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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몽주-1095화 (1,095/1,214)
  • 1095화. 못 믿겠는데

    조룡의 혼이 계속해서 말했다.

    “하나같이 다 까다로운 상대들이군요.”

    심협이 눈살을 찌푸리며 한숨을 내쉬었다.

    “말이 나왔으니 말인데, 보통은 수사가 태을에 들어서면 법칙의 힘을 조금씩 느낄 수 있게 된다. 너도 지금쯤이면 자신의 법칙의 힘을 감지하고 수련하기 시작했어야 하지.”

    조룡의 혼의 말에 심협은 속으로 쓰게 웃었다.

    이전에 꿈속 세계를 넘나들 때는 삼계의 멸망이 코앞이었고, 그의 경지는 끊임없이 폭증했다. 줄곧 강력한 자질과 기연에만 의지했지 마음을 비우고 깨달은 적은 많지 않았고, 심지어 법칙의 힘 방면의 깨달음은 현세에 반영되지 않을 정도였다.

    “잘 모르겠는데, 법칙의 힘은 어떻게 깨닫는 겁니까?”

    “법칙을 깨닫는 것은…… 마음으로 깨닫는 것이지 말로 전할 수 있는 게 아니다. 이 정도 경지에 오르면 경험은 아무런 의미가 없기 때문이다. 네가 할 수 있는 것은 스스로 천지의 도와 아득한 속에 있는 수천만 개의 대도 중 자신과 연결된 한 가닥 법칙의 힘을 찾는 것뿐이다.”

    이 말을 듣고 난 심협은 뭔가 깨달은 것처럼 고개를 끄덕였다.

    “뭔가 알 것 같기도 하고…….”

    “운이 좋은 사람은 태을 경지에 들어선 이후에 천지 허공에서 자신과 관련된 법칙의 힘을 깨닫기도 하지. 이걸 대도상친(大道相親)이라 한다. 예를 들어, 우리 용족은 수속성 법칙의 힘을 쉽게 감지하는 편이지. 가끔은 태을 경지에 들어서기도 전에 깨달음을 얻는 자도 적지 않다.”

    “요족은 천부적 자질이 뛰어나고 대부분이 혈맥의 힘을 이어받지만, 인간은 수도(修道)가 다양하고 모두가 다를뿐더러, 속성은 금목수화토 오행의 변화로 인해 각양각색이니, 대도상친을 느끼는 게 어렵지 않을까요?”

    “그렇긴 하다만, 요행을 부릴 수 없는 것도 아니다. 연단하는 자가 자신의 법칙의 힘을 넣거나 천지 법칙을 부여하여 선기 자체에 법칙의 힘이 생기는 경우가 허다하다. 무량분이 좋은 예가 되겠지. 그러니 너도 모종의 선기에 있는 법칙의 힘 속성을 통해 네 법칙의 힘을 찾아보는 것도 괜찮을 게다.”

    “그런 방법도 있군요. 감사합니다.”

    조룡의 혼의 설명에 가닥이 잡힌 심협은 깍듯이 포권했다.

    “뭘 이 정도로…….”

    심협은 다른 사람들이 아직 수련 중인 것을 보며 잠시 생각한 끝에 손을 휘둘러 산하사직도를 앞에 펼쳤다.

    “손님이 있다는 걸 잊을 뻔했군.”

    심협이 웃으며 말했다.

    조룡의 혼은 산하사직도를 보는 순간, 신혼이 약하게 흔들렸다. 심협에게 이러한 보물이 있을 것이라고는 생각지도 못한 것이다.

    “저건 심형 것이니 괜한 생각은 하지 않는 게 좋을 거다.”

    그가 은밀한 생각을 하자마자 오홍의 목소리가 의식에 울려 퍼졌다.

    “흥! 내가 무슨 생각을 했다는 것이냐? 후손에게 기생하는 신혼 주제에…… 그리고, 네놈은 선조에 대한 예의 같은 건 없는 거냐?”

    조룡의 혼은 화가 나 괜히 질책했지만, 오홍은 받아줄 마음이 조금도 없었는지 대꾸조차 하지 않았다.

    심협은 산하사직도로 들어가 곧장 어느 초가집으로 향했다.

    초가집 문 앞에는 두 사람이 팔을 벌려야만 감쌀 수 있을 정도로 큰 복숭아나무가 서 있었고, 거친 나무껍질 사이로 삐뚤어진 얼굴 절반이 드러나 있었다.

    “용아 도우, 지낼 만하시오?”

    심협이 웃으며 다가와 물었다.

    용아의 몸은 복숭아나무 껍질에 박힌 채 얼굴 절반만 밖으로 드러나 있었는데, 강력한 힘에 속박되어 빠져나오지 못하고 있었다.

    “심협, 뭘 하려는 것이냐!”

    용아가 험상궂은 얼굴로 외쳤다.

    “별건 아니고, 뭐 좀 물어보고 싶은 게 있어서 말이야.”

    “뭐냐?”

    용아가 경계하며 물었다.

    “번거롭게 설명할 필요 없어.”

