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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몽주-1104화 (1,104/1,214)

1104화. 고충

마침 심협도 이때 돌아왔지만, 붉은 빛은 그와 반대 방향으로 날아갔기에 막을 수가 없었다.

세 사람이 속수무책으로 바라만 보고 있자 붉은 빛의 희미한 사람 얼굴이 나타나 득의양양하게 웃고는 조롱하려는 듯 입을 열었다.

그러나 그녀는 말을 꺼내기도 전에 펑 하는 소리와 함께 한 겹의 실제 같은 금색 광막에 강하게 충돌했는데, 미처 반응하기도 전에 주위에서 금빛이 몰려와 그녀를 포위했다.

뒤이어 금빛이 끊임없이 줄어들어 금색 감옥이 되어 그 허상을 원반 위로 끌고 내려왔다.

“어딜 도망가려고! 네 존재쯤이야 진즉부터 눈치채고 있었다! 흐흐흐.”

화령자가 곡현성반을 들고 음흉하게 웃으며 흑백의 안개에서 나왔다.

심협은 그제야 화령자가 아까 자신의 공격을 말렸던 이유를 알게 됐다.

“이건…… 심마 분신?”

심협은 붉은 인영이 곡현성반에 갇혀 있는 것을 보고는 깜짝 놀랐다.

“오, 역시 보는 눈이 있구나!”

화령자가 득의양양한 목소리로 뻐겼다.

“이번에도 큰 공을 세웠군!”

심협이 화령자를 추켜세웠다.

“어이구, 아첨은 그만하면 됐다. 곡현성반의 힘은 한정적이라 이놈을 오랫동안 가둬두지는 못한다. 궁금한 게 있으면 섭혼을 서둘러라.”

“좋아.”

심협은 짧게 답하고는 화령자에게서 곡현성반을 받아 들었다.

“감히 날 섭혼하려고? 내가 네놈의 신혼을 집어삼켜주마!”

심마 분신이 위협적인 목소리로 외쳤지만, 심협은 신경도 쓰지 않았다. 이미 심마 분신의 힘으로는 그의 신혼에 침범할 수 없다는 것이 증명되었다. 더욱이 이번에는 곡현성반의 봉쇄까지 있으니 심마 분신은 자폭조차 할 수 없을 터였다.

아마도 심마는 탄생한 순간부터 지금까지 이토록 무력하고 절망적인 적이 없었을 것이다. 지금까지는 그가 다른 사람의 신혼을 제멋대로 휘저었지만, 지금은 반대로 자신이 상대의 통제를 당하게 됐는데도 할 수 있는 것이 없었다.

심협이 손가락을 내밀자 심마 분신에서 인간 같은 허상이 나타나더니 꼼짝도 못 했다.

뒤이어 심협의 미간에서 영광이 날아가 심마 분신에 떨어졌다.

심마 분신이 순식간에 식해 공간으로 끌려 들어오자, 미리 준비하고 있던 웅장한 부주산이 심마의 분신을 짓눌러왔다.

겹겹의 강력한 신혼의 힘이 조금씩 심마의 분신을 갉아내며 모든 비밀을 파헤쳤다.

한참 후, 심협이 땀을 흘리며 눈을 뜨자 곡현성반의 심마 분신은 가루가 되어 사라졌다.

“어떻게 됐어?”

“성공했어.”

화령자의 질문에 심협은 고개를 끄덕이고는 만족하며 웃었다.

이 심마 분신에서 마침내 모든 심마 대법을 보완했다. 다만 지금은 그 안에 심마 대법에 대항할 비법이 있는지까지 자세히 알아볼 겨를은 없었다.

“좋아, 좋아.”

화령자가 웃으며 고개를 끄덕이고는 일을 마쳤으니 물러가겠다는 뜻을 비쳤다. 심협은 곡현성반을 돌려주고는 다시 그를 소요경 안으로 보냈다.

