명이 됐다.

    “치우의 신체로 만들어진 것이라니, 그렇다면 설마 그의 손이라는 겁니까?”

    “그렇다네. 아마도 그의 오른손일 게야. 자네가 흑연미굴에서 봤다는 핏빛 지팡이는 아마도 그의 척추일 것이고, 동해 용궁에서 본 뼈 피리는 그의 왼발 다리뼈였을 것이네.”

    심협은 표정이 무거워졌다. 섭채주도 마찬가지로 표정이 심각했다.

    “그 세 개 말고도 뼈로 만든 원골마기(源骨魔器)가 아마 세 개는 더 있을 걸세. 다만 치우가 그걸 어디에 놨는지는 모르겠군.”

    헌원 잔혼이 차분히 말을 이었다.

    “원골마기라니, 그게 대체 뭡니까? 치우는 왜 자신의 뼈를 이런 마기로 만든 거죠?”

    알 수 없는 불길함에 서둘러 물었다.

    “치우의 본명 신통으로, 골원윤회도(骨源輪回道)라고도 하네. 자신의 본명마기와 신혼의 힘을 여섯 개의 원골마기 안에 넣을 수 있지. 여섯 개의 원골마기를 모두 모으면 치우는 부활할 수 있다네.”

    “그런 일이!”

    심협의 표정이 전에 없이 일그러졌다.

    “선배님 말씀은…… 현재 봉인된 치우는 빈껍데기이고 본체는 이미 빠져나갔다는 겁니까? 그럴 리가 없습니다. 마겁 대전 때 삼계의 그렇게 많은 대능들이 힘을 합쳤는데 어찌 그런 수단을 알아차리지 못했단 말입니까?”

    섭채주가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언성을 높였다.

    “골원윤회도는 축록 대전 때 치우가 비밀리에 만든 비밀 신통이라 나도 우연히 겨우 알게 되었지. 그러니 지금의 삼계 사람들이 모르는 게 당연하네. 게다가 골원윤회도 신통은 매우 정교하여 골원이 몸에서 빠져나가면 한동안 아무런 이상도 일으키지 않으니 온 천하를 속이는 것도 가능하지.”

    헌원 잔혼이 천천히 답했다.

    섭채주는 막 뭔가를 따질 듯 입을 열었지만, 끝내 따지지 못했다.

    “선배님 말씀대로라면 치우는 사실 백 년 전에 도망쳤다는 건데, 그렇다면 왜 바로 부활하지 않고 골원을 곳곳에 흩어버린 걸까요? 그 골원들은 백여 년을 기다려야만 다시 결합하여 몸이 될 수 있는 겁니까?”

    심협은 침착한 표정으로 물었고, 이미 완전히 냉정해진 것 같았다.

    “골원윤회도에 대해서는 나도 자세히 모르네.”

    “선배님, 이번 마겁이 발생하기 전에 치우가 다섯 개의 마혼으로 환생하여 그의 부활을 도울 수 있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습니다. 이런 마혼 환생에 관해서는 혹시 아시는 게 있는지요?”

    심협은 갑자기 그 일이 생각나 다시 물었다.

    “마혼으로 환생한다? 이전에는 치우가 그런 신통을 시전하는 걸 본 적이 없지만, 확실히 그다운 방식이긴 하군.”

    헌원 잔혼이 한쪽 눈을 치켜뜨며 말했다.

    심협은 헌원 잔혼에게서도 별다른 대답을 듣지 못하자 내심 실망했지만, 이 잔혼이 생겨난 지 너무도 오래되었으니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이 조도 안에 치우의 본명 원기와 신혼이 담겨 있다면 지금이 천재일우의 기회일지도 몰라요. 이 조도만 부순다면 치우는 다시는 부활할 수 없는 거잖아요!”

    섭채주가 핏빛 조도를 보며 말했다.

    “원골마기는 매우 단단한 데다가 이 조도에는 모든 원기를 흡수할 수 있는 치우의 십방마옥도가 담겨 있네. 위험이 감지되면 저절로 발동하니 부술 수 없을 걸세. 물론 부술 수만 있다면 더할 나위 없이 좋겠지.”

    “제가 한번 해볼게요!”

    섭채주가 조도를 들더니 몸에서 금과 백, 두 가지 색의 광망을 뿜어냈다. 그러자 금과 백의 나비 날개가 그녀 등에 나타났다.