    심협은 고개를 저으며 그렇게 말하고는 용아의 미간을 향해 손을 들었다. 직접 신혼을 살펴볼 생각이었다.

    용아는 발악했지만, 옴짝달싹할 수 없었기에 심협의 두 손가락이 자신의 미간으로 다가오는 것을 지켜봐야만 했다.

    다음 순간, 강력한 신념이 신식 장벽을 뚫고 그의 식해로 들어갔다.

    용아는 잠깐 움찔했으나, 이내 입꼬리가 올라가면서 음흉한 미소가 떠올랐다.

    용아의 식해는 오염되고 검은 안개로 자욱했고, 그 안으로 파고든 심협의 신념은 마치 깊은 늪에 빠진 것 같았다.

    그때, 검은 안개 깊은 곳에서 갑자기 두 줄기 형광이 반짝거렸다.

    심협이 자세히 보니 용아의 신혼 본체였다.

    다만, 어째서인지 이 신혼 본체는 집채만 한 크기에 칠흑같이 어두워서 정상적인 신혼이라면 응당 갖추어야 할 영기가 전혀 없었다.

    “심협, 분수도 모르고 감히 내 땅에 발을 들이다니!”

    노인의 목소리가 그 칠흑 같은 신혼에서 울려 퍼졌다.

    “이런!”

    심협은 서둘러 신념을 거두려 했다.

    “늦었다.”

    천둥 같은 호통과 함께 검은색 신혼의 두 눈에서 두 줄기 혈광이 뿜어져 나와 순식간에 심협의 신념을 가격했다.

    심협은 황급히 신념을 거뒀지만, 그의 식해는 순식간에 혈홍색으로 물들었다.

    “이제 네 신혼도 내 것이다. 하하하!”

    노인의 목소리가 심협의 식해 안에서도 울려 퍼졌다.

    말이 끝나기 무섭게 검은 안개가 심협의 식해에 퍼지더니 중앙의 신혼 소인을 무서운 기세로 압박해왔다.

    심협은 그의 말에 대꾸하지 않고 부주진신법을 시전했다. 그러자 우뚝 솟은 거대한 부주산이 나타났고, 강력한 신혼의 힘이 곧바로 사방을 제압하여 모든 검은 안개를 쫓아냈다.

    “어떻게 이런……?”

    깜짝 놀란 목소리가 끝나기도 전에 전부 사라져 버렸고, 심협이 천천히 눈을 떴다.

    “방금 그건 무슨 신혼 비술이냐? 어떻게 날 막은 거지?”

    나무껍질 안의 용아가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물었다.

    심협은 대답하지 않고 이상하다는 표정으로 되물었다.

    “넌 누구지? 심마인가? 용아의 신식을 완전히 빼앗은 것이더냐?”

    용아도 심협이 단번에 자신을 알아챌 줄 몰랐는지 일순 당황했다.

    “더는 숨길 필요가 없겠군. 그렇다. 용아의 신식은 내가 점령했다. 그러니 더는 섭혼할 생각은 하지 않는 게 좋을 거다. 내가 정말 네 신혼 비술을 뚫지 못할 것 같으냐? 못 믿겠으면 한 번 더 해보거라.”

    용아가 차갑게 비웃었지만, 심협은 섣불리 움직이지 않았다. 지금은 모험을 할 때가 아니었다.

    한데 잠시 생각에 잠겼던 그의 얼굴에 갑자기 미소가 번지더니 휙 돌아서 산하사직도를 나갔다.

    그리고 잠시 후, 다시 그의 앞에 나타난 심협 뒤로 누군가가 따라왔다.

    “뭘 하려는 거냐? 난 심마다! 내게 신혼을 빼앗기는 게 두렵지도 않더냐?”

    용아는 뭔가 심상치 않자 험상궂은 표정으로 소리쳤다.

    “알아, 알아. 너는 심마겠지. 그러니까 내가 오지 않았느냐?”

    화령자가 짜증 내며 말했다.

    “그 방법이 정말 통할까?”

    심협이 옆에서 물었다.

    “내가 그동안 할 일 없이 서혼대진을 연구한 줄 아느냐? 걱정하지 마라. 효과는 확실하다. 이 서혼대진을 순방향으로 운공하면 신혼 본원을 연화하지만, 역방향으로 운공하면 신혼의 기억을 떼어내 이 수운경(水雲鏡)에 비추게 되어 있다.”

    “좋아, 그럼 부탁해.”

    심협이 웃으며 말하자 화령자는 손을 휙휙 내젓고는 그 복숭아나무 주위에 법진을 설치하기 시작했다.

    용아 안의 심마는 처음에는 담담했지만, 화령자가 설치하는 복잡한 법진을 보며 점점 초조해져 갔다.

    “어이, 심가야. 물어보고 싶은 게 있으면 물어봐라. 내 다 말해주마.”

    그러나 심협은 단호하게 고개를 저었다.

    “못 믿겠는데? 넌 심마잖아.”

    “으윽!”