“심형, 아무래도 만요맹도 각자 흩어진 것 같으니 우리도 서둘러 가는 게 좋겠소.”

오홍이 그렇게 제안하는 사이 원구와 눈물 요괴, 거울 요괴도 도착했다.

모두가 잠시 쉬고는 다시 협곡 아래로 향했다.

세 시진 정도가 지나서야 심협 일행은 마침내 협곡 아래에 도착했다. 그러나 그곳은  그들이 생각했던 것과는 달랐다. 그렇다고 이 협곡 아래가 그들의 종착지는 아니었다.

어쨌든 발이 땅에 닿는 느낌이 아까 공간의 힘에 막혔을 때보다는 훨씬 좋았다.

심협이 소매에서 공간 영부를 꺼내자 영부는 여전히 광망을 번득이며 길을 안내했다.

공간 영부를 따라 걷던 이들은 이내 깜짝 놀랐다. 그들 앞에 구불구불하지만 분명 인공적인 산길이 나타났고, 길은 짙은 안개 속으로 이어져 있었다.

“어떻게 여기에 사람이 만든 산길이 있는 걸까요?”

섭채주가 의아한 듯 물었다.

“이상할 것 없지. 구역 하나가 통째로 북명곤에게 빨려 들어왔을 수도 있으니까 심지어 건물이 있어도 이상할 게 없어. 다만, 이곳의 공간들은 너무도 혼란스러워. 좀 전까지 분명 협곡 아래에 있었는데 갑자기 산 중턱에 온 느낌이라 머리가 혼란스러울 지경이야.”

심협이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북명곤 뱃속이니 공간이라고 정상일 리가 없지 않겠소?”

오홍이 웃으며 한마디 보탰다.

그렇게 한참을 걷다 보니 갑자기 갈림길이 나타났다. 두 개의 굽은 산길은 좌우로 길게 뻗어 있었는데, 그 끝은 짙은 안개에 가려져 끝이 보이지 않았기에 어디로 가야 할지 알 수 없었다.

“음…… 이제 어디로 가죠?”

거울 요괴가 눈살을 찌푸리며 물었다.

심협이 공간 영부를 꺼내서 앞에 띄웠지만, 광망을 번쩍일 뿐 어느 쪽으로도 날아가지 않았다. 앞쪽인 건 분명하지만 정확히 어디로 가야 할지 판단은 서지 않는 듯했다.

“차라리 둘로 나누어 움직이는 게 좋겠소.”

심협이 머뭇거리고 있을 때, 오홍이 불쑥 제안했다.

“어느 쪽인지 불분명하다면 흩어져서 가는 게 더 효율적이지 않겠소?”

심협은 만류하려 했으나, 막상 듣고 보니 일리가 있어서 머뭇거렸다.

“그랬다가 마족과 만요맹을 만나면 위험하지 않을까요?”

섭채주가 걱정스런 목소리로 끼어들었다.

“마족과 만요맹 역시 이곳에 들어오면서 흩어졌을 것이오. 방금 마주친 만요맹도 일부였지 않소?”

“맞아요. 게다가 그들도 이 갈림길에서 또다시 반으로 나뉘었을 겁니다. 그러니 마주친다 해도 그들 역시 전력이 반으로 줄었겠죠.”

눈물 요괴가 오홍의 의견에 힘을 보탰다.

“너도 따로 움직이고 싶은 것이냐?”

“그게 더 효율적이니까요. 서로 연락할 수단만 있다면요.”

심협의 물음에 눈물 요괴는 짧게 고개를 끄덕이며 답했다.

“이 안개 속에서는 어떤 수단도 안 통할 것 같은데…….”

심협이 여전히 결정을 내리지 못하고 고민에 빠져 있는데, 원구가 나섰다.

“제게 방법이 있는데 어쩌면 가능할지도 모릅니다.”

“말해봐라.”

오홍이 재촉했다.

“제 고충을 쓰는 겁니다.”

