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06화. 배척
콰직!
무언가 부서지는 소리가 들려왔다.
핏빛광막이 또 한 번의 공격에 버티지 못하고 마침내 부서진 것이다.
심협은 주저하지 않고 바로 혈백원번을 거뒀으나, 물러서지 않고 오히려 전진했다. 그의 손에서 명홍도가 울부짖는 소리를 내며 다시 날아오는 설룡의 머리를 크게 내리쳤다.
도망이 높이 솟아오르면서 초록색 빛이 감돌았고, 도를 내리치는 소리가 온 하늘에 울려 퍼졌다.
도의 날이 떨어지는 순간, 허공에 떠도는 영기와 마기가 마치 도광에 끌려오는 것처럼 몰려왔고, 이전에 한기에 밀려났던 흑백의 안개도 다시 밀려오면서 기세는 더욱 거세졌다.
퍼펑!
도광이 설룡의 머리에 떨어지는 순간, 굉음과 함께 폭발이 일어났다.
수많은 서리가 터져 나가면서 용의 머리가 한 가닥 도광에 의해 갈라지더니 곧 뒤쪽 몸통까지 뻗어 나갔다. 용의 몸이 먼저 둘로 갈라지더니 강력한 도기의 폭발에 완전히 부서져 버렸다.
심협은 이미 태을 중기 수사인 만큼 도광은 설룡을 부수었고, 흑백의 안개가 사라지면서 땅에 깊은 골짜기를 만들고 흩어졌다.
만요맹 사람들은 깜짝 놀랐다. 노수와 토혼축도 마찬가지였다.
“태을 중기!”
백천의 눈이 반짝였다.
“아무래도 진짜 실력을 숨기고 있었던 모양이군.”
“우리 앞에 대놓고 나타나서 자 선생을 기습할 만한 솜씨군.”
노수와 토혼축이 감탄을 금치 못했다.
“노 도우, 구경만 하지 말고 함께 공격하는 게 어떻겠습니까?”
“좋소.”
백천의 물음에 노수가 망설이지 않고 말했고, 토혼축도 고개를 끄덕였다.
세 사람이 상의를 마치는 순간, 초록색 도광이 다시 날아왔다. 이번 목표는 토혼축이었다.
토혼축 앞에서 혈광이 강하게 번득이면서 적혈주(赤血珠)가 급히 날아올라 핏빛 광망을 뿜어내며 초록색 도광을 맞이했다.
콰쾅!
양쪽이 충돌하자 초록색 도광이 바로 핏빛 광망으로 침투해 적혈주 본체를 베려 했다.
“화혈마공(化血魔功).”
토혼축이 소리치자 핏빛 광망이 더 강해지면서 초록색 도광이 바로 혈광에 물들어갔다.
“예혈(穢血)의 법칙 힘 같은 건가.”
심협이 중얼거렸다.
그때, 갑자기 날카로운 귀신 울음소리가 들려오더니 검은색 도광이 허공을 가르며 심협의 머리 위로 날아왔다.
심협은 심신이 흔들리자 곧장 부주진신법으로 보호했지만, 여전히 흔들리는 심신을 주체할 수 없었다.
그러나 순식간에 신지를 회복하고는 소매 속의 축지척을 발동하여 단숨에 그 자리에서 사라졌다.
노수는 자신의 도가 허탕을 치자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그리고 곧바로 뒤에서 허공을 가르는 소리가 들려오면서 도망이 그의 목을 향해 날아왔다.
그때, 백천이 차가운 목소리로 내뱉었다.
“만고한강(萬古寒疆).”
그와 동시에 백천의 입과 코에서 하얀 한기가 뿜어져 나왔다. 반경 백 장의 허공에 갑자기 서리가 내리더니 공간마저 빙한의 기운에 얼어붙는 것 같았다.
심협은 한기가 뼛속까지 들어오는 것을 느꼈고, 도를 휘두르는 동작마저 느려졌다. 하여 노수로서는 가볍게 피할 수 있었다.
“법칙의 힘!”
