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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몽주-1097화 (1,097/1,214)
  • 1097화. 허공을 감지하다

    “모든 만요맹 수사는 들어라! 이제 출발한다!”

    백천이 머뭇거리다가 외쳤다.

    그의 말에 청청과 유웅곤은 바로 일어났으나, 금천과 진선기 수사들은 조금 더 버티다가 일어났다. 남은 진선 수사들은 천지영기를 흡수하는 쾌감에 빠져 일어나길 거부했다.

    “맹주님, 조금만 더 흡수하게 해주시면 안 되겠습니까?”

    “맞습니다. 이런 천재일우의 기회를 놓칠 수는 없습니다. 저희 경지가 올라가면 만요맹에도 큰 도움이 될 것입니다.”

    이미 일어난 자들도 이 말에 동의한 듯 크게 고개를 주억거렸다.

    짜증이 치솟은 백천이 대꾸하기도 전에 자 선생이 갑자기 소매를 휘둘렀다. 늘어난 소매가 진선 수사 한 명의 머리를 감쌌다.

    “으악!”

    비명이 이어졌고, 자 선생이 소매를 위로 올리자 머리와 피로 물든 척추가 그대로 뽑혔다. 바닥에 남은 시체는 뒤로 천천히 쓰러졌다.

    갑작스러운 광경에 충격을 받은 만요맹 요족들은 감전이라도 된 것처럼 거의 동시에 벌떡 일어났다.

    자 선생은 말없이 손을 휘둘러 그 머리를 뒤로 휙 던졌고, 머리는 허공에서 폭발하여 가루가 되었다.

    피비린내 나는 무언의 경고는 의미하는 바가 매우 뚜렷했다. 모든 요물이 어두운 표정의 백천을 바라봤지만, 그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맹주님, 이제 출발해도 되겠지요?”

    자 선생이 몸을 약간 숙이며 백천에게 말했다.

    사실 이런 태도는 백천을 무시하는 것과 같았다.

    백천은 입가를 씰룩이더니 불쑥 입을 열었다.

    “잠깐. 그전에 한 가지 검증할게 있소.”

    백천의 말에 자 선생은 눈살을 찌푸리며 미심쩍은 눈빛으로 바라봤다.

    백천은 자 선생의 대답도 기다리지 않고 곤의 알로 다가가 손을 휘둘렀다. 그러자 몸에서 은빛이 번득이더니 손바닥만 한 은색 함이 떠올랐다. 그 위에는 화려한 무늬가 정교하게 장식되어 있었다.

    “공간 법보?”

    자 선생은 그 상자에서 느껴지는 법력 파동을 감지하고는 의외라는 듯이 말했다.

    백천이 손을 들어 법력을 은색 함에 주입하자 은색 덮개가 열렸고, 그 안에서 은색 광망이 흘러나와 집채만 한 곤의 알을 뒤덮었다.

    삽시간에 은빛이 곤의 알을 전부 뒤덮고는 상자 안으로 끌고 가려 했다.

    그러나 이 시도를 통해, 백천은 곤의 알이 허공에 떠 있는 것 같아 보여도 실상은 주위 공간과 수천만 개의 실로 연결되어 있음을 알게 됐다.

    “헛수고 마라. 우리는 지금 북명곤 배 안에 들어와 있는 것과 같다. 이 알들도 북명곤이 환골탈태할 때 파생된 물건이니 본체와 연결되어 있지. 한데 그딴 공간 법보로 북명곤을 흔들려 하다니, 생각이란 걸 할 줄 모르나?”

    노수의 조롱에 백천의 눈빛이 싸늘하게 변했다.

    “노수, 그 입 다물게! 맹주님, 안타깝지만 노수의 말이 맞으니 무리하지 마시지요.”

    그제야 안색이 좀 누그러진 백천이 고개를 끄덕였다.

    “출발한다.”

    백천의 명령에 만요맹의 요물들은 아쉬운 눈으로 곤의 알을 힐끗거리면서도 다시 은빛 공간 깊은 곳으로 나아갔다.

    * * *

    은색 공간의 또 다른 곳. 손오공 일행도 곤의 알을 찾아냈다.

    그가 몸을 가볍게 떨자 그의 털에 숨어 있던 원숭이 자손들이 일제히 내려와 본체로 변했다.

    “대왕님!”

    ”대왕님!”

    원숭이들이 일제히 예를 올렸다.

    “나는 보살들과 함께 다른 곳을 찾아볼 테니 너희는 이들을 데리고 여기서 곤의 알에 있는 천지영기를 흡수하거라.”

    “대왕님, 저희도 함께 가겠습니다.”

    손오공이 4건장에게 당부하자 마 원수가 나서며 말했다.

    “그럴 것 없다. 태을경 수사들과 전투가 발생하면 너희는 어차피 도움이 안 된다. 이번에 너희를 데려온 것도 기회를 봐서 너희의 실력을 높이기 위함이었다. 당장은 쓸모가 없더라도 내가 알려준 방법대로 전심을 다해 이 안의 천지영기를 흡수해라.”

