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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몽주-1092화 (1,092/1,214)
  • 1092화. 그림자 공간

    깊숙한 곳으로 들어갈수록 공간 통로 안의 공간 균열은 많아졌고, 통로의 공간이 접혀 있는 현상이 나타나 실제 거리는 보는 것보다 훨씬 멀었다.

    심협은 가는 동안 일부러, 최대한 자연스럽게 몇 개의 통로 균열에 부딪혔고, 이내 그는 온몸이 상처투성이가 되어 피로 물들었다.

    실제로 이 정도 상처는 그에게 대수롭지 않았기에 보기에만 흉측할 뿐이었다.

    그가 안내하고 있다고는 해도 모든 요괴가 순탄하게 따라온 것은 아니었다. 심협도 수많은 공간 균열을 피하기가 쉽지 않을 정도였으니, 어지간한 요괴는 따라오는 것도 벅찬 게 당연했다.

    대요 한 마리가 실수로 눈에 잘 띄지 않는 균열을 밟았다가 발이 잘렸고, 다른 한 마리는 똑바로 서지 못해서 더 큰 균열에 빠져 허리가 잘렸다.

    가장 비참했던 것은 상반신이 균열에 흡수된 요괴였다. 다른 요괴들이 그를 구하려고 했지만, 늦고 말았다.

    이 외에도 몇 명이나 갑자기 늘어난 균열에 휩쓸렸고, 크고 작게 다쳤다. 그래도 더는 목숨을 잃는 자는 없었다.

    좌충우돌하며 나아간 끝에 이들은 마침내 공간 통로 끝에 도착했다.

    심협은 눈이 휘둥그레져서 멍하니 그 자리에 멈춰 섰다.

    하얀색 소용돌이 밖은 혼란스러운 공간의 힘이 뿜어져 나오고 있었는데, 그것은 바로 빼곡하게 교차하는 수백 개의 공간 균열이었다. 우회해서 갈 방법이 전혀 없어 보였다.

    “맹주님. 이, 이건…… 사로(死路)입니다.”

    온몸이 상처로 뒤덮인 심협이 울상을 지으며 말했다.

    자 선생도 서둘러 올라와 살폈다.

    “이곳의 천지영기가 공간의 균열로 흐트러졌군요. 평범한 둔술로 들어갔다가는 죽음을 면치 못할 것입니다.”

    잠시 후, 그가 백천에게 말했다.

    심협은 빠르게 머리를 굴렸다.

    ‘축지척 같은 공간 법보로도 지나갈 수 없을까?’

    그런 의문이 들었으나, 시도해볼 생각이 들지 않았다. 이들 앞에서 축지척을 사용하면 정체가 탄로날 것이고, 안전하게 통과할 자신도 없었다.

    그때, 그는 깜짝 놀랐다.

    ‘먼저 들어갔던 그 원숭이 요괴는?’

    이런 공간 균열이 있으니 그 요괴가 통과했을 가능성은 사실상 없다. 이미 공간 균열에 삼켜진 것인지도 모른다.

    “그럼 어쩌란 말이오? 물러났다가 새로운 길을 찾아야 한다는 것이오?”

    “돌아가기에는 너무 늦었으니 내가 공간 법진으로 모두를 저 출구 너머 고치 안으로 보내보겠습니다.”

    자 선생이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자 선생, 그런 방법이 있으면서 왜 진즉 쓰지 않았습니까?”

    금전이 불만을 토로했다.

    “내가 설치할 공간 법보는 위능에 한계가 있어 공간 통로 안에 담긴 공간의 힘을 이용해야만 발동할 수 있소. 바깥이었다면 기껏해야 입구를 지나 통로로 보내는 데 그쳤을 게요. 허나 지금은 마지막 장벽만이 앞을 가로막고 있으니 여기서라면 모두를 고치 안으로 보낼 수 있을 겁니다.”

    “그런 거였군요.”

    “그럼 부탁드립니다.”

    백천이 마침내 웃으며 말했다.

    자 선생도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으나, 이내 표정이 싸늘하게 변했다.

