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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몽주-1096화 (1,096/1,214)
  • 1096화. 영(零)으로 돌아가다

    만요맹 일행 역시 은색 공간에 들어섰으나, 이들이 허공에 나타나는 순간, 자 선생이 손목에 차고 있던 검은 구슬꿰미가 퍽 소리와 함께 아무런 징조도 없이 터졌다.

    자 선생은 표정이 어두워졌지만, 금세 평정을 되찾았다.

    “자 선생, 왜 그러시오?”

    백천이 의아한 듯 물었다.

    “별일 아닙니다.”

    자 선생은 좀 전의 전투에서 백천이 제대로 나서지 않은 것을 원망하고 있었기에 긴 설명 없이 넘어갔다.

    “이 공간은 영기가 충만하나 공간의 힘도 강하니 신식으로는 손오공과 심협의 위치를 감지할 수가 없군요. 이제 어디로 가면 좋습니까?”

    백천도 마찬가지로 불만이 많았지만, 감정을 억누르며 물었다.

    “아까 끝내지 못했으니 지금 찾아봐야 소용이 없습니다. 그들보다는 북명곤을 찾으러 가시죠.”

    “그럼 더 시간 낭비하지 말고 어서 가자고.”

    붉은 눈썹의 남자, 노수가 차갑게 웃으며 말했다.

    “가시죠.”

    자 선생의 차가운 목소리와 함께 일행도 방향을 골라 은색 공간 안쪽으로 빠르게 날아갔다.

    * * *

    심협과 오홍은 계속해서 북명곤의 흔적을 찾았지만, 아무것도 찾지 못했다. 북명거린도 지금은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

    “벽아는 뭔가 감지할 수도 있으니 아무래도 그 아이를 불러 보는 게 좋겠소.”

    “저도 마침 그렇게 생각했습니다.”

    심협이 고개를 끄덕이고는 벽해요어를 다시 불렀다.

    “주인님.”

    “미안한데 다시 한번 북명곤의 위치를 감지해줘.”

    “주인님, 미안하다는 말씀은 마세요. 벽아는 주인님께 도움이 될 수 있는 것만으로도 기쁘답니다.”

    벽해요어가 환하게 웃으며 말하더니 두 눈을 감고 감지하기 시작했다.

    잠시 후, 그녀가 어느 방향을 감지하고는 그쪽으로 날아갔다.

    벽해요어의 안내에 따라 은색 공간을 반 각 정도 날았지만, 여전히 북명곤의 흔적을 찾지 못하자 심협은 내심 의기소침해졌다.

    그때였다. 벽해요어가 갑자기 흥분한 목소리로 외쳤다.

    “주인님, 저기 앞에서 매우 짙은 본원의 기운이 느껴져요! 저쪽이요!”

    심협은 바로 벽아의 손을 잡고는 빠르게 날아가 바로 그 자리에서 사라졌다.

    잠시 후, 세 사람의 모습이 나타났다. 허나 그곳에 북명곤은 없었고, 거대한 하얀색 광구가 눈에 들어왔다.

    집채만 한 광구가 커졌다 줄어들기를 반복할 때마다 주위의 웅장한 천지영기도 광구의 호흡하는 듯한 움직임을 따라 끊임없이 빨려 들어왔다.

    대량의 천지영기를 흡입할수록 하얀색 광구는 조금씩 커졌다.

    “이게 북명곤인가?”

    심협과 오홍은 서로를 바라봤지만, 누구도 대답할 수 없었다.

    “본원 기운, 그것도 매우 짙은 본원 기운이…….”

    벽해요어는 감동에 겨워 곧장 그 하얀색 광구로 달려들었다.

    심협이 말리려 했으나, 벽해요어는 벌써 두 손으로 그 광구를 꼭 끌어안고, 입을 크게 벌려 한 입 베어 물었다.

    “벽아, 안 돼!”

    심협이 당황하며 외쳤다.

    “뭔지도 모르는데 아무거나 주워 먹으면 어쩌자는 거냐!”

    “아…….”