    “존명!”

    네 명의 건장이 동시에 포권하며 답했다.

    “내가 전수해준 방법이라 해도 곧장 이 곤의 알에 있는 원기를 완전히 정화할 수는 없을 터. 역량껏 흡수해야 한다. 더는 흡수할 수 없겠다는 느낌이 들며 우선 멈추고 흡수한 것을 완전히 연화하여 모든 잡스러운 것을 제거한 후에 다시 흡수해라. 절대로 일시적인 공을 탐내서는 안 된다. 그랬다가는 단전이 터질 수도 있다.”

    손오공은 그래도 안심이 되지 않는지 다시 당부했다.

    “걱정하지 마십시오. 저희가 잘 지켜보겠습니다.”

    유 원수가 듬직한 목소리로 말했다.

    “알겠다. 그럼 맡기고 가마.”

    손오공은 말을 마치고는 문수, 보현 두 보살과 소백룡과 함께 떠나갔다.

    네 사람은 전력으로 전진했다. 중간에 다른 곤의 알을 만나도 잠깐 살펴봤을 뿐, 계속해서 길을 재촉했다.

    * * *

    심협과 오홍도 전력으로 길을 재촉하고 있었다.

    “그렇게 많은 천지영기를 흡수한 기분이 어떠시오?”

    오홍이 웃으며 물었다.

    그는 심협의 기운이 많이 늘어난 것을 느꼈는데, 또 그의 몸에서 어떤 불편함도 없는 듯하자 안심했다.

    “어지러운 원기를 정화하는 비법을 알고 있던 덕이오. 덕분에 태을 때 부족했던 부분과 태을 중기로 돌파할 수 있는 저력을 얻게 됐지요.”

    심협은 숨기지 않고 솔직하게 말했다.

    “심형에게 워낙 불가사의한 일이 많이 일어나는 것을 봐왔기에 다행이오.”

    오홍이 웃으며 말했다.

    “정화하는 방법을 알려줄 수도, 정화한 천지영기를 다른 사람에게 나눠줄 방법이 없는 게 아쉬울 뿐입니다.”

    심협이 진심으로 아쉬움을 담아 말했다.

    “좋은 일이 어찌 우리에게만 일어나겠소? 심형한테만이라도 유용하다면 하늘이 내린 기연이라 할 수 있으니 아쉬워 마시오.”

    오홍이 고개를 저으며 웃었다.

    한데 그 순간, 심협이 갑자기 움찔하더니 멈췄다.

    “왜 그러시오?”

    오홍도 따라서 멈추며 물었다.

    “천지영기의 흐름이 느껴지는 게…… 저쪽에 뭔가 있는 듯하오.”

    심협이 다른 쪽을 가리키며 말했다.

    “그럼 가봅시다.”

    두 사람은 그쪽으로 날아갔고, 곧 앞의 것보다 더 큰 곤의 알을 발견했다. 집 두 채를 합친 크기였고, 안에 들어 있는 천지영기도 이전의 두 배였다.

    그들은 기뻐하며 곤의 알 부근으로 내려갔고, 심협은 손을 휘둘러 다시 벽해요어와 눈물 요괴 등을 소환했다. 이들은 아까 흡수한 천지영기를 이미 어느 정도 연화한 터라 눈앞에 또 새로운 곤의 알이 있는 것을 보고는 곧장 달려들었다.

    이번에는 조비극도 함께였다.

    모두가 배가 부를 정도로 흡수하고는 흡족해하며 소요경으로 들어가 다시 연화하기 시작했다.

    심협은 그제야 다시 가부좌를 틀고 혹돈흑련을 불러냈고, 이번에도 흑련의 도움으로 곤의 알에 있는 천지영기를 빠르게 정화하여 흡수했다.

    심협은 체내의 법력이 끊임없이 늘어가면서 조금씩 기묘한 기분이 느껴지기 시작했다. 눈을 뜨지 않아도 눈앞이 밝아지면서 마치 바깥의 은색 공간이 보이는 것 같은 느낌이었다.

    하지만 눈을 감고 보는 은색 공간에는 오홍은 보이지 않았다. 그 곤의 알도 보이지 않았고, 오직 자신과 은빛 세계만이 존재하는 듯했다. 동시에 주위 허공에 있는 천지영기의 흐름이 선명하게 느껴졌고, 자신과 주위 공간의 힘에 모종의 연결이 생겨나는 것도 느껴졌다.

    심협은 심념으로 혼돈흑련의 뿌리를 발동하여 천지영기가 흐르는 방향을 더욱 자세하게 감지하려 했다.

    이 감지는 이전과 달리 희미하지 않았고, 심지어 흑련의 뿌리가 허공을 뚫고 들어가 사방을 향해 퍼지면서 더 멀리까지 닿아 더욱 많은 천지영기를 살필 수 있었다. 느낌 또한 더욱 선명해졌고, 천지영기가 곳곳에 모여 거대한 원기 소용돌이를 이루는 것마저 보이는 듯했다.

