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87화. 반선반마(半仙半魔)
한편, 도천신살대진의 반대쪽에서는 미소와 도산동, 오홍 등도 밖으로 빠져나왔다.
이들은 깜짝 놀랐고, 어찌 된 일인지 영문을 알 수 없었지만, 멀지 않은 곳에 미소와 원조가 있었기에 곧바로 도천신살대진 쪽으로 물러났다.
그러나 원구와 눈물 요괴는 하필 도산동과 미소에게 퇴로가 막혀 버렸다.
두 사람은 망설이지 않고 좌우로 갈라서서 빙 돌아 도망치려 했다.
“저들을 잡아!”
미소가 눈을 번득이며 외치자 도산동이 곧장 날아가더니 순식간에 눈물 요괴 앞을 막고는 눈부신 하얀 빛을 뿜어냈다.
눈물 요괴는 도산동의 환술을 이미 겪어봤기에 바로 눈을 감고 신식만으로 주위 상황을 감지하면서 입에서는 수십 장 크기의 푸른색 빙염(氷焰)을 뱉어냈다.
빙염과 하얀 빛이 충돌하자 빙염 안의 한기는 바로 흐트러졌다.
환술의 본질은 교란이고, 상대의 오감과 신식, 법력 등을 교란하는 것이 목적이다. 도산동은 환술 조예가 깊었는데, 이 하얀 빛은 그가 자랑하는 신통 혼란광화(混亂光華)였다.
눈물 요괴는 깜짝 놀라 푸른색 빙연 안의 한기를 끌어내 반경 수백 장의 바닷물을 얼려버렸다. 그러자 눈부신 하얀 빛과 그 뒤의 도산동도 함께 얼어붙었다.
눈물 요괴는 자신의 빙염이 이 정도로 효력을 발휘할 줄은 몰랐기에 내심 놀라면서도 서둘러 도천신살대진으로 도망치려 했다.
한데 그때, 그녀는 무언가에 부딪히고 말았다. 갑자기 머리가 깨질 듯 아파 왔고 눈앞이 흐려지더니 주위의 경치가 완전히 바뀌었다.
본래 허공에 떠 있던 푸른 빙산은 어느새 그녀의 정면에 나타났다. 방금 부딪힌 것이 바로 그 빙산이었다.
“환술! 언제 걸린 거지?”
깜짝 놀란 눈물 요괴는 눈을 가늘게 뜨고 주위를 둘러봤다.
전방의 멀지 않은 곳에 있던 빙산이 사라지면서 도산동의 모습으로 변했고, 두 눈에서 뿜어져 나온 환상의 하얀 빛이 눈물 요괴의 눈을 가렸다.
“안 돼!”
눈물 요괴는 바로 눈을 감았지만, 안타깝게도 늦고 말았다.
강력한 환력이 체내로 밀려 들어오자 그녀는 몸을 제어할 수 없었다. 신지도 빠르게 흐려져 마치 끝없는 악몽에 빠질 것만 같았다.
‘이렇게 죽는 건가? 안 돼! 난 아직 해야 할 일이 있어! 이대로 죽을 수는 없어!’
눈물 요괴는 이를 악물고 전력으로 본원의 힘을 운공하여 동술을 막아냈다.
눈물 요괴는 원망이 모여 변한 요물이라 그녀의 본원 요력은 원념을 통해 신혼을 강하게 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도산동의 미천동술 앞에서는 무력하여 신지가 금방 무너지고 혼수상태에 빠져들고 말았다.
도산동은 씩 웃더니 소매를 휘둘렀다. 그러자 허공으로 하얀색의 가느다란 그물이 날아갔다.
이 그물은 허공에 녹아들면 누구도 알아챌 수 없는 비장의 법보였다. 그 안에는 오랜 세월 갈고닦은 환력이 담겨 있어서, 닿는 순간 환상에 빠지게 된다.
도산동이 소매를 휘둘러 눈물 요괴를 휘감고는 이어서 반대쪽의 원구를 향해 날아가더니 재빨리 따라잡았다.
