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대몽주-1089화 (1,089/1,214)
  • 1089화. 혼수모어(渾水摸魚)

    심협 일행은 여전히 대거국의 거대한 유적을 탐색하는 중이었다.

    미소와 원조의 갑작스러운 출현으로 일행은 긴장감을 풀 수 없었지만, 어쨌든 만요맹보다는 북명곤에 한층 더 가까워져 있었다.

    다만 이 미궁 같은 거대한 성의 유적 곳곳은 위험이 도사리고 있었기에 언제 또 번거로운 일이 생길지 알 수 없어 함부로 돌아다니지는 못했다.

    “심형, 이제 슬슬 북명거린으로 북명곤의 정확한 위치를 알아봐도 되지 않겠소?”

    오홍의 제안에 심협도 고개를 끄덕이고는 북명거린을 꺼냈다.

    오홍은 손을 뻗어 그 비늘을 덮었고, 체내의 조룡의 혼이 바로 술법을 운공하여 북명곤의 위치를 감지하기 시작했다.

    잠시 후, 오홍은 눈을 감은 채로 눈살만 살짝 찌푸렸다.

    “왜 그러십니까? 감지가 안 됩니까?”

    심협이 바로 오홍의 표정 변화를 알아챘다.

    그제야 오홍이 천천히 고개를 젓고는 눈을 떴다.

    “감지가 안 되는 게 아니라 이곳에서는 북명곤의 기운이 너무 넓게 퍼져 있어서 북명거린에 남은 기운만으로는 정확하게 감지할 수가 없었소. 또한 북명거린에 담긴 혈맥의 기운도 점점 희박해져서 더 쓸모가 없을 것 같소.”

    “그럼 어쩌죠? 이 넓은 대거국을 마냥 헤맬 수는 없잖아요?”

    거울 요괴가 투덜거렸다.

    심협은 말없이 생각에 잠겼다.

    한데 그때, 화령자의 목소리가 갑자기 심협의 머릿속에서 울려 퍼졌다.

    “어이, 심협. 네 그 영총…… 뭐였지? 벽해…… 맞다, 벽해요어! 그것 안에도 곤붕 혈맥이 흐르지 않더냐? 북명곤과 같은 핏줄이니 내 비술로 요족의 혈맥을 강제로 발동하면 같은 혈맥의 위치를 감지할 수 있을지도 모르지. 어때, 해보겠나?”

    “그게 사실이야?”

    “내가 왜 거짓말을 하겠느냐! 단, 실패할 확률은 있지.”

    “실패하면 벽아(碧兒)에게 영향이 있을까?”

    심협이 잠시 망설이다가 물었다.

    “걱정 마라. 큰 영향은 없을 테니까. 기껏해야 신혼의 힘이 조금 소모되는 것뿐이니 어느 정도 쉬면 될 게다.”

    심협은 제법 깊은 고민을 한 끝에 손을 휘둘러 화령자와 벽해요어를 소환했다.

    벽해요어는 곧장 푸른색 긴치마를 입고 초록색 머리를 길게 늘어뜨린, 새초록빛이 살짝 감도는 하얀 피의 아리따운 소녀로 변했다.

    “벽아가 주인님께 인사드립니다.”

    소녀는 나타나자마자 심협에게 인사를 올렸다.

    심협은 인사를 받아준 후, 화령자의 설명을 그대로 전했다.

    “벽아가 할 수 있습니다. 언제든 시켜만 주세요.”

    소녀는 환하게 웃으며 씩씩하게 말했다. 심협을 돕게 되어 진심으로 기뻐하는 모습이었다.

    심협은 고개를 끄덕이고는 화령자를 돌아봤다.

    화령자도 그 뜻을 알아채고는 벽아 뒤로 가서 소녀의 머리 위에 손을 살짝 올려놓고는 다른 손으로는 곡현성반을 꺼내 발동했다.

