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대몽주-1111화 (1,111/1,214)
  • 1111화. 잔혼(殘魂)

    헌원전 안. 심협이 천천히 손을 앞으로 내밀더니 갑자기 눈을 떴고, 몸에서 뿜어져 나온 금망이 갑자기 줄어들면서 천천히 탁한 숨을 뱉었다.

    “오라버니, 방금은 너무 무모했어요, 아무런 준비도 없이 조각상의 신혼 공격을 받으면 어떡해요?”

    섭채주가 거울 요괴와 함께 다가오더니 핀잔을 줬다.

    “서둘러야 했어. 그래도 이전에 수많은 신혼 비술을 익혀놨잖아. 두 조각상의 공격도 못 받아냈으면 그동안의 수련은 다 헛된 것이었겠지.”

    심협이 살며시 웃더니 손을 휘둘러 금색 법칙 공간을 없앴다.

    “그래도 그렇게 위험을 감수할 필요는 없잖아요. 그리고 오라버니는 경지를 너무 급하게 정진하는 경향이 있어요! 그렇다가 근간이 불안정해지면 위험하잖아요!”

    섭채주는 여전히 불안했는지 계속 주의를 주었다.

    “그래, 알겠어. 그런데 나도 다 생각이 있으니까 너무 걱정하지 마. 네가 걱정하는 일은 일어나지 않을 거야.”

    심협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이곳의 금제가 사라졌으니까, 요마들이 쳐들어오기 전에 어떤 보물이 있는지 어서 살펴봐요.”

    섭채주도 심협이 언제나 신중한 것을 알기에 금세 화제를 돌렸다.

    심협은 고개를 끄덕이고는 대전 깊숙한 곳을 살펴보더니 금색 탁자 옆으로 날아갔다.

    탁자를 뒤덮은 금색 광진은 눈이 부셔서 탁자에 무엇이 있는지 전혀 볼 수가 없었다.

    심협은 잠깐 생각하더니 손가락을 튕겼다. 손가락 끝에 파문이 일며 하얀 빛이 뿜어져 나왔고, 이를 통해 삼소묘음술로 금색 광진 안을 들여다봤다.

    한데 금색 광진이 갑자기 파도처럼 요동치더니 삼소묘음술의 하얀 빛을 가볍게 튕겨냈다.

    “누구냐! 모습을 드러내라!”

    심협이 날카로워진 눈으로 광진 근처의 허공을 노려보며 손에서 금빛을 뿜어냈다.

    “허허, 예민한 감각이로군. 약간의 기운만 드러냈을 뿐인데도 바로 감지하다니, 아주 훌륭해!”

    가벼운 박수 소리와 함께 허공에 금빛이 일렁이더니 희미한 금색 인영으로 변했다.

    금빛을 통해 어렴풋이 보이는 모습은 키가 훤칠한 중년 남성으로, 수염이 가슴까지 드리웠다. 그리 준수한 외모는 아니지만, 유난히 밝은 눈빛에서는 열정과 격양된 광망이 뿜어져 나왔다. 그 눈빛을 보고 있노라니 절로 경외감이 들었다. 마치 그가 명한다면 천하를 종횡무진하고 뼈를 묻는 한이 있더라도 기꺼이 따를 것 같았다.

    “누구십니까?”

    심협이 긴장감을 끌어올리며 심검을 조금씩 발동하려 했다.

    “그저 희영(姬影)이라 부르게. 그리고 지금의 난 한낱 잔혼에 불과해서 소우의 강렬한 신혼 공격을 받아낼 자신이 없으니 그만 거둬주게나.”

    그가 손을 들고는 가볍게 웃으며 말했다.

    심협은 들어본 적 없는 이름에 여전히 경계심을 늦추지 않았다.

    한데 그때였다.

    “헌원 황제시군요!”

    섭채주가 갑자기 소리쳤다.

    “헌원 황제?”

    심협이 깜짝 놀라 상대를 돌아봤다.