안색이 크게 변한 원구가 조그만 검은색 자루를 휘둘렀다. 그러자 수많은 전갈이 벌떼처럼 쏟아져 나와 순식간에 백 장에 이르는 커다란 구름처럼 변해 엄청난 기세로 도산동에게 휘몰아쳤다.
도산동은 전혀 개의치 않고 결인해 그물로 뒤덮었다.
날개가 달린 시커먼 전갈 대군은 그물에 닿자마자 바로 움직임을 멈추더니 빗발처럼 우수수 떨어져 내렸다.
원구는 소름이 쫙 끼쳤다. 이 날개 달린 전갈은 그가 비밀리에 키운 영충으로, 껍데기는 매우 단단한 데다 불과 맹독도 두려워하지 않는 존재들이었다. 한데 도산동의 일격도 버티지 못한 것이다.
원구가 다른 공격을 하기도 전에 도산동이 갑자기 나타나더니 하얀 빛으로 그를 감쌌다. 바로 이전에 시전했던 혼란광화였다.
눈물 요괴보다 경지가 훨씬 낮은 원구는 하얀 빛에 뒤덮이자마자 저항력을 잃고 그대로 혼절했다.
이 무렵, 오홍과 조비극은 무사히 도천신살대진 옆까지 물러났는데, 눈물 요괴와 원구가 사로잡히는 광경을 보고는 표정이 일그러졌다. 그렇다고 감히 구하러 갈 수도 없었다. 좀 전에 도천신살대진의 도움을 받아가며 싸웠음에도 도산동과 미소의 적수가 되지 못했으니 지금은 말할 것도 없었다.
도산동은 오홍을 도발하듯 쳐다보고는 눈물 요괴와 원구를 데리고 돌아가려 했다.
그 순간, 거울 요괴가 이를 악물고 결인을 했다. 그러자 한 줄기 커다란 푸른 빛이 오홍 옆에서 반짝였고, 푸른색 고경이 빠르게 회전하면서 눈부신 푸른 빛을 뿜어냈다.
“적의 도발에 넘어가서는 안 되오!”
오홍이 급하게 말렸지만, 이미 늦고 말았다.
거울이 강하게 번쩍이더니 거울 요괴와 고경이 동시에 사라졌다.
도산동 옆의 수역에서 푸른 빛의 파동이 일어나더니 거울 요괴와 그 푸른 고경이 갑자기 나타났다. 거의 동시에, 고경에서 뿜어져 나온 푸른 정광이 도산동을 뒤덮었다.
도산동이 씩 웃더니 이 일격을 가볍게 피하고는 오른손을 휘둘렀다. 그러자 혼란광화가 다시 뿜어져 나갔다.
동시에 그녀의 눈에서 두 줄기 희미하고 하얀 빛이 뿜어져 나와 순식간에 거울 요괴에게로 날아갔다.
거울 요괴가 결인하자 푸른 고경이 앞으로 날아와 몇 배로 커져서 두 줄기 하얀 빛과 혼란광화를 막아냈다.
그러나 도산동은 미천동술과 혼란광화를 거두기는커녕 냉소하더니 오히려 두 신통의 위력을 높여 강하게 몰아세웠다.
미천동술과 혼란광화는 사람을 제어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법보에도 영향을 주는 환술이있다. 거울 요괴가 저 범상치 않아 보이는 고경을 바치겠다고 하니 받아줄 참이었다.
“반사!”
거울 요괴가 본원의 힘을 뱉어 푸른 고경에 녹아 들게 하고는 낮게 외쳤다.
고경의 모든 푸른 빛이 줄어들면서 거울 면에 달라붙자 유리 같은 정광이 생겨났고, 예스럽고 소박한 영문이 떠올랐다.
희미한 하얀 빛과 혼란광화가 거울 면에 닿자 바로 반사되어 도산동에게로 돌아갔다.
* * *
한편, 먼 곳의 도천신살대진. 검은 빛이 반짝이면서 거대한 조무의 모습이 나타났다. 형상이 황낭(黃囊) 같으면서도 붉은 단화(丹火) 같았고, 여섯 개의 다리와 네 개의 날개가 달렸으며, 얼굴은 없었다. 바로 공간 속도의 조무 제강이었다.