    심협이 그야말로 어린아이 꾸짖듯 한소리를 했지만, 벽아는 멋쩍은 듯 뒤통수를 긁적이면서도 이미 크게 베어 먹은 하얀색 광구를 마구 씹어댔다. 그리고 이내 꿀꺽 삼키자 하얀색 광구는 바로 짙은 영기가 되어 완전히 그녀의 법력으로 연화되었다.

    “이…… 이게…… 말이 되는 거요?”

    누군가 이렇게 물었지만, 넋이 나가버린 심협과 오홍은 둘 중 누가 말을 꺼낸 것인지도 알지 못했다.

    “맛있다! 진짜 맛있어요! 주인님도 어서 드세요!”

    벽아가 그렇게 외치고는 다시 크게 베어 먹기 시작했다.

    심협이 천천히 다가가 하얀색 광구를 만져보니 바로 응축되어 액체 같은 웅장한 원기가 되었다. 다만, 이 원기에는 매우 야생적인 요력이 가득했다.

    “기이하군. 정말 기이해. 이 빛에는 천지영기가 짙지만 순수하지 않아. 또 짙은 요기까지 들어 있어. 이토록 이상한 형태가 아니었다면 나도 특이한 요수의 정매라고 여겼을 거야.”

    오홍이 놀라 중얼거렸다.

    그때, 조룡의 신혼이 불쑥 말했다.

    “이상할 것 없다. 이게 바로 북명곤이다.”

    “이게 북명곤이라고요?”

    심협은 깜짝 놀랐다. 자신이 상상했던 북명곤과는 너무 다르지 않은가!

    “북명곤이 환골탈태를 한다는 것은 그저 허물을 바꾸는 것이 아니라 본체가 영(零)으로 돌아가 이렇게 많은 알의 형태로 바뀌는 것이라 들었다. 이 알들이 동시에 천지영기를 흡수하다가 마지막에 다시 본체로 돌아가 합쳐지면 그때 환골탈태가 성공했다고 할 수 있지.”

    “왜 그런 번거로운 짓을 하는 거지?”

    오홍이 눈살을 찌푸렸다.

    “그걸 알면서 왜 미리 말을 안 해주신 겁니까? 저는 북명곤 본체를 찾은 뒤 잠복하고 있다가 만요맹이 나타나면 적절한 기회를 봐서 그들의 계획을 무너트리고 타격을 입히려 했거늘……. 전부 물거품이 되지 않았습니까?”

    심협이 어이가 없다는 듯이 말했다.

    “네가 말해주지 않았는데 네 계획을 내가 어찌 안단 말이냐?”

    “지금 싸워봐야 무슨 의미가 있겠소? 북명곤의 본체가 이렇게 분열되었다면 만요맹도 곳곳에서 찾아낼 테니 어떻게 막을지나 생각해봅시다.”

    “만요맹에는 일곱 명의 태을 수사와 10여 명의 진선기 수사가 있다. 너희는 달랑 둘이니 맞붙어봐야 가망이 없다.”

    조룡의 혼이 탄식하듯 말했다.

    “아니면 손오공을 찾아보는 게 어떻소? 그들과 힘을 합친다면 문제없을 것 같은데…….”

    “좋은 생각입니다.”

    “그럼 지체하지 말고 바로 출발합시다.”

    “잠깐! 이것이 북명곤이라면 이렇게 두고 갈 수는 없습니다. 만요맹이 찾아내면 좋을 게 없소.”

    “심형, 설마……?”

    오홍은 심협의 눈빛을 보고는 그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짐작할 수 있었다.

    “선배님, 이 알도 연화할 수 있습니까?”

    “하려면 할 수야 있다. 허나 그 안의 천지영기는 북명곤이 주위의 것을 모두 흡수한 터라 매우 난잡할 뿐만 아니라 어떤 속성은 서로 상극일 수도 있다. 북명곤의 몸은 혼돈이라 수용할 수 있지만, 인간족은 어떠할지 모르겠구나.”

    조룡의 혼도 심협의 생각을 알아채고는 충고했다.