원구는 다른 사람이 그게 무슨 의미인지 묻기 전에 설명을 덧붙였다.

“제 고충이 탐지할 수 있는 범위가 제한적이긴 하나 서로를 감지할 수는 있을 겁니다. 백 장 간격으로 고충을 남겨둔다면 감지 범위를 늘릴 수 있겠지요.”

“괜찮은 방법 같군.”

심협도 그제야 고개를 끄덕였다.

“심 도우가 고충을 한 마리 가지고 가시지요. 일정한 간격으로 제가 매개로 쓸 고충을 풀어놓으면 계속해서 연락을 유지할 수 있을 겁니다. 만약 심 도우 쪽에 긴급한 상황이 생긴다면 곧바로 고충을 눌러 죽이십시오. 그럼 우리 쪽에서 소식을 알게 될 테니 바로 합류하겠습니다.”

“반대로 그쪽에 상황이 생기면 어떻게 내게 연락하지? 그쪽 고충을 죽여도 나는 알 수가 없잖아.”

“그건 간단합니다. 우리 쪽에 상황이 생기면 제가 도우 쪽의 고충을 조종해 도우를 공격하겠습니다.”

심협은 원구의 묘안에 감탄했지만, 그래도 여전히 마음이 놓이지 않았다.

“좋아, 그렇다면 사람을 어떻게 나누지?”

“심형이 왼쪽 길을, 내가 오른쪽을 맡으면 어떻겠소?”

“좋습니다. 그럼 다른 사람들은……?”

오홍의 말대로 이 두 명의 태을 수사가 각자 이끄는 것이 적합했다. 그러면 만요맹을 마주친다 해도 쉽게 당하지 않을 터였다.

섭채주는 말없이 심협의 뒤에 섰고, 거울 요괴와 눈물 요괴, 원구는 약속이라도 한 듯이 오홍의 뒤에 섰다.

“너희 모두 오형을 따라간다고?”

심협이 의아한 듯 묻자 눈물 요괴와 거울 요괴, 원구는 멍하니 서로를 쳐다보았다.

“뭘 보고만 있는 거예요? 우리 둘은 떨어질 수 없으니 당신이 저리 가요.”

거울 요괴가 핀잔을 주자 원구는 일순 당황했다가 이내 한심하다는 듯 그녀를 바라봤다.

거울 요괴는 그 눈빛을 알아채지 못하고 눈물 요괴를 향해 바보처럼 웃었다. 마치 ‘나는 꼭 언니랑 같이 갈 거예요’ 하는 표정이었다. 그러나…….

“네가 저쪽으로 가…….”

“네?”

눈물 요괴의 말에 거울 요괴는 눈이 휘둥그레졌다.

“바보냐? 원구가 심 도우랑 같이 가면 어떻게 고충으로 연락하라는 거야?”

눈물 요괴가 어이없다는 듯 웃으며 말하자, 거울 요괴는 그제야 흠칫 놀랐다. 그리고 이내 고개를 푹 숙이고 심협 쪽으로 걸어갔다.

하지만 생각해보니 이쪽에는 태을 수사가 둘이니 더 안전할 거라는 생각에 기분이 풀렸다.

인원을 둘로 나눈 뒤, 원구가 손을 휘두르자 고충 한 마리가 심협의 손에 내려앉았다. 그리고 일행은 둘로 갈라져서 각각의 길로 들어갔다.

* * *

산길은 안개가 짙었다. 오홍 일행은 오른쪽 길로 향했는데, 백 장 정도를 가도록 가장 뒤에서 따르는 원구는 고충을 풀지 않았다.

앞장서서 가던 오홍과 눈물 요괴는 이를 알아채지 못했다.

그리고 대략 반 시진 정도 지났을 무렵, 심협 등과 얼마나 떨어졌는지 알 수 없을 때쯤 되어서야 세 사람은 산 위의 누각 옆에 멈춰 섰다.