그는 바로 주위의 변화를 눈치챘다.
“후…….”
백천이 가볍게 한숨을 내뱉자 입에서 한기가 뿜어져 나와 거센 강물처럼 밀려왔다. 날카로운 칼날 같은 수천만 개의 얼음 결정이 들어 있는 한기가 심협을 향해 몰려왔다.
이와 동시에 붉은색 구슬이 심협의 머리 위에서 내려오더니 핏빛 강물이 그에게로 뿜어져 나왔는데, 거기에도 법칙의 힘이 요동치고 있었다.
심협은 온몸의 피가 핏빛 강물에 이끌리는 것처럼 순식간에 위로 솟구쳤고, 얼굴이 빨갛게 달아올랐다. 온몸의 기운이 크게 흐트러져서 법력의 운공마저 순탄치 않았다.
“죽어라!”
위험에서 벗어난 노수가 외치며 도를 창처럼 양손으로 잡고는 심협의 가슴을 찌르며 날아왔다.
세 방향에서의 협공에 심협은 바람 앞의 등불 같았다.
“오라버니!”
섭채주가 경악하며 혈맥의 힘을 발동하려 했다.
그러나 금전과 유웅곤이 나타나 그녀의 앞을 막아섰다.
“괜히 끼어들 생각은 안 하는 게 좋을 거다.”
금전이 차갑게 웃고는 손가락을 움직이며 허공을 향해 휙 그었다.
다섯 줄기의 핏빛 광사가 오른손 끝에서 뿜어져 나와 섭채주를 향해 쏜살같이 날아가자 주위의 천지가 순식간에 붉게 물들며 법칙의 힘에 뒤덮였다.
섭채주는 거대한 성이 짓누르는 것처럼 몸이 갑자기 무거워져 바로 움직이지 못했고, 체내의 법력도 굳어버렸다.
이미 커다란 곰의 본체로 변한 유웅곤이 뇌광이 감돌고 뇌성을 뿜어내는 두꺼운 반룡주(盤龍柱)를 힘차게 내리쳤다.
섭채주는 태을 경지로 들어선 지 아직 얼마 되지 않아서 아직 법칙의 힘을 깨우치지 못했고, 시간의 법칙도 혈맥의 힘을 이용하여 발동해야 했다. 그러나 그럴 틈도 없이 두 사람에게 완전히 제압당하고 말았다.
심협은 섭채주가 협공에 위험한 것을 보자 분노가 폭발했다.
“네놈들이 감히!”
짧은 외침과 함께 금빛이 폭증하더니 열한 자루의 순양비검이 일제히 날아올랐다. 순양의 기운에 주작신화와 태양진화가 타오른 순양비검은 한기를 전혀 겁내지 않았고, 아무런 영향도 받지 않고 날아갔다.
이와 동시에 거대한 언갑이 나타나 양손에 이미 수리가 끝난 뇌신추와 열일전부를 쥐고는 곧장 하늘로 올라가 토혼축의 핏빛 강물과 충돌했다.
심협 자신도 양손으로 명홍도를 쥐고는 노수를 향해 강하게 찔렀다.
찰나의 순간, 모든 힘이 폭증하면서 금빛이 그의 몸에서 뿜어져 나왔다. 극한의 상설(霜雪) 법칙의 힘도 그를 얼리지 못했다.
“힘으로 다 부수다니, 저건 어떤 힘의 법칙이지?”
백천은 금빛에 둘러싸인 심협을 바라보며 내심 놀랐다.
콰쾅!
혼란스러운 굉음이 울려 퍼지면서 세 곳의 전장이 동시에 정리됐다.
순양비검에서 광망이 강하게 뿜어져 나왔고, 검령이 스스로 운공하며 결성한 검광검진이 유웅곤을 향해 날아갔다.
심협의 경지가 올라가면서 검광검진의 위력도 크게 증가했다. 일검의 위력에 유웅곤의 반룡주 뇌광은 부서졌고, 번개가 사방으로 튀었으며, 기둥에 균열이 생겨 그도 뒤로 날아갔다.
