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00화. 힘의 법칙
“철리과? 설명을 들어보니 썩 진귀한 물건은 아닌 모양이지? 한데 저 소용돌이의 힘을 막아낸 것을 보면 구전빈철 만큼이나 단단해 보이는데?”
“그건 나도 의문이다. 철리과가 수많은 세월을 견디면 단단해지기는 한다만, 이렇게까지 단단해졌다는 것은 들어본 적도 없다.”
화령자도 의아한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그럼 좀 더 자세히 살펴봐 줘.”
심협은 그 말을 남기고는 다시 소용돌이로 신경을 돌렸다.
손오공은 여전히 전방을 주시하고 있었고, 눈의 금빛이 강해지면서 눈동자에 불꽃의 허상이 떠올랐다.
“대성의 화안금정은 과연 명불허전이로구나!”
심협은 진심으로 감탄했다.
그의 유명귀안은 정진이 멈춘 지 오래였다. 경지가 오르면서 유명귀안도 약간 강화되긴 했으나, 이미 큰 역할을 하기는 힘들게 됐다.
‘새로운 동술을 찾아서 수련해야겠군.’
심협이 그렇게 생각을 정리할 무렵, 손오공이 씩 웃더니 눈의 금빛을 줄였다.
“대사형, 뭐 좀 찾았습니까?”
소백룡이 바로 다가오며 물었다.
“뭔가 보이긴 했다. 전방의 소용돌이 중심에 강력한 법칙의 힘이 가득하구나. 일종의 흡수 법칙 같다. 일단 소용돌이 법칙이라고 하고, 그것이 이곳의 천지영기를 휘저어 거대한 소용돌이를 만들고 있다.”
“소용돌이 법칙이라…… 그럼 나갈 방법도 알아내셨습니까?”
“물론이다. 이 소용돌이 법칙이 제아무리 강하다 해도 대적할 수 없는 것은 아니다. 법칙의 힘을 격파하거나 제거하면 이 공간 전체가 흔들릴 터. 그때가 이곳을 빠져나갈 절호의 기회다.”
손오공의 말에 심협은 기뻤지만, 이내 걱정이 들었다.
소용돌이의 중심부는 그 힘도 분명 더 강할 것이다. 지금도 산하사직도의 힘을 빌려 간신히 버티고 있으니 중심부의 힘을 견딜 수 있을지 걱정이었다. 버티기도 힘들다면 어찌 법칙을 격파할 수 있겠는가.
“그리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산하사직도에는 하늘과 땅을 안정시키고 풍화를 견고하게 하는 신통이 있으니 소용돌이 중심부에 도착하면 그 신통으로 주위 공간의 힘을 안정시킬 수 있다. 그때 공격하면 되겠지.”
손오공은 심협이 무슨 걱정을 하는지 눈치채고는 설명했다.
“그렇군요. 알겠습니다.”
심협은 고개를 끄덕였다.
“반드시 일격에 끝내서 북명곤이 반응할 틈을 줘서는 안 된다. 모두 전력을 다해 공격해야 해.”
손오공이 신신당부했다.
심협도 신중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이고는 현황일기곤을 꺼냈다. 그의 옆에서 노란 빛이 번득이더니 천살시왕이 번천인을 들고 나타났다. 또한 등에서는 은빛 문이 열리더니 거대한 물체가 빠져나왔다. 바로 훼멸명왕이었다. 열일전부와 뇌신추의 영력이 교차하자 천지마저 파멸할 무서운 기운이 뿜어져 나왔고, 주위의 허공이 크게 떨려왔다.
이를 본 소백룡은 부끄러운 기색으로 은백색 용창을 꺼냈다. 그는 적과 싸울 때 한 번도 외부의 힘에 의지하지 않았고 무기도 용창 하나뿐이었는데, 심협의 호화로운 진용을 보니 문득 자신이 초라해 보였다.
“못 본 사이에 많은 중보를 손에 넣었구나. 아주 좋아.”
