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대몽주-1098화 (1,098/1,214)

1098화. 흑오공(黑悟空)

“이것은 원 국사님이 주신 공간 부적인데 이게 왜……?”

혼잣말을 중얼거리던 심협은 갑자기 표정이 굳었다.

“왜 그러시오?”

오홍도 진중한 표정으로 물었다.

“이 공간 부적에는 신마의 우물 입구를 감지하는 효용이 있소. 한데 지금 이런 반응을 보였다는 것은 북명곤의 은색 공간에 신마의 우물이 있다는 말이 아니겠소?”

신마의 우물에 대해서는 오홍도 알고 있었지만, 심협만큼 깊게 알지는 못했다.

“그 말은…… 신마의 우물 입구가 동해지연에도 있다는 말이오?”

오홍의 물음에 심협은 천천히 고개를 저었다. 이전에 북명곤에게는 공간의 힘이 있다는 말을 들었을 때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던 생각이 뭔지 갑자기 떠올랐다.

원천강은 이전에 외부의 강력한 공간의 힘이 간섭하면 신마의 우물 입구가 공간의 힘에 휩쓸려서 그 힘이 있는 곳으로 옮겨진다고 했다.

북명곤에게는 그러고도 남을 공간의 힘이 있다. 현재 공간 영부가 다시 발동했고, 북명곤이 환골탈태할 때는 대량의 천지영기가 필요하다. 이 요소들을 종합해보면 영산이 잃어버린 신마의 우물 입구가 여기에 있을 가능성이 컸다.

“마족이 이곳에 온 목적이 북명곤이 아니라 신마의 우물이었단 말인가.”

심협의 말에 오홍의 안색도 변했다.

“뭐가 됐든 서둘러 찾아야 하오.”

심협이 눈앞의 영부를 보며 말했다.

“당장 출발합시다.”

오홍이 벌떡 일어섰다.

“오형, 지금부터는 둔술을 시전해 속도를 높일 생각이니 아무래도 소요경에 들어가 있는 것이 좋겠소.”

심협이 미안한 기색으로 조심스레 말했다.

“지금 내 둔술이 미덥지 못하다는 말이오?”

오홍은 표정이 굳어지면서 그렇게 말했지만, 더는 따지지 않고 얌전히 소요경으로 들어갔다.

심협은 손을 휘둘러 소요경을 닫고는 공간 영부가 안내하는 방향으로 을목선둔을 시전했다.

* * *

반 시진 뒤. 은빛이 짙은 허공의 땅 밖에 갑자기 화광이 번득이더니 한 사람이 허공에서 떨어졌다.

“공간의 장벽 같아서 을목선둔으로도 못 뚫고 지나갈 정도라니, 엄청난 공간의 힘이다!”

심협은 땅으로 내려서며 의아한 표정으로 주위를 둘러봤다.

말을 마친 그는 주먹을 들어 전방의 허공을 향해 강하게 뻗었다.

쾅!

굉음과 함께 전방에서 대량의 은빛이 잠시 흔들리더니 이내 원래대로 돌아왔다.

심협이 공간 영부를 꺼내 바라봤다. 영부가 안내하는 방향은 은빛이 짙은 곳의 깊은 공간이었다.

“다른 방법이 없으니 하는 수 없군.”

심협은 굳은 표정으로 공간 영부를 집어 놓고 축지척을 발동하려 했다. 한데 갑자기 뒤에서 몇 개의 기운이 빠르게 날아오는 게 느껴졌다.

곧장 경계하며 뒤를 돌아보니 네 개의 둔광이 날아와 멀리서 모습을 드러냈다. 바로 손오공과 세 명의 보살이었다.

그들도 심협을 발견하고는 잠깐 멈칫했다가 곧장 다가왔다.

“심협!”

손오공이 심협을 알아보고는 큰 소리로 불렀다.

“대성!”

심협 또한 반가워하며 바로 포권했다.

“여기서 뭐 하고 있는 거냐?”

손오공이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물었다.

“동해에 벗을 만나러 왔다가 어찌어찌하여 여기까지 오게 됐습니다.”

심협은 재빨리 그의 뒤에 선 보살들을 보고는 웃으며 답했다.

그의 말은 너무나 모호했고 또 대충 얼버무리려는 뜻이 다분하였으니, 손오공마저 살짝 눈살을 찌푸렸다.

허나 심협은 상대를 기만하려는 게 아니었다. 수백 년 뒤에 일어나는 천지대겁에서 영산 불국을 배신한 보살 나한이 적지 않으니 조심한 것뿐이다. 비록 상황이 그때와는 많이 다르지만, 그래도 신중하게 대응해야 했다.

“우연히 왔다고? 심 도우는 한가해서 이런 곳까지 놀러 다니나 봅니다?”

문수보살은 심협이 마음에 들지 않았는지 죄인 취급하듯 추궁했다.

“주인이 있는 곳도 아닌데 놀러 오면 안 될 이유가 있소? 말씀하신 분도 여기 오지 않았소?”

심협의 다소 날 선 대답에 문수 보살은 말문이 막혔다. 표정에는 변화가 없었지만, 눈에는 노기(怒氣)가 감돌았다.