핏빛 강이 훼멸명왕을 감싸자 언갑은 예열로 인해 몸이 썩어갔다.
그러나 핏빛 강에서 천둥소리가 울려 퍼지고 뜨거운 태양이 떠올랐다. 뇌신추와 열일전부가 교차하며 일격을 날리자 뜨거운 불꽃과 뇌광이 동시에 핏빛 강을 갈랐다.
동시에 심협의 명홍도가 노수의 귀소마도와 충돌했다.
콰쾅!
강력한 힘의 폭발로 두 개의 광포한 기의 파도가 퍼져 나가자 노수는 뒤로 날아갔다. 수중의 귀소마도에서는 귀신 울음소리가 울렸다.
심협은 동시에 몇 가지 법보를 발동하느라 힘이 부족해 뒤로 밀려났다.
주위의 만요맹 진선 요물들은 기의 파도에 휩쓸려 잠시도 서 있기 힘들었고, 두려움에 잠식되기 시작했다.
금전이 만든 법칙 공간이 순식간에 부서지자 섭채주는 속박이 약해진 것을 느꼈고, 곧장 약목신궁을 꺼내 시위를 당겼다가 놓았다.
금빛 화살이 은빛 지팡이를 노리며 곧장 백천을 향해 날아갔다.
백천은 이 금빛 화살에 담긴 힘을 쉽게 생각할 수 없었기에 어쩔 수 없이 기습을 포기하고 은빛 지팡이를 앞으로 내밀며 법력을 방출했다. 그러자 지팡이는 창처럼 금빛 화살을 향해 날아갔다.
화살을 쏜 섭채주는 결과에 신경 쓰지 않고 바로 무력을 발동하며 심협에게 다가가 등을 맞대고 섰다.
“오라버니, 괜찮아요?”
섭채주가 급히 물어봤다.
“태을 중기로 들어서서 다행이었지, 안 그랬으면 버텨내지 못했을 거야.”
심협은 솔직하게 말했다.
열한 자루의 순양비검이 일제히 돌아와 그의 앞에 떠다녔고, 훼멸명왕도 아래로 내려와 전쟁의 신이 호위하듯 그의 옆에 섰다.
두 사람과 언갑 하나가 서로 합을 이루자 난공불락의 성벽 같았다!
“같은 태을 수사인데 저리 많은 수단이 있다니, 쉽지 않겠는데?”
노수가 눈살을 찌푸리고는 한숨을 내쉬었다.
“동시에 법칙의 힘을 발동하여 겹겹의 법칙 공간으로 그를 제압하면 충분히 제압할 수 있을 겁니다.”
금전이 어두운 표정으로 그들에게 전음을 보냈다.
그 이 무렵, 심협과 섭채주도 전음으로 상의하고 있었다.
이윽고 백천 등이 동시에 법칙의 힘을 운공하기 시작했다. 그러자 법칙의 기운이 심협 등을 향해 돌진해왔다.
주위의 공간에도 많은 변화가 일어나 수많은 진선 요족 수사들은 서둘러 뒤로 물러났고, 더 먼 곳으로 피했다.
이번에야말로 전력을 다해 심협 등을 몰살할 기세였다.
그라나 이들의 법칙 공간이 덮쳐온 순간, 허공의 시간 흐름이 순간 느려졌다. 이는 한순간에 불과해 다섯 명이 발휘한 법칙의 힘은 이내 다시 몰아쳤지만, 이미 그곳에는 아무도 없었다.
“저쪽이다!”
백천이 눈을 가늘게 뜨고 금광법진 쪽을 가리켰다.
모두가 그쪽을 돌아보니 심협과 섭채주가 손을 맞잡고 금광법진으로 뛰어들고 있었다.
* * *
마족의 마가와 자 선생은 협곡 산벽을 지나가고 있었다. 도중에 많은 영초와 영광이 널려 있었지만, 두 사람은 신경도 쓰지 않았다.