    하얀 날개가 펄럭이자 하얀 빛이 날아가 핏빛 조도를 감싸 허공에 단단히 속박했다.

    섭채주는 바로 약목신궁을 꺼내 시위를 당겼다. 그러자 금빛 화살이 나타나 힘을 모으며 날아갈 준비를 했다.

    금색 나비 날개가 금빛을 강하게 뿜어내자 크고 웅장한 금색 허상이 그녀 뒤에 나타났다. 바로 후예의 허상이었다. 후예 허상도 양손으로 약목신궁을 쥐었다. 그러자 이 활에서 갑자기 불꽃 같은 금빛이 솟아올랐다.

    날카로운 소리와 함께 금빛 화살이 커다란 금색 빛줄기가 되어 날아갔고, 허공이 무너졌다. 동시에 빛줄기가 강하게 핏빛 조도를 공격했다.

    꽈르릉!

    굉음과 함께 금색 빛줄기와 안에 있던 화살이 폭발했고, 핏빛 조도 주위의 허공에도 균열이 생겨나 10여 장 밖까지 공간 균열이 벌어졌다.

    하지만 핏빛 조도는 잠깐 떨렸을 뿐, 바로 평온을 되찾았다. 심지어 흠집조차 나지 않은 상태였다.

    섭채주는 눈살을 찌푸렸고, 안색이 한층 어두워졌다.

    약목신궁의 위력이 얼마나 강한지는 그녀가 가장 잘 알고 있는데, 핏빛 조도에는 흔적조차 남지 않았고, 그 안의 십방마옥도는 발동조차 하지 않았다.

    “채주야, 무리하지 마. 지금 우리의 경지로는 불가능해. 여기서 나가면 종문의 선배님들과 의논해보자. 그분들에게는 방법이 있을지도 몰라.”

    심협이 다시 시도하려는 섭채주를 말렸다.

    섭채주는 달갑지 않았지만, 자신의 힘으로는 핏빛 조도를 부술 수 없다는 것을 알기에 이쯤에서 멈췄다.

    “헌원 선배님, 치우에 대해 논하자면 삼계에서 선배님보다 더 잘 아는 사람은 없을 겁니다. 혹시 치우의 부활에 관해 알려주실 것이 있습니까?”

    심협이 핏빛 조도를 거두고는 헌원 잔혼에게 예를 올리며 말했다.

    “두 사람 경지가 모두 훌륭하군. 특히 심 소우, 황제내경과 치우무결을 동시에 익힌 데다 그 두 가지를 하나로 합치려는 것인가? 이미 상당한 진전이 보이는군. 아주 훌륭하네.”

    헌원 잔혼은 동문서답했다.

    “일찍이 마기가 경맥에 침투하여 제거하지 못하고 어쩔 수 없이 법력과 마기의 균형을 이루는 방법을 찾아야만 했습니다. 그러다가 나중에 음양이기병에 있는 음양의 힘을 빌려 두 힘을 융합하는 대력 신통을 깨우쳤지요. 다시 치우무결과 선배님의 황제내경을 얻어서 그 대력 신통을 조금씩 완성해가는 중입니다. 다만 완전히 깨치기까지는 아직 한참 멀었습니다.”

    심협은 헌원 잔혼이 왜 갑자기 이 이야기를 꺼내는지 알지 못했지만, 굳이 숨기지 않았다.

    “그랬군. 선과 마, 두 힘은 상고 시기에는 공존하며 서로 억제하고 또 서로 돕기도 했지. 예부터 지금까지 수많은 총명한 자들이 두 힘을 합치려 시도했지만, 아무도 성공하지 못했네. 수련한 지 백여 년밖에 안 된 자네가 이 정도까지 해낸 것도 이미 대단한 걸세.”

    자신 이전에도 두 힘을 합치려 한 사람이 있었다니, 심협은 깜짝 놀랐다.

    하긴, 세상에는 수많은 영재가 있으니 그런 생각을 자신만 했을 리가 없다.

    다만 지금까지 아무도 성공하지 못했다는 헌원 잔혼의 말에 심협은 가슴이 철렁했다. 지금껏 현양화마 신통을 이용하여 두 힘의 균형을 잘 유지하고 있고, 선마를 완전히 합치기까지 얼마 남지 않았다고 생각했지만, 헌원 잔혼의 말이 경각심을 일깨웠다.