손오공은 심협의 다양한 수단을 보며 흡족해했다.
“과찬입니다. 실력이 부족하니 이렇게 외부의 힘이라도 빌리는 수밖에요.”
“겸손 떨 것 없다. 네 실력은 내 익히 잘 알고 있지. 그 선, 마의 변신을 한다면 나도 널 이길 자신이 없으니 말이다. 한데 네 발천난봉을 보니 아직 원만의 경지까지 수련하지 못했더구나. 이 곤법은 그 위력보다도 곤법을 통해 힘의 법칙을 차근차근 깨달아가는 것이 더욱 중요하다.”
“발천난봉을 수련하면 힘의 법칙을 깨달을 수 있단 말입니까?”
심협의 눈이 번득였다.
그는 원조의 놀라운 힘의 법칙과 그 위력을 보며 매우 부러웠었다. 자신은 육신의 힘이 매우 강력하고 현양화마까지 익혔으니 힘의 법칙만 깨달을 수 있다면 분명 새로운 경지로 들어설 수 있을 것이다!
“물론이다. 내 오랜 시간 발천난봉을 수련한 경험을 담아두었으니, 이걸 통해 깨닫도록 해라.”
손오공이 하얀색 옥간을 꺼내 건넸다.
심협은 가볍게 떨리는 손으로 옥간을 받았다.
옥간에는 기껏해야 3백여 글자가 담겨 있을 뿐이었으나, 그 옆에는 곤봉을 휘두르는 소인(小人) 그림이 있었다. 내용은 많지 않지만, 글자 하나하나가 모두 발천난봉의 본질을 가리키고 있었으니, 대충 훑어본 것만으로도 깨달음을 얻은 듯했다.
“대성의 은혜에 감사드립니다. 훗날 원하시는 것이 있다면 반드시 도와드리겠습니다!”
심협은 정중하게 공수했다.
“그럴 것 없다.”
손오공은 씩 웃으며 손을 흔들었지만, 표정을 보아하니 매우 흡족한 듯했다.
지금은 발천난봉을 깨우칠 때가 아니었기에 심협은 서둘러 산하사직도를 발동하여 전진했다.
손오공의 인도 아래 세 사람은 금방 소용돌이 중심부에 도착했다.
심협의 예상대로 여기는 소용돌이의 힘이 몇 배나 강해서 산하사직도가 강렬하게 흔들렸다. 내뿜은 은빛도 소용돌이의 힘에 계속 빨려 들어갔다.
심협은 법력을 운공하여 산하사직도를 안정시키고 검은색 소용돌이에 휩쓸리지 않도록 조심하며 앞으로 나아갔다.
수백 장 높이의 검은색 소용돌이가 마치 기둥처럼 우뚝 서서 빠르게 회전하면서 더없이 강력한 법칙의 힘을 뿜어냈다.
소용돌이 주위는 모든 것이 일그러졌고, 허공조차 꽈배기처럼 커다란 주름이 되었다. 공간 전체에는 각종 천지영기가 몰려와 소용돌이에 흡수되었고, 완전히 찢겨 나가 가장 작은 원기 알맹이가 되었다.
“이토록 현묘한 소용돌이 법칙이라니, 이런 방식으로 각종 원기를 흡수하는 것이었군!”
심협이 상황도 잊고 감탄했다.
“이곳은 북명곤 체내 공간의 중심 구역인 만큼 북명곤도 크게 신경 쓰고 있을 것이다. 속전속결로 끝내야 한다!”
손오공이 전음으로 외치고는 금빛을 뿜어내 산하사직도에 주입했다.
심협은 이미 손오공으로부터 천지를 안정시키는 비법을 듣고 터득한 터라 오래된 주문을 읊으며 양손을 빠르게 결인했다. 수많은 법결이 폭우처럼 주위의 그림으로 들어갔다.
산하사직도가 활짝 펼쳐지면서 더 강력한 은빛을 뿜어내 반경 30리를 뒤덮자 마치 은색의 작은 세계가 된 것 같았다.