두 사람의 몸을 뒤덮은 은빛은 마치 불꽃처럼 타오르며 치익 소리를 냈다. 이들의 비행 속도는 매우 빨랐고, 은빛에 주위의 금제를 부수는 효과가 있는 것 같았다.
“속도를 높여. 모두가 오기 전에 반드시 협곡 아래에 도착해야 한다고!”
“말하지 않아도 알고 있다.”
마가가 차갑게 비웃고는 속도를 더 높였다.
* * *
거대한 협곡 어딘가. 손오공과 문수, 보현, 소백룡이 허공에 서 있었다.
“어째서 심 도우를 버리는 거냐? 그의 저력이면 강적을 만났을 때 도움이 될 게 분명하다!”
손오공이 문수에게 따졌다.
그가 여러 번 심협을 도와주고 심지어 힘의 법칙까지 깨닫도록 힘을 보탠 것은 그의 도움을 받기 위함이었다. 한데 신마의 우물에 들어가서 이곳으로 보내질 때, 문수가 갑자기 술법으로 자신들을 차단했고, 심협을 다른 곳으로 보내버린 것이다.
이 협곡은 매우 거대했고 또 신식도 운공하기 어려워 어디서도 심협을 찾을 수 없었다.
“전에도 말했지만, 이곳의 신마의 우물은 반드시 불문이 차지해야 한다. 외부인과는 절대 동행할 수 없어.”
문수 보살이 담담하게 말했다.
“왜? 그가 가로채기라도 할 것 같은가? 심 도우의 품성은 내가 잘 안다. 절대로 간악한 무리도, 탐욕을 저지를 자도 아니야!”
손오공이 더욱 불만을 토했다.
“그래, 내가 걱정하는 게 바로 그 점이다.”
“말도 안 되는 소리! 그 우물을 제어하려면 대진영상공간영부(大眞映像空間靈符)의 도움이 있어야…….”
“그에게 대진영상공간영부가 있었다.”
문수 보살이 갑자기 손오공의 말을 끊었다.
“뭐라고? 확실한 것인가?”
손오공이 깜짝 놀라 믿을 수 없다는 듯이 되물었다.
“물론이다. 그가 아직 부적을 제련하기 전이라 미약한 공간 파동이 뿜어져 나왔다. 내가 공간영부를 사용하여 감지한 것이니 확실하다.”
문수 보살이 심협의 공간 영부와 똑같이 생긴 은색 영부를 꺼냈다.
“그건 어디서 얻은 거지? 몇 년 전에 잃어버린 방촌산의 영부가 심협의 손에 넘어간 건가?”
옆에 있던 보현 보살도 깜짝 놀라 물었다.
“방촌산의 영부는 마족에게 빼앗겼으니 그 네 명의 마족에게 있겠지. 남은 것은 대당 원천강에게 있었다. 내 듣기로는 원천강이 심협을 매우 중시한다 하니 그에게서 받았겠지.”
“원천강이 감히 우리 영산을 노리다니!”
보현 보살의 눈에 분노가 스쳐 지나갔다.
“꼭 노린 것이라고 할 수는 없다. 신마의 우물 입구를 나눌 때, 어디라도 이것을 잃어버리면 다른 두 곳이 쟁탈에 끼어들겠다고 세 곳 모두 의사를 분명히 드러냈으니까.”
문수 보살이 담담하게 말했다.
손오공은 두 사람의 대화에 끼어들지 않고 묵묵히 생각에 잠겼다.
“이럴 게 아니라 우리도 어서 출발하세. 이러다가 늦겠어.”
문수 보살이 손오공을 힐끗 보고는 앞장서서 협곡 아래를 향해 날아가자 보현 보살이 뒤를 따라갔다.
“대사형, 우리도 가요.”
소백룡이 다가오며 재촉하자 손오공도 고개를 끄덕이고는 아래로 향했다.
앞에서는 문수 보살이 주문을 읊고는 영부를 발동했다.
그들의 몸에 동시에 은빛이 생겨나더니 주위의 금제 영향을 없애며 빠르게 내려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