    용아 심마는 말문이 막혔다. 현재 자신은 심마의 분신에 불과했기에 이 법진을 막을 능력이 전혀 없었다.

    “됐다.”

    마지막 부문을 그려넣은 뒤 화령자는 손을 털면서 외쳤다.

    심협은 그의 분부에 따라 전신편을 꺼내서 법진 가장자리로 다가갔다.

    “이제 전신편을 발동하여 서혼대진을 역방향으로 운공해라.”

    화령자의 말에 심협은 고개를 끄덕이고는 법력을 전신편에 주입했다. 잠시 후, 광망이 번득이기 시작하자 바로 땅의 법진을 향해 채찍을 내밀었다.

    휙!

    바람 소리와 함께 한 겹의 광망이 전신편에 퍼지면서 법진 전체에 빛을 밝혔다.

    법진에서 회오리 같은 광망이 일어나더니 순식간에 복숭아나무 안의 용아를 감싸 허공으로 들어 올렸고, 하얀 빛의 실이 법진에서 올라와 머리의 모든 혈과 태양혈을 찔렀다.

    용아는 순간 몸이 굳어지더니 허공에서 경련했다.

    곧이어 한 가닥의 두꺼운 하얀색 빛줄기가 뱀처럼 머리를 내밀더니 휙 하며 그의 미간으로 뚫고 들어갔다.

    “크아아!”

    용아의 몸이 강렬하게 흔들리더니 금방 경련을 멈췄고, 눈이 뒤집히면서 흰자가 드러났다.

    화령자가 다가가 법진을 향해 손을 휘두르자 수증기가 피어올라 허공에 뭉쳐지면서 거울로 변했다.

    수운경 위로 어떤 장면들이 떠오르기 시작했고, 심협은 눈을 가늘게 뜨고 이를 자세히 살폈다.

    시간이 흐르면서 용아의 기억 파편이 주마등처럼 하나둘 수운경 위로 떠올랐다.

    하지만 차 한 잔 마실 정도의 시간이 지나자 용아의 몸이 서혼대진의 통제에서 벗어나려는 것처럼 다시 경련을 일으키며 강렬하게 떨려왔다.

    이쯤 되자 수운경의 화면도 함께 크게 흔들려서 자세히 볼 수가 없었다.

    “안정시킬 방법이 없을까?”

    심협의 물음에 화령자가 다가가 살펴보려는 순간, 갑자기 펑 하더니 용아의 머리가 잘 익은 수박처럼 그대로 터졌고, 수운경의 화면도 갑자기 멈추면서 사라졌다.

    “어떻게 된 거야?”

    “보면 모르겠나. 용아의 신혼이 버티지 못하고 터져버렸다.”

    화령자가 기운이 빠진 것처럼 말했다.

    심협은 혀를 찼지만, 잠깐의 탐색으로 제법 많은 기억을 살필 수 있었다. 그중에는 용아의 경험도 있었지만, 심마 대법에 관한 내용도 적지 않았다.

    “아쉽게도 심마 대법의 내용은 전부 어떻게 남의 심마를 끌어내가 하는 것이었을 뿐, 자신의 심마를 다스리는 방법은 없었어.”

    심협은 아쉽다는 듯 또다시 혀를 찼다.

    “용아의 신혼에 심마를 다스리는 방법이 있었으면 심마에게 조종을 당하지 않았겠지.”

    화령자가 서혼대진을 살펴보면서 말했다.

    “이 심마는 용아에게서 생겨난 게 아니라 심마의 분신이 그의 신혼을 빼앗고 조종하는 것 같았어.”

    “그렇다. 그리고 그를 조종했던 자는 멀지 않은 곳에 있을 거다.”

    “어째서 그렇게 생각하지?”

    “심마는 워낙 헤아리기 어렵고 또 교활해서, 분화한 심마 분신은 본신에서 거리가 멀어지고 떨어져 있는 시간이 길어지면 통제를 벗어나 자립할 수 있게 된다. 그래서 심마의 본체는 심마 분신에게서 멀리 떨어질 수가 없지.”

    “그렇다면 심마 본체는 용아와 가장 가까운 사람일 테니 아마도 청청이겠군.”

    “그럴 가능성이 크지만, 자 선생이라는 자일 수도 있다.”

    “맞아. 어느 쪽이든 그들을 붙잡아서 알아내는 수밖에 없겠어. 그들에게서 심마 대법에 대해 더 많이 알아낼 수 있을 거야.”

    심협과 화령자는 이 추측에 고개를 끄덕였다.

    심협은 용아의 잔해를 수습하고는 화령자를 데리고 산하사직도에서 나갔다.

    “어떠냐? 뭐 좀 알아냈느냐?”

    조룡의 혼이 보자마자 물었다.

    “특별한 건 없었지만, 확실한 건 요족들도 북명곤을 노리고 있으니 서둘러야 한다는 것입니다. 절대 그들에게 빼앗길 수는 없습니다.”

    그는 눈물 요괴 등을 깨워서 다시 소요경에 들어가게 하고는 오홍과 함께 은색 공간 안쪽으로 서둘러 날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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