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대몽주-1090화 (1,090/1,214)

1090화. 피비린내

퍼펑!

방의 수역에서 갑자기 폭발이 일어났다. 그 해파리 요물이 만요맹 요물들의 협공을 버티지 못하고 마침내 폭발한 것이다.

심협은 서둘러 그 청어 요물과 함께 뒤로 물러난 덕에 독액을 피할 수 있었지만, 선두에서 둘러싼 채 공격하던 요족 수사들은 즉사했다.

“휴, 봤지? 내가 안 말렸으면 자네도 저들처럼 죽었을 거야.”

청어 요물이 두려운 듯 가늘게 몸을 떨면서 말했다.

“고맙네, 고마워. 자네가 내 목숨을 구했어.”

전방 곳곳에서는 싸움이 아직도 계속되고 있었다. 북명곤 자수들은 상대하기 매우 까다롭지만, 만요맹은 적지 않은 요족을 희생한 끝에 그들의 신통에 익숙해져 얼마 후 두 마리 자수를 죽일 수 있었다.

금전과 유웅곤도 각자 해저 괴수를 하나씩 죽였고, 살아남은 몇몇 북명곤 자수와 요수들은 이내 멀리 도망쳤다.

백천의 명에 따라 만요맹 요족들이 다시 모였다. 인원을 점검한 이들은 이미 죽었거나 중상을 입은 요족은 내버려 둔 채 다시 해저를 탐색하며 나아갔다.

심협도 이들을 따라갔다.

하지만 수백 장 정도 들어간 심협은 뭔가 이상함을 알아챘다. 주위의 바닷물에는 알아채기 어려울 정도로 매우 미약한 공간의 힘이 흐르고 있었다.

주위의 다른 요족 수사들은 당연히 이를 눈치채지 못했고, 선두의 백천과 자 선생도 심협보다는 다소 뒤늦게 알아챘다.

백 장도 채 나아가기 전에 바닷물에 섞여 있던 공간의 힘이 갑자기 짙어졌고, 요물들은 그제야 주위의 바닷물이 조금씩 무거워지고 있음을 느꼈다.

이들은 멈추지 않고 들어갔지만, 속도는 현저히 느려졌다.

차 한 잔 마실 정도의 시간이 흐르자 수백 명의 만요맹 요족 대부분은 땀을 뻘뻘 흘리기 시작했다. 마치 늪에 빠진 것처럼 한 걸음 나아가는 것도 힘겨웠다.

“이 바다는 참으로 이상하군. 마치 더 내려가지 못하게 붙잡는 것 같아.”

어느 대승 절정의 수예 대요가 원망을 터트렸다.

“그러게 말일세. 이곳의 수성은 끈적거리지도 않는데 왜 늪에 빠진 것 같지? 숨까지 막히는군그래.”

다른 요물도 따라서 소리쳤다.

모두 더는 견디기 힘들었는지 여기저기서 불평이 터져 나왔다.

“맹주님, 북명곤이 발산하는 공간의 힘이 이토록 영향을 주는 것을 보니 점점 가까워지고 있는 모양입니다.”

자 선생은 주위를 둘러보더니 오히려 흡족한 목소리로 말했다.

“북명곤의 그림자도 안 보이는데 이 정도 공간의 저항력이라니! 자 선생, 우리가 이 원고의 이수를 잡을 수 있다고 확신하시오?”

“걱정하지 마십시오. 모두가 제 작전대로만 한다면 절대 빈손으로 돌아가지는 않을 겁니다.”

“자 선생이 그리 말하니 안심이 되는군요.”

백천이 고개를 끄덕였다.

“맹주님, 자 선생. 저희는 괜찮지만, 부하들이 공간의 힘을 막아내지 못하는 것 같습니다.”

유웅곤이 다가오며 말했다.

“뭘 걱정하는 겐가? 자네는 저것들이 정말로 못 움직일 거라고 생각하는가? 하나같이 꿍꿍이가 있어서 힘을 아껴두려는 게지. 어디 내기라도 해볼텐가? 강하게 몰아세우면 저들이 할 수 있는지 없는지…….”

옆에서 듣고 있던 금전이 비아냥거렸다.

유웅곤의 눈에 분노가 스쳐 지나갔다.

“아직은 저들의 힘이 필요하니 너무 몰아세워서는 안 된다. 너희가 앞에서 법력으로 저들의 압박을 줄여주어라.”

“신에게 맡겨주십시오.”

백천의 말이 끝나자마자 금전이 바로 나섰고, 잠시 머뭇거리던 유웅곤도 뒤늦게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두 사람은 대열 가장 앞으로 향하더니 동시에 강력한 기운을 뿜어냈다. 두 개의 날카로운 칼이 바닷물을 찔렀고, 웅장한 법력이 압박해오는 공간의 힘에 구멍을 냈다.

진선기의 두령급 요물들이 곧바로 다른 요물들을 인솔해 바짝 따라붙게 한 채 물살을 가르며 나아갔다.