    “오랜 세월이 지났는데도 날 알아보는 후학이 있을 줄은 몰랐군.”

    금색 그림자는 놀란 듯 눈이 커졌지만 부인하지는 않았다.

    “후배 섭채주가 헌원 선배님을 뵙습니다! 제가 속한 종문에 선현당(先賢堂)이라는 곳이 있는데, 그곳에는 수많은 상고 성현의 초상화가 있습니다. 거기서 선배님의 초상화를 본 기억이 있습니다.”

    섭채주가 공손하게 말했다.

    “그랬군. 허나 난 헌원 본존이 아니라 그가 남긴 신념에 불과하다네.”

    금색 그림자가 조용히 말했다.

    “어쨌든 선배님은 우리 인간족의 성현이십니다. 그리고 후배가 운 좋게 선배님이 남기신 황제내경을 얻어 많은 도움을 받았습니다. 절을 올리게 해주십시오.”

    심협은 몸을 단정하고는 헌원의 잔혼을 향해 예를 올렸다.

    인간족의 기틀을 닦은 헌원 황제에게 경외감이 드는 것도 당연했다.

    섭채주도 몸을 단정히 하고 예를 올렸다.

    거울 요괴는 헌원 황제가 누군지 몰랐고 경외감도 들지 않았지만, 심협과 섭채주가 예를 올리자 서둘러 따랐다.

    “세 사람 모두 그럴 것 없으니 어서 일어나시게.”

    헌원 잔혼이 환하게 웃더니 손을 내밀었다. 그러자 보이지 않는 힘이 세 사람의 몸을 일으켰다.

    “후배 심협이 방금 네 개의 조각상을 훼손하였습니다. 양해해 주십시오.”

    “괜찮네. 그 조각상은 내가 황제내경으로 이곳의 금제와 배합하여 만든 것으로, 이곳에 들어오는 이에게 주는 시련이었지. 그러니 자네는 시련을 통과한 걸세.”

    헌원 잔혼의 대답에 심협은 내심 기뻤다. 추측대로 네 개의 조각상은 시련이었다.

    “이전에 듣기로는 헌원전은 헌원 황제가 세운 전승지라고 들었습니다. 선배님께서는 어떤 전승을 남기셨습니까?”

    그는 빙빙 돌리지 않고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

    “서두르지 말게. 사실 나 혼자서 이곳에 오랫동안 머무는 동안 백여 년 전의 그 소도사 외에는 아무도 만난 적이 없어 매우 외로웠다네. 오늘 세 명의 소우가 잠시 나와 대화를 나눠주면 어떻겠는가? 전승은 좀 이따 얘기하세. 허허허.”

    “선배님께서 저희와 대화를 하고 싶어 하신다면 기꺼이 하겠지만, 지금 헌원전 밖에 요족과 마족 무리가 금제를 공격하고 있습니다. 시간이 지체되면 저들이 안으로 들어올지도 모릅니다.”

    심협이 바깥을 힐끔 보고는 말했다.

    “걱정하지 말게. 저들은 대문의 금제를 열지 못할 테니 말일세.”

    심협은 헌원 잔혼이 자신만만한 것을 보고는 믿는 구석이 있다고 생각하고는 더는 묻지 않았다.

    “너무 오랫동안 갇혀 있어서 바깥 세계에 관해 아는 게 하나도 없군. 지금 삼계의 정세는 어떠한가?”

    헌원 잔혼이 세 사람을 앉히고는 물었다.

    “삼계는 결코 안정적이지 않습니다. 심지어 곧 소란이 일어나려고 하고 있지요. 선배님께서는 아마 모르시겠지만, 백여 년 전, 치우가 다시 봉인을 뚫고 나와 천지마겁을 일으켰습니다. 삼계의 각 세력이 힘을 합쳤지만, 많은 사상자와 막대한 대가를 치른 뒤에야 다시 봉인할 수 있었습니다.”

    심협이 신중한 표정으로 말했다.