“이제 된 것 같군.”

눈물 요괴의 갑작스러운 말에 원구는 멈춰 섰다. 한데 표정은 꿈을 꾸듯 멍했고, 이내 퍼뜩 정신을 차리는 듯했지만 두 눈은 다시 빠르게 멍해졌다.

“어떻게 된 거지? 여긴 어디야? 심 도우는 어디 갔어?”

원구는 마치 갑자기 꿈에서 깬 것처럼 물었으나, 눈물 요괴는 그를 힐끗 봤을 뿐 신경 쓰지 않았다.

한데 오홍도 갑자기 멍해졌고, 잠시 후에는 그의 두 눈에서 갑자기 두 개의 깊은 소용돌이가 떠올랐다. 이어서 눈동자가 짙은 금색으로 변했다.

뒤이어 눈빛이 깊고 날카로워진 데다 오만한 패왕의 기색에 살기마저 섞이더니 마치 실제처럼 뿜어져 나올 것 같았다.

눈물 요괴는 갑작스럽게 변한 오홍의 기세에 깜짝 놀라 반사적으로 한 걸음 물러섰다.

“조…… 조룡 선배님.”

그녀는 마음을 가다듬고 포권하며 예의를 갖췄다.

“무얼 하고 있느냐?”

이를 본 원구는 가슴이 철렁했다. 아무리 무뎌졌다 해도 지금 상황이 심상치 않다는 것을 깨달은 그는 몸을 돌려 도망치려 했다.

허나 그가 움직이기도 전에 오홍이 고개를 돌려 싸늘한 눈으로 쳐다봤다.

원구는 갑자기 신혼에 강렬한 충격을 받았다. 두 개의 금색 눈동자 안에서 마치 두 개의 깊고 어두운 검은 구멍이 그의 신혼을 잡아먹을 듯 잡아당기는 것이 느껴졌다.

그가 그 자리에 가만히 굳어 있는 것을 본 오홍은 그제야 시선을 돌려 눈물 요괴를 바라봤다.

눈물 요괴는 겁을 먹고 황급히 시선을 피했다.

“뭘 두려워하는 것이냐?”

오홍이 입을 열었으나, 말투는 완전히 조룡의 그것이었다.

“선배님의 섭심 법칙이 너무나 강력하여…… 저, 저절로 두려움이…….”

눈물 요괴가 조심스럽게 말했다.

“걱정 마라. 지금은 협력 관계이니 네게는 손을 대지 않을 것이다.”

“선배님의 강력한 법칙의 힘으로 어째서 심협의 신혼을 취하지 않으신 겁니까? 그를 제어할 수 있다면 강력한 힘을 얻을 수 있지 않습니까?”

눈물 요괴가 고개를 살짝 들고 물었다.

“그게 그리 쉬운 줄 아느냐? 아무도 모르게 오홍의 심신을 제어하느라 내 정력 대부분을 소모했다. 지금의 난 잔혼에 불과하여 함부로 심협을 조종하려 들다가는 명을 재촉하는 꼴이 된다.”

조룡의 혼이 안타깝다는 듯 혀를 차며 말했다. 그의 머릿속에는 심협이 심마의 분신을 죽이던 장면이 떠올랐다.

“그럼 어째서 원구를 데리고 오신 겁니까? 대승기 수사 따위는 거추장스럽지 않습니까?”

눈물 요괴는 말을 잇지 않고 화제를 돌려 물었다.

“우리가 찾는 물건은 경지나 힘으로 얻을 수 있는 게 아니니 저놈의 능력이 필요하다. 여기서 잠시 기다렸다가 방향을 감지하면 다시 나선다.”

조룡의 혼은 이렇게 말하고는 눈을 감은 채 양손으로 매우 기이한 법결을 맺었다. 그러자 몸에서 금색 광망이 번득이더니 희미한 금빛이 머리 위에 떠올랐다가 순식간에 허공으로 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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