그러나 점점 깊은 곳으로 들어갈수록 압박은 더욱 강해져 두 명의 태을 수사가 앞에서 길을 열고 있음에도 다른 요물들은 쉽게 움직일 수 없었다.

만요맹 요물들이 마침내 해저에 도착했을 무렵에는 겨우 수백 장을 내려가는 데 한 시진이나 걸릴 정도로 압박이 거센 상태였다.

해저에 도착한 만요맹 요물들이 피곤함을 느끼기도 전에 거대하기 그지없는 은색 고치가 눈에 들어왔다. 의견은 분분했지만, 모두 놀란 것만은 똑같았다.

심협이 대충 살펴보니 이 거대한 고치는 무려 수십 리나 이어져 있어서 마치 하나의 산봉우리 같았다.

고치에서는 공간 파동이 은은하게 뿜어져 나왔는데, 그다지 강하지도 않고 특별해 보이지도 않았지만, 어째서인지 경계심이 곤두섰다.

“맹주님, 북명곤은 전화(轉化) 과정이 시작된 터라 저 거대한 고치에 봉인되어 있는 것입니다.”

자 선생이 기쁨을 감추지 못하며 백천에게 말했다.

그 말을 듣자 모든 요물의 얼굴에 탐욕이 드러났다. 이들은 고치에서 느껴지는 강력한 영기를 만끽했다.

“이토록 순수한 영기라니! 조금만 다가가도 모든 모공이 저절로 열리고 영기를 받아서 윤택해지는 기분이로군. 본격적으로 뿜어져 나오면 그 이득은 실로 무궁하겠소!”

백천도 감탄을 금치 못했다.

만요맹의 요물들 모두 방금 전까지 공간의 힘에 제압되었던 피곤함도 잊었고, 적지 않은 요물들이 참지 못하고 그 거대한 고치로 다가갔다.

심협은 주위를 둘러보다가 고치 주위에 별처럼 반짝이는 하얀색 광망을 발견하고는 더욱 긴장했고, 아무도 모르게 뒤로 물러났다.

이 무렵에는 모든 요물이 거대한 고치에 이끌렸기에 청어 요물도 심협의 행동을 눈치채지 못했다.

한편, 대열 가장 앞에서는 본체가 물 구렁이인 진선기 두목이 영기의 이끌림을 참지 못하고 그 거대한 고치를 향해 다가갔다.

본래는 모두가 거대한 고치와 백여 장 정도 떨어져 있었는데, 이 물 구렁이 요물은 공간의 힘의 압력에 맞서며 3장 앞까지 다가갔다.

그러나 거기서부터는 마치 투명한 장벽에 막힌 것처럼 더는 나아갈 수 없었다.

유웅곤이 막 꾸짖으려 하는데 백천이 손을 들어 만류했다.

“길을 알아보게 놔두거라.”

그때, 물 구렁이 요물이 기합을 내지르며 온몸에서 강력한 기운을 폭발시켰고, 비틀거리면서도 장벽을 향해 달려들었다.

다음 순간, 갑자기 피비린내가 퍼졌고, 요물들은 비명을 질렀다.

비틀거리던 물 구렁이 요물의 몸이 보이지 않는 장벽을 통과하는 순간, 몇 줄기 하얀 광흔이 주위에서 번득였다. 다음 순간, 광흔이 스쳐 지나가자 이 요물의 머리는 깨진 유리처럼 순식간에 가루가 되어 흩어졌다.

곧이어 그는 무력하게 쓰러졌는데, 허공에서 서로 교차하는 수십 개의 가느다란 광흔에 닿자마자 육신마저 산산조각이 난 고깃덩어리가 되었다.

“으아아!”

만요맹 요물들의 경악성이 끝나기도 전에 거대한 은색 고치에서 광망이 번쩍이더니 연이어 일고여덟 개의 커다란 빛줄기가 떠올라 고치 주위로 흩어졌다.

이 큰 빛줄기들은 서로 그 크기나 형태가 달랐다. 어떤 것은 수백 개로 나뉘어 나뭇가지처럼 작고 가느다란 광흔이 되었고, 어떤 것은 백 장이나 길게 늘어져 깊고 어두운 바닷속으로 들어갔다. 어디까지 늘어났는지 알 수가 없을 정도였다. 또 어떤 광흔은 땅속으로 들어가 자취를 감췄다.

“어서 물러나라!”

자 선생이 갑자기 소리쳤다.

허나 이들이 반응하기도 전에 조금 떨어져 있던 하얀색 광흔이 갑자기 길어지면서 주위로 흩어진 가느다란 광흔들과 함께 요물들 쪽으로 다가왔다.

방금 진선기 대요의 결말을 본 요물들은 소름이 쫙 끼쳐 일제히 뒤로 물러났다.

다행히 이 광흔이 늘어나는 속도는 그리 빠르지 않아서 다른 요물들에게는 닿지 못했다.

광흔은 잠시 후 완전히 멈췄지만, 만요맹 요물들은 멈추지 않고 10여 장을 더 물러나고서야 멈췄다.