    “오, 그런 일이 있었군. 자네는 그때의 상황을 자세히 알고 있는가?”

    헌원 잔혼도 표정이 살짝 굳으며 물었다.

    “마겁 당시 저는 요양하느라 오랫동안 잠들어 있어서 직접 겪지는 못했습니다.”

    “그 일은 후배가 조금 알고 있습니다.”

    섭채주가 말을 이어받아서 마겁 때의 상황을 자세하게 설명했다.

    헌원 잔혼은 더욱 자세하게 물었고, 섭채주는 보타산의 소종주답게 마겁에 대해 숨겨진 사실을 많이 알고 있어서 막힘없이 대답했다.

    “그런 일이 일었군.”

    헌원 잔혼은 깊은 생각에 잠겼다. 무슨 생각을 하는지는 알 수 없었다.

    “마겁은 지나갔지만, 삼계 세력들이 수련 자원을 나누는 일과 종문의 이념 차이로 서로 시기하고 심지어는 결탁하여 대립하고 있습니다. 최근에는 몇 번의 큰 싸움이 있었고, 하마터면 방촌산은 멸문할 뻔했지요. 이대로 가다가는 삼계가 정말로 무너지게 될까 봐 후배는 심히 염려가 됩니다.”

    심협이 개탄스럽다는 듯 혀를 차며 말했다.

    “현재 삼계 세력의 분포에 관해서는 이전의 그 소도사도 언급한 적이 있었지. 한데 설마 정세가 이 정도로 어지러운 줄은 몰랐네. 그래도 치우가 봉인되었으니 당분간은 큰 지장이 없겠어.”

    헌원 잔혼이 안타깝다는 듯 말했다.

    “딱히 그렇지도 않습니다. 저는 삼계 문파 간의 대립 뒤에 마족의 이간질이 있는 게 아닌가 의심하고 있습니다. 얼마 전에도 그들은 또 청구 호족을 부추겨 장안성을 습격했지요. 당시 장안성이 몰락할 뻔한 일로 인해, 본래 어지럽던 삼계는 더욱 혼란해 빠졌고, 서로 적대하는 추세입니다.”

    “분명 마족의 방식이로군. 옛날에도 그들은 적의 눈을 어지럽힌 뒤 뒤에서 행동하곤 했지.”

    헌원 잔혼이 웃으며 말했다.

    “선배님의 말씀이 옳습니다. 제가 암암리에 조사해보니 적지 않은 마족 잔당이 뒤에서 움직이고 있습니다. 얼마 전에는 치우의 본명마기를 모았고, 최근에는 또 신마의 우물을 노리고 있으나 목적은 알 수가 없습니다. 누구보다도 마족에 대해 잘 아시는 헌원 선배님이 보시기에는 마족이 무슨 일을 꾸미고 있는 것 같습니까?”

    “치우의 본명마기를 모으다니, 그게 사실인가? 실물을 본 적이 있는가?”

    헌원 잔혼이 어두운 표정으로 되물었다.

    “예, 총 세 개를 봤습니다. 하나는 무은사해의 흑연미굴에서 본 핏빛 뼈 지팡이였고, 또 하나는 동해 용궁에서 본 핏빛 뼈 피리, 마지막 하나는 창궁비경에 있던 핏빛 조도입니다만, 그것은 제가 가지고 있습니다.”

    “그 조도를 가지고 있다고? 어서 보여주게.”

    심협의 말을 들은 헌원 잔혼은 긴박하게 말했다.

    “여기 있습니다. 보십시오.”

    심협은 핏빛 조도를 꺼냈다.

    헌원 잔혼이 허공을 움켜쥐자 핏빛 조도가 그의 손에 들어갔다. 그는 잠깐 살펴봤을 뿐인데도 표정이 매우 신중해지더니 손가락으로 가볍게 만지는 듯하다가 살짝 튕겼다. 표정이며 동작 하나하나가 매우 조심스러웠다.