    이내 곡현성반에서 부문이 번득이더니 성반 위로 떠올라 소녀의 머리 주위를 맴돌았다.

    벽아는 마치 몽유병에 걸린 것처럼 두 눈을 감은 채 몸을 조금 흔들었다.

    화령자가 주문을 읊기 시작하자 벽아의 머리에 댄 손에서 별빛이 반짝였고, 마치 긴 장막처럼 소녀의 두 뺨을 가렸다.

    곧이어 벽아의 몸에서 광망이 번득이더니 깊이 잠들어 있던 혈맥의 힘이 광망의 제어를 잃은 것처럼 빠르게 확장되었고, 그녀의 몸도 조금씩 떠올랐다.

    이와 동시에 화령자는 눈을 번득이며 씩 웃었다.

    “찾았다!”

    그는 바로 손을 거두고는 술법을 멈추었다. 그러자 벽아를 뒤덮고 있던 광망도 함께 사라졌고, 그녀는 두 눈을 떴다. 다만, 두 눈은 멍했고, 미간이 시큰거리는 듯 문질러댔다.

    “됐나요?”

    “그래, 됐다. 고생 많았구나. 정말 큰 도움이 됐다.”

    “그럼 다행입니다.”

    심협의 말에 소녀가 방긋 웃었다.

    화령자가 손을 휘두르자 곡현성반이 일행의 가운데로 떠올랐다.

    모두가 어리둥절해 하는데, 화령자가 성반 위로 손을 빠르게 움직였다. 그러자 성반에 바로 빼곡한 광망이 나타나 빠르게 교차하면서 모래성처럼 건물 모형들이 생겨났다.

    “이건…… 대거국?”

    눈물 요괴가 가장 먼저 곡현성반에 떠오른 거대한 건물을 알아보고는 외쳤다. 그 건물들은 바로 자신들이 있는 대거국 유적이었다.

    성반의 광망이 점점 빼곡해지면서 커다란 건물이 조금씩 높아지기 시작하자 그 아래로는 끝없이 이어진 높낮이가 다른 해저 구릉이 나타났다.

    구릉 중앙에는 더 깊은 해구가 있었다.

    붉은 선이 건물에서 구불구불 뚫고 내려가 그 깊은 해구까지 쭉 이어졌다.

    “우리가 있는 곳은 여기고, 이 해구 안쪽이 북명곤이 숨어 있는 곳이다.”

    화령자가 붉은 선의 양쪽 끝을 가리키며 말했다.

    심협의 시선이 붉은 선을 따라갔다. 선은 자신들이 있는 곳에서부터 돌로 만든 높은 탑 근처까지 구불구불 이어져 있었고, 그 뒤로는 바로 돌아서 심해의 그 해구 안으로 들어갔다.

    “인원이 많으면 오히려 움직이기 불편하니, 차라리 다른 분들은 소요경 공간에 머물면 어떻겠습니까? 모두의 힘이 필요할 때면 제가 부르겠습니다.”

    “좋습니다.”

    심협의 말에 원구가 가장 먼저 동의했다.

    이어서 눈물 요괴와 거울 요괴가 조금 머뭇거렸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심형과 함께하겠소.”

    “좋습니다.”

    오홍의 말에 심협도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이어서 소요경 공간을 열고 오홍을 제외한 모두를 안에 넣었다.

    그때부터 심협과 오홍의 행보는 훨씬 과감해졌다. 태을 수사인 그들은 감지나 반응 능력이 남달랐기에 요괴나 요수의 기습에도 두려워하지 않고 방금 곡현성반이 보여준 붉은 선을 따라 북명곤 있는 곳으로 빠르게 달렸다.

    가끔 자수를 마주쳤지만, 두 사람은 곧장 피해서 지나쳤다.

    반각쯤 지났을 때, 이들은 마침내 멀리서 수백 장 높이에 우뚝 솟은 석탑을 발견했다. 그러나 기뻐할 수도 없었다. 바로 앞 곳곳에 요족의 시체들이 둥둥 떠다니고 있었던 것이다.