    “그전에, 우선 첩자를 제거해야 합니다.”

    모두가 그 말에 깜짝 놀랐다. 오직 백천만이 예상했다는 듯 덤덤했다.

    ‘이런, 들킨 건가……?’

    심협은 경계심을 끌어올리며 소매에서 검결을 맺었고, 몸의 법력도 몰래 운공했다.

    거의 동시에 자 선생이 칠흑 같은 손 위로 검은색 안개를 피워올리며 심협 쪽으로 손을 뻗었다.

    심협은 움찔했으나, 이 손이 자신을 향해 오는 것이 아님을 알아챘다. 목표는 그가 아니었고, 자 선생의 살기도 그를 속박하지 않았다.

    그러나 심협은 기겁한 표정으로 머리를 감싸며 주저앉았다.

    자 선생의 허상이 옆을 스쳐 지나갔고, 칼날 같은 손은 심협의 머리를 스쳐 지나 그의 뒤에 있는 검은색 균열을 찔러 들어갔다.

    다음 순간, 균열에서 검은 빛이 번득이더니 갑자기 커졌다. 뒤이어 원숭이 허상으로 변했는데, 가장 먼저 통로로 들어갔던 그 원숭이 요괴였다.

    ‘저자가 첩자?’

    심협은 신식으로 다시 원숭이 요괴를 살핀 후에야 고개를 끄덕였다.

    자 선생의 손칼은 원숭이 요괴의 한 손에 단단히 붙들려 있었다. 한데 갑자기 그 손을 감싸고 있던 검은색 안개가 폭발하더니 원숭이 요괴의 팔을 타고 올라 휘감기 시작했다.

    검은색 안개에 휩싸인 원숭이 요괴의 팔은 빠르게 부식되어 재가 되었고, 눈 깜짝할 사이에 새하얀 뼈가 드러났다.

    하지만 원숭이 요괴는 여전히 장난스레 웃었을 뿐, 고통스러워하는 기색은 전혀 없었다.

    “하하, 날 알아채다니, 제법이구나.”

    곧이어 원숭이 요괴의 두 눈에서 금빛이 번득이더니 모습이 다시 변했는데, 바로 황금 갑옷을 걸치고 겉에 가사를 입은 금색 털 원숭이였다.

    “손오공!”

    자 선생은 경악한 듯 외쳤고, 공간 통로가 부서지든 말든 신경 쓰지 않고 온몸에서 갑자기 기운을 폭발시켰다. 몸 주위에 마기가 솟구치더니 두 손가락에 끼고 있던 매미 날개처럼 얇고 반투명한 칼날이 금색 털 원숭이의 얼굴을 향해 날아갔다.

    본체로 돌아온 손오공의 가사에서 뿜어져 나온 금망이 빛의 벽으로 변하여 자 선생의 공격을 튕겨냈다.

    자 선생이 들고 있던 반투명한 칼날은 가볍게 그 빛의 벽을 찢고는 그 사이에서 뿜어져 나오는 예망으로 계속해서 손오공을 베어 갔다.

    손오공이 씩 웃더니 금빛과 함께 여의금고봉을 꺼내고는 발로 봉을 찼다. 곤봉이 높게 솟아오르면서 금빛을 강하게 뿜어냈고, 길이도 단숨에 몇 장으로 늘어나 곧장 자 선생을 찔러 갔다.

    “저자가 북명곤을 노리고 있다! 어서 막아!”

    자 선생의 외침에 백천이 들고 있던 은색 지팡이를 높게 들었고, 그는 순식간에 사라졌다가 손오공 앞에 나타났다. 그는 지팡이를 칼처럼 잡고는 손오공을 힘껏 찔렀다.

    금전과 유웅곤도 곧장 뒤를 따랐고, 세 명이 손오공을 협공했다.

    심협은 이 상황을 보고는 기회를 엿보다가 그들의 공격 범위에서 빠져나왔다.

    진선기 요괴들은 손오공과 세 맹주가 교전을 벌이자 누구도 감히 접근하지 못했다. 이건 그들이 끼어들기는커녕 휩쓸렸다가는 목숨도 보전할 수 없는 싸움이었다.