이 세계의 모든 공간의 힘이 안정되었다. 심지어 거대한 검은색 소용돌이도 마치 얼어붙은 것처럼 굳었다.
손오공이 바로 날아오르자 몸이 빠르게 커지면서 눈 깜짝할 사이에 키가 백 장에 이르렀다. 온몸의 근육이 팽창했고, 털은 마치 강철 침처럼 두껍고 단단해졌다. 여의금고봉이 내뿜는 금빛도 더 강해졌다.
강력한 법칙의 힘이 폭발했다. 이는 바로 힘의 법칙이었는데, 그 위력은 원조에 비해 결코 약하지 않았다.
거대 금빛 원숭이가 양손으로 금고봉을 쥐고 높이 치켜들었다. 몸이 뒤로 활처럼 휘어지더니 금고봉이 큰 곡선을 그리며 곧바로 떨어졌다.
금고봉 주위에 금색 파문이 일어났고, 세상의 모든 힘을 모은 것처럼 검은색 소용돌이 위를 내리쳤다. 산하사직도의 신통으로 멈춰 있던 주위의 허공이 강하게 떨리기 시작했다.
“받아라!”
심협은 손오공의 이 일격을 알아봤는데, 방금 옥간에 기록되어 있던 힘의 법칙을 융합한 곤법 비기였다.
소백룡도 길게 울부짖더니 온몸에서 눈부신 번개를 뿜어내며 창을 크게 찔러 넣었고, 세 마리 보라색 뇌룡이 번개처럼 날아갔다. 뇌전의 힘을 제어하며 적을 공격하는 용궁의 비법, 뇌랑천운(雷浪穿雲)이었다.
이 세 마리 뇌룡이 뿜어내는 강력한 뇌전의 법칙의 공격력은 오홍보다도 훨씬 강력했다.
심협이 현황일기곤을 휘둘러 발천난봉을 시전하자 수많은 금색 곤봉의 허상이 하늘을 뒤덮으며 검은색 소용돌이를 향해 날아갔다.
그의 옆에서 천살시왕과 훼멸명왕도 번천인과 뇌신추, 열일전부로 공격을 퍼부었다. 세 줄기 거대한 유광이 검은 소용돌이를 향해 날아갔다.
태을 경지의 세 수사가 합공을 펼치니 그 위력은 그야말로 경천동지할 지경이었다.
꽈르릉!
굉음이 울려 퍼졌고, 산하사직도의 은빛 세계가 순식간에 무너졌다.
검은색 소용돌이는 세 사람의 공격에 그대로 끊어져 수많은 검은 빛이 되어 흩어졌다. 찢는 힘은 비록 사라지지는 않았지만, 8할쯤 약해졌다.
“성공인가?”
소백룡이 믿을 수 없다는 듯 중얼거렸다.
“아닙니다. 소용돌이 법칙은 흩어졌을 뿐, 부서지지 않았습니다!”
심협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는 언제 꺼냈는지 축지척에서 뿜어져 나온 초록 빛으로 빠져나갈 틈을 찾아봤지만, 결국 찾아내지 못했다.
소백룡은 그제야 검은색 소용돌이가 부서졌어도 주위의 공간은 별로 달라지지 않았음을 알아챘다.
손오공도 표정이 무거워졌다. 그는 눈의 금빛을 더욱 밝히며 빠르게 주위를 훑어봤지만, 안타깝게도 아무것도 찾아낼 수 없었다.
이를 본 심협은 점점 더 초조해졌다.
“심협, 네 중보의 위력을 네가 아직 모르는 모양이구나. 혼돈흑련의 뿌리는 허공을 뚫을 수 있고 원기를 감지하는 데에도 매우 민감하거늘, 어째서 사용하지 않은 것이냐.”
화령자의 목소리에 심협은 눈이 휘둥그레졌고, 그제야 혼돈흑련을 떠올리며 자신의 멍청함을 탓했다.