    “만요맹이 먼저 도착한 것인가?”

    심협은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두 사람은 눈을 마주쳤고, 동시에 고개를 끄덕이고는 빠르게 질주했다.

    고탑 아래에 도착하자 절반으로 찢겨 나간, 처참한 두 마리 반조반어 곤붕 자수의 시체가 탑 아래에 버려져 있었다.

    탑 반대쪽에는 거대하기 그지없는 균열이 보였는데, 동서로 수십 리나 뻗어 있어서 그 끝이 보이지 않았다. 남북의 폭도 수천 장이나 되는 거대한 해저 협곡처럼 보이는 해구가 있었다.

    “갑시다!”

    심협의 재촉에 두 사람은 곧장 그 깊은 해구로 향했다.

    안으로 갈수록 빛이 줄어들었지만, 사방 가득한 물의 영기는 점점 짙어져서 두 사람은 제대로 찾아왔다는 확신이 들었다.

    다만, 빠르게 수십 리를 이동했음에도 북명곤은커녕 만요맹 요물들도 보이지 않았다.

    의아해하면서도 계속해서 이동하던 중, 아래쪽 바닷속에서 갑자기 파동이 일어났다. 줄곧 신식을 펼치고 있던 심협은 바로 감지했다.

    그 순간, 심협은 바로 신식의 힘을 거두고 그 자리에 멈췄다.

    “왜 그러오?”

    오홍이 다가와 물었다. 그는 신식의 힘이 심협에 비하면 약한 편이라 아직 별다른 것을 감지하지 못했다.

    “저 아래에서 전투의 파동이 느껴졌소. 진선급 존재들 같은데, 아무래도 만요맹 요족들이 이수들과 싸우고 있는 모양입니다.”

    “마침내 따라왔군.”

    “일단은 충돌을 피하는 게 좋겠소. 오형, 괜찮다면 오형도 우선 소요경으로 들어가시죠. 제가 몰래 저들 사이로 잠입하여 정보를 알아보겠소.”

    “좋소.”

    심협의 제안에 오홍도 잠시 생각하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잠시 후, 오홍을 소요경 공간에 넣은 심협은 기운을 감춘 채 영력 파동이 느껴지는 쪽으로 나아갔다.

    얼마 지나지 않아 수백 명의 만요맹 요족들이 일고여덟 마리의 반조반어 북명곤 자수와 싸우는 모습이 보였다. 10여 마리의 해저 괴수처럼 기이하게 생긴 물 요괴도 있었다.

    이 전장은 무려 반경 수십 리까지 이어져 있었다. 태을 경지 고수와 싸우는 몇몇을 제외한 북명 자수와 해저의 괴수들은 각각 수십 명의 만요맹 요족 수사들에게 밀리고 있었다.

    심협은 태을 수사들을 피해 안력을 동원하여 가장 먼 곳을 살폈다. 만요맹의 맹주 백천과 자 선생이 나란히 서 있었다.

    뒤이어 그는 조심스레 잠입하여 일찌감치 찾아낸 목표로 다가갔다. 겁에 질린 듯한 푸른색 코끼리 요괴였다. 그는 구환대도(九環大刀)를 든 채 목청껏 “죽여라!”라고 외쳐대기는 했지만, 실상은 대열 가장 뒤에 숨어 있었다.

    이 무리는 다채로운 색의 독소를 뿜어대는 거대한 해파리를 둘러싸고 공격하느라 시선과 정신을 빼앗겨, 누군가가 자신들 뒤로 빠르게 접근하는 것을 눈치채지 못했다.

    이미 코끼리 요괴를 샅샅이 관찰한 심협은 칠십이변 신통을 시전하여 순식간에 만요맹 무리와 똑같은 모습으로 변했다.