    “흥! 원숭이처럼 멍청…… 지나가는 개보다 못한 것들이 힘만 세구나!”

    막 조롱하려던 손오공은 뭔가 이상함을 느끼고는 말을 바꿨다.

    백천은 아랑곳하지 않고 공격에 더욱 박차를 가했다.

    금전과 유웅곤도 방심하지 않고 목숨을 걸고 손오공에게 달려들었다.

    손오공이 양손으로 곤봉을 잡고는 발천난봉을 시전하자 곤봉의 허상이 겹겹이 나타나 하늘을 가렸다.

    분명히 똑같은 초식이지만 심협과는 현저한 차이가 있었다. 심협의 발천난봉은 더 무겁고 자연스러우며 물 샐 틈조차 없어서 사실 방어 기세가 때로는 공격 기세보다 더 강했다. 반면 손오공이 시전한 발천난봉은 매우 강렬하고 마치 하늘 위의 태양처럼 모든 것을 태울 기세였다.

    백천을 포함한 세 명의 태을 수사가 협공해도 우위를 점할 수 없었다.

    반대로 손오공은 공격이 이어질수록 더 강렬해졌고, 금색 곤봉 허상은 휘두를수록 더 빨라져 마지막에는 그의 모습의 거의 보이지 않을 정도였다.

    이때, 백천의 은색 지팡이가 펑 하며 터지더니 만 개의 은빛 검기가 뿜어져 나오면서 섬뜩하고 날카로운 기운이 순식간에 폭발했다.

    검광과 곤봉 허상이 매우 빠른 속도로 교차했고, 수많은 곤봉의 허상이 검광에 잘려나갔다.

    유웅곤의 오래된 칠흑 도끼가 부서진 곤봉 허상의 빈틈을 파고들어 허공을 가르며 손오공에게로 떨어졌다.

    검은색 부광(斧光)이 갑자기 번쩍이자 미처 방어하지 못한 손오공이 고개를 휙 들었지만, 코앞까지 날아온 도끼의 허상에 몸이 두 개로 잘리면서 피가 사방으로 튀었다.

    모두가 그 갑작스러운 상황에 깜짝 놀랐다. 심지어 유웅곤 자신도 믿을 수 없었다. 모든 요족이 공인하는 요왕이 자신의 도끼에 찍혀서 죽다니!

    “조심해!”

    그가 의아해하고 있는데, 자 선생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사방으로 흩어진 피가 땅에 닿기도 전에 허공에서 하얀 연기가 피어오르더니 둘로 갈라진 손오공의 몸이 잘린 원숭이 털로 변해 천천히 아래로 떨어졌다.

    이와 동시에 껄껄 웃음소리가 세 명의 태을 수사 뒤에서 들려왔고, 강렬한 바람 소리가 뒤따랐다.

    손오공이 갑자기 뒤에서 나타나 여의금고봉을 쫙 쥐고는 강하게 휘둘렀다.

    금색 곤봉이 그의 뜻대로 몇 장이나 늘어나 세 사람을 동시에 휩쓸며 날아왔다. 봉에서는 잔잔한 허공의 물결이 일렁였는데, 그 강력한 힘에 허공이 부서질 것 같았고, 속도 또한 더없이 빨랐다.

    백천이 눈을 반짝이며 한 손을 결인하자 몸이 흐려지면서 순식간에 그 자리에서 사라졌다. 그러나 금전과 유웅곤은 피하지 못했고, 호신 술법을 시전한 채 곤봉에 휩쓸렸다.

    두 사람은 공간 균열을 몇 개나 지나면서 한참을 날아갔고, 공간 통로의 벽에 충돌했다. 다시 바닥으로 떨어질 때는 처참한 핏덩이가 되어 있었다.

    이 충돌로 인해 공간 통로 전체가 강하게 흔들렸다.

    자 선생은 아까 공격에 패퇴한 뒤로 다시 공격에 나서지 않고 기이한 법결을 맺으며 술법의 힘을 모으고 있었다.