이 조무의 보이지 않는 파동이 허공을 뚫고 날아가 거울 요괴가 튕겨낸 희미한 하얀 빛과 혼란광화를 뒤덮었다.
두 빛은 갑자기 속도가 몇 배로 빨라지더니 단숨에 도산동의 몸으로 들어갔다.
도산동은 눈이 휘둥그레지더니 이내 눈빛이 공허해졌고, 그 자리에 멍하니 멈춰 섰다.
거울 요괴가 크게 기뻐하며 고경에서 푸른 빛을 쏘아 보내 도산동과 거울 요괴, 원구를 휘감고는 곧바로 도천신살대진 쪽으로 도망쳤다.
그러나 얼마 가기도 전에 위쪽 허공에서 파동이 일어나더니 싸늘한 표정의 미소가 나타났다. 그리고 거울 요괴가 반응을 보이기도 전에 갑자기 커다란 하얀 빛이 내려왔다. 도산동이 부린 것보다 열 배는 강한 혼란광화 신통이었다.
담담한 웃음소리가 갑자기 울려 퍼지더니 10여 개의 커다란 금색 뇌구가 허공에서 날아와 커다란 하얀 빛과 충돌했다.
콰콰쾅!
금색 뇌구가 폭발하면서 금색 뇌폭(雷暴)이 되어 혼란광화를 완전히 소멸시켰다.
혼란광화는 신통이나 법보 안의 영력에도 혼란을 줄 수 있는데, 금색 뇌구에 담긴 뇌전의 힘은 본래 매우 난폭해서 조금만 교란해도 스스로 폭발했다. 혼란광화 같은 신통과는 상극이었다.
“누구냐!”
미소의 등에서 하얀 그림자가 일렁이더니 커다란 여우 꼬리가 교룡처럼 날아가 뇌광이 날아온 곳을 휘감았다.
커다란 금색 곤봉 허상이 허공에서 튀어나와 꼬리와 충돌했다.
쾅!
둔탁한 소리와 함께 주위의 허공이 거울처럼 깨졌다. 하얀 여우 꼬리가 튕겨 나가면서 미소의 몸도 뒤로 밀려났다.
금색 곤봉 뒤에서 파동이 일어나더니 심협이 모습을 드러냈다.
“또 너냐!”
미소는 심협의 모습을 보자 눈빛이 떨려왔다.
심협도 미소를 바라봤고, 두 사람의 눈빛이 충돌하자 허공에 불꽃이 튀는 듯했다.
“쇄원살사를 풀었나?”
미소가 심협을 살펴보더니 눈을 치켜뜨며 물었다.
“별것 아니더군.”
심협은 냉소했다.
그때, 검은 빛이 멀리서 날아와 미소 옆에 섰다. 바로 원조였다.
“원 도우, 잘 왔소. 다시 한번 놀아봅시다.”
심협이 원조를 바라보더니 빠르게 법결을 맺었다.
그의 단전에서 갑자기 금과 흑의 광망이 빛나며 빠르게 몸 구석구석으로 퍼지자 주위의 천지영기가 떨리더니 돌풍처럼 몰려왔다. 동시에 심협의 몸이 몇 배나 커지면서 왼쪽 몸은 칠흑처럼 변했고, 오른쪽 몸은 황금빛으로 번득였다. 머리에는 금과 흑의 뿔이 자라났고, 수많은 금색 영문과 검은색 마문이 온몸으로 퍼졌다. 현양화마 신통이었다.
굉음과 함께 열 배나 강력해진 법력 파동이 휘몰아치자 이 방대한 기운을 버티기 힘든 것인지 주위의 허공이 격렬하게 흔들렸다.
이와 동시에 허공에 빛의 문이 나타나면서 거대한 훼멸명왕 언갑이 나왔고, 훼멸명왕의 온몸에서 영문이 번득이자 뇌신추와 열일전부의 영광이 교차하며 빛을 뿜어냈다.