그의 제어 하에 혼돈흑련의 수많은 뿌리가 사방으로 퍼져 나갔다. 다소 힘들긴 했지만, 실제로 허공을 뚫는 데 성공했다.
‘되는구나!’
심협은 속으로 기뻐하고는 서둘러 이 뿌리를 통해 신식을 펼쳐 회색 공간을 감지했고, 이내 약간의 이질감을 찾아냈다.
“이건……?”
그는 흠칫하더니 바로 눈을 감고 모든 심신을 혼돈흑련 뿌리에 집중했다.
회색 공간 안. 부서졌던 검은색 소용돌이가 빠르게 모여들더니 거의 몇 호흡 만에 본래의 기둥 같은 모습을 되찾고는 회전하기 시작했다.
모든 것을 부수는 무서운 소용돌이의 힘이 다시 나타나 세 사람을 뒤덮었다.
심협은 눈을 감고 정신을 집중한 터라 다가오는 위험을 알아채지 못했고, 이를 본 손오공이 서둘러 그를 대신해 산하사직도를 발동했다. 산하사직도는 최근 심협이 가지고 있지만, 그전까지 그 주인은 손오공이었다. 당연히 진즉 연화해둔 만큼 곧장 사용할 수 있었다.
본래 활짝 펼쳐져 있던 산하사직도가 빠르게 줄어들어 눈부신 은빛을 뿜어내자 금방 다시 구(球) 형태의 보호막이 되어 세 사람을 보호했다.
보호막이 완성되자마자 검은색 소용돌이가 날아와 그 위를 두들겼다.
콰쾅!
산하사직도가 격렬하게 흔들렸고, 내부의 은빛도 깜빡이면서 조금씩 무너질 기세를 보였다. 손오공이 비록 이전에 산하사직도를 연화했다고는 하지만, 심협의 계약을 제거하지 않는 이상 그 위능을 최대한으로 발휘할 수는 없다.
소백룡이 다급히 심협을 불러 깨우려 했다.
“방해하지 마라. 지금 심협은 이 공간의 상황에 대해 알아보고 있는 것일 터. 방해해서는 안 된다. 내 아직 버틸 수 있다.”
손오공이 전음으로 소백룡을 말렸다.
소백룡은 그제야 심협을 자세히 살폈다.
한편, 손오공이 양손을 벌려 두 줄기 거대한 금빛을 산하사직도에 주입하자, 이 그림은 곧장 안정되며 뒤로 빠르게 물러나 검은색 소용돌이에서 벗어나려 했다.
그러나 소용돌이는 이들을 적으로 간주한 것인지 쫓아오기 시작했는데, 그 속도가 어찌나 빠른지 눈 깜짝할 사이에 따라잡히고 말았다.
더 강력한 찢는 힘이 검은색 소용돌이에서 뿜어져 나오자 허공에는 무수히 많은 검은색 균열이 생겨났다. 마치 수천 개의 칼날이 산하사직도 보호막을 베려는 것만 같았다.
펑!
굉음과 함께 산하사직도가 다시 크게 흔들리자 이 보물에 담겨 있던 영력도 소용돌이 법칙에 이끌려 조금씩 빠져나가기 시작했다.
“누군가 이 소용돌이 법칙을 조종하고 있어! 아무래도 북명곤이 우리를 완전히 말살할 생각인가 보군!”
손오공은 다시 강력한 법력으로 산하사직도를 안정시키고는 위를 올려다보며 외쳤다.
그의 예상대로 하얀색 골수, 즉 북명곤이 체내 공간의 소용돌이 법칙을 제어하여 이들을 말살하려 하는 것이었다.
북명곤의 혈육은 진즉 몸에서 벗어나 곤의 알이 되어 동해지연 곳곳에 기생하며 이곳의 천지영기를 흡수하여 환골탈태를 준비하고 있었다. 이 해골에 남아 있는 힘은 많지 않았기에 최대한 빨리 이들을 제거해야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