    이 코끼리는 겁에 질렸다는 사실을 숨기느라 잔뜩 소리를 질러대는 등 흥분한 상태였는데, 갑자기 눈앞에서 하얀 빛이 번득이더니 빛의 문이 나타났다.

    그가 미처 반응을 보이기도 전에 심협은 상대의 장도를 갑자기 빼앗고는 엉덩이를 걷어찼다. 코끼리 요괴는 비틀거리며 빛의 문으로 들어갔다.

    빛의 문이 닫히는 순간, 자 선생과 대화를 나누던 백천은 뭔가를 감지하고는 고개를 홱 돌리며 눈을 번득였다. 모종의 영목 신통을 발동한 것이다.

    그러나 시선이 닿는 곳에 이상한 움직임은 없었다. 요족들이 열심히 싸우는 소리만 들려왔다. 그중에서도 코끼리 요괴가 가장 열심히 싸웠다.

    심협은 신중하게 법력을 거둬들여 조금도 새어나가지 않게 했다.

    자신을 살피던 눈빛이 사라지는 것을 느끼고서야 그는 안도의 한숨을 쉬고는 대열 앞으로 나아갔다.

    한데 최전방까지 치고 나가려는 순간, 갑자기 커다란 손이 어깨를 잡고는 뒤로 당기면서 나무랐다.

    “미쳤어? 이 앞은 독액이 가득한데 어딜 가는 거야? 죽고 싶은 거야?”

    심협이 돌아보니 얼굴에 비늘이 가득한 청어(靑魚) 요물이 있었다. 코끼리 요괴와 비슷한 대승 후기였는데, 둘은 친한 사이 같았다.

    “헤, 이렇게 인원이 많은데 뭐가 겁난다고 그러는 거야? 두목들이 이미 우세를 점한 게 안 보여?”

    심협은 씩 웃으며 이렇게 말했지만, 일단은 멈춘 상태였다. 보아하니 이 코끼리 요괴는 겁쟁이인 듯했고, 그렇다면 그에 맞는 연기를 해야 했다.

    “멋대로 가지 말게. 두령들이 해파리 요물을 죽여도 우리가 얻을 이익은 없으니까.”

    청어 요물이 바짝 긴장한 표정으로 당부했다.

    “내가 언제 목숨 걸고 뭘 한 적이 있는가? 그냥 가서 구경이나 할까 하는 거지. 알겠네, 안 갈게, 안 가. 됐나?”

    심협이 기다란 코를 흔들며 말했다.

    “알면 됐네. 남 좋은 일 시키려고 목숨 걸고 온 것도 아니잖은가. 뭐라도 얻어 가려면 목숨이 붙어 있어야지. 아무튼, 지금은 때가 아니야.”

    청어 요물이 목소리를 낮추며 말했다.

    “그렇지, 자네 말이 옳아. 북명곤은 구경도 못 했으니 아직은 나설 때가 아니지. 내가 성급했어.”

    심협은 이들이 북명곤을 노리고 왔음을 알고 있었기에 이렇게 말했다.

    “그렇지, 북명곤 사냥에만 성공하면 그 안에 쌓여 있는 방대한 원기가 쏟아져 나올 테니 그 원기를 흡수해서 경지만 돌파하면 된다고 자 선생이 그러시지 않았나.”

    청어 요물이 존경심을 가득 담은 목소리로 말했다.

    “말이 나와서 말인데, 자 선생 말을 믿을 수 있는 건 맞지?”

    “당연하지! 저자가 감히 맹주님을 속일 수 있겠는가?”

    “그렇지. 그건 그래.”

    심협은 그 말을 끝으로 잠시 입을 다물었다. 청어 요물의 말에 의문이 들었기 때문이다. 아무리 생각해도 자 선생이 마족의 신분을 숨기고 만요맹의 힘을 이용해 북명곤을 쓰러트리려는 데에는 비밀이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뭐가 됐든 절대 뜻대로 되게 두지 않겠다.’

    심협이 각오를 다질 때였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