“같은 도를 쫓는 사람들끼리 어찌 이런 사소한 일로 싸운단 말이오?”

손오공은 문수 보살이 밀리는 모습에 웃음이 나왔지만, 애써 참으며 원만하게 수습하려 했다.

“아미타불. 심 도우는 정도를 가는 자이니 망언은 아니 되오.”

보현 보살이 조용히 불호를 읊으며 문수를 향해 말했다.

문수 보살은 손오공에 보현 보살까지 그리 말하자 가타부타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내가 남에게 미움을 살 상은 아니라 믿었는데…….’

심협은 무수 보살의 태도에 의문이 들었다.

“심협, 아마도 보물을 찾으러 온 것이겠지? 너도 동해지연에 요, 마들이 모인 것을 알고 있을 테니 동행하는 게 어떤가?”

손오공의 제안에 심협의 표정이 조금 변했고, 두 보살은 서로를 바라봤다.

소백룡은 손오공과 심협을 바라봤을 뿐, 아무 말도 없었다.

“투승전불, 우리가 지금 무슨 일로 왔는지 잊은 것은 아니겠지요? 어찌 외부인과 동행하려는 게요”

문수 보살이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

“그 일은, 노손도 잊지 않았소. 다만 지금은 정세가 복잡할뿐더러 마족 외에 흑오공(黑悟空)과 요조까지 왔소. 저들이 연합한다면 우리 넷만으로는 대적할 수 없단 말이오.”

“뭐라? 흑오공까지 왔다니, 확실한 겁니까?”

보현 보살이 놀라 주위를 두리번거리며 물었다.

문수 보살과 소백룡도 마찬가지로 의아해했다.

“흑오공?”

심협의 눈이 반짝거렸다. 아마도 원조를 말하는 듯했다.

“심 도우에게서 그들의 기운이 느껴집니다. 심협, 이전에 누군가와 싸운 적이 있지?”

손오공이 심협을 돌아보며 말했다.

“얼마 전에 청구 일족의 호족과 발천난봉을 사용하는 검은 원숭이 요괴와 싸운 적이 있습니다. 한데 그 검은 원숭이 요괴는 자신을 원조라 했습니다.”

심협이 사실대로 말하자 문수 보살 등은 조용히 생각에 잠겼다.

“원조? 흥! 뻔뻔한 놈. 그자가 흑오공이다.”

손오공이 차갑게 웃으며 말했다.

“흑오공이 대체 뭡니까? 이름만 봐서는 대성과 관련이 있어 보입니다만?”

“차차 설명해주지. 아무튼, 이런 적을 상대로 문수 보살께서 대적할 수 있다면 노손도 더는 심협과의 동행을 고집하지 않겠소.”

손오공이 문수 보살을 돌아보며 말을 맺었다.

“두 분 보살님들, 대사형의 말에 일리가 있습니다. 만약 우리가 그 요마들의 손에 쓰러진다면 목숨을 보장하지 못할뿐더러 그 물건도 요마의 수중에 넘어가게 됩니다. 심 도우는 대당 관부의 귀빈이고, 이전에 운몽택에서 함께 싸워봤는데 성품이 정직하오. 절대 악인이 아니니, 이 점은 두 분이 안심해도 될 겁니다.”

문수와 보현, 두 보살이 눈빛을 교환하고는 입을 닫았다.

“두 분 모두 이견이 없는 것 같군요. 심협, 어떤가?”

“대성께서 그리 말씀하시니 제가 어찌 거절하겠습니까?”

심협이 웃으며 답했다.

“좋아, 그렇다면 요마들에게 기선을 빼앗기면 안 되니까 서두릅시다.”

손오공이 재촉했고, 다섯 명은 계속해서 전진했다. 비록 손을 잡긴 했어도 문수와 보현 두 보살은 심협을 믿지 않는지 각자 움직였다.

심협 또한 이에 불만이 없었다. 손오공 등과 같이 움직이려니 오히려 어색했다.

그가 축지척을 발동하자 초록 빛이 빠르게 앞의 공간을 뚫고 들어갔다.

보현 보살은 금색 깃털 모양 법보를 꺼내 그들 몇 사람을 뒤덮었다. 소백룡의 말대로라면 저것은 서천 영산의 수호영수 금시대붕조(金翅大鵬鳥)의 깃털로 만든, 공간의 힘을 가르는 법보였다.

심협이 몰래 관찰해보니 금속성 영재를 융합하여 만든 공간 법보로, 품질이 상당히 괜찮았고, 속도도 축지척에 뒤처지지 않았다.

그들은 일각 정도를 전진하여 마침내 공간 장벽의 끝에 다다랐다.

그곳에 다다른 심협은 놀란 기색이 역력했다. 하늘을 뒤덮은 거대한 은색 소용돌이가 앞에 나타나 전방의 거의 모든 것을 뒤덮고 있었다. 그 앞에 선 심협 등은 마치 개미처럼 보잘것없어 보였다.

은색 소용돌이가 움직일 때마다 거대한 소리가 울려 퍼졌다. 소용돌이 깊은 곳은 칠흑처럼 어두워서 끝이 보이지 않았는데 마치 다른 세계로 통하는 통로 같았다.