“이 녀석, 이번에는 빨리도 도망쳤군.”

청어 요물은 겁에 질린 채 옆을 돌아보았는데, 진즉 자기보다 더 멀리 떨어진 채 넋을 놓고 있는 코끼리 요물이 보였다.

심협은 씩 웃고는 더는 말하지 않았다.

하얀색 광흔들은 겉보기에는 비슷해 보였고, 안에서 강력한 공간 파동이 뿜어져 나오고 있었다. 어떤 광흔의 끝에는 하얀색 소용돌이가 있었고, 또 어떤 것에는 그런 게 없었다.

몇 개의 하얀색 광흔을 번갈아 살펴보고 나자 금방 그것들의 차이를 알아낼 수 있었다.

방금 그 물 구렁이 요물을 절단한 광흔은 끝에 하얀색 소용돌이가 없었고, 끝에 하얀색 소용돌이가 있는 광흔은 지금도 바다 밑의 물의 영력을 마구 빨아들이고 있었다.

모든 요괴는 이전에 발생했던 변고에 놀라서 이제는 더 이상 누구도 고치에 다가가지 않았다.

“모두들 당황할 것 없소.”

자 선생이 큰 소리로 요물들을 진정시켰고, 모든 요물이 그를 돌아봤다.

“저 거대한 고치 안에 있는 것은 북명곤이다. 우리가 바라던 기연이 바로 저 안에 있다. 저 안으로 들어가기만 하면 모든 것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자 선생, 저것 주위는 공간의 균열이 둘러싸고 있어서 전혀 다가갈 수가 없습니다. 방금 유(柳) 두령이 비참하게 죽는 걸 보시지 않았습니까?”

진선기 요물 두령 하나가 큰소리로 외쳤다.

“맞습니다! 저기로 가는 건 죽으러 가는 것과 똑같습니다!”

“이건 안 될 말입니다!”

여기저기서 겁에 질린 웅성거림이 터져 나왔다.

“방금 유 두령이 용감하게 희생하여 공간의 진동을 일으키고 모든 공간 균열과 통로를 드러나게 했으니, 이제 통로 입구만 잘 찾으면 된다.”

자 선생이 차분하게 말했다.

“자 선생, 균열과 통로가 교차하는데 어떤 것이 정확한 길입니까?”

다른 요물 두령이 물었다.

“계속해서 탐색해봐야겠지.”

‘탐색’이라는 말에 요물들은 목을 움츠렸다. 방금 진선기 요물인 유 두령이 너무도 쉽게 죽지 않았는가.

“자 선생, 공간 균열과 통로가 이것들뿐이면 다른 방법을 써보시죠. 이곳을 통하지 않고 곧바로 거대 고치를 뚫고 들어가는 건 어떻습니까?”

“이 고치는 북명곤의 비늘로 만들어진 것이라 태을기의 수사도 뚫기 어려우니 힘으로 여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그렇다면 이 공간 통로로 가는 것이 유일한 길이겠군.”

“맹주님, 제가 전에도 말씀드렸듯이, 북명곤은 현재 불안정한 상태라 공간 통로 안의 힘도 불안정하니 공간 통로로 가도 내부는 위험합니다. 경지가 낮은 요물은 조금만 방심해도 바로 가루가 되어 버릴 것입니다.”

“상관없습니다.”

백천은 자 선생의 우려에도 개의치 않는 듯 웃더니 요물들을 향해 외쳤다.

“방금 자 선생의 말을 모두 들었듯이 이 통로 안은 매우 위험하다. 그러니 나도 너희에게 강요하지 않을 것이다. 우리와 함께 들어가면 당연히 무궁무진한 이익을 얻을 수 있지만, 들어가고 싶지 않으면 강요하지 않겠다. 스스로 결정하라.”

그의 말이 끝나자마자 요물들이 곳곳에서 수군대기 시작했다. 다만 방금 유 두령의 죽음을 목격한 터라 한동안 아무도 입을 열지 않았다.

“맹주님, 저는 들어가겠습니다.”

모두의 예상을 깨고 청청이 가장 먼저 입을 열었다.

“맹주님, 저도 가겠습니다.”

용아가 뒤이어 포권했다.

두 요물이 앞장서자 진선기의 두령들이 속속 나섰다. 이들은 현재 경지에서 오랜 시간 머문 터라 이번 기연이 일생일대의 기회라 할 수 있었다.

물론 일부 진선기 요물은 기연보다 목숨이 더 소중했기에 포기했다.

진선기 두령들이 이렇게 신중한 판이니 그에 미치지 못하는 요물들은 더 말할 것도 없었다. 결국, 진선기 이하의 수사들은 아무도 나서지 않았다.

한데 그때, 상대적으로 약한 요물들 사이에서 불쑥 손이 하나 튀어나왔고, 모든 요물의 시선이 그에게로 쏠렸다.

심협은 그 시선을 느끼며 내심 탄식했다. 진즉 진선기 수사로 변신했다면 이렇게 이목이 집중되지는 않았을 텐데, 실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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