    그의 말이 끝나갈 무렵, 하얀색 광구에 달라붙어 있던 벽해요어가 갑자기 배를 붙잡고 바닥을 데굴데굴 구르기 시작했다.

    “아파! 배가 너무 아파!”

    심협은 깜짝 놀라 서둘러 벽아의 상태를 살폈고, 이내 안도했다.

    “큰 문제가 생긴 건 아니다. 천지영기를 한꺼번에 많이 흡수하고 연화하지 않아 몸에 뭉쳤구나. 전부 연화하고 나면 괜찮을 게다.”

    심협은 벽아를 소요경 공간으로 돌려보냈다.

    “봐라, 벽해요어는 북명곤과 혈맥이 같은데도 많이 흡수하면 저렇게 된다. 평범한 인간인 너는 말할 것도 없지. 아쉽지만, 두고 가는 수밖에 없다.”

    조룡의 혼이 충고했으나, 심협의 신경은 온통 한 군데로 쏠렸다.

    혼돈흑련이 저 알을 흡수할 수 있을 것인가!

    “무슨 생각을 그리 골똘히 하시오?”

    오홍이 궁금한 듯 물었다.

    “아닙니다. 오형, 잠시 시도해보고 싶은 게 있는데 호법을 좀 서주실 수 있겠소?”

    “물론이오.”

    오홍이 이유도 묻지 않고 흔쾌히 대답하자 심협은 가볍게 공수한 후 바로 하얀색 광구 앞으로 다가가 가부좌를 틀었다. 그리고 곧장 심념을 움직이자 팔에 잠복해 있던 혼돈흑련의 씨앗이 깨어나 약한 빛을 발하더니 뿌리가 그의 팔을 타고 다섯 손가락 끝에서 튀어나왔다.

    푹!

    가볍게 찌르는 소리와 함께 다섯 개의 검은색 뿌리가 하얀색 광구를 찌르자 본래 숨 쉬듯 박동하던 알이 갑자기 굳은 듯 움직임을 멈추었다.

    곧이어 안에 있던, 웅장하지만 난잡한 천지영기가 둑 터진 것처럼 다섯 개의 뿌리를 타고 미친 듯이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이 천지영기는 혼돈흑련의 정화 과정을 거쳐 더없이 순수한 상태가 되어 심협에게로 주입되었다.

    미리 대비를 하고 있었음에도 심협은 참지 못하고 두 눈을 번쩍 떴고, 입에서는 신음이 흘러나왔다.

    “심형, 괜찮은 거요?”

    오홍이 깜짝 놀라 물었다.

    현재 그는 체내로 주입되는 대량의 원기를 미친 듯이 연화하고 흡수하여 단전과 법맥으로 보내느라 정신이 없었기에 대답할 여유가 없었다.

    “정말로 신기하군.”

    조룡의 혼이 심협을 바라보며 놀란 듯 말했다.

    “곤의 알에 있는 천지영기를 흡수하는 것만 해도 놀라운데 이런 속도라니……. 과하지 않나?”

    오홍도 심상치 않은 상황에 놀라 맞장구를 쳤다.

    “이건 태을 수사의 속도가 아니다. 게다가 정화도 하지 않고 흡수하는데 몸이 받아들이다니, 신기한 일이야!”

    “어쨌든 나쁜 일은 아닌 것 같군. 어떤 기연을 얻은 거겠지.”

    오홍은 심협의 몸에 부정적인 조짐이 보이지 않자 안도했다.

    “함께 받을 생각은 없는 거냐?”

    조룡의 혼의 갑작스러운 질문에 오홍은 그저 웃으며 고개만 저을 뿐, 다른 설명은 하지 않았다.

    심협은 두 사람 못지않게 놀란 상태였다. 혼돈흑련을 통해 정화된 천지영기의 정수는 힘들여 연화하지 않아도 될 만큼 순수한 법력으로 바뀌었다. 그렇지 않았다면 심협은 정화된 천지영기를 흡수하느라 정신이 없었을 것이다.