    “손오공, 네가 나설 줄 알고 있었다. 허나 이번에는 아무리 네놈이라 해도 살아남지 못할 게다!”

    자 선생이 눈을 가늘게 뜨더니 갑자기 술법을 멈추고는 소리쳤다.

    그의 말이 끝나자마자 땅에서 그림자가 솟더니 갑자기 움직였다.

    땅에서 움직이던 그림자가 갑자기 세 가닥의 검은 빛으로 나뉘었고, 원래의 그림자에서 갈라지려는 것처럼 일제히 길어지기 시작했다.

    “호오, 그림자 공간인가? 오랜만에 보는구나.”

    손오공이 의외라는 듯이 말했다.

    그 그림자를 돌아본 순간, 심협은 깜짝 놀랐다. 이 검은색 그림자가 동시에 일어서며 세 개의 사람 그림자가 안에서 나타난 것이다.

    가장 왼쪽에 있는 것은 푸른 옷을 입은 적미(赤眉)의 남자였다. 그는 덩치가 매우 컸고, 손에는 검은색 마도를 들고 있었다. 그 칼날 표면에는 무언가가 불룩 튀어나와 있었는데, 자세히 보니 흉악한 표정으로 비명을 지르는 귀신의 얼굴이었다.

    붉은 눈썹 사내 옆에는 키가 작고 뚱뚱한 중이 있었는데, 붉은 가사를 입은 채 기이하게 생긴 검은색 가사를 걸치고 있었다. 목에는 열여덟 개의 검은색 염주를 목에 걸고 있었는데, 염주마다 마문이 새겨져 있었다. 오른손에 든 검은색 발우는 승려의 발우라고 하기에는 좀 컸다. 가장자리는 넓었고, 암홍색 광택을 띠고 있었다.

    마지막은 마르고 키가 큰 사내였는데, 기다란 옷이 땅에 끌렸고, 머리 위에는 주먹만 한 붉은색 구슬이 떠올라 암홍색 빛을 뿜어내고 있었다.

    세 사람 모두 태을급 수사로, 자 선생의 그림자 안에 숨어 있었다. 손오공을 겨냥한 살초임을 한눈에 알 수 있었다.

    세 사람은 떠오르자마자 손오공을 향해 동시에 돌진했다.

    적미 사내의 검은색 마도에서 물고기 비늘 같은 무늬가 떠올랐고, 그는 두 무릎을 조금 굽힌 채 양손으로 도를 잡더니 돌격할 자세를 취했다. 그의 온몸에서 솟아오른 마기가 도에 주입되면서 힘을 모으더니 튀어나갔다.

    날카로운 도명이 울려 퍼지며 마염을 휘감은 도광이 곧장 손오공에게로 날아갔다. 도광이 지나가는 곳마다 허공이 흔들렸고, 도기가 천지영기를 어지럽히면서 선명한 구멍이 생겨났다.

    이와 동시에 뚱뚱한 중이 갑자기 염불을 외자 검은색 발우의 마문에서 빛이 뿜어져 나오더니 빠르게 회전하면서 허공을 가르며 손오공에게로 날아갔다.

    마지막의 마르고 키가 큰 남자 머리 위에 떠 있던 암홍색 구슬도 갑자기 날아가면서 허공에 호형(弧形)의 파문이 일어나 허공을 제압했다. 그러자 폭음이 속사포처럼 끊임없이 울려 퍼졌다.

    폭음 속에서 세 개의 웅장한 기운이 한곳으로 모여들었고, 각 공격이 마치 약속이라도 한 것처럼 호응하면서 서로의 위력을 최대로 끌어올렸다.

    강력한 영압에 공간 통로 전체가 격렬하게 흔들리기 시작했다. 충만하던 천지영기도 제압당해 흐트러지자 공간이 일그러졌고, 수많은 공간 균열이 커져 갔다.

    만요맹의 진선 대요들은 이 광경에 깜짝 놀라 허둥대며 주위의 공간 균열을 피했다.

    “죽어라!”

    자 선생이 차갑게 웃었다. 그는 제아무리 손오공이라 해도 이 공격을 막을 수는 없을거라 확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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