    ‘이건…… 곤의 알!’

    심협은 머릿속에서 무언가 번득이며 바로 알아챘다.

    방금 발견한 다섯 개의 거대한 원기 소용돌이는 바로 다섯 개의 거대한 곤의 알이었다.

    ‘허공을 감지할 수 있다는 건 허공을 넘어서 흡수할 수 있다는 건가?’

    심협은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고, 순간 자신이 미쳤구나 싶었다. 하지만 그의 제어 아래 흑돈흑련의 뿌리는 갈라져 나온 다섯 개의 촉수처럼 계속 뻗어 나가 그 알을 찔렀다.

    아무런 이변 없이 다섯 개의 혼돈흑련의 뿌리는 가볍게 그 다섯 개의 원기 소용돌이를 뚫고 들어갔다.

    한순간, 이전보다 다섯 배는 강한 천지영기가 혼돈흑련의 뿌리를 타고 둑이 터진 강물처럼 심협의 몸으로 돌진해 왔다.

    “윽!”

    심협은 고통에 낮게 신음했지만, 곧이어 입을 다물고 이를 꽉 물은 채 전력을 다해 그 천지영기들을 흡수하여 연화하기 시작했다.

    옆에서 호법을 서고 있던 오홍은 심협의 몸에서 일어난 이상(異象)에 깜짝 놀라 눈이 휘둥그레졌다.

    서둘러 다가가 심협을 깨우려는데, 그의 몸 주위에 하얀색 광망이 일어나더니 온몸이 하얀 빛과 함께 투명하게 변하기 시작했다. 금색 피, 금색 뼈, 옥으로 만든 근육까지, 오홍의 눈앞에 낱낱이 드러났다.

    오홍은 앞으로 내밀던 손을 멈췄고, 완전히 넋이 나가버렸다.

    심협의 온몸 법맥이 번득였고, 단전께에서 화로처럼 눈부신 광망이 번쩍이는 것이 선명하게 보였다. 비록 혼돈흑련도, 흑련의 뿌리가 천지영기를 흡수하는 것도 볼 수 없었지만, 심협의 오른팔에서 똑같은 아득한 광망이 빛나고 있는 것만은 볼 수 있었다.

    이 광망에서 웅장하고 순수한 천지영기가 쉬지 않고 심협의 몸으로 흘러 들어갔고, 상상을 초월하는 속도로 단전에 모였다가 연화된 순수한 법력이 법맥 곳곳으로 흘러갔다.

    현재 심협은 마치 고속으로 움직이는 정밀한 언갑처럼 어떤 힘도 낭비하지 않고 모든 천지영기를 흡수해갔다.

    “이건…… 정말 보고도 믿을 수가 없군.”

    오홍은 말 그대로 넋이 나가 중얼거렸다.

    그는 심협에게 문제가 없음을 확인하고는 천천히 물러나 복잡한 심경으로 옆에 앉았다.

    시간은 점점 흘러 어느덧 세 시진이 지났다.

    “하!”

    갑자기 기합이 울려 퍼졌다.

    가부좌를 틀고 있던 심협의 온몸에서 금색 광망이 뿜어져 나오더니 법력 파동이 퍼져 나가 허공에 잔잔하지만 선명한 물결이 일어났다.

    심협은 천천히 두 눈을 뜨고 자리에서 일어나더니 법력을 운공하여 체내에 천천히 흐르도록 이끌었다. 바깥으로 뿜어져 나가던 법력 파동은 그제야 조금씩 진정됐고, 이내 완전히 잠잠해졌다.

    오홍이 가까이 다가오더니 이상한 표정으로 심협을 이리저리 살펴봤다.

    “오형, 왜 그러시오?”

    심협이 당황하며 물었다.

    “심형, 나한테만 사실대로 말해보시오. 혹시 남황 이종의 혈맥이오? 그게 아니라면 어떻게 혼잡스럽고 웅장한 이 천지영기를 그리 난폭하게 흡수할 수 있단 말이오?”

    “이종의 혈맥이라니, 무슨 말씀이오?”

    “잠깐 지켜보는 사이에 경지가 대폭 늘어나 벌써 태을 중기에 도달하더니, 거기서 멈추지 않고 경지까지 견고하게 다졌잖소. 보고도 믿어지지 않으니 어찌 이해하란 말이오?”

    “그게…….”

    심협이 막 설명하려는 순간, 소매에서 갑자기 광망이 번득였다.

    안색이 변한 그가 서둘러 손을 휘두르자 소매에서 영광이 날아와 그들 앞에 나타났다.

    오홍이 보니 이 영광은 특수한 재질의 부적으로, 허공에 떠오른 채 광망을 반짝였다.

    “이것은 원 국사님이 주신 공간 부적인데 이게 왜……?”

    혼잣말을 중얼거리던 심협은 갑자기 표정이 굳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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