    “선마의 힘을 합치는 것이 그렇게 어려운 일입니까? 제가 건방진 것인지는 모르겠으나, 저는 두 힘의 균형을 이뤘고, 또 두 힘을 합쳐서 사용하기도 합니다.”

    심협은 그렇게 말하면서 현양화마 신통을 시전했다.

    그가 반선반마의 상태가 되어 법력과 마기가 서로 합치고 조금씩 융합하려는 추세를 보이자 열 배나 강력한 기운이 폭발하여 대전 전체가 흔들렸다.

    섭채주와 거울 요괴는 이 신통을 처음 본 것도 아니지만 여전히 놀라웠다.

    “이것이 현양화마 신통인가? 내 예상보다 대단하군. 이 정도까지 할 수 있었던 사람을 내 스무 명 정도 본 것 같네.”

    헌원 잔혼이 심협을 살펴보더니 담담하게 말했다.

    “스무 명!”

    심협은 당황했지만, 이내 고개를 젓고는 결인하여 현양화마 신통을 거뒀다.

    “두 힘을 융합하는 것은 소우가 생각하는 것보다 어렵다네. 처음에는 비교적 쉽지만, 융합이 깊어질수록 어려워진다네. 과거 치우와 싸울 때, 나도 그의 마기를 모아 황제내경에 융합하려 시도해봤지만, 안타깝게도 5할 정도의 성공에 그쳤네. 치우도 같은 시도를 했지만, 역시 성공하지 못했지.”

    “그럼 선배님이 보시기에 제 선마의 힘은 어느 정도 융합되었습니까?”

    심협이 이 말을 듣더니 잠시 침묵하다가 물었다.

    “1할도 안 된다네.”

    그 말에 심협의 표정이 굳어졌다가 이내 쓰게 웃었다.

    고생스럽게 선마 융합의 도를 깨달았고 또 어느 정도 성취가 있다고 여겼는데 이제 갓 입문한 단계라니.

    “우와, 1할도 안 되는데 이 정도 위력이면 선배님처럼 5할 정도 융합하면 현양화마 신통은 얼마나 대단해지는 걸까요?”

    섭채주는 오히려 기쁜 듯 말했다.

    “그건 섭 소우가 하나만 알고 둘은 모르는 걸세. 선마 융합은 큰 이익이 있지만, 폐단도 크다네. 심 소우도 아직 강을 건너지 않았으니 더는 가지 말게나. 자네 정도 경지까지 수련했으면 법칙의 힘을 깨닫는 것이 정도(正道)이니, 이런 험한 길에 발을 들여놓을 필요가 없어.”

    헌원 잔혼이 고개를 흔들었다.

    “어떤 폐단인지 가르침을 주십시오!”

    심협은 표정이 조금 변해 깍듯이 공수했다.

    “선마 두 힘을 융합하면 위력은 절대적이지만, 몸의 부담도 매우 커진다네. 자네는 지금 첫 단계라 아직 모르겠지만, 훗날 높은 단계까지 정진하면 충돌하는 두 힘이 자네의 육체와 신혼을 갉아 먹을 걸세. 이 과정은 매우 고통스러울 뿐만 아니라 끝이 없어서, 심지가 아무리 굳건한 사람도 결국은 육신이 무너져 발광하다가 죽게 된다네.”

    안색이 변한 심협이 주먹을 불끈 쥐었다.

    “오라버니, 괜찮아요?”

    섭채주가 심협의 표정을 보며 물었다.

    “선배님, 선마를 동시에 수련하는 것은 정말로 불가능한 겁니까?”

    심협은 섭채주에게 고개를 끄덕이고는 다시 헌원 잔혼에게 물었다.

    “선마가 서로 섞이지 않는 것이 천도이고, 천도를 범한 자는 반드시 천벌을 받게 되지. 과거 축록 전 때, 치우의 마족 대군을 막기 위해 내 휘하의 몇몇 맹장이 선마를 동시에 수련했네. 허나 마지막에는 결국 발광하며 죽고 말았지. 나 역시 만약 고인의 도움으로 몸에서 마기를 제거하지 못했다면 똑같은 결말을 맞았을 걸세.”

    헌원 잔혼이 신중한 표정으로 말했다.

    심협은 그 어느 때보다도 심각한 표정이 됐고, 한 마디도 할 수가 없었다. 도저히 받아들이기 어려운 현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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