심협은 체내의 공간 영부가 격렬하게 떨리는 것을 느끼고는 내심 기뻐했다. 이제 더는 확인해볼 필요도 없었다. 이 소용돌이가 바로 신마의 우물 입구였다.

“확실하군요. 여기가 맞습니다.”

보현 보살의 말에 문현 보살도 살며시 고개를 끄덕였다.

소백룡과 손오공의 눈에는 흥분한 기색이 역력했다.

“아직 아무도 오지 않은 모양이오. 서둘러 들어갑시다.”

문수 보살이 그렇게 말하고는 금빛으로 변하여 날아갔다.

그러나 심협은 주위를 둘러보며 섣불리 움직이지 않았다.

“이런 중요한 곳을 아무도 지키지 않고 있다는 게 수상하군. 잠시 살펴보고 들어가도 늦지 않소.”

손오공이 눈살을 찌푸리며 서둘러 손을 들어 만류하려 했다.

“이 입구는 영산에 천만 년을 있었습니다. 안의 상황이 어떤지 누구보다 잘 아는데 살펴보긴 뭘 살펴봅니까? 어서 가서 대업을 완성해야 합니다!”

문수 보살은 손오공을 무시하고 소용돌이 깊은 곳으로 날아가더니 곧 안으로 들어갔다. 다행히도 아무런 이상도 일어나지 않았다.

이를 본 심협은 속으로 기우였나 싶었다.

‘이 신마의 우물에는 정말 아무런 위험이 없는 걸까?’

그가 가진 공간 영부라면 이 입구를 거둘 수 있으니 이 천재일우의 기회를 놓칠 수 없었다. 또한, 서천 불문에 이대로 양보할 수도 없었기에 그도 날아가려 했다.

한데 그때였다.

쾅!

소용돌이 깊은 곳에서 굉음이 들려오더니 문수 보살이 피를 뿜으며 안에서 튕겨 나왔다.

“문수!”

보현 보살이 서둘러 날아가 그를 받았다.

문수 보살은 온몸의 뼈가 거의 다 부서져서 온전한 곳이 없었다.

보현 보살이 서둘러 법력을 그에게 주입하고 치료 술법을 시전했다. 금빛이 문수 보살의 몸을 뒤덮었고, 상처가 빠르게 회복되어 갔다.

상황을 파악하기도 전에 검은색 소용돌이에서 우르릉거리는 거대한 소리가 울려 퍼지더니, 거대한 검은 그림자가 안에서 천천히 떠올랐다. 그 안에서 검은 물체가 움직였는데, 매우 거대한 이수가 숨어 있는 것만 같았다.

“어떤 놈이 감히 노손 앞에서 수작질이냐!”

좀 전까지만 해도 조심하자던 손오공은 막상 위험이 닥쳐오자 두려워하는 기색 없이 가장 먼저 나서며 오른손으로 허공을 움켜쥐었다.

쒜엑!

하늘에서 날카로운 소리가 울려 퍼지더니 금색 곤봉, 여의금고봉이 그의 앞에 나타나 검은 그림자의 머리에 일격을 날렸다.

꽈르릉!

갑자기 마른하늘에 날벼락 떨어지는 소리가 울렸다!

만 장의 노을빛 아래 천 장 길이의 거대한 곤봉 허상이 하늘에서 내려와 번쩍이더니 하늘을 떠받드는 신병처럼 검은 그림자를 내리쳤다.

소백룡도 분홍색 술이 달린 은백색 용창을 꺼내 팔을 휘둘렀다. 그러자 성난 파도 같은 차가운 빛이 교룡처럼 검은 그림자를 향해 날아갔다.

심협도 소매를 휘둘러 명홍도의 도광을 크게 번쩍이며 검은 그림자를 베었다. 이 일격은 겉보기에는 느려 보여도 위력은 말이 필요 없을 정도였다. 한 줄기 커다란, 백여 장 길이의 초록색 도광이 하늘의 칼날처럼 갑자기 검은 그림자 상공에 나타나더니 아래로 베어갔다.

혼돈흑련이 명홍도 안의 일부 금빛 금제의 힘을 흡수한 이후로 명홍도의 위력은 점점 더 강해져 번천인을 뛰어넘을 기세였다.

검은 그림자 안에서 날카로운 소리가 들려오더니 백 장 길이의 거대한 뼈 날개가 번개처럼 튀어나와 곤봉 허상, 창의 허상 그리고 도광과 충돌했다.

쾅! 쾅! 쾅!

세 번의 굉음이 울렸고, 곤봉 허상과 창의 허상, 도광은 전부 부서졌다. 반면 거대한 뼈 날개는 조금도 손상되지 않았고, 매우 견고해 보였다.

“더 강하게, 다시!”

손오공은 기다란 얼굴에 흥분한 기색이 떠오르더니 곤봉을 미친 듯이 휘두르며 달려 나갔다.

순간, 거대한 산 같은 곤봉의 허상이 다시 검은 그림자의 몸을 휩쓸었다. 그 위력은 방금 그 일격을 압도할 정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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