    잠시 후, 그는 손끝에서 검은 빛을 내보내 조도에 주입했다.

    콰쾅!

    핏빛 조도에서 천둥 같은 굉음이 울려 퍼지더니 짙은 혈홍색 마기가 뿜어져 나와 순식간에 반경 수십 장을 뒤덮었다.

    마기 안에서는 크고 작은 수많은 핏빛 소용돌이가 나타나 빠르게 회전했고, 웅웅 울부짖으며 주위의 원기를 미친 듯이 흡수했다. 심협 등은 체내의 법력이 핏빛 소용돌이에 빨려 들어가는 것만 같았다.

    심협이 깜짝 놀라 서둘러 황제내경을 운공하며 양팔을 벌렸다. 양손에서 눈부신 초록색 빛이 뿜어져 나와 그와 섭채주, 거울 요괴 그리고 헌원 잔혼을 보호했다.

    황제내경과 치우무결은 서로 상극이고, 마족의 다른 신통과도 상극이라 그들의 법력이 빠져나가는 속도가 절반 이상으로 느려졌다.

    “역시 십방마옥도였나!”

    헌원 잔혼은 주위의 핏빛 소용돌이를 보며 혼잣말을 중얼거리고는 다시 결인했다.

    조도의 핏빛 마기가 빠르게 사라지자 주위의 핏빛 소용돌이도 같이 사라지면서 대전 다시 평온해졌다. 헌원 잔혼은 여전히 핏빛 조도를 심각한 표정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선배님, 이 조도에 무슨 문제라도 있는 겁니까?”

    심협이 긴장한 목소리로 황급히 물었지만, 헌원 잔혼은 대답하지 않고 다시 결인했다. 그러자 굵은 금색 뇌전이 탁자 옆의 암금색 연기로에서 빠져나왔다. 바로 헌원신뢰였다.

    헌원 잔혼이 법결을 바꾸자 본래 밥그릇만 했던 신뢰가 갑자기 무너져 내리더니 눈 깜짝할 사이에 주먹만 한 금색 뇌구가 되어 핏빛 조도를 두들겼다.

    콰쾅!

    이어 천둥소리가 울려 퍼졌다!

    집채만 한 금색 뇌전 바퀴가 나타나더니 순식간에 핏빛 조도를 뒤덮었고, 수많은 뇌광이 위에서 어지러이 날뛰며 천둥소리가 끊이지 않았다.

    심협과 섭채주, 거울 요괴는 급히 뒤로 물러나 금색 뇌륜(雷輪)과 몇 장이나 거리를 벌렸지만, 여전히 그 여파가 미쳤다. 마치 수많은 가느다란 바늘이 온몸을 질러대는 것처럼 극심한 통증이 느껴졌고, 이에 어쩔 수 없이 계속해서 뒤로 물러나야 했다.

    특히 거울 요괴는 경지가 가장 약한 데다 그녀 같은 수족(水族)은 천성적으로 뇌전의 힘에 취약해 무려 백여 장을 물러나고도 몸을 덜덜 떨며 신음했다.

    소매를 휘둘러 그녀를 소요경 안에 넣었다.

    그러는 동안에도 헌원 잔혼은 세 사람을 전혀 고려하지 않는 것처럼 두 눈은 핏빛 조도에서 떼지 않은 채 다시 결인했다.

    금색 뇌전 광륜이 천천히 돌기 시작하자 파멸적인 뇌전의 힘이 폭발했고, 주위의 공간이 전부 무너질 것 같았다.

    공간에 어지럽게 떠오른 수많은 균열이 뇌전 광륜을 대동한 채 핏빛 조도를 베었고, 끼익 하는 소름 끼치는 소리가 귀를 찔렀다.

    조도는 강렬하게 떨면서 혈광을 강하게 뿜어냈다. 거대한 핏빛 소용돌이가 나타나 금색 뇌전과 공간 균열에 저항했는데, 바로 핏빛 조도 안에 있는 십방마옥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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