파멸의 기운이 폭발하면서 주위의 허공도 격렬하게 요동쳤다.
이 광경을 본 미소는 눈살을 찌푸렸다.
변신한 심협과 훼멸명왕의 기운은 그녀와 원조 못지않았다. 특히 심협의 힘에는 선, 마 두 종류의 힘이 충만하여 매우 기이했다.
원조는 반선반마의 심협을 보자 전의가 불타올라 바로 달려들려 했지만, 미소가 손을 들어 가로막았다.
“짧은 시간에 실력이 이 정도까지 강해지고 도천신살대진까지 만들었을 줄이야. 네 실력이 우리보다 약하지 않다는 것을 인정한다. 방금은 우리가 경솔했으니 동아만 돌려주면 나와 원조 도우는 바로 떠나겠다. 어떠냐?”
“나를 사지로 몰아넣고는 대충 말로 넘어가겠다는 건가?”
“흥! 도천신살대진을 거둔 것은 이 싸움을 끝내겠다는 뜻이 아니었나? 우리가 가겠다는데 이제 와서 왜 붙잡는 거지?”
미소가 담담하게 웃으며 말했다.
“그것도 그렇군. 좋아. 언제든 떠나도 좋다. 허나 도산동은 거울 요괴의 포로이니 내가 결정할 문제가 아니지.”
“어떻게 하면 도산동을 놔주겠나?”
미소가 싸늘한 표정으로 물었다. 도산동은 청구 호족의 차기 족장이니 절대 잃을 수 없었던 것이다.
“아까 그 정도 구천금정이면 내 거울 요괴를 설득해보지.”
“구천금정이 얼마나 귀한지 잘 알고 있지 않은가! 아까 그것도 환술로 만들어낸 것이다.”
“그래? 그렇다면 어쩔 수 없지. 구천금정을 찾으면 다시 찾아와.”
심협은 말을 마치기도 전에 소매를 휘둘러 기절한 도산동을 소요경에 넣었다.
“좀 작긴 하지만 구천금정 두 덩이가 있다. 부족한 부분은 다른 영재로 대체하면 안 되겠나?”
미소는 끓어오르는 분노를 애써 참으며 내뱉고는 손을 휘둘렀다. 그러자 저물 법기와 두 덩이의 구천금정이 앞에 나타났다. 하나는 밥그릇보다 조금 큰 정도였고, 다른 하나는 주먹만 했다.
심협은 담담한 표정이었지만 속으로는 깜짝 놀랐다. 그가 이런 조건을 내건 것은 그저 자신들이 겪은 괴로움에 대한 복수였을 뿐, 미소가 정말로 구천금정을 가지고 있을 것이라고는 생각지도 못한 것이다.
그는 손을 펼쳐 다섯 줄기의 금색 뇌전으로 저물 법기와 두 덩이의 구천금정을 휘감고는 끌어당겼다. 뇌전에도 멀쩡한 것을 보면 이번에는 환술로 만들어낸 것이 아니었다.
심협은 신식으로 저물 법기 안의 영재를 확인했다. 제법 가치가 있는 것들이었으나, 아쉽게도 만년 화린목은 없었다.
“좋아.”
그는 모두 거둬들이고는 덤덤하게 말했다. 그러나 내심 벅차 왔다.
‘이 두 덩이의 구천금정이면 현황일기곤의 위력이 더 강해지겠군.’
그는 기분이 좋아져서 팔을 휘둘렀다. 그러자 옆에 다시 공간의 문이 나타나더니 도산동이 나와서 천천히 미소 옆으로 날아갔다.
“호조 대인, 제가 무능하여 적에게 패했습니다.”
그녀는 이미 깨어나 부끄러운 기색으로 말했다.
“저 거울 요괴의 신통은 너와 상극이었다. 게다가 협공까지 더해졌으니 네 부족함이 아니다.”
미소는 눈살을 찌푸렸지만 금방 다시 펴며 담담하게 말했다.
“가자!”
원조가 그 검은 구름을 다시 소환하더니 금방 세 사람을 감싸고는 빠르게 날아올라 눈 깜짝할 사이에 사라졌다.