    얼마나 지났을까? 심협은 이전보다 태을 경지가 견고해졌을 뿐만 아니라 경지도 크게 높아졌음이 느껴졌다. 이 알을 전부 흡수하면 어떤 변화가 일어날지 상상조차 되지 않았다.

    * * *

    은색 공간 어딘가. 만요맹 무리는 자 선생의 안내를 따라 한참을 나아간 끝에 마침내 집채만 한 곤의 알을 찾아냈다.

    “이 안의 천지영기도 엄청나군.”

    “이 방대한 천기 영기를 전부 흡수한다면 태을의 경지가 많이 늘어날 것 같은데?”

    금전의 말에 유웅곤이 맞장구 쳤다.

    “생각처럼 그렇게 쉽지는 않을 것이다. 이 곤의 알에 담긴 천지영기는 속성이 뒤죽박죽이고 음기와 마기까지 끼어 있으니 과하게 흡수했다가는 오히려 더 위험해질 것이다.”

    백천이 찬물을 끼얹고는 다른 요족 수사들을 돌아보며 말했다.

    “만요맹의 수사들은 이 곤의 알에 있는 천지영기를 흡수하며 몸을 보양하라. 단, 자신의 역량껏 흡수해야 한다. 욕심을 부리다가는 몸이 터져 죽게 될 것이다.”

    “맹주님의 은혜에 감사드립니다!”

    요괴들은 크게 기뻐하며 일제히 달려 나가 가부좌를 틀었고, 곤의 알에 손을 얹고는 천지영기를 흡수하기 시작했다. 누구도 심협에게 끌려간 용아에 대해서는 신경 쓰지 않았다.

    유웅곤과 금전도 흡수에 동참했다.

    본래 집채만 했던 광구는 새끼에게 젖을 물리는 젖소처럼 모든 요족 수사들에게 흡수되자 금방 조각이 나버렸다.

    자 선생과 마족들은 옆에서 지켜보기만 할 뿐이었다.

    얼마나 흘렀을까.

    만요맹 요족 사이에서 비명이 들려오더니 진선 초기 요괴가 배를 쥐고 온몸에서 식은땀을 흘리며 바닥을 뒹굴기 시작했다. 단전 안에서 뒤섞인 천지영기가 날카로운 칼처럼 체내를 마구 찌르는 것 같았고, 단전 내벽을 사방으로 긁어대 죽을 만큼 고통스러웠다.

    다른 요물들은 대부분이 진선 후기 수사라 고통스러운 기색이 역력한 와중에도 좀처럼 만나기 힘든 기연이기에 이를 악물고 버텨냈다.

    네 명의 마족들은 이 광경을 보고는 짜증을 내며 비아냥거렸다.

    “아직 할 일이 산더미인데 이깟 것 때문에 언제까지 시간을 낭비해야 하는 거야?”

    노수가 눈살을 찌푸리며 자 선생에게 물었다.

    이 말에 자 선생은 눈살을 찌푸리더니 조용히 백천에게 다가갔다.

    “맹주님, 우리 목적은 이 정도 이익이 아니지 않습니까? 눈앞의 이익 때문에 큰일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이런 곤의 알로는 맹주님을 완벽하게 탈바꿈할 수 없습니다.”

    백천은 그 말을 듣고는 자 선생을 힐끗 쳐다봤다. 그는 이미 이 마족 수사를 불신하고 있었다.

    “이 알의 상태는 맹주님이 제일 잘 아시지 않습니까. 함부로 흡수했다가는 후환이 클 겁니다. 여기서 대업을 멈출 생각입니까?”

    자 선생이 다시 한번 권했다.

    “여기 남고 싶어 하는 것 같으니 놔두고 우리끼리 가자고.”

    노수가 재촉했다.

    “노수 도우, 그런 말은 삼가게. 우리는 같은 목표를 가진 동료이니 같이 움직여야지.”

    무량분을 받치고 있는 마가가 웃으며 말했고, 토혼축도 그 말에 동의하는 듯 고개를 끄덕였지만, 별다른 말은 없었다.

    백천은 네 마족의 시선이 모두 자기에게 집중되